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렛 따위는 관심도 아니라는 듯 아이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옥상의 놀이터로 가자고 떼를 썼다. 네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매장을 둘러보다 결국은 아이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기로 했다. 경험상 아이들은 우선 순위가 어설프게나마 충족이 되면 더이상은 떼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 식구들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고 어느 정도 어설픈 시간이 지나자 아이에게 이제 그만 놀아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좋다고 했고 나는 인심 쓰듯 미끄럼틀을 한 번 더 타고 오라고 했더니 아이는 룰루랄라 세상에 이런 좋은 엄마는 없다는 듯 경쾌하게 뛰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터질 듯한 울음 소리가 들렸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처음엔 엄마에게 화가 난 걸까 싶었는데 마구 돌아다니며 울어젖히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그 울음을 듣고 달려와주길 그 자리에 있던 부모들은 다 기대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아이는 미끄럼틀 기둥에 자리를 잡으며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도 이런 상황에서 잘 나서지 않는데 그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소심한 모양이었다. 일단 달려가 아이를 달래주었다. 아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도 모른다고 하고, 엄마가 오늘 무슨 색 옷을 입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무척 당황하고 놀란 듯 했다. 괜찮을 거라고, 엄마 곧 오실 거니 울지 말라고 하고 남편에게는 직원을 좀 찾아보라고 요청을 했다. 아이가 좀 가라앉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아이는 엄마와 단둘이 왔고 엄마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한 아저씨가 와서 아이를 함께 달래주었다. 아저씨는 자상하게 엄마는 화장실에 갔을 거라고 하고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그 방법이 있었지? 우리는 이렇게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직원을 찾으러 간 남편은 결국 찾지 못하고 왜 이 큰 놀이터에 직원이 하나도 없는지를 투덜거렸다.

 

아저씨가 아이의 손을 잡아 주셔서 나는 아이에게 아저씨 손 꼭 잡고 엄마 기다리고 있으라고 자리를 떴다. 아저씨랑 내가 둘다 아이를 잡고 있으면 좀 상황이 이상해보일 것 같아서 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보니 미아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파란색 후드 티셔츠? 아닌데 줄무늬 티셔츠인데? 얼마 쯤 지나자 그 방송 대신 다른 미아 방송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아마 아이는 무사히 엄마를 찾은 듯 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엔 정말 많은 부모들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참을 울도록 나를 포함하여 아이들조차 그 아이를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고 훈육받는 편이다. 그런 억압이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도 분명 마음 속으로는 저 아이를 달래주고 싶다고 하면서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나쁜 경우에는 엉덩이는 가만히 있고 입으로 아이를 두고 간 엄마를 욕하기만 한다. 자신의 용기없음을 남에 대한 비방으로 덮으려는 얕은 술수이다. 나 역시 엉덩이를 들어 그 아이에게 달려가기 전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이건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를 달래주는 일이니 그나마 움직였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더 큰일이 일어나는 경우들을 우리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새삼 남의 어려움을 방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전히 자신할 수가 없다. 우리는 남을 돕는 기꺼운 마음 대신 남을 도와서 보는 피해를 더 먼저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나쁜 교육으로 바른 행동을 실천하겠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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