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대산세계문학총서 68
쇼데를로 드 라클로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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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험한 관계]를 처음 기억하는 것은 1988년판 영화 <위험한 관계>이다. 사실 떠오르는 것은 고작해야 미셸 파이퍼의 모습 몇 가지 뿐이고  장면으로는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을 더 잘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명성이나 이 책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가 아니라 이 책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들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그만큼 영화들은 도발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따라서 이 책을 펼치고나서 온통 서간문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서간문으로 그 도발적인 느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들기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쓰고 받은,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주고 받은 편지들이 한데 묶여서 대중에서 보이는 느낌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고개가 빠르게 저어진다. 차라리 태우면 태웠지 그건 못할 짓인데, 이토록 치정과 음모의 음기가 가득한 편지들이 175편이나 엮어진다니!!! 하지만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과 발몽 자작을 중심으로 그들의 연인이자 희생자인 투르벨 법원장 부인과 세실, 당스니 기사 간의 편지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벗들의 편지가 포함된 175편을 읽다보면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서간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나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이 발몽 자작에게 쓰는 편지는 자신을 전혀 숨기려 들지 않는 그대로의 것이라 다른 서술 방식보다도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뛰는 발몽 위에 나는 메르퇴이유가 있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게 하는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은 참말로 여러 의미로 대단한 여인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녀가 마녀처럼 그려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녀에게 가장 많이 이입하기도 했다. 여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능력에 대해 동경심을 갖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마녀 사냥에나 나올 법한 말을 후작 부인의 신분으로 잘도 한단 말이다!

 

 

 

 

- 열번째 편지 중

 

하지만 일면 마녀의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예순세번째 편지에서 블랑주 부인과 세실의 편지를 모두 받고 나서 교묘하게 그들을 해코지하려는 모략이 그녀에게 느꼈던 일종의 동경심을 두려움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사악한 기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든한번째 편지에서 그녀가 어떻게 이런 식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읽게 되면 왠지 그녀에겐 그런 삶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게 된다. 그 긴 편지를 읽다보면 그녀의 삶도 이해가 가고 조금은 그녀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픈 마음도 드는 것을 보면 내게도 다소 사악한 기운이 있는 걸까?

 

그녀는 그렇다고 치고 발몽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없다. 자신은 메르퇴이유 부인에게 대적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너 참 답 없다' 싶은 마음이 든다.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남자이다. 사랑을 사랑으로 느끼지 못하니 바보 멍청이가 따로 없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은 없단다, 발몽아~~!! 도리어 메르퇴이유 후작 부인이 그의 감정을 제대로 짚어주는데도 어리석은 승부욕 때문에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연인은 사랑 때문에 죽는데 넌 무엇때문에 죽었단 말이냐!!!

 

 

-백번째 편지 중

 

 

-백서른네번째 편지 중

 

사랑의 감정은 대단히 복잡미묘해서, 그리고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 역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소설 속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고 절대적으로 악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어떤 감정이 옳고 그른지도 판단할 수 없다. 다만 소설을 읽으며 내가 했던 사랑과 현재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가치인지를 생각해볼 수는 있겠다. 사랑을 했었던가, 머리를 굴렸던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삶을 내맡기고 있는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짧게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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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4-0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 했는데 서간문;;의 압박으로 포기했었던 기억이 나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한번 더 도전해볼까 싶어요.

그렇게혜윰 2015-04-02 14:59   좋아요 0 | URL
저도 막 꼼꼼하게 읽진 않았어요 비슷한 내용은 통독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