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나랑 노랑 - 시인 오은, 그림을 가지고 놀다!
오은 지음 / 난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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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익숙한 모든 것에서부터 낯선 모든 것으로까지

- 오은 <너랑나랑노랑>

 

 

 

 

 

  빨강, 파랑, 하양, 노랑, 초록, 검정. 그 이름을 발음해 본다. 눈을 떠 바라보면 색이 없는 곳은 없는데, 하물며 눈을 감아도 색은 보이는데 색을 소리 내어 부르자니 괜히 낯설다. 색이 낯선 것은 아닐 거야. 다만 그들을 이름 붙여 부를 때 문득, 색이 낯설어진다. 그건 연두나 분홍을 발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색을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지 색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과장되게 겸손해진다. 그 옛날 탈레스는 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색’을 지목하지 않았을까. <너랑 나랑 노랑>을 읽으면서 세계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색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영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색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마음껏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오래 쳐다보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 가볍게 웃고 맘껏 우는 것, 혹은 그렇게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색에 이름만 붙여놓은 채 색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을 소홀히 해 왔다. 그 이야기에 가만가만 귀를 대고 있자면 킥킥 웃음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어느 순간 색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망까지 생기게 된다.

 

 

 

시인은 색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다. 시인이 된 지 한 참 후인 스물일곱 살이었을 때를 적은 시, 작품을 완성한 후 하루 동안만 자만하겠다는 말, 자신의 놀이를 의심하는 데에 대한 메모를 이야기에 섞어놓았다. 그래서 때때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시인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화가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내겐 유독 초록이 그랬다. 호퍼를 처음 봤을 때 가슴 한켠 서늘해지고 묵직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초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었으리라. 시인으 이야기 속에서 나는 초록색 객차 안에 있는 조세핀이고 캐서린이었다. 온통 무료함 투성이인 조세핀의 모습에서도 나를 보았고, 문득 흔들리고 싶어 하는 욕망을 느끼는 캐서린도 나의 모습이었다. 몽롱함. 시인이 말한 것처럼 초록이 이토록이나 몽롱함을 자아낼 수 있다니! 초록에 대한 몽롱함을 느낀 그녀들(나)은 더 이상 예전의 그녀들이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한 것이 초록이라니, 그것이 그런 힘이 있다는 말인가. 난 일정부분 초록에게 취했었나보다. 아주 달콤하니 몽롱하게 말이다.

 

 

 

책은 색을 규정하지 않는다. 색을 어떤 특정한 특징으로 규정짓는 것은 색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만큼이나 주제넘은 짓이다. 빨강은 탐스러운 동시에 불안할 수 있고, 파랑은 우울함과 동시에 희망적이다. 하양은 위안과 좌절을 모두 줄 수 있으며, 노랑은 환한 빛이기도 하지만 잔인한 포식자이기도 하다. 초록은 자연이기도 하고 속도이기도 하며, 검정은 어둠 속에서 무구하기도 하고 문란하기도 하다. 색은 익숙한 모든 것에서부터 낯선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처음과 끝은 결국 검정에서부터 검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눈을 뜨기 직전부터 눈을 감은 동안까지 우리가 볼 수많은 색을 내포한 색.

 

 

 

시인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말장난을 쉬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장난이 그의 시에서도 그러했듯 늘 마지막에 가면 먹먹하다. 어쩌면 그는 가장 외로운 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랑 나랑 놀자는 그 제안에 선뜻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가 펼쳐놓은 수두룩한 색거리(source)에 마음 들여보며 어느 색 하나 입혀주지 않았던 내 삶에 사랑스런 색을 입혀본다. 너랑 나랑 사랑. 나는 가장 사랑하는 색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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