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여동생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1
펑슈에쥔 지음, 펑팅 그림, 유소영 옮김 / 보림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표지가 주는 아련함이 있다. 복숭아꽃이 만발하던 때에 태어난 아타오의 막내 여동생, 책에서 표현한 것처럼 딱히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맑은 아기 냄새가 풍기던 그리고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 흐물흐물해지던 그 막내 여동생을 보는 것 같다. 이 말은 비유이기도 하고, 사실이기도 하다. 그 여동생은 아들을 바라던 아타오 아빠의 여섯번째 딸이고 이름도 우리말로 하면 육순이쯤 되는 류타오이다.(언니들은 아타오, 얼타오, 싼타오, 쓰타오, 우타오로 우리말로하면 일순이, 이순이, 삼순이, 사순이, 오순이 쯤 된다.) 이번에도 딸이면 복숭아나무를 벤다고 했던 아빠의 대단한 기대에 부응하지못한 류타오, 이야기는 그런 류타오에게서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나도 어릴 적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아들과 딸>이 떠올랐다. 그땐 귀남이와 귀남이 부모를 욕하면서 봤지만 그런 사람은 주변에 늘 있었다. 아마 요즘에 태어난 아이들은 생각치도 못할 일이지만 나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을 어른이 될 때까지 인식하며 살았다. 한동안 잊었던 그것이 생각나서 류타오는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에게 그렇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류타오가 여동생으로 태어났기에 이 책의 모든 형제애는 더 애틋해진다. 그런 점에서 훌륭한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도시에서 온 간부의 딸인 '나'의 아홉살부터 2년 간의 묘족 마을 생활을 다룬다. 한족이고 도시 사람인 '나'의 가족들은 분명 이질적인 구성원이지만 2년간의 기억은 분명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타오의 가족이고 그 애정의 시작은 류타오였다. 딸이 여섯이 된 가난한 집은 그럭저럭 화목하지만 여느 형제많은 집들이 그러하듯 모두가 사이가 좋을 수는 없다. 싼타오와 쓰타오처럼 한 뱃속에서 나와도 정반대인 아이들은 여느 집에든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결국 피를 나눈 자매이기에 결정적인 계기를 함께 견디다보면 세상 둘도 없는 짝이 된다.

 

'나'에게도 라오볜이라는 여동생이 있지만 아주 각별한 것도, 그렇다고 자주 싸우는 것도 아닌 그런 여동생이다. 우리가 문득 여동생을 떠올릴 때의 바로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여섯 자매인 아타오의 형제애, 가령 류타오를 향한 아타오의 극진한 사랑이나 싼타오와 쓰타오의 끈끈해진 사랑을 통해 '내 여동생'인 라오볜을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다. 라오볜에게 새 샌들을 사주기 위해 돌을 깨는 일을 하며 돈을 모으던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내 여동생을 떠올렸다. 진짜 내 여동생. 새 샌들을 자랑하는 라오볜을 보면서 내 동생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내'가 아타오를 통해 라오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겼듯이 나 역시 '나'를 통해 내 동생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생긴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라오볜은 기분이 들떠 있었다. 집에 붙어 있지 않고 걸핏하면 밖으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살짝 신발에 눈길만 주어도 바로 '언니가 돌 깨는 일을 해서 사줬어요!'라고 떠들어 댔다. 그렇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듯 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가슴이 조금 아릿했다. (105-106쪽)

 

미안했고, 저런 기분을 동생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행복하면서도 가슴이 조금 아릿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오래 떨어져 살면서 남보다도 더 대화를 적게 하고 남보다도 사정을 더 모르고 남에게 준 만큼도 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미안해졌다. 뭔가 동생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현실은 지금 내가 동생을 좀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빨리 보고 싶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데?' 하던 어제의 메시지가 떠올라 더 미안해졌다. 내가 그렇게 무뚝뚝한 언니였구나 싶었다. 작게나마 기쁘게 해 줄 궁리를 해 봐야겠다. 라오볜의 웃음처럼 밝고 맑은 웃음을 터뜨릴 것을 상상하니 내 마음이 꼭 '나'의 마음 같다. 그 마음이 아타오의 마음이고 싼타오의 마음이고 우리 모든 언니들의 마음일 것이다.

 

중국 소설을 몇 편 읽었지만 그들은 너무 무거웠다. 잘 알지 못하는 문화대혁명 시기를 이야기하는 통에 인물이나 그들의 인간적인 삶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중국 동화로는 두번째 읽는 이 이야기가 나는 소설들보다 더 좋았다. 어쩌면 지나간 우리의 시절을 돌아보는 듯도 했지만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기도 했다. 제목이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 '너는 내 여동생'이라 더 애틋했는지도 모르겠다. '女'라는 말이 이렇게 끈끈하게 다가오다니, 세상의 모든 자매들에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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