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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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정은 이렇게 다른 것이다.
김승옥의 소설은 처음이고 단편 3개를 겨우 읽은 게 전부라 뭐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완전히 반해버렸다는 느낌이 들 적이 없다. 다만 큰 일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표현하여 읽는 이가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면은 있는 것 같다. 대비되는 두 대상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솜씨도 좋다. 만연체가 어떤 땐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 문장을 한 호흡으로 읽게될 때를 보면 문장력도 좋아보인다. 물론 숨찰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하지 않는 건 그가 의도한 거리감인지 아니면 시간차인지 그려지는 여성인물에 대한 거부감인지 모르겠다.
가진 자들에 대한 냉소가 있는 건 분명한데 가지지 멋한 자들에 대한 거리감도 있다.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위치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나 역시 그러하기에 몰입이 되기도 하다. 애매하달까?
더 읽어보자.

이해와 감정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발거한 것도 그때였다. 이 가족의 계획성 있는 움직임, 약간의 균열쯤은 금방 땜질해버릴 수 있도록 훈련되어 있는 전진적 태도, 무엇인가 창조해내고 있다는 듯한 자부심이 만들어준 그늘 없는표정 - 문화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희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어느지점과의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이 나의 그들에 대한 이해였다.
그러나 그 어느 지점이 무한하게 먼 곳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그들이 거리를 단축시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나로하여금 기타 켜는 시간의 제약까지를 주어가면서 말이다. 차라리 이 사람들의 태도야말로 자신들은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매일매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의 그 끝없는 공전 같아 뵈던 생활이 이곳보다는 오히려 더 알찬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나의 감정이었다.

-김승옥 「무진기행」<역사> 107쪽, 문학동네 김승옥 소설전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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