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내를 믿지 말라 스펠만 가족 시리즈
리저 러츠 지음, 김지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리저 러츠의 글을 처음 읽는다. 대놓고 전편을 참고하라는 말 조차도 전혀 이상하지도 거부감이 생기지도 않는다. 굉장히 정신없이 얼키고 설킨 가운데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또한, 어쩌면 결론은 독자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겠지만 그 결과가 식상하거나 허무하지 않고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비록 행동 양식이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 더 가까이는 우리 가족의 다른 모습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이지 않을까.

 

먼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우리의 주인공 이자벨,

 

사실 집안에 이런 사람은 꼭 있다. 뭘 해도 안되고, 뭘 해도 미덥지 않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가족에게 짐은 되기 싫어하는 사람. 그런데 정말 그녀는 뭘 해도 안되고 미덥지 않은 자존심만 센 사람인가? 책 속의 이자벨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괴상한 백수 같아 보이지만 자기만의 철학과 세계가 있는 사람이며, 그것은 남에게 해롭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랑스러운 가족의 가장 핵심이 바로 이자벨이 아닐까 싶다.

 

사실 심리상담을 받는 과정에서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를 거부하는 단단한 마음의 벽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오랜 시간 짝사랑한 헨리에게 고백하기 보다는 마음을 접는 편을 택하고, 오빠에게 대놓고 방좀 달라고 조르기 보다는 불면을 부르는 불안을 품은 채 오빠의 집에 숨어사는 편을 택한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쌓아둔 벽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그녀가 마지막으로 코너에게 고개를 끄덕인 그 순간, 어찌나 사랑스럽고 다행이던지. 내 마음의 벽도 무너뜨려볼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음

  우리의 사고뭉치 똑똑한 무대포 레이,

 

난 이런 캐릭터는 별로다. 레이 때문에 가장 곤란을 겪는 건 이자벨이니까. 레이는 매우 똑똑하고 본인이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무기로 무대포로 모든 일을 밀어붙인다. 덕분에 주변 사람은 난처해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이자벨의 몫이다. 헨리 곁에서 떼어놓는 것도, 매기와의 불화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엄마 대신 레이를 붙잡아 오는 것도 이자벨의 몫이다. 그런 것을 보면 이 집안에서 이자벨 없이는 레이를 통제할 수 없는 건 아닌가? 그래도 레이는 이자벨보다 돈도 많고 머리도 좋고 인정도 많이 받는다. 얄밉다.

 

그리고

   너무 늦게 철들어 버린 데이비드

 

지금이라도 철이 든 데이비드는 반갑다. 이혼과 오지탐험을 통해 bmw를 처분하고 직장을 그만 두는 획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그이지만 그의 행동을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에 나오는 가족들의 분위기이다. 물론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는 어쩌면 쳇바퀴돌듯 직장에 다니고 돈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마음 한 켠 품고 있는 사표봉투같다.

그가 이자벨의 입주를 묵인한 것, 그리고 매기라는 불편한 상대를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자백한 점에서 그의 편안해진 심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인생, 까탈스럽게 살 필요가 없는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마지막

   그저 평범한 우리의 엄마, 아빠

 

뭘해도 미덥지 않은 이자벨이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사실 사립수사관으로서의 자질은 자식 셋 중 가장 자신들을 닮았으니 어쩌면 가장 애착이 가는 자식이 아니겠는가. 그런 이자벨이 방황하는 것만 같아 겉으로는 타박을 하지만 "점심 같이 먹자."라는 말로 애정을 표현하는 아빠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아버지상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여전히 아쉽기도 하다. 더 다정하게 다가갈 수도 있잖아요? 엄마도 마찬가지다. 사실 불편한 일은 다 이자벨을 시키면서, 다시 말해 이자벨 없이는 불편한 일이 많으면서도 이자벨은 불신으로 데이비드는 맹신으로, 그리고 레이는 기대감으로 대하는 엄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라 역시 익숙하지만 속상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인다. 이야기를 의뢰한 어니와 그의 아네 린다 그리고 샤론, 바텐더의 밀로와 후계자 코너, 헨리와 매기, 모티와 루시 그리고 게이브, 페트라 등등 수많은 인물들이 이 가족과 얼키고 설키며 그들 또한 이야기에 큰 흥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16부작 미니시리즈를 하루 동안 몰아서 다 본 느낌, 각각의 인물들에 끊임없이 말을 거는 느낌, 신나고 재미있다.

 

책 뒤표지에 나온 것처럼 아슬아슬한 첩보작전은 사실 느껴지지 않지만, 희한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들의 표현방식은 두 말 할 것 없이 사랑스럽다. 이 가족, 정말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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