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잔동 일기
이현정.김익한.김선 지음 / 문화제작소가능성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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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 잊고 살았구나...]


어제 들른 도서관 엘레베이터에 ‘기억을 담은 공간 - 우리동네 기억저장소 공간발전소‘라는 인문학 프로그램 포스터를 보았다. 순간적으로는 ‘기억저장소‘라는 글자만 눈에 들어와 세월호에 대한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가 앞뒤 맥락이 눈에 들어오면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저장소‘, 아마 [고잔동 일기]를 읽지 않았더면 기억저장소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 왠지 탐정 구동치(김중혁 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의 주인공)가 나타나 싸그리 지워버릴만한 내용들이 담긴 사건들을 담아두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독을 할 정도로 내게 기억저장소는 세월호와 하나인 이름이 되었다. [고잔동 일기]는 ‘4.16 기억저장소‘를 세운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와 운영위원인 인류학자 이현정 교수가 세월호 사건 발생 일주일 후부터 박근혜 탄핵 전까지 각자 쓴 일기를 시간별로 엮은 책이다.

머리말에서 ‘일기를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운을 떼지만 일기이기에 더 가까이 그날들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을 다 읽고난 후의 마음이다. 3년의 일기를 쓰는 동안 그들은 절망했고, 원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냈다. 기록하는 사람들답게 그들의 일기는 일기조차 절제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때때로 그들은 분노하고 질책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지 8년이 지났고 ‘기억의 교실‘은 성취되지 못했으며 사건의 전말은 아직도 불투명한 채로 두루뭉술하게 처벌받고 지나갔다. 아마 5년 간은 그 문제를 다시 헤짚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무력감이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그동안 또 잊고 살았구나‘, ‘잊지 말고 다시 기억하자.‘와 같은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가족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본 사람은 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과 관계가 명확한 경우, 만약 그것이 내 가족의 문제라 해도, 그것조차 부정하고 싶어 받아들일 만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는 것을. 그러니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300여 명의 가족들은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죽은 사람의 잘못이 전혀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 잘못을 한 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움직임에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앞세워 그 가족을 마치 자기들과 같은 족속인 양 매도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의 문제이다. 그 모욕감을 몇 년째 견뎌야 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이 끊어질 고통일 것인가. 우리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잊기는 쉽다. 그들이 다만 한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주전 광화문 광장 공사 현장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곳에서 투쟁을 이어가던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였다. 그들이 이 자리를 뜨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상상해보는 일은 밝지 않았다. 우리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하는 행동에 지나친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그 행동에 피해를 보는 이가 하나이든 백이든 그들 역시 국민에 포함된다는 것을 잊은 채 밀어붙이곤 한다. 나는 광화문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던 국민이고 오히려 한 켠에선 천막 투쟁을 하고 다른쪽에선 벼룩시장이 열리는 그 공간을 무척 아름답게 보던 국민이다. 또한 청와대를 돌려받겠다는 생각 따위도 한 적이 없는 국민이기도 하다. 물론 그 반대의 국민도 48% 정도는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국민이다. 세월호의 희생자는 300여 명이고, 그 가족들 중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은 아마 그에 많이 못 미칠 것이다. 국민 다수에 비하자면 무척 적은 사람들이지만 그들 역시 국민에 포함된다. 이 국민들은 나라의 보호가 아니라 서로의 결속으로만 보호받아왔다는 생각에 일기를 읽으며 무척 답답해졌다. 언제 내가 그들의 입장이 될 지도 모르는 나라가 아니던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정말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 뿐일까?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김익한 교수와 이현정 교수의 일기는, 그 마음이 격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세월호에서 멀어져버린 내 마음을 당겨놓을 수 있었다. 어느 장르의 글이 이런 역할을 해낼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역시 일기는 힘이 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세상 구석구석의 많은 일기들이 세상에 드러났으면 좋겠다. 내가 잊고 사는 것, 놓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어제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 책에서도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구절이 있었다. 출판사의 이름이 ‘가능성들‘이라는 데에도 연관이 있어 반짝이는 문장이 되었다. 물론 김익한 교수의 의도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를 말하기 때문에 어제 내가 쓴 글과는 결이 다르다. 종종 우리는 위로와 공감의 대상을 잘못 고르는 듯 하다. 직접적 대상이 있는데 간접적 대상에 공감하고 그들과 소통한다. 마치 슬픔에 빠진 아이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위로해주는 노래만 자꾸 듣는달까? 나 역시 세월호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공감보다는 그들의 말을 전하는 이 일기를 보며 어떤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직접 그들의 손을 잡아야 했는데 가방에 배지 하나 달고 다니면서 아름다움을 뽐낸 것은 아닐까? 아름다움을 뽐낸 그 결과들이 유가족들의 마음에 닿기나 하는 걸까? 고작 그 정도의 아름다움으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는 나 자신을 깨우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속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은 그저 어제의 공연에 속하고자 하는 그 정도의 마음이었구나 싶어 부끄럽다. 내가 가진 자리에서 그저 잊지 않고 자꾸 깨치는 일이라도 하자, 아름다움 따윈 잊고.

우리가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제대로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감은 마음한 편에 밀어둔 채 또 새로운 아름다움이나 가능성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 사회가 진실로 가능성이 있는 사회라 할 수 있을까?-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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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22-05-24 10:55   좋아요 1 | URL
저도 좀 피하는 사람인데 ㅠㅠ 😭 그래도 자꾸 잊으면 그분들께 너무 미안해서 이렇게나마 기억을 😭 겨우 기억만 하는 정도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