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다 - 2010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21
김이환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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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0 꿈을 걷다




  노블레스클럽에서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단편집을 출간했다. 제목은 작년과 같은 『꿈을 걷다』. 2010 경계문학 베스트컬렉션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단편을 실은 작가도 있고, 새로 단편을 싣게 된 작가도 있다. 따라서 역시 작년처럼 재미를 주는 단편도 있고, 작년보다 재미가 덜한 단편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괜찮았다. 여전히 장르 단편소설을 읽을 기회가 적은 상황에서, 이런 단편집이 2년 연속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반가운 것은 물론이다.




  개학 날




  『양말 줍는 소년』(황금가지)의 외전 격, 후일담 성격의 단편이다. 사실 『양말 줍는 소년』을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글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편집에 실리기에는 성격에 안 맞는 면이 있다. 『양말 줍는 소년』을 읽은 독자라면 물론 재미있게 읽을 수밖에 없는 글이다. 책을 읽고 나서 궁금했던 인물들의 뒷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3권을 읽는 동안 정이 들었던 인물들과 다시 재회하고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읽으면서 『양말 줍는 소년』 2부를 기대하게 만드는 글이기도 했다.




  페르마의 부탁




  김지훈 작가는 예전에도 ‘악마’를 소재로한 단편을 쓴 적이 있다. 웹진 거울에 가보면 악마가 등장하는 재기 넘치는 두 편의 단편이 있다.(http://mirror.pe.kr/zboard/zboard.php?id=cancoffee1 ) 이 작품도 분위기가 비슷해서 마치 연작소설처럼 보이기도 한다.(모두 악마들이 밝고 귀엽게 그려진 특징이 있다.) 이 소설은 ‘악마’가 인간을 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선언하고 주인공이 이를 저지하는 꽁트 같은 느낌을 주는 글이다.(웹진 거울에 발표한 글들을 살펴봐도 긴 분량의 단편은 없고 대부분 이번처럼 짧은 글이다.) 위트가 섞인 문체가 글에 재미를 주고 있다.




  아내를 위하여




  ‘타임머신’을 소재로 한 단편이다. 시간여행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타임머신’ 기계를 발명했으나, 불운한 운명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논리적으로는 성립하기 힘들겠지만, 이런 식으로 타임 패러독스를 가지고 쓴 이야기들은 다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읽고 나서 계속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게 하는 점도 좋았다. 패키지 게임인 [창세기전3]가 떠오르는 면도 있었다.




  일검쟁위




  무협소설이다. 이 『꿈을 걷다』의 장점은 이렇듯, 다른 단편집에서는 읽을 수 없는 무협단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협소설은 많이 읽지 않아 잘 모르는 작가였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 전개를 짐작할 수 없어서 뒷통수를 때리거나 하는 재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게 진행될지 전부 눈에 그려지면서도 막상 즐겁게 따라 읽는 글이 있고, 이 글도 그런 글 중에 하나였다. 예상대로 흘러가면서도 무협의 재미를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 잘 넣은 느낌이었다. 천하제일검을 가리는 일검쟁위. 그것을 마치 그 속에 살아있는 무림인처럼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겼고 즐겼다.




  문지기




  앞에 「일검쟁위」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다시 무협소설이 나왔다. 연이어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었다. 어린 화자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했다. 캐릭터들이 살아있고, 특히 실질적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양 형이라는 캐릭터가 잘 그려졌다. ‘문지기’라는 소재도 단편에 딱 맞았고, 구성이나 문체도 좋았다. 인상에 남는 단편 중 하나였다.




  미싱 링크




  제목부터 SF를 암시하고 있기에 기대를 한 글이었다. 그러나 정작 글은 이 단편집에서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일단 설명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것도 적재적소에 들어간 게 아니라 산만하게 툭툭 튀어나왔다. 필요한 설명을 제 위치에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쏟아붓는 격이었다. 낯선 세계를 그림에도 설명이 횡설수설을 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었다. 세계관이 머릿속에 안 그러졌던 것이다. 게다가 문장이 비문이 많았다. 뜻을 알 수 없는 문장들이 많아서 교정을 제대로 봤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툭툭 끊기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아서 읽기가 힘들었다. 설정들도 앞에 암시와 복선이 제대로 깔리고 후반에 그것들이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모든 게 밝혀지는 부분들은 뜬금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용어들의 설정도 어색했는데, ‘펜니르’, ‘아누비스’ 등의 신화에서 따온 용어와 ‘M-1', ’SW-4427' 같은 알파벳, 팬텀타이거, 랩터래트 같은 영단어, 그 외에 한글, 한자, 만든 단어가 규칙없이 뒤섞여 있다. 독자가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글이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촌스러워 보인다. 순한글이면 순한글 식으로 용어들을 어떤 규칙에 맞춰서 통일시켜주었으면 읽기에 더 편했을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게 섞인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세계관의 맥락을 드러내주었어야 한다. 아무런 근거 없이 단지 용어로만 드러나길 바란다면 무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야기도 재미가 없었다. 재미있을 요소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끝에 가서는 결국 진부하고 유치한 결말로 치달으면서 아쉬움만 남겼다.




