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암살자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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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어떤 행위일까? 말과 행동으로 그때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풀지 못할 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위로 그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그것이 이토록 정교하게 짜여진 한 장의 멋진 직조물일 줄이야.

 

상이용사로 전역하여 전쟁을 환상이 아닌 현실로 인식하는 노벌 체이스를 아버지로 둔 아이리스와 로라, 그녀들의 삶은 그 시대의 남자들이 운전한 대로 따라가야했고 그 운전대에 몸을 맡긴 아이리스와 자기만의 운전대를 갖길 원했던 로라의 삶이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안정되지만 결정할 수 없었던 삶과 불안정하지만 자기 결정력을 가진 삶 중 후자의 삶이 더 옳아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파란만장하기 마련이다. 로라의 삶이 그랬다.

 

로라라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은 음치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음악이 연주되면 어떤 소리를 듣게 되지만,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식으로 듣는 것이다. (2권 337쪽)

 

어릴 때부터 순응적이지 않았던 로라를 간수하기가 때로는 벅찼던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 옳다고 믿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을 잃고 난 후에야 그녀의 삶이 옳았다고 믿게 되는 아이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 또한 그들의 교집합인 알렉스를 위해 애도하는 일. 그렇게 아이리스의 글쓰기는 완성된다.

 

노년의 아이리스가 쓴 회고록과 로라 체이스로 발표된 원고들, 그 안에 들어간 자이크론 행성과 지노어 행성의 이야기들, 그들과 관련된 주요한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들이 교차되어 가며 밀도 있게 짜여지는 이야기들은 소설 내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다가 후반부로 가면서는 반전의 수까지 놓는다. 그 안에서 그는 애도도 하고 고백도 하고 후회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원망도 한다. 평생을 마음이 없는 상태로 살아온 아이리스에게 마음을 채우는 과정이 글을 쓰는 시간이었으리라.

 

마거릿애트우드의 작품을 처음 읽는다. 집에는 작가도 모른 채 사둔 그의 작품이 하나 더 있다. 소설을 읽고도 며칠 동안이나 이야기를 되새김질했다. 나는 이 아름다운 직조물을 나의 언어로 다시 직조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만 이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악한 글이나마 기록해둔다. 이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하여.

 

나는 오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기록한다. 애도하기 위하여. 아빌리온과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애도하며. (2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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