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책은 '자기만의 방'이고 그 책 때문에 나는 지금껏 버지니아울프앓이 중이다. 하지만 사랑병에는 집착 증상이 나타나야 하거늘 여느 대상에 그러하듯 좋아한다는 감정만 앞섰지 한 사람을 더 파고 들지 못하는 것은 나의 한계이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라면 변명할 거리가 있는 것이 그녀의 소설은 정말이지 고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버거운 대상이기 때문인지라 나는 그녀가 가볍게 쓴 글들로 그녀를 겉면만 야금야금 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쏜살문고로 나온 <지난날의 스케치> 역시 그런 야금야금에 포함된다.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그녀에 대한 직접적인 사실을 알 수 있으리란 기대로 읽어나간 그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문체를 느낄 수 있으면서 그녀가 어머니와 스텔라의 죽음 이후로 심적으로 많은 고통과 성장을 동시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인상적이었고, 주변의 다른 사람에 대한 회고도 마찬가지이다.  주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를 알아냈다고 내가 버지니아 울프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표현인 '목화솜 뒤에 숨은 패턴'으로 연결된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녀라는 세계를 알아가는 첫 걸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게 이 회고록을 읽는 경험은 의미 있었다. 어머니와 스텔라가 존재하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을텐데 어머니로서의 나도 역시 내 아이들에게 그런 의미겠지? 그런 생각도 해 본 것 같다. 어린 시절 이후로 위대함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고 하니 그 위대함은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얻은 것일 텐데 내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사람일까? 그런 생각들 말이다.

 

이어서 그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 <파도>를 읽었다. 중간에 세 번 정도 다시 처음으로 가서 읽어야 했다. 여섯 명이  연극에서 방백을 하듯 자기의 말을 교차하며 뱉어내는 형식에도 적응해야 했고 각 장을 구분하는 파도와 자연의 묘사를 한 9편의 글과의 교차에도 적응을 해야 했다. 각각의 인물의 성격의 차이를 구별해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퍼서벌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파도의 의미에 대해 추론해 내느라 두통이 왔다. 그렇게 한 달여를 읽다말다 한 끝에 며칠 전 그래도 한 번은 읽었다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순전히 좋아한다는 이유로 독서모임 도서로 정하고 논제를 준비해야 했던 입장에서 너무 자신없는 시작이었지만 어찌 됐든 읽어냈구나 만족한 순간이다.

그녀를 좋아해서, 더 알고 싶어서, 더 알기 위해서 읽었던 책들인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었을까? 더 알게 되었을까?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한 여인의 삶을 그녀의 눈과 의식을 따라가며 느꼈던 것과는 좀더 색다르게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소설 <파도>에서 그녀는 루이스와 로우다의 삶의 태도를 동경하는 듯 보였고, 수잔과 지니의 상반된 삶의 방향을 통해서는 두 삶 모두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작가로서 네빌과 버나드의 모습도 모두 그녀에겐 포용 대상으로 보이는 듯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어머니와 스텔라라는 존재가 이 소설에서는 퍼서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는데 그렇게 따지자니 자꾸 뭔가를 끼워맞추려는 욕구가 생겨서 중간에 포기했다. 많은 곳에서 버나드가 토비를 그린 것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했다.

 

읽으면서 여섯 개의 색연필을 들고 각각 표시를 해 가면서 읽었고, 읽고 나서는 각 장별로 밑줄 친 구절들을 표로 정리해서 노트에 붙여뒀다. 책에 색연필을 쓰긴 처음이었는데 색연필을 쓰면서 이해가 정말 잘 되기 시작해서 내겐 새로운 독서 경험이 되기도 했다. 독서 모임을 준비하면서 논제를 미리 안내한다는 게 쉽지 않았고, 또 논제를 낼 만큼 이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망설여졌다만 어찌 됐든 준비는 끝냈다.  가장 먼저는 이 책을 읽는 각자의 방법을 공유하고, 이 책의 형식에 대한 느낌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읽다보면 유난히 내 모습을 닮은 인물이 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도 있고 마음이 가지 않는 인물도 있었기에 각각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난 수잔의 모습이 나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욕망이 있지만 그것을 현실에 묻는 모습, 그러면서 충분히 행복하지도 않고. 좀 답답했던 인물은 네빌이고, 애정이 가는 인물은 로우다였다. 그렇게 생을 마무리하기엔 살아있었을 때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다음 논제는 파도의 의미, 나의 파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하는데 사실 이게 좀 어려울 것 같긴 하다. 이어질 '내 고독이 생겨나는 순간'을 말하는 것도 . 이렇게만 해도 100분은 다 지나갈 것 같지만 마지막에 버나드가

내 이마에는 퍼서벌이 낙마했을 때 받은 상처가 있다. 내 목덜미에는 지니가 루이스에게 키스한 자국이 있다. 나의 두 눈에는 수잔의 눈물이 가득 찬다. 저 멀리 로우다가 본 기둥이 금색 실처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녀가 튀어올랐을 때 그 비상이 불러일으킨 돌풍이 느껴진다.(425)

고 말한 것처럼 내 인생에 스며든 여러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뒤의 세 논제에 대해선 나 역시 아직 답을 찾는 중이다.

 

<지난 날의 회고록>을 읽으며 인간 버지니아 울프의 마음에 좀더 다가갔다면, <파도>를 읽으면서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아우라에 반했다. 의식의 흐름을 따른 소설들도 충분히 매력있었고 한 인물에게 깊이 빠져들어 좋았지만 <파도>의 기법은 무척 세련되었고 깊이있었다. 대단한 작가를 내가 좋아해왔구나 싶어 기분이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그녀를 알기 위해 그녀를 더 많이 읽어야겠구나 이번에도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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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7 0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20-07-07 07:52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방이 젤 쉬운 책이었던 ㅠㅠ 그 책만으로도 훌륭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