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검객무정검 세트 - 전5권
고룡 지음, 최재용 옮김, 전형준 감수 / 그린하우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학창 시절 가장 좋아한 배우는 양조위였다. 국내에서 그의 이름은 중경삼림, 춘광사설, 화양연화에서 유명해졌지만 나의 경우는 무협드라마 '의천도룡기'의 장무기로 그를 가장 먼저 만났다. 1993년의 일이다. 이후 그 드라마는 계속 만들어졌지만 다시 봐도 양조위 만큼 장무기에 어울리는 이는 없었다. 어릴 때 난 할리우드키드가 아닌 홍콩키드였다, 그중에도 무협을 좋아했다. 초류향의 정소추가 우리 집에서 통하는 최고 미남인 시절이었다.

    

 

 

 

 중국드라마는 한때 과도한 CG로 거부감이 생겨 멀리하기도 했지만 요즘 나오는 중드 무협물은 선계와 마계를 표현해도 전혀 과하지 않게 몰입이 잘 되어 보는 맛이 더 좋다.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렇게 중드에 재미에 다시 빠져드는 중이니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을 읽기 시작하면서 고룡 원작의 중드도 같이 보는 건 당연지사. 요즘 <절대쌍교>가 다시 나온다고 하는데 이 작품도 고룡 것이었구나 놀랄 만큼 고룡의 작품은 의외로 많았다. 김용은 작가의 이름이 더 친숙하고 고룡은 작품명이 더 익숙하다. <육소봉>을 먼저 봤는데 거기엔 사실 이심환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후에 이어서 보는 중인 <표향검우>를 보면 육소봉 시대 이후를 배경으로 한 지라 노년의 이심환이 전면으로 드러나있으며 육소봉 시대 절대고수인 서문취설과 손수청의 딸이 여주인공이며, 육소봉의 이름도 적지 않게 거론된다는 점에서 아마 육소봉 시대에도 이심환은 달리 활동(?)하고 있었겠구나. 이심환 말대로라면 본인은 고수이고 육소봉, 초류향, 서문취설은 절대고수니까. 드라마를 보면서 왜 손수청이 아내쪽 친척인가 궁금했는데 이는 소설 [다정검객무정검]의 5권을 보면 알 수 있다. 각색이 좀 많이 된 듯한 상관금홍의 죽음이 [다정검객무정검]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색다른 백효생도 만날 수 있고 여러 모로 재밌게 함께 볼 만한 작품이었다.

 

 

 

 

 병기 2위에 오른 소이비도의 주인공 이심환- 다른 말로 이탐화- 는 있는 집 자식에 지적인데다 비도를 날리는 솜씨도 제일이라 요즘말로는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인성까지 갖추니 존경하는 이 만큼이나 질투하는 이가 많은 것은 당연할 터. 책에서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게을러 보이지만 품위가 있고, 쓸쓸하면서도 침착해 보이며, 시인과 같은 기질이 가득한 실의에 빠진 이 사람이 온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낭인 협객(2권 196쪽)

 

 낯간지러우리만치 너무 완벽한 한 인간의 모습 아닌가? 그 점에 반항도 해 보려고 했는데 어느 새 그가 친구와 적수를 대하는 태도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사람이 너무 단순한 게 아닌가 싶지만 초지일관 사람됨을 유지하는 모습은 다섯 권의 책을 읽는 내내 그 주변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 조차도 교화될 정도였다. 다만, [표향검우]의 이심환과는 좀 안 어울렸다. 노년이라 그런가 그냥 할아버지 느낌이 강했다. 영화 <다정검객무정검>의 적룡이라면 고개가 좀 끄덕여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여성에 대한 가볍게 보는 시선이 드러난 있어 거북했지만 그 당시의 사회적 생각 수준보다 더 나쁘진 않았으며 오히려 손소홍과 남길자 같은 인물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처럼 느끼게 했으니 당시로선 좀 앞서가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무협물들이 그런 면에선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는 하다.

 

무협물 절반 이상은 시작이 '복수'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번의 복수가 나온다. 형제의 복수를 하기 위해 칠전갑을 죽이려는 중원팔의의 집요함, 자기의 무공을 빼앗고 어머니의 마음을 빼앗은 이심환을 향한 용공자의 복수심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복수 보다는 의리에 대한 내용이 더 많았다. 물론 그 우정과 의리의 대상은 모조리 싹다 이심환! 처음 만났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아비와 이심환의 우정, 이심환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바치는 칠전갑, 이심환을 지켜보면서 그를 믿고 지지하는 손씨 가족들, 적수로 만났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곽숭양과 이심환, 말은 안해도 뭔가 통하는 게 느껴졌던 아비와 형무명 등 남자들의 의리에 대한 내용이 더 주를 이룬다. 그러한 의리를 무너뜨리는 단 한 사람이 천하제일미녀 임선아라는 점은 식상하고 억지스럽긴 하지만 거기에 놀아나는 검객이나 술수를 부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자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유혹은 얼마나 집요하고 계산적이며 파괴적인지 그 유혹이 어찌 여인의 미모 뿐일까?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지닌 이들은 선인이든 악인이든 일단 한 번 인정하게 된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유혹이 주는 것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어야 할 텐데 이심환은 '사람됨'을 가장 큰 이상으로 삼으니 그의 검은 무정하나 그의 마음은 다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과한 감정과 얽히고 설킨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주인공을 중심으로 친구와 적으로 관계도도 명확하고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단순한데 5권이나 진행되면서 지루하다거나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체의 특징인 것도 같고 어떤 이는 하드보일드한 무협이라고 하는데 이름이야 어떻든 이것이 고룡 스타일이라면 나는 또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그의 원작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롭게 본 것을 보면 아마 다른 작품들도 내게 잘 맞을 듯 싶다. 소설이 나와 있는 게 많지 않으니 일단 중드부터 차곡차곡 챙겨봐야겠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보았던 드라마 중 얼마나 많은 드라마에서 이심환은 스쳐지나갔을 것인가! 오호통재라! 다시 보자 <비도우견비도>, 새롭게 만들어주라 <소이비도>

 

"그렇소.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과 본성이오. 인성은 세상의 어떤 무공보다도 더 복잡하다오. 하지만 인성을 이해할 수 없다면, 무공 역시 영원히 정점에 이를 수 없소. 왜냐하면 모든 일이 다 인성과 연결되어 있고, 무공 또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오." (5권 94쪽)

 

어찌 무공 뿐이겠습니까?

 

 * 소이비도 시리즈

다정검객무정검 - 변성랑자 - 구월응비 - 천애명월도 - 비도우견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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