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팟 캐스트를 통해 커트 보네거트를 듣는 순간이 지나면, 이 책을 읽고픈 충동에 사로잡힌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급히 빌려 읽는데 이 얇은 책에 어쩌면 접힌 페이지가 많은지, 접히지 않은 것이 더 적은 판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냉소적이면서 유머러스한 글이 얼마 전 읽었던 소설가 미셸 우엘벡을 떠올리게도 하고 좀더 사회에 직접적인 언급을 하니 나꼼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문체를 보면 국내작가 김중혁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가 던지는 모든 말들은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농담이다. 그와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농담이며, 가장 슬픈 농담이기도 하다. 반전 작가라고 불리는 커트 보네거트이지만 그 이상으로 지구를 사랑하는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개인의 삶에 대한 애정이라기 보다는 그가 가진 그의 생 만년에 펼쳐지는 이 지독한 농담들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범미국적이고, 범지구적이다.
그가 책에서 말했듯 우리는 모두 화석연료중독자들이며, 지구는 지구를 해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에이즈나 신종 독감 등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정말 인간이란 너무나 무서운 존재라 그게 쉽지 않아 여전히 지구는 썩어가고 있다. 진실로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참 스스로에게 그리고 지구에게 할 말이 없다. 또 한 사람의 화석연료중독자인 나는 만년에라도 커트 보네거트처럼 인간 사회에 대한 지독한 농담을 하는 지속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지구를 바꿀 힘이 없으니 그런 농담이라도 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나 고급스러운 만년인가. 직접 그들의 글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가 그리워하듯 나 역시 괜히 마크트웨인과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리워진다.
책에서 다룬 에피소드 들 중 인상적인 주제는 대가족과 제멜바이스와 아날로그와 미국에 대한 내용이다. (아 줄줄이 더 말하고 싶지만 일단 이것들만.) 내가 김영하라면 분명 이 부분을 읽었을 것 같은데 그는 어떤 내용을 이야기했었는지 지금은 전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은 채 김영하의 목소리만 머릿속에서 춤춘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이상 대가족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신부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신랑 역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친구로 두고 멍청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중략)-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딱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룬다. 신랑은 친구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여자다. 신부는 이야기 상대가 하나 생기는데 그나마 남자다. (본문 55-56쪽)
수다란 얼마나 중요하 해결 방안이 되는지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을 오래 산 노인으로서의 지혜가 보인다. 남편의 딱 하나 친구가 나라니, 참 몹쓸 친구이다. 나의 유일한 이야기 상대가 남편이라니,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서로를 병들게 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들이었어 우리가? 새삼스럽다. 수많은 가족과 매일매일 수다를 떠는 것에 대하여서는 아직은 젊은 나로서는 그리 내키는 일이 아니지만 그것이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또한 그것이 이혼률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도 공감이 된다.
이런 뭔가 따뜻하고 따끔한 이야기보다 주를 이루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거대 권력에 대한 일침이다.
모든 권력은 억측가들의 손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병균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도 똑바로 주시해야 할 억측가들에 관한 사실 하나가 드러낫다.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래서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달라.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당신의 생명을 구하라.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달라.
(본문 93쪽)
지금의 우리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명심하자, 현명하여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그의 마지막 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