  마음을 베는 칼




  무협작가로 유명한 좌백의 글이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무협 단편을 실었다. 제목에서 예상되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소화한 글이었다. 분량도 적절하고 구성도 잘 짜였다. 다만, 이야기 전개가 신선하지 않고 전형적인 면은 조금 아쉬웠다. 이야기가 예상한 범주내로 흘러가는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안다미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실렸던 「체리피커」의 연작이다. 따라서 「체리피커」를 먼저 읽지 않으면 내용 이해가 좀 힘들 수 있다. 안 읽었다면 네이버에서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므로, 먼저 「체리피커」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860#literature_contents ) 이 단편은 「체리피커」에서 서술되는 내용 중 한 줄을 따서 단편으로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단편은 작가가 만든 독특한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연작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는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든 글이다. 이 단편은 작가가 만든 세계관 속 ‘안다미’라는 대속자 설정에 대한 이야기로 성경 속 한 일화와 결합시키고 있다. 연작이지만 처음 작품인  「체리피커」가 더 좋았고, 이 작품은 그리 큰 매력은 느끼지 못했다.




  나를 위한 노래




  이 소설도 ‘시간 여행’ 소재를 다루고 있어 재미있게 읽은 글이었다. 공교롭게도 소재나 이야기 방식이 앞에 실린 「아내를 위하여」와 겹친다. 마치 한 가지 소재를 주고 두 작가가 나름대로 글을 쓴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심리 묘사에 치중해서 몰입도가 뛰어났다. 아주 색다른 이야기가 아닌데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어내려갔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앞의 강렬한 이야기가 허무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마지막 부분이 없었거나 아니면 더 길어지면서 다른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면 좋았을 것 같았다.




  강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협 단편이다. 『무림사계』를 쓰고, 노블레스클럽에서 『무심한 듯 시크하게』 시리즈를 발표한 한상운 작가의 글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네 번째 무협 단편인데, 역시 다른 무협 단편들처럼 재미있었다. 일인칭 시점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갔고, 하나의 반전을 예상하면 연이어 다른 반전이 나오면서 재미를 줬다. 그만큼 구성 면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단편이었다. 그런 구성으로 이끌기 위해서 독자가 납득하기 힘든 면도 있어서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꽤 만족스러운 재미였다. 두 개로 해석할 수 있는 마지막 문장의 처리까지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세상 끝으로




  『묵시강호』, 『타락고교』를 쓴 홍성화 작가의 작품. 작년에 실었던 단편 「마그니안」에 비해 상당히 나아진 판타지 단편이었다. 따스한 동화 같은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들은 전부 밝고 명랑한 캐릭터들이다. 대화들도 익살맞고 가볍기 그지없고 내용 전개도 단순하고 모두 예상한 그대로 진행된다. 이 점이 아쉽게도 이 글이 재미를 주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난한 전개와 살아있기 보다는 별다른 특징없는 전형적인 캐릭터들 때문에 전체적으로 소설이 밋밋한 느낌을 준다. 몇몇 상황이나 캐릭터들의 행동도 효과적으로 이유를 독자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 부분들이 소설을 어색하게 만들고 있다. 좀더 분량이 늘어나서 캐릭터들과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더 해주거나, 아니면 캐릭터를 줄이고 더 깔끔한 구성으로 만드는 게 나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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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4-0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은 무협 소설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편소설을 다시 썼네요^^

twinpix 2010-04-05 20:41   좋아요 0 | URL
루머일 거예요. 출간이 뜸 하긴 했지만 작년에 무협소설도 2부를 출간하며 관련 인터뷰 기사에 앞으로 출간해야 할 책들도 많이 언급했고요 그 전에도 판타스틱 등에 무협단편을 게재했죠.
 
집행인의 귀향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집행인의 귀향』은 국내에는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 『신들의 사회』 등으로 유명한 SF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편도 장편도 아닌 중편이다. 이렇게 중편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편인 만큼 페이지 수도 해설까지 포함해서 158쪽 밖에 되지 않는다. 가격은 7천 7백원. 그렇다면 사는데 주저함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오히려 줄어드는 페이지 수가 안타까울 뿐이다. 중편임에도 불구하고 글의 밀도와 무게감은 웬만한 장편소설을 상회한다.

에스프레소 노벨라. 북스피어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중단편 전집의 이름이다.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가볍게 중편을 접할 수 있다. 양이 적은 대신 진하고 강렬한 향기를 담은 에스프레소 같은 중편들을 모았다는 의미를 지녔다. 아직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제 막 0호가 출간되었을 뿐이다. 이후 관심 있는 작가나 작품들을 따로 모으면 한 가지 색들로 구별되는 등, 전집이 쌓일수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와 전집을 모으는 재미가 동시에 생길 것이라고 한다.

중편 분량의 소설 전집으로 장르에 처음 진입하려는 독자들에게 안내서 역할을 하는 전집. 멋진 기획이다. 보통 SF나 추리에 관심이 있어도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이 많다. 그렇기에 이런 중단편 전집은 참신하고 적절하게 보인다.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편하게 책을 펼칠 수 있다.

흔히 국내에서는 문고본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몇 번 시도되었던 적이 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문고본이 자리를 잡은 경우를 찾기 힘들다. 특히 장르소설 문고본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출범은 반가운 한편, 우려도 드는 게 사실이다. 문고본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이겨내야 할뿐만 아니라, 판매량의 한계가 있는 장르소설 전집의 한계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첫 번째 시도인 『집행인의 귀향』은 과연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을까.

