읽고, 또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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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눈 먼 자들의 도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지루하다?
흔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딱딱하다거나,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재미없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필자 역시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대해 막연히 읽기 힘든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은 충분히 재미있지는 않을 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초반을 읽을 때만해도 그 생각이 맞았다고 여겼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 갈수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졌고, 뒷이야기가 궁금한 까닭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웬만한 장르 소설보다도 훨씬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샌가 필자는 『눈 먼 자들의 도시』 속 한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눈 먼 자들을, 그들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광경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차마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수상한 작품은 이 작품은 아니다. 그는 『수도원의 비망록』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했다. 아무튼 간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란 편견 때문에,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작품이 약간은 어렵고 낯선 작품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고 이 책을 보지 않던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찾노라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이 소설은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명만 눈이 멀지 않은 세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이는 다분히 환상적인 설정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미비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비트는 상상력. 환상을 통해 또 다른 사실을 전달해준다. 환상은 아주 매력적인 장치이다. 인간에게 환상은 뗄 수 없는 접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소설과 영화 등에 열광하는 것도 다양한 환상을 접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런 환상이 이야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의 눈이 모조리 멀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모든 시스템이 마비되어 버린다. 더 이상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는 영장류가 아니다. 그저 간신히 살아있는 존재가 될 뿐이다. 눈을 잃는 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모든 장애 중 시각 장애는 가장 큰 장애로 분류된다. 그건 우리가 거의 모든 정보를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 시각 정보를 접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고 만다.
한 때, 필자는 인터넷 상의 익명으로 남겨지는 악플들을 보면서 언젠가 저런 현상에 대해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무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서로 서로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들었다. 이 책이야 말로 인간이 익명을 가지게 될 때, 혹은 눈이 멀 때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토록 잔인하게 잘 묘사한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것이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의 매력일 것이다. 교묘한 환상적인 배경 설정을 깔아 둠으로써 인간 그 자체의 본연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모든 사람들이 시력을 잃지만 오직 한 여자만 시력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장면들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드러나는 장면들은 사실 끔찍하고 더럽다. 소설 속 이야기가 영화만큼이나 끊임없이 상황이 바뀌고 인과관계가 형성되고 갈등과 대립이 반복되면서 재미를 주지만, 실제 영화로 만들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그 주위 배경이 모두 끔찍하기 때문이다. 허나 이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진 ‘향수’보다 더 큰 재미를 가지고 있다. 향수보다 뛰어난 흡인력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주인공에게도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이 되고 마지막에는 큰 감동까지 몰려오는 것이다.
이미 어느 한 편으로는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그래도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면 모르는 사람들도 상당수 나올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더 널리 이 책을 알리고 싶다. 이렇게 재미를 가지고 있고, 한 편으로는 우리를 반성하게 만들며 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진정 눈을 뜨고 살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 사실 눈을 뜨고 있지만, 그렇게 생각할 분 우리 모두는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눈 먼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인생의 행운 하나는 가슴에 품고 있는 셈이다. 살아가면서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자, 이제 이 책을 읽어라. 그리고 눈을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