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미국인은 ‘나이스’하단 말을 파프리카처럼 대화 곳곳에 집어넣는다.

니체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자기 삶의 시인이 되고 싶어 한다. 가장 사소하고, 가장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그리고 나쁜 시력이 "그의 얼굴에 마법과도 같은 특별함을 부여해주었는데, 외부에서 받은 느낌을 나타내는 대신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드러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니체는 여러 치료법을 시도해보았고, 다른 면에서는 매우 의심이 많았던 사람치고는 돌팔이에게 너무 쉽게 속아 넘어갔다.

깊은 밤 한 악마가 찾아와 네게 이렇게 말한다고 상상해보라.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반복해서 수없이 되풀이해야 한다. 그 삶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고, 모든 고통과 기쁨과 생각과 한숨, 네 인생의 크고 작은 일 하나하나가 전부 똑같은 순서로 되돌아온다. 이 거미도, 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이 순간도, 나 자신도 전부 다.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끝없이 다시 뒤집힐 것이다. 그 안에 있는 모래알 중 하나인 너 자신도!"

니체의 나쁜 시력은 아무도 모르는 축복이었다. 덕분에 니체는 책의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니체는 책을 읽지 못할 때 걸었다.

니체는 신학이었던 전공을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문헌학으로 바꾸었다. 그리 대단한 변화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자 손자였던 니체에게는 저항의 행동이었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니체만큼 과거의 삶을 멀리 내던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3

니체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니체는 기차를 싫어했다. 난방이 안 되는 객차를 싫어했다. 기차가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다. 니체는 구토를 많이 했고 하루를 여행하면 3일은 쉬어야 했다.

소크라테스가 물음표의 철학자라면 니체는 느낌표의 철학자다. 니체는 느낌표를 사랑한다! 가끔은 두세 개씩 붙여 쓰기도 한다!!!

니체의 짧고 간결한 문장은 트위터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 다르게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철학자는 충격을 준다. 많은 철학자는 논증을 한다. 일부 철학자는 영감을 준다. 오직 니체만이 춤을 춘다. 니체에게 패기와아모르파티, 즉 운명애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춤추는 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것처럼 열렬히, 일말의 자의식도 느끼지 않고 춤을 춘다.

니체는 모든 훌륭한 철학자의 영혼은 춤추는 사람의 영혼과 같다고 말했다.

니체는 "변변찮게 걷는 것보다 서투르게 춤추는 편이 낫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니체가 보기에 춤추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목표를 향한다. 바로 삶의 찬미다.

니체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나 소설가의 진실을 보여준다. ‘마치 그런 것처럼’ 접근법이다.

세상을 다른 식으로(그것이 허리를 굽혀서 다리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던 소로처럼 ‘부정확’한 방식일지라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니체는 사랑하는 이에게 거부당하고 독자에게 무시당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니체는 말한다.편집은 안 돼. 집중 안 하지? 아주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네 삶의 전부를 받아들이거나, 전부 잃거나 둘 중 하나야. 예외는 없어.

영원회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한 학자가 말한 "결혼 테스트"7를 해보는 것이다. 긴 결혼 생활 끝에 막 이혼을 마쳤다고 상상해보라. 지금 아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전 파트너의 청혼에 다시 "네"라고 답할 것인가?

니체는 말했다. 고통은 청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답해야 하는 부름이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에게 다시 나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그런 지독한 수단이 필요했다. 이것은…… 가장 높은 수준의 자기 극복 행위다."

"진정한 자신은 당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그게 어디든 당신이 평소 ‘나’라고 여긴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친구 제니퍼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나는 니체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안다. 성공의 모습은 자기 운명을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의 모습은 시시포스의 행복이다.9

만약 우리의 삶이(아니, 온 우주가) 실제로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가? 니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선택할 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외부인의 관점에서는 전과 똑같은 삶)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 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묘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세상이 전과 달라 보인다. 니체 또한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니체 버전의 영원회귀에는 그런 해피엔딩이 없다. 나는 한 치의 벗어남 없이 똑같은 길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더 나은 것이 있다.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키는 대로 흥겹게 춤을 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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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나곤이 보기에는 작디작은 요소가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쇼나곤은 세 겹 부채는 좋아하지만 다섯 겹 부채는 용납하지 않는다(다섯 겹 부채는 "너무 두껍고 밑 부분이 못생겼다"). 공기 중에 눈이 올 듯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기쁘지만 "비가 올 기미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그날의 분위기를 망친다." 딱좋아주의 철학이다. 모든 것은딱 좋거나 완전 글렀거나 둘 중 하나다. 1센티미터 삐끗하는 것은 1킬로미터 삐끗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소는 이마에 흰색 털이 약간 섞여 있어야 하지만 고양이는 반드시 새까만 색이어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의 배는 예외인데, 배만은 새하얘야 한다." 음악 연주는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오로지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밤에만 그러하다.