외형은 깔끔한 디자인이 먼저 눈에 띈다. 통일된 노란 빛깔의 색에 외국의 거리 사진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다. 시집 같은 판형의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서 읽기에 좋아 보인다. 큰 주머니에도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다. 중편이라는 분량의 장점을 잘 살린 판형이다. 가격은 6천원대라면 적절했을 듯한 생각이 들지만, 번역서라는 것과 디자인 등에 신경을 썼다는 점. 또 문고본이라고 해도 문고본의 특징인 박리다매가 장르소설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원자재 값은 계속 오를 테고, 이후 나오는 책들도 비슷한 가격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낮은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위험이 있다. 처음의 가격을 유지하는 것과 중간에 가격을 올리는 것은 또한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다. 내용 때문에 가격이 아깝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정도다. 이 중편은 네뷸러상과 휴고 상 최우수 중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그만큼 대중과 평론가들에게 재미와 작품성을 인정받은 훌륭한 SF 중편이라는 소리다.

원래 이 『집행인의 귀향』은 단독적인 작품이 아니다. 세 편의 연작 중편으로 이루어진 로저 젤라즈니의 중기 걸작 『내 이름은 레기온』의 마지막에 실린 중편이다. 이 마지막에 실린 중편이 바로 네뷸러상과 휴고 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별다른 배경 설명이 없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다. 작가가 그만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작품 내에서 세계관을 잘 소화했기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차츰 세계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주인공에게 한 가지 의뢰가 들어온다. 외행성 우주 탐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사라진 인공지능 로봇 행맨이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행맨을 설계했던 네 사람 중 한 명이 살해됐다. 설계자 중 한 명은 행맨이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맡게 된 것이 주인공이다. 초반에 이 도입부에서는 마치 필립 K. 딕 원작의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떠올랐다. 그러나 이 책은 이야기의 전개나 결말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젤라즈니 특유의 화려한 수식이 들어간 현란한 문체로 미스터리 스릴러가 펼쳐진다. 기존의 로저 젤라즈니 작품들과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여기에 행맨의 의도에 대한 미스터리와 ‘죄의식’에 대한 주제의식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살면서 사소한 일이든 중대한 일이든 죄의식을 느낀다. 죄의식이 행동의 근간이 되는가 하면, 죄의식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 행맨은 그 죄의식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인간처럼 죄의식에 얽매이게 될까. 아니면 죄의식을 초월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죄의식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한 번 펼치면 끝까지 궁금해서 읽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책이다. 탄탄한 과학 설정 아래, 치밀한 구성, 묵직한 주제의식 아래 SF와 추리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평소 로저 젤라즈니의 팬은 물론이고, 에스프레소 노벨라의 목적에 부합하는 장르에 진입하려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로저 젤라즈니라는 유명한 SF 작가를 접하는데 좋은 책이다. 중편이기 때문에 속도감 있는 전개와 충분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장르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라도, 이 책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영화 한 편 보는 값으로, 영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근미래 미스터리 스릴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때로 선택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 책은 실패할 걱정을 덜어도 좋다.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하고,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재미있는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앞으로도 에스프레소 노벨라가 안정적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수 십 권의 SF, 추리 등 장르 소설 중편들이 책으로 소개가 되고, 또 많은 독자들이 장르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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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람 1 이타카
이수영 지음, Song, won seo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이름을 잊고, 삶의 목적도 잊어버린 사람. 끊임없이 투기장에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남자. 검노 214번. 만약, 이름을 포함한 모든 과거를 잃는다면 사람은 그래도 계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수영 작가의 『싸우는 사람』은 기억을 잊고 투기장에서 싸우는 남자가, 탈출하는 시점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물론이고 독자 역시 과연 이 남자가 어떤 과거를 갖고 있을지 궁금하게 된다. 주인공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간다. 험난한 바깥세상에서 이 남자가 과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초반의 몰입도는 상당히 높다.

도입부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과 함께 자아를 찾고 마침내 어떤 과거의 비밀을 밝혀내서 복수를 하는 단순한 스토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초반에 멋지게 박살났다. 주인공은 계속 도망치다 맹수 오쿠거와 싸우게 된다. 죽음의 신전 앞에서 싸운 주인공과 오쿠거는 둘다 삶의 의지가 강했고, 죽음의 신은 둘의 죽음을 반씩만 받는다. 인간과 맹수인 둘은 공교롭게도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다. 이름과 과거를 찾는다는 평범한 전개가 빗나간 것이다.

