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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어떻게 하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쓴 글이, 길이도 짧은 글이, 몇 편 되지도 않는 글이 공감 투성이로 다가올 수가 있지? 내겐 낯선 작가일 뿐인데 그래서 사실 그렇게 많이 공감하진 말아야지 하는 마음 속 어깃장도 갖고 있었는데 몇 편 읽고 나선 이 문장도 좋고 저 문장도 좋고 그 문장들 뒤에 일관되게 느껴지는 생각은 더 좋고. 작가님, 누구세요? 찾아보니 전작의 제목은 더 좋다. [소수의 고독]이라니! 그런데 고독이라고요? 공감과 연대를 말하던 작가님의 전작이? 그런데 그 제목 뒤에 숨은 생각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아, 난 또 한 사람의 작가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작가에 대한 반함은 그만 접어두기로 하고, 책으로 들어가보자. 이탈리아가 이제 막 코로나19 확진자가 확 증가할 즈음부터 써 내려간 한달 남짓의 일기에 가까운 글은 과학자이자 소설가의 사유를 모두 엿볼 수 있다. 그의 글 속에서 한국의 사례가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최선의 방법으로 내세운 조금만 참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을 유지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의 생각에 무척 동의하며 동시에 국가에 대한 믿음도 더 공고해졌다.
R0값이라는 용어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한 환자가 다른 환자에게 전염시킬 수 있는 수라고 하는데 코로나19의 경우 평균 2.5명을 감염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몇 사례를 봐도 수십 명을 감염시킨 경우도 있으니 '평균'이라는 말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파티를 하고 운동을 함께 하는 일을 조금만 참자는 인내의 방법은 결코 쉬운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에를 보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슬과 구슬의 거리라는 비유로 적절하게 쓰여진 글은 모두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확진자 동선을 알리는 일을 가지고 프랑스가 인권침해라고 맹비난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도 그런 논란이 있었고 그 결과 최소한의 동선만 밝히기로 했다. 남이 맹비난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다. 동선을 밝히는 일에 대해 작가는 이것은 예방 차원인 즉, 의료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국가가 국민을 믿지 못할 때 많은 봉쇄와 억압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의 국민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그런 국민을 국가가 믿지 않을리 없다. 지금껏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는 일은 있었을지언정 국가가 국민의 수준을 믿지 못한 적은 없었을 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도 국가를 믿는다. 이런 관계를 더 오래 유지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전 세계가 우리를 롤모델로 삼는다. 롤모델로서 마음이 흐트러질 때 얇지만 마음을 다잡기에 좋은 문장과 내용이 그득하다. 좀더 길었으면 할 정도로....2편 안나오나요?
언제든지 감염될 수 있는 감염가능자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문장을 하나 소개하고 글을 맺는다.
전염의 시대에 연대감 부재는 무엇보다도 상상력의 결여에서 온다. (39쪽)
상상하자, 내가 감염되었을 경우를. 그 누구에 대한 비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