쇼나곤이 진정한 기쁨이라 선언하는 것은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알맞아야 한다. 분위기와 계절에 어울려야 한다. 본질에 들어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름은 극도로 더울 때가 최고이며, 겨울은 지독히 추울 때가 최고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냄새를 무시한다. 수많은 책이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음악의 철학을 논하지만, 향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칸트는 감각에 그 어떤 미적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냄새는 가장 뿌리 깊은 감각이다. 생후 6주밖에 안 된 아기들도 다른 여성의 냄새보다 자기 엄마의 냄새를 훨씬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냄새는 다른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슬프게도, 이제 냄새는 질 나쁜 감각 취급을 받는다. "냄새가 난다"라는 말은 곧 나쁜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의심스러울 때도 "냄새가 난다"라고 표현한다.

"달콤한 시럽을 뿌려 반짝이는 금속 그릇에 담아낸 빙수. 수정으로 만든 묵주. 등나무꽃. 매화꽃 위에 내려앉은 눈. 딸기를 먹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 연못에서 꺾은 작은 연잎."

그 실마리는 불교 개념인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지고, 그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문화는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일부 문화는 감내한다. 일본 문화는 찬양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6 14세기 승려 요시다 겐코吉田兼好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만개한 꽃보다 막 꽃이 피어나려는 나뭇가지, 시든 꽃잎이 떨어진 정원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말한다. 벚꽃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수명 때문에 사랑스럽다.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 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7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소로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꽉 붙잡거나 이용하거나 남김없이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러한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나는 너무 세게 쥔다. 언제나 대상을 파악하려 하고,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무상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쇼나곤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전문가처럼 글을 쓰면서 "미치노쿠 지방에서 만든 종이"에 손을 올렸던 때를 떠올린다. 당시 사람들은 종이와 나무에카미, 즉 신적인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장인들은 나무로 가장 소중한 물건을 만들었다. 경전 두루마리를 담는 금박 상자, 자개를 박은 백단향나무 함, 병풍, 거울, 붓, 잉크 받침대, 악기,바둑판.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종이와 나무, 밀짚 같은 평범한 소재가 금이나 귀한 보석 같은 호화로운 소재 못지않은(때로는 더 큰) 관심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토야는 문구점인데, 이 말은 요요마가 첼리스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와비라고 부른다.와비는 해진 기모노와 땅에 쓸쓸히 떨어진 벚꽃 이파리, 희곡 한두 개가 빠진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찢어진 청바지나 낡은 가죽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면와비를 따른 적이 있는 것이다.

좁은 세상은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쇼나곤은 구석에 살았다. 아름다운 구석에.

헤이안 시대 사람들은 시를 썼다. 음악을 연주했다. 몹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다. 오늘날에는 코나 커피를 내리거나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나 나타나는 집중력과 성실함으로 향을 조합했다.

삶이 곧 예술이었고 예술이 곧 삶이었다. 예술과 삶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떼어놓기가 불가능했다. 이 시대의 일본인은 관념적인 추론보다 미적 경험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 보는 방식, 듣는 방식, 그리고 당연히, 냄새 맡는 방식이 무엇을 아는가보다 더 중요했다.

먼저 종이를 골라야 한다. 아무 종이나 골라선 안 된다. "전하고자 하는 정서뿐만 아니라 계절, 심지어 그날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적절한 두께와 크기, 디자인, 색깔"10의 종이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구성과 붓질을 실험하며 초안을 여러 번 써본다. 내용과 글씨가 마음에 든다면 널리 쓰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 종이를 접고, 그에 어울리는 나뭇가지나 꽃잎을 동봉한다.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잘생긴 전달자"11를 불러 올바른 주소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이메일은 편리하지만 편리함은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편리함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즉 ‘편리세’가 있으며, 잃어버린 친밀함과 박탈당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 비용이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는 기꺼이 편리세를 지불한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아름다움은 윤리적 덕목으로 여겨졌다(오늘날에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곧 미적으로도 조화로운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좋은 삶의 필수 요소일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너그럽고 이타적인 행동이다.