반인반수가 된 주인공은 죽음의 신전에 몸을 기탁하게 된다. 대륙을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대부분 죽음의 신전 안에서 진행된다. 두 번 정도 일이 생겨서 바깥을 나가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때문인지 생각보다 짧은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 소설의 재미는 오쿠거와 몸이 합쳐져 반인반수가 된 주인공에 있다. 이것이 단순히 무력의 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이렇게 반인반수가 되었다면 그만큼 세지는 것으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두 종족의 이해가 먼저 그려진다.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툼을 벌이던 두 종족이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간다. 그 과정 역시 재미를 주는 요소이다.(특히 소설 속에서 가끔씩 나오는 맹수 오쿠커 캐릭터의 속내가 그려지는 부분도 재미있다. 각각의 인물들의 속내가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데 이런 구성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이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는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이다. 주인공은 죽음의 신전에 신전 투사가 된다. 그리고 과거를 궁금해 하지만 적극적으로 캐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의외였다. 과거를 밝혀내는 역할은 죽음의 사제인 ‘키나’의 역할이다. 키나는 주인공의 과거를 밝히기 위해서 유령들을 소환하고 이야기를 듣는다. 왜곡된 기억의 편린들 중에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이를 통해 퍼즐을 맞추듯 진실을 쫓게 된다. 글이 시원한 액션으로 점철되어 있지는 않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에 드러난 결말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납득이 안 가는 내용은 아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악역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져 있는 점이다. 마치 엑스트라 정도로 비중이 적었고 제대로 형상화가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인물의 내력도 나오지 않고, 해결도 허무하게 되는 감이 있다. 조금 더 악역의 비중을 높이면서 갈등을 강화하면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할 것 같았다. 지금은 지나치게 대립되는 측면이 적은 것 같았다. 그만큼 긴장감이 떨어지는 면이 아쉽게 느껴졌다. 제목과 달리 액션 장면에서 크게 긴박감이 느껴지는 글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규모 전투씬이 적고 일대일의 전투도 처절하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구성을 따라가는 면이 있어서 독자가 예측을 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이 전혀 위험에 처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팽배한 글이었다.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도 약했다. 그 때문에 마치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프롤로그만 끝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2권 내에서 이야기는 하나의 단락이 끝나지만, 그 뒤에도 충분히 이야기들이 이어질만한 여지가 남겨져 있던 것이다. 주인공의 비밀이 단순히 키나의 선에서 밝혀지는 것으로, 독자에게 작은 반전과 깨달음을 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맺는 것은 완벽한 끝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내용이 진행되면서 주인공에게도 자신의 비밀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딛고 진정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면모를 보여주는 극적인 이야기가 기대되는 것이다. 결국 감내해야하는 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일 것이다. 과거를 모른 채로 살아가는 끝은 왠지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이 든다.

우리는 누구나 싸우는 사람이다. 누구나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 주인공 역시 끝없이 싸우는 공간에서 벗어났어도 또다시 신전 투사로서 싸워야 했다. 싸움은 필연이다. 이 작품은 ‘죽음’을 중심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삶’이란 결국 죽음의 양면이다. 그리고 이 죽음과 삶을 합쳐서 인생이라고 부른다. 이 소설은 단지 무언가와 싸우는 전사를 다루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재미있다. 평범한 모험 소설이 아니라, 죽음의 사제와 함께 모든 것을 잃은 반인반수의 존재가 새로운 자신을 성립해가는 이야기다. 삶을 살아가는 길은 단지 싸우는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 안에서 다시 자기만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라고 해도 살아갈 이유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살아가는 데 있어, 또 죽음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 이름은 중요치 않다. 과거도, 기억도 중요하지 않다. 그 순간, 무엇에 맞서 싸우고 누구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서는 것, 바로 삶의 목적, 삶의 단맛이 중요하다.

싸우는 사람은 흥미로운 도입부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인간이 눈앞에 단맛에 모든 고통을 잊는다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불교 설화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과 죽음이 섞여있고 끊임없이 번뇌와 고통에 휩싸여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무언가와 대항하며 싸우고, 패배하고, 또 승리하며 나아가면서도 결국 사소한 행복에 그 모든 것을 잊는 법이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 주인공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도 모든 것을 잃고 몸까지 반인반수가 된 주인공이 어떻게 다시 삶을 버티어 가는지, 또 그 안에서 다시 삶의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귀환병 이야기』, 『쿠베린』, 『사나운 새벽』을 쓴 이수영 작가의 소설답게 근래 나온 판타지 소설 중에 관심을 가질 만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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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상 - 낯선 조류 샘터 외국소설선 2
팀 파워스 지음, 김민혜 옮김, 김숙경 그림 / 샘터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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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당신이 ‘해적’이라는 단어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해적은 이미 만화나 영화, 소설, 게임으로 수없이 다루어졌다. 특히 월트디즈니에서 디즈니랜드 놀이기구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세계적은 흥행을 기록했으며,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를 최고의 영화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게 만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18세기 해적에 대해 놀라울 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 4편의 원작으로 판권을 구입한 책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 팀 파워스(Tim Powers) 티모시 토머스 파워즈는 195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과학소설 및 환상소설 작가. 숨겨진 역사를 끌어들여 이야기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적 허구를 정교하고 절묘하게 결합한 소설로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파워스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서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역사와 허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




  그 책은 바로 팀 파워스의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On Stranger Tides)』(팀 파워스, 샘터, 2010년 1월)다. 팀 파워스는 누구인가?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누비스의 문』(팀 파워스,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9월), 『라미아가 보고 있다』(팀 파워스, 열린책들, 2009년 6월) 등 앞서 두 개의 책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그 두 개의 책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도 아니다. 그만큼 국내 독자들에게 대중적으로 친숙할 만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는 아니다. 가령, 국내에 소개된 두 작품은 모두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당시 시대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기반 지식이 없이 흥미롭게 읽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 『라미아가 보고 있다』. 팀 파워스의 장편소설. 19세기 당대 최고 시인들인 바이런, 셸리, 키츠와 라미아 간에 펼쳐진 애증과 공포의 여정을 그들이 남긴 실재 기록과 여러 역사적 문헌을 통해 좇아가는 작품으로, 스팀펑크 문학의 완벽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1990년 미소포에익 판타지상을 수상하였다.
 
