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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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일본 저자의 책이 있었다. 평소엔 일본 저자의 책이라고는 시오노나나미의 역사물과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추리소설만 읽은 나로서는 일본 인문학 책이 낯설었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책의 주제에 굉장히 집중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또한 얼마 전 매우 인상적으로 읽은 [잘라리 이 기도하는 손을]의 저자 이타루 사사키에 대한 신뢰감도 높아 있는 터였다. 그러하기에 이번에 읽은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의 저자 하세가와 히로시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함에도 읽기 전부터 많이 높아져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 거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끄덕끄덕! 덕분에 일본 인문학서에 대한 전반적인 믿음과 기대가 높아졌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학계와 절연하고 집에서 책 읽고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는 헤겔 전문가라고 한다. '절연'이라는 말에서 그의 곤조가 느껴지지 않는가? 고약한 성질일 것 같다만 독자로서 보자면 이런 성질의 작가들의 글이 매력적인 경우가 많고 역시나 이 책에서도 저자의 매력은 글에 고스란히 느껴진다. 흔히 책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칭찬과 감탄 일색인 경우가 많다. 이 책처럼 추천하고픈 책을 저자가 골라놓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기획 형식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하세가와 히로시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고른 책에 대하여 좋은 점은 과감히 감탄하고 그렇지 못한 점은 사정없이 내친다.

 

[팡세]는 파스칼이 자기가 살던 시대와 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빚어내는 부조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날카롭고 깊이 있게 분석한 지성의 책이다. 파스칼의 신앙심을 공유하지 않는 자에게도 그 씩씩하고 굳센 지성의 말은 강한 호소력이 있다. 언제 읽든, 어디를 읽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팡세]이다. (160-161쪽)

 

내게 [논어]는 경의를 강요하는 성가신 책이다. 설교하기를 좋아하는 주제넘은 책이라 생각한다. 모처럼 명구나 금언을 만나도 설교투가 흠집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78쪽)

 

하세가와 히로시의 책 소개를 읽다보면 그가 굉장히 냉철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좋게 읽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도 그는 감정적으로나 낭만적으로 그 책을 추켜세우지 않는다. 아주 논리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저자가 이 책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구나 하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구체적으로 이 책이 왜 좋은지 정리를 해 준다. 확인사살 같은 것이다. 그 확인사살을 통해 독자는 그야 말로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2부 첫머리의 세 장을 일컫는다.) 세 장이 없었다면 [죽음의 집의 기록]은 다소 깊이가 떨어지는 작품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작품의 밑바닥에 흐르는 휴머니즘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어뜨리는 세 장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집의 기록]은 정녕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것이다. (144쪽)

 

 

이 말을 읽기 전까지 유보되었던 내 입장은 이 몇 줄의 글을 읽고 '읽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바뀐다. 공교롭게도 다섯 개의 주제에 각 세 권의 책이 소개된 중에 읽고 싶다고 별을 표시한 책이 각 주제별로 한 권의 책씩이었다. 총 다섯 권이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다섯 권의 책만 읽게 되어도 얼마나 유의미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 권씩 정하고 별을 표시한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하세가와 히로시의 보이지 않는 권함이 내게 침투한 모양이다. 당연히 그 목록 안에 [논어]가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전까지 [논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그가 [논어]의 설교투를 마뜩찮아 했듯이 책을 읽다보면 군데군데 다른 책에도 비판의 내용이 있고 때로는 그 비판이 해당 책을 읽고 싶지 않게도하고, 때로는 그 비판 때문에 해당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 만나는 작가에게 이렇게 휘둘려도 되나 싶을만큼 그의 글이 단호하다. 어쩌면 이것이 권위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루소의 [사회 계약론]을 제외하곤 그리 책을 권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다섯 권의 책을 찾아보게 된다.

 

[리어 왕], [향연], [죽음의 집의 기록], [팡세], [색채에 관하여]를 당장 온라인 서점과 도서관을 이용하여 찾아보았고 우연히 들른 북카페에서 [향연]과 [리어 왕]을 마주했을 때(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말도 그제야 귀에 걸렸을 때) 읽고 싶어지는 욕구가 더 강해졌다. 책은 누군가의 매력적인 글만으로도 불쑥 내게 다가오고, 그 다가옴과 동시에 다발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우연이 그책을 읽게 만든다.  뒤 책날개를 보니 다음 출간 예정작도 일본 저자의 책이고 제목보다도 부제가 나를 더 유혹한다. [서양 정치사상사 산책 -소크라테스에서 샌델까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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