철학자의 일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12이라면 쇼나곤은 확실히 철학자다. 쇼나곤은 우리에게 세상을,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이것 좀 봐. 정말 놀랍지 않니? 너무 작고 너무 아름다워. 만약 니체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삶을 더욱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철학자다. 쇼나곤의 글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색채가 더욱 선명해 보이고 음식은 더 맛있어진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 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13

나는 내 단정치 못함에 이상한 자부심이 있는데, 지적 깊이는 단정함과 반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은 더 중요한 것을 선호한다. 광각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처럼 디테일은 넘어가고, 웅장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

"넌 큰 건 제대로 하는데 작은 건 못해." 어느 날 교습이 끝나고 강사가 내게 말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작은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강사는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아니었다.

작은 것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또한 내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쇼나곤이 잘 짜인 다다미 위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데이시 중궁이 말했다.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것이 네게 위안을 주는구나. 그렇지 않느냐?" 쇼나곤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지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간다.예, 왕비마마. 정말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마마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사소하지는 않답니다.

슬픔은 무척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이다. 어쩌면 슬픔은 우리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 어쩌면 꼭 용감무쌍한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저 손을 뻗어서 문을 닫는 것뿐이다.

커다란 일본은 못생겼다.
하지만 작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처음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숨어 있었던 세계에 감탄하는 열 살짜리가 된 기분이다. 어디서나 작은 아름다움이 보인다. 자동판매기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 한입 깨물 때까지 김이 계속 바삭하도록 특별 포장한 삼각형 모양의오니기리, 완벽한 나무 상자에 담긴 사케 한 잔.

점심을 먹은 후 공책을 꺼내 대문자로 쓴다. "일본 탄환열차: 목록." 좋은 시작이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다.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더 작게 들어가야 한다.일본 탄환열차에서 나를 즐겁게 한 것들. 더 낫다.

질 좋은 종이 위에 내 목록을 적었다. 미치노쿠산 종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훌륭한 종이다.

오타쿠는 괴짜라는 뜻이다. 괴짜의 나라 일본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이 단어에 비난의 기미가 덜하다. 어떤 집단에서오타쿠는 명예의 훈장이다.

바텐더는 어렸을 때 자기 방 창문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열차가 평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에 자기 옆을 지켜준 든든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기차를 타면 차분하고 행복해져요." 그가 말한다. "기차에서는 인생에 대해 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제대로 만든 유리잔의 단단함과 그럭저럭 괜찮은 위스키의 맛, 은은하게 달콤한 아로마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는 내내 눈앞에 펼쳐진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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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응급상황에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일의 우선순위를 바람직하게 설정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환자와의 라포를 잘 형성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들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은 갓 졸업한 간호사들이 일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중환자실에는 말 그대로 상태가 중증인 사람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정말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있다. 중환자는 좀 더 세심하고 집중적인 간호가 필요하기에 병원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간호사1명당2명에서4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게 된다

일반 병실에서는 한 명의 간호사가 평균12명에서20명 정도의 환자를 돌보는 것에 비하면 수가 확연히 적긴 하지만 경험상1명당 담당하는 중환자가2명 이상이 되면 극심한 업무 강도로 돌봄의 질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응급상황도 비일비재한 곳이라 경력이 없는 사람이 일하기 쉽지 않고 그 중압감과 긴장감에 압도되기도 쉽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중환자실에 갓 졸업한 신규 간호사들을 채용하지 않는다.

높은 업무 강도와 중압감에 버티지 못하고 사직을 하는 경우가 많고 버틸 수 있을 만큼 교육을 시키자니 트레이닝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 중환자실에서는 중환자 간호의 경험이 있는 타 병원 경력 간호사를 채용하는 편이다. 병원 내 환자의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반 병실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간호사들이 중환자실 근무를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에 처음에 왔을 때는 왜 간호사들이 이 힘든 중환자실에‘지원’을 해서 부서이동을 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미국 동료들과 일하면서 느낀 점은 중환자실 간호사들의‘중환자 간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계속적으로 본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환자실 경력을 갖는 것이 이후 더 발전된 커리어를 가지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요소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실제 미국에서 특정 간호 대학원을 가기 위해서는 중환자실 경력이 필수이기도 하다.

미국은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은 간호사들이 중환자실로 지원하고 인력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 중에서 인력을 채용한다고 하면, 한국은1년에 한 번 갓 졸업한 간호사들을 잔뜩 채용한 뒤에 수요가 발생하면 그때 곳곳에 배치를 하며 그런 이유로 항상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은 간호사만 중환자실로 배정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간호사로서의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도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은 간호사를 중환자실로 채용하는 미국과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싶은 열정도 경험도 없는 신규 간호사를 중환자실에 배치하는 한국. 간호의 질과 간호사의 직무스트레스는 물론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중환자실은 부서 특성상 환자의 임종 순간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병원 내에서 가장 아픈 환자들이 입원해있는 곳이고 호전되는 환자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환자들도 있다.