  작년에 출간됐던 『라미아가 보고 있다 The Stress of Her Regard』(1989) 같은 작품은 그리스 신화의 흡혈귀 일족과 맞서 싸우는 19세기 낭만파 시인들을 다룬 작품이다. 따라서 19세기 낭만주의 시인인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 퍼시 비시 셸리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작품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 작가는 또한 역사와 허구를 섞는 솜씨가 훌륭하며, 이 점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한데, 실제 역사를 모른다면 이런 매력을 도무지 체감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라미아가 보고 있다』의 프롤로그 장면은 1816년 여름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밤인데 바로 바이런과 셸리 등이 지인들과 신기한 이야기를 하나씩 한 순간이다. 이때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인 메리 셸리는 SF의 원조로 손꼽히기도 하는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1818)을 쓰게 된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그런 역사 속에 알려지지 않은 흡혈귀들이 시인들의 피를 빨며 영감을 제공했다는 설정은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 『아누비스의 문』. 19세기 초 디스토피아적 풍경의 런던의 뒷골목과 지하세계를 배경으로, 기형의 어릿광대, 탐욕스런 거지 왕, 괴이한 이집트 마법사, 낭만적인 문학도, 그리고 모종의 음모를 간직한 채 시간을 거슬러온 20세기 이방인들이 펼치는 장대한 시간여행기.




  『아누비스의 문 The Anubi Gates』(1983)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 대표작으로 역사와 환상, 과학과 마법이 혼재된 가공의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오컬트, 시간여행 요소가 섞이면서 또한 가공의 인물과 역사속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듯 티모시 토머스 파워스는 제임스 블레이록과 K. W. 지터 등과 함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대체역사 소설들을 썼고, 당시 유행하던 정치적 운동이자 스타일이었던 사이버펑크에 빗대어 자신들의 작품을 ‘스팀펑크’라고 지칭했다.

  팀 파워스가 이렇게 역사와 허구를 맞물리게 쓰는 것은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치밀한 조사와 많은 노력이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팀 파워스 같은 작가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상상력은 때론 놀랍기도 해서 역사 속에서 빈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넣기도 했다. 때로는 불합리해보이던 사건들이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제 그때 초자연적인 일이 개입되지 않았는지 실제 역사까지 한번쯤 의심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에드워드 티치는 별명인 Blackbeard, 즉 검은 수염으로 잘 알려진 해적.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모델이기도 하다.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커다란 키와 덩치를 가졌다고 전해진다.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도 역시 역사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적 중 하나인 ‘검은수염’이다. 팀 파워스는 ‘검은수염’을 다루면서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사실은 부두교의 흑마법 때문이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점이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주인공이 바로 그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팀 파워스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실제 역사에서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존 섄더낵’(줄여서 ‘잭 섄디’)이라는 인물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라미아가 보고 있다』에서도 유명한 세 시인이 주인공이 아니라, 역사에 그려져 있지 않은 ‘크로퍼드’라는 외과의사가 주인공이었듯이, 이번에도 평범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따라서 독자는 더욱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면서 역사적인 사건 현장에 함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의 시선으로 역사적인 인물들을 보고 만나고 대화하면서 마치 시간이동을 하여 그 시대의 모험을 직접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캐리비안의 해적 4>는 2011년 여름에 공개될 전망이며, 제목은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로 결정되었다.(http://extmovie.com/zbxe/1896561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를 미리 엿볼 기회!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흥행 기록을 세웠다. 따라서 4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심리도 높다. 그러나 이미 3편까지 나온 영화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으로 터미네이터 시리즈만 봐도 2편으로 완결된 시리즈를 무리하게 늘리다 보니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 우려 때문일까?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제작진은 4편의 원작 소설 판권을 구입했다. 바로 1988년도에 처음 출간된 팀 파워스의 책 『낯선 조류 ON STRANGER TIDES』다. 2011년 여름에 개봉할 영화는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라는 제목으로 부제에 판권을 산 팀 파워스 소설의 제목을 사용했다. 그런 까닭에 번역본을 내는 샘터사에서는 영화 제목과 마찬가지로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로 번역했다.

  원작이 있다면 영화의 내러티브는 대개 탄탄한 편이다. 사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은 1편의 완성도는 준수했지만, 2편과 3편은 억지로 늘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복선과 암시 등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몇몇 캐릭터들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 했다. 2편과 3편이 사실 상 하나로 붙어 있는 구조라는 것도 완결성 면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의 매력 때문에 흥미롭게 봤지만, 내러티브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던 것이다. 원작이 디즈니랜드에 있었던 해적 놀이기구를 가지고 만든 영화라는 것을 생각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고 또 엄청난 성공을 기록했지만, 순수한 영화의 완성도만 따질 때는 아쉬운 점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이번 4편은 원작을 구입한 만큼 종전과는 다른 방식의 플롯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든다.

