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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호적에서 파내지는 방법’을 궁리한 적이 있다. 그때쯤부터였을까 나는 가족에 대한 내용이 담긴 소설은 물론이고 사적인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은 의도적으로 가까이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에세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다. 내 삶과 닮은 것은 닮은 것 대로 불편했고, 닮지 않은 것은 닮지 않아 또 불편했다. 어쨌든 남의 이야기가 아닌가.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전자에 속했다. 내 삶과 많이 닮아서 불편한 결국의 남의 이야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었다. 어쩌면 잇달아 한 번 더 읽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한지혜의 글을 읽으며 '단단한 마음'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렸다. 나는 지난 삶을 외면하고, 지난 삶이 현재의 나를 방해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통에 늘 불안하다, 단단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작가는 달랐다. 그의 과거는 나의 과거와 마찬가지로 행 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고 느껴지지만 그는 그것을 마주하고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관통하여 들어갔다 돌아온 현실에서 그는 단단해져 있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지나온 모든 일을 그렇게 만든 것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나’가 결정한 사항이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남을 탓하고 싶었다. 어릴 적의 불행을 현재에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나’의 그릇이다. 그것을 알기에 넓은 그릇을 지닌 남의 삶을 들여다 볼 자신이 없었던 걸까?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이 부끄럽게 나의 그릇은 늘어날 생각을 안 한다. 작가가 동생의 용돈 문제를 다룬 글에서 말했듯 ‘피차 모른 척해야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내겐 현재 진행형인 모양이다. 모른 척 하면 없던 일이 될 것 같고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그러나 실상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 미래의 불안이 잠재된 그런 시간 말이다. 나는 언제쯤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요즘 말하는 ‘이생망’을 언제부턴가 입밖으로 내놓기 시작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부끄러워졌다. 나 자신이 누구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함부로 말하다니. 그러나 나는 두려운 것이다. 작가가 엄마의 요리법을 외면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부모가 미워서 자꾸만 그들을 마음 속에서 외면하고 있다. 한 사람과는 함께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날선 말들이 입밖으로 나가면 다시 내게로 박혀 또다시 원망이 생긴다. 가족이라는 배를 타면 난 늘 인생이라는 바다에 침몰한다.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몹시 두렵다. 작가와 마찬가지도 나 역시 가정을 이루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두 아이의 엄마라는 현실로 실현된 모순은 작가의 말처럼 가정에 대한 혐오에 뚜렷한 원인이 없기 때문이리라. 그냥 나는 미워하고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었던 건 아닐까? 새롭게 가정을 꾸리고도 못된 버릇은 남아 어느 새 남편을 새로운 대상으로 삼아 내가 관통해야 할 현재를 남에게 미룬 채 나는 그저 외면하며 미래를 또 멍하니 기다리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 자신의 세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가 주변의 세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우습지 않느냐 말이다.
다른 에세이들과 달리 나를 아는 체 하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다. 나는 한지혜라는 사람을 모르고, 한지혜는 나라는 사람을 모른다. 작가는 ‘나는 너를 모른다’라는 말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첫 마디라고 했다. 나를 보고 있는 것은 수많은 타인들이고 그중 일부는 나를 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당신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내가 풀어놓는 나 역시 나의 모두가 아닌데, 나는 나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책임져야 할 가족 구성원을 만들어놓은 마흔이나 넘은 사람이 ‘이생망’을 말하며 자기 인생을 방관하다니 이건 악순환이 될 것이 자명하다. 타인의 삶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삶을 어루만져야겠다. 도망치지 말자 마음 먹고 돌아선 나를 불러 세워 본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야 타인에게 내 마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내 쓸쓸한 골목에 참 괜찮은 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