어느 중환자실에나 장기 입원 환자들이 있다. 급성기는 지났지만 일반 병실로 이동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서 오랜 기간 머물게 되는데 이 환자들을 장기 입원 환자라고 한다.

가끔 번아웃(Burnout)과 공감피로를 혼용하는 경우가 있어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번아웃은 근무 환경에서의 스트레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간혹, 다른 동료들과 근무지에서 지속적으로 마찰을 경험한다면 그때부터 번아웃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에 공감피로는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생기는 신체적 그리고 감정적 부담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이다.

번아웃은 어디에서 일을 하느냐(Whereyouwork)에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근무지를 바꾸면 간혹 해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감피로는 무슨 일을 하느냐(Theworkyoudo)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근무지를 이동한다고 해서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환자실에서 일한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고 오랫동안 환자-간호사 관계를 형성해왔던 환자의 임종 때는 아직도 많은 눈물을 흘린다.

환자분을 떠나보낼 때 깨끗하게 몸을 닦아드리는 과정이 임종 후 간호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하얗고 깨끗한 시트를 환자분의 몸 위에 살포시 덮는다. 그때마다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도 같이 그 속에 덮여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환자의 몸을 시트로 살포시 덮는다.

몇 년이 지나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동료 간호사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한두 번이 아닌데도 참 익숙해지지 않지? 왜 네가 그 환자분을 떠나보내는 간호사여야만 하는지… 그런 생각조차도 겪어봐서 다 이해해. 하지만 환자분이 꼭 네 손에서 떠나길 원했다고 생각해. 환자분이 네가 꼭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길 원했다고 생각하자."

새로운 근무환경과 새로운 동료 혹은 선배 간호사들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번아웃을 경험할 확률이 높고 또한 공감피로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신규 간호사를 중환자실에 바로 배치하는 것은 꼭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이 또한‘많은 미국 병원들이 왜 신규 간호사를 중환자실로 바로 채용하지 않는가?’에 대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은 아직3교대 근무를 시행하는 병원이 많은 반면 미국은2교대 근무를 시행하는 병원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2교대는 데이 근무(Day: 오전7시~오후7시) 그리고 나이트 근무(Night: 오후7시~오전7시)로 나뉜다. 이렇게 오전과 오후7시를 기준으로12시간씩 나누는 근무를2교대 근무라고 한다.

3교대 근무의 장점이라고 하면8시간만 근무를 하면 된다는 것 밖에 없는데 그조차도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바쁜 날은 정해진 퇴근시간보다 더 늦게 퇴근하게 되어8시간 근무임에도 불구하고10시간 혹은12시간 병원에 있는 날이 부지기수다.

3교대 근무의 실제 단점은8시간 근무이기에 보통1주일에5일은 근무를 하게 된다는 것, 병원에 자주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한 달 동안 시차적응을 몇 번씩이나 하게 된다. 교대 근무 특성상 일주일에 며칠은 낮에 일하고 며칠은 밤에 일하기에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뀌어 다른 직업처럼1주일에5일을 근무한다고 해도 낮 근무만5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피로감을 느낀다.

미국 간호학계에서는 이8시간 근무제와12시간 근무제에 대한 비교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논문들이12시간 근무제의 단점으로 근무한지8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12시간 근무제에 대한 간호사의 만족도는8시간에 비해 굉장히 높은 편이다.

두 근무제를 모두 경험한 나로서도12시간,2교대 근무제를 선호한다. 물론 하루12시간 근무가 피곤하긴 하나 일주일에4일이라는 긴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출근하면 스트레스로부터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한 뒤라 다시 또 활력이 생긴다.

미국에서는 임산부도 밤 근무를 하며 특별하게 근무 시간에 제한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똑같이 하루에13시간씩 일을 한다. 이런 이유로2교대가 훨씬 원활히 진행될 수 있다.

근거와 지식이 갖춰질수록 환자에게 질적으로 더 높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간호학과 학생이었을 때와 변함이 없었다.

1등을 못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욕심은 나지만 단순히1등을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결국은 내가 제공하는 간호의 질과 직결되며, 돌보는 중환자들에게 더 나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다시금 마음을 바로 잡았다.