  이번 4편은 어떻게 보면 새롭게 시리즈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키이라 나이틀리, 올랜도 블룸 등이 출연하지 않는다.) 따라서 백지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 원작을 토대로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이 훨씬 안정된 선택이 될 수 있다. 3편을 만들 때부터 제작진은 4편의 원작 소설로 이 소설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영화 3편의 마지막, 잭 스패로우는 ‘청춘의 샘’을 향한 지도를 본다. 4편이 바로 잭 스패로우가 이 ‘청춘의 샘’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는 것을 암시하면서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에는 바로 그 ‘청춘의 샘’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미리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4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다. 여기에 주인공 ‘존 섄더낵’이 아니라, ‘잭 스패로우’라면 어떤 식으로 행동했을까, 또 아니면 이 사건에 갑자기 ‘잭 스패로우’가 등장한다면 어떤 식으로 양상이 바뀔까 생각해보는 것도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읽으면서 또한 놀랐던 점은 이 소설이 지금까지 나온 1, 2, 3편의 원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몇몇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1편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해적과 좀비의 결합이 이 소설에도 부두교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 영화 속 부두교의 모습, 또 해적들의 섬, 유령선 등이 소설 속에서 유사하게 나오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리고 3편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던 해적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시점이라는 것도 같아서 묘하게 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점은 이 책이 해적을 소재로한 매체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게임인 『원숭이 섬의 비밀』 역시 제작자 론 길버트가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그 동안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만든 제작진도 이 소설을 참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 원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1~3편 원작은 놀랍게도 놀이기구이다! 월트 디즈니가 60년대에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만든 '캐리비안의 해적'은 말그대로 거대한 해적의 세계를 탐험하는데 목적을 둔 어트랙션. 거대한 보트를 타고 해적들의 도시, 해적선, 보물등을 구경하는 형식이다. 여기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 지난 3편의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들에서 ‘바르보사 선장’을 연기했던 제프리 러쉬는 MTV.com과의 인터뷰에서 “<온 스트레인저 타이드>가 이전 3부작과는 다른 새로운 연출과 스토리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아낼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표했다.(http://extmovie.com/zbxe/1913043 )



△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4탄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현재 각본 작업이 진행 중. 조니 뎁이 그대로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 역을 맡고 감독은 고어 버빈스키에서 <시카고> <게이샤의 추억> 등을 연출했던 롭 마샬 감독으로 바뀌었다. 팀 파워스의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서 조류』를 원작으로 키이라 나이틀리와 올랜도 블룸은 나오지 않는다. 개봉은 2011년 여름이며 올해 2010년 5, 6월 여름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에드워드 디치(Edward Teach)

  블랙비어드(Blackbeard, 독일어로 Schwarzbart)를 위대한 전설적 해적, 진정한 해적이라고 부른다. 많은 다른 해적들과 같이 그는 프랑스, 스페인 및 다른 영국의 적군을 공격하였던 퀸 애니 전쟁(the Queen Anne's war)기간동안 그 적함들을 나포하는 선원으로 시작하였다. 다른 해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전쟁이 끝난 후 해적으로 바다에 남았다.
  그가 살인적이고, 잔인하고 무시무시하고, 악마 같은 일을 하는 동안 블랙비어드는 약 40척의 배를 나포했다. 그의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즘은 1718년에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있었던 일주일 정도의 찰스톤 봉쇄작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왕실해군 로버트 메이나드 중위에 의하여 습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과 함께 블랙비어드와 처절한 싸움을 하였다. 해적들은 총탄과 칼로 몇 번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블랙비어드가 마침내 선상에서 굴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메이나드는 블랙비어드의 목을 잘라 그의 배 앞에 걸었다.



  "우린 이제 정말로 플로리다에 있는 게 아니오. 그러니깐, 말하자면, 플로리다도 아니고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도 아니오. 혹시 조금이라도 피타고라스를 연구해 본 적이 있소?"
  데이비스와 검은수염 둘 다 없다고 말했다.
  "피타고라스의 철학이 안고 있는 모순은 여기선 모순이 아니오. 난 이곳 환경이 평범한지 특별한지는 모르겠소만, 어쨌든 이곳에서 2의 제곱근은 무리수가 아니오."
  "이곳에 존재하는 무한대, 즉 '아페이론무한을 뜻하는 그리스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충돌하지 않지요."
―――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 팀 파워스, 김민혜 옮김, 샘터사 248~249쪽
△ 『라미아가 보고 있다』에서도 확률이 다른 독특한 공간이 등장했었다. 같은 작가의 작품답게 이 소설에서도 청춘의 샘은 기묘한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때마다 물리적인 설명이 동반되는 것이 재미있다.


  치밀한 조사가 돋보이는 작품!




  팀 파워스는 이전 작품을 보아도 방대한 조사를 하는 작가이다. 『라미아가 보고 있다』에서는 각 시인들이 쓴 작품이나 편지 문구까지도 인용하면서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마치 그 시대를 눈으로 보는 듯한 묘사가 압권이다. 풍경이나, 배의 묘사, 시대 묘사가 탁월하다. 그 때문에 마치 실제 있었던 일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배에 쓰이는 용어 등도 정확하고 음식이나 물건에 대한 명칭도 세세한 조사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덕분에 18세기, 해적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그대로 그려지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렇듯 작가가 다른 시대를 보여주려면 철저한 고증이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작업을 할 수 없으며, 특히 이 작품처럼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부두교가 등장하고 초자연적인 마법이 핵심적인 소재로 사용될 때는 더욱 리얼리티를 살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 나온 무대나 정세는 전부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했다. 등장하는 배 중에도 퀸앤스리벤지호(Queen Anne's Revenge) 같이 실제 해적선으로 활약했던 배가 있고, 검은수염의 최후 역시 역사를 그대로 따랐다. 오크라코크해협에서 그를 추적 하는 영국 해군 중위 로버트 메이나드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다. 결국 배의 선수상에 목이 잘려 죽게 된다.

