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페이지 책 - 찢고 낙서하고 해체하는 발칙한 책 읽기
봄로야 글.그림 / 시루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이 신선하다. 뒤표지 김중혁 작가의 추천사처럼 봄로야의 낙서는 '차원이 다른 낙서'이고, 내가 보기에도 그녀의 책읽기는 '차원이 다른 책읽기'이다, 나와 비슷한 책읽기 방법을 소개한 책을 읽다보면 공감은 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전혀 시도조차 해 본 적 없는 책읽기의 방법을 보자하니 이 책이 너무 예뻐보이고 설레게 된다. 이 사람은 내가 죽는 날까지 해 볼 수 없는 일을 맘껏 하는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에 대리만족도 느끼고 동경하는 마음도 생긴다.

 

일단, 목차부터가 예쁘다.  물론 이것이 정식 목차는 아니지만, 차라리 정식 목차가 이런 식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의 <미스터 모노레일>이라는 소설의 목차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의 목차는 그만큼은 아니지만 새롭다. 하지만 목차를 넘어 그녀가 책을 읽었던 생생한 경험의 흔적들을 만나자면 새로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아,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이!

 

사실 책을 곱게 봐야 한다는 어릴 적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서른이 될 때까지는 책에 밑줄도 긋지 못했다. 그래서 옮겨적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내 책을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하니 이게 내 책인가 싶은 생각에 요즘엔 밑줄도 쫙쫙 긋고 생각도 적고, 때때로 낙서도 한다. 하지만, 봄로야의 책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필요한 부분의 문장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자신의 낙서로 가득 채우거나, 싹싹 검게 칠해 버린다. 더구나 그 페이지를 찢어서 보관하는 모양이다!

 

 사실, 겁도 없이 따라해 볼까 하는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후에는 도리질을 치는 거다. '낙서는 어떻게 좀 한다 치더라도 찢는다고?' 그건 아마 평생 불가능하지 않을까? 봄로야는 이렇게 소심한 독자에겐 그저 경이의 대상으로서 대리만족을 듬뿍 줄 뿐이다.

 

그래도 만약 해 본다면? 나름대로 협상안은 그 페이지를 복사해서 한 번 해 본다는 것인데, 좀 번거럽고 억지같아 하진 않았다. 그래도 정말 맘에 드는 페이지는 복사한 다음 낙서도 하고 꾸며도 본 후에 보관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만간 한 번은 해 볼 것 같다.

 

 

작가 봄로야는 여러 가지 예술 장르의 일을 한다고 한다. 그 중엔 물론 일러스트레이터가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 낙서들은 그저 낙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행위로 보이고, 그것이 보기에 좋기도 하다. 또한 그런 능력 덕분에 이 책 자체가 참 예쁘다. 책을 예쁘다고 산 적은 별로 없는데 최근에는 예쁜 책들이 눈에 뜨인다. 책의 내용 뿐만 아니라 물질로서의 책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의 전환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글자만 꽉꽉 들어차고 그 얘기가 그 얘기 뿐인 '책에 관한 책'들만 읽는 것 보다는 이렇게 창조적 가치가 빛나는 책들을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