  물론 이런 배경 묘사나 설정만이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아니다.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이다. 






  매력적인 해양 모험 소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팀 파워스의 모험담 _ 워싱턴 포스트




  이 소설은 재미있다. 바다와 해적, 그리고 모험. 부두교, 마법, 영생의 비법. 모든 재미있는 요소가 뭉쳐 있지 않은가. 복수심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는 청년.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남자까지.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소설이다. 사실 아무리 조사가 잘 되고,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게 잘 되었다고 해도, 이야기 자체가 재미없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덮을 것이고, 그런 상세한 고증을 알아주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고증보다도 이야기의 매력이 한층 더 뛰어난 작품이다.

  사실 팀 파워스의 기존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지루한 구석이 많았다고 할까. 물론 빛나는 구절이나, 감탄할 만한 설정, 정밀한 묘사, 엄청난 조사량에서 감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 자체가 주는 재미는 적은 편이었다. 캐릭터도 때론 정감이 가지 않았고, 지루한 묘사 부분도 많았다.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대화로만 진행되어서 따분한 경우도 있었다. 『라미아가 보고 있다』도 지루한 구석이 제법 많았으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긴장감이 넘치고 피가 튀기면서 주인공이 직접 몸으로 행동하는 모험이 펼쳐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무척 짧았고 그 전까지는 지나치게 느린 행보였다.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는 달랐다. 팀 파워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내 고정관념을 멋지게 날려버렸다. 잘 쓰는 작가지만 사람들이 열광하며 읽을 작품은 못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던 것이 단번에 바뀌었다. 아마도 그건 ‘해적’이 주요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해적이 테이블에 앉아 수다나 떨고 있겠나. 그 전에 배를 몰고 폭풍우와 싸우고 포탄을 발사하고 칼을 휘두르고 약탈하고 전투를 벌이지. 그 때문에 이야기는 잠시도 쉬지 않고 독자를 숨가쁜 모험 속으로 이끈다. 그렇다. 바로 이런 해적의 모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전투가 일어나고 상황이 뒤바뀐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고 늘어지는 부분이 없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속도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팀 파워스가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였구나, 새삼 놀라게 된 부분이었다.

  물론 그 전에 출간된 작품들에 비해 기반 지식을 덜 필요로 한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해적이라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요소가 많고, 따로 많이 알아야 할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수십 편의 게임, 영화, 책의 주인공이 된 ‘검은수염’에 대해서 전혀 몰라도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18세기 초반 카리브해와 서부대서양의 정세에 대해서 꼭 알고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을 신경쓰기 전에 주인공의 운명과 모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야기에 빨려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야기에 몰입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부두교 용어들은 낯설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음 듣는 단어이고, 그 뜻도 애매모호하기 때문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전 작품들보다는 낫지만 초반 진입 장벽이 있는 것은 여전한 셈이다. 이런 낯선 용어들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점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부두교 용어인 ‘게데’, ‘로아’, ‘보르코’, ‘바론 사메디’는 적응을 해야하는 부분인 것이다.

  사실 용어 뿐만 아니라 부두교 전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소설의 핵심 갈등은 바로 부두교의 마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 또 영생. 각각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욕망은 바로 부두교의 마법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환상적인 모험이 펼쳐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부두교 마법의 존재 때문이다. 사람들이 다쳐도 금세 치료가 되고, 또한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마법까지 나온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해적과 함께 마법도 사라지는 시대다. 그로 인해 사라질것처럼 흐릿한 마법은 묘한 매력으로 나오고 있다. 해적과 마법 모두 과거의 유물이며 또한 낭만적이다. 이 소설은 바로 해적과 마법의 시대가 막을 내리기 전에 최후의 모험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마법이 한계를 가지고 있고 댓가를 지불해야 하며, 끈적끈적하게 묘사되는 것은 몇몇 소설에 나온 팀 파워스 마법 묘사의 특징이기도 한데, 인상적이고 또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설정들이 소설 세계관의 리얼리티와 개연성을 살리기 때문이다.






△ 2011년 여름이면, 매력적인 캐릭터 캡틴 잭 스패로우가 돌아온다.




  운명의 바다를 거침없이 항해하는 남자, 존 섄더낵!




  주인공 존 섄더낵은 매력적인 사내다. 그는 이성적이면서 때론 직감으로 행동하며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존 섄더낵은 갑판에서 베스 허우드 양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해적선의 습격을 받는다. 처음에는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위험이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포로가 된다. 그때 존 섄더낵은 충동적으로 해적 데이비스에게 상처를 입히는데, 이때 해적이 될 것이냐, 죽을 것이냐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해적이 되는 것을 선택하고 해적들과 함께 섬으로 이동한다. 이후, 존 섄더낵이 어째서 배를 타고 있었는지가 서서히 밝혀진다. 아버지를 배신하고 재산을 가로챈 삼촌에게 복수하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또한, 베스 허우드와 그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비밀은 물론 검은수염의 야망까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긴장감을 더해간다. 이 소설을 이렇게 부두교 마법이 전면에 등장하고, 해적들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으며, 각각의 음모도 하나씩 밝혀지는 등 복잡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하나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주인공이 베스 허우드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소설을 매끄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배를 탄 순간, 어느새 낯선 조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 조류는 상당히 위험해서 주인공을 도무지 어디인지 모를 곳으로 데려간다. 절망적이고 참혹한 곳까지 밀어넣지만 주인공은 결코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항상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고 도망치는 경우는 없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통쾌하게 진행된다. 늘어지는 부분이 없다. 장황한 설명도 없고 지루한 묘사도 없다. 이야기의 전개가 거침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모험은 더욱 재미있게 다가온다.








  2011년 영화를 기대하며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팀 파워스의 소설 중 가장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었다. 특히 읽는 속도가 가장 빠른 작품이었다. 모험 소설이며 무엇보다도 ‘해적’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적’이 나와서 모험을 펼친다는데 사실 구구절절한 말이 필요할까. 해적의 모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냥 읽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이 어떤 식으로 영상화 될지 무척 기대된다. 탄탄한 구조와 다양한 캐릭터, 복잡한 이야기들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넓은 바다, 거기에는 세상 모든 모험이 펼쳐져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아직 낭만이 살아있는 해적의 시대가 살아난다. 아직 캡틴 잭 스패로우는 없지만, 일단 바닷내음부터 맡고 싶은 독자라면 과감히 읽어라. 그리고 모험에 빠져라.


△ 작년에 출간된 샘터 외국소설선 첫 번째 소설인 『노인의 전쟁 Old Man's War (2007)』(존 스칼지, 이수현 옮김, 샘터사, 2009년 1월). 호평이 자자했던 SF 소설로 3쇄를 찍었고 2부 『유령 여단』도 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1년 만에 샘터 외국소설선 두 번째 소설로 팀 파워스의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가 출간되었다. 앞으로 나올 샘터 외국소설선으로는 003 『쉐르부크 부인의 초상(근간)』 제프리 포드 지음, 004 『화성 연대기(근간)』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005 『저 태양의 금빛 사과(근간)』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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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 범죄의 시대 Nobless Club 20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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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 범죄의 시대




  한상운 작가는 무협 소설 『무림사계』 및 일곱 종의 무협소설을 쓴 무협 작가입니다. 그러나 한상운 작가가 노블레스클럽에서 출간한 책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현대 수사물이었습니다. 무협작가가 주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에 도전한다면 엉성한 부분이 많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작가가 많은 공부를 하고 썼기에 사실감이 있었고 캐릭터 조형을 잘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열혈 형사 정태석이라는 주인공을 결점으로는 연애나 사랑에 대해서는 초보로 그려놓아서 캐릭터에 애정을 느끼고 독자가 더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죠. 그뿐만 아니라 파트너인 유병철 형사 역시 공감할 수 있는 소시민적인 고민을 가지고 있어서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태석과 엮이게 되는 현경의 캐릭터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에서 주된 수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진지한 연애에 관한 서브플롯으로 충분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이처럼 읽고 나서 등장한 캐릭터들에게 전부 정이 갔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후속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 범죄의 시대』입니다. 한편으로는 후속작이라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소포모어 징크스, 즉 히트한 영화들의 후속편이 전편만 못한 것처럼 이 책도 전편만큼 재미를 주지 못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자 이런 우려는 사라졌습니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한 재미를 보장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편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전편처럼 이번에도 한 번 책을 잡으면 끝까지 순식간에 읽게 만드는 강렬한 흡인력을 가진 책이었습니다. 정태석, 유병철 콤비는 여전했습니다. 게다가 전편의 아쉬움이었던 단순한 사건이 보다 복잡하고 황당무계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가 늘어났습니다. 반대로 사실성은 떨어질지언정 현실에서 있을 법하진 않지만 도무지 어디로 튈지 모르고 보다 더 주인공들을 다방면에서 압박하는 이야기 전개가 흥미로웠습니다.

  전편은 좀 안전하게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적으로 나오는 캐릭터도 마지막까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고, 사건도 마약 사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에게 큰 위기도 생기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이 말려들어 고통을 당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습니다. 밋밋한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졌습니다. 사건의 스케일이 커졌고 주인공들이 벌이는 일도 대담무쌍합니다. 적으로 나오는 캐릭터들도 수가 늘어났고 개성도 뛰어납니다. 주인공들은 더 많이 얻어맞고 다칩니다. 억울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고,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기도 합니다.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그만큼 긴장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전편을 뛰어넘는 후속작이 나오기도 하는데, 『무심한 듯 시크하게: 범죄의 시대』는 제게 그런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뒤로 갈수록 마치 분량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간 더 처절하게 가도 됐을 법한 부분이나, 보다 자세하게 나와도 됐을 법한 부분이 금세 넘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뒷 부분으로 갈수록 긴장이나 흡인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전편을 읽고 쓴 리뷰에서도 썼지만 읽으면서 영상으로 장면이 떠오르는 책입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드라마 계약이 되었다고 해서 반가웠습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재미있는 스토리가 영상으로 하루 빨리 옮겨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충분히 더 많이 팔릴 만큼 퀄리티가 있고 재미있는 작품인데도 사람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을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책 중에 하나입니다. 국내에서 이런 유쾌하고 속도감 있는 수사물 소설을 찾는 것은 힘들 것입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면 한 번 서점에서든 도서관에서든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몇 페이지만 넘기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연이어 재미있게 읽은 만큼, 이들의 이야기를 앞으로 몇 편 더 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군요. 아니면 새로운 작품도 좋습니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한상운 작가의 멋진 글이 또 출간되기를 바라며 이만 짧은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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