최종 시험이 다가왔고 긴장이 되었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이미 하고 있는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부서에서 전화가 오면 열에 아홉은 좋지 않은 소식인 경우가 많았다. 일을 빠뜨리고 퇴근을 했거나 부서에 물건이 없어졌는데 그 행방을 아는지 등을 묻는 전화가 많았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걱정하기보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결국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에 몸은 엄청 피곤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나만큼 기뻐하는 파트장님의 목소리를 통해 비록 혼자였지만 남자 간호사도 포기하지 않고 부서에 적응을 잘할 수 있고 또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고그에 대해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뿌듯했다.

미국의 간호사 근무환경이 좋고 복지가 좋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병원에 많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국도 터무니없는 간호사:환자 비율, 간호사-간호사 혹은 간호사-의사간의 심한 불화 등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부분들을 전부 겪어왔다. 하지만 미국의 간호사들은 병원을 떠나지 않았고 간호사라는 직업의 중요성, 간호사의 가치 있는 업무와 역할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에 지금 누리고 있는 부분들을 쟁취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병원에 남으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병원들이 인력 문제에 계속 부딪힌다.

간호사도 권리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전문직에 걸맞은 환자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부분이 간호사를 바라보는 사회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인사의 중요성

인간관계에 형성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인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공손함(Politeness)을 선호하고 미국은 친근함(Friendliness)을 좋아한다.

한국에서 일할 때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모든 간호사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때 가급적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그리고 반응이 없으면 한 번 더‘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본다.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뒤에서 인사를 하고 말아버리면 당사자는 인사를 받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려고 하고, 반응까지 확인하면 더욱 좋다.

인사는 좋은 인간관계 형성에 중요하다. 시큰둥하게 인사 받는 사람에 대해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그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인사 받는 간호사의 문제다.

인사는 미국에서도 중요하지만 인사를 친근함을 보이는 목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2. 이름 외우기 & 이름으로 불러주기

일을 시작하면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는 노력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 중에 하나다. 지금 일하는 미국 병원에 취업해서도 부서원 게시판에 붙어있는 사진을 보면서 이름을 외우고 새로 마주친 동료들 볼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인사를 했다.

그냥 선생님보다는‘유현민 선생님’ 하고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면 당장에 다른 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 분명 그에 대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이름’을 아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어떠한 상황에도 환자의 병실 번호나 중환자실 침상 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해서 이름으로 부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환자가 없는 곳이라도, 환자에게 들리지 않는 곳이라도 환자를‘인간’으로서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간호사이기에…

3. Know Your Limitation!(‘모른다고 말하는 것’, ‘질문하는 것’, ‘도움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유명한 자기개발서를 보면‘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라!’는 문구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간호사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병원에서는‘환자의 건강과 안녕’이라는 목표를 위해 다양한 직업군이 협력한다.

팀워크는 꿈같은 결과물을 만든다.

혼자 할 수 있는 것과 혼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은 어느 분야의 일에서나 중요하지만 간호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모르면 확인하고 알아도 다시 한 번 확인해도 괜찮다. 다른 선배 간호사들도 신입 간호사가 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 배우고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왜 이것도 몰라?’라고 말하는 선배 간호사도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이 또한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 그 간호사의 문제이니까.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은 결국은 환자를 위한 길이고 간호사로서 가지면 아주 좋은 습관이다.

4. Be an active learner(열성적으로 배우기) 그리고 Be humble(겸손하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간호사로서 일하면서 정말 진리라고 생각한다. 중환자실 간호사로서 중환자 간호가 재밌어지기 시작한 것이 앞서 언급한 중환자 간호과정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이다. 수행하고 있는 간호에 대한 원리와 왜 이걸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들을 배우고 일이 점점 재밌어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일보다 왜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알고 하는 일이 경험상 훨씬 재밌다.

배우는 것은 열정적으로 하되 아는 지식을 공유할 때 그 정보를 모르고 있는 남을 깎아내리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영어로Mr.Know-it-all이라는 표현이 있다. 전부 안다고 생각하는, 아는 척을 많이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본인이 다른 누구보다도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부정적인 표현이다.

간호사로서 계속적으로 공부하고 배워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하고 있는 일에 더 흥미가 생겼고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간호사가 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계속 이어나가기 어렵다. 경험을 통해 때론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알고 하면 일에 대한 애정이 더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5.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인지하기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더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지고, 끝을 알고 시작하면 조금 더 버틸 힘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힘든 신규 간호사 생활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조직에 새내기로서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남자들이 군대 이등병 생활을 힘들어한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도 서툴고 매일 혼나고 다른 간호사들은 이미 서로 친해 보이는데 그 사이에 낄 틈을 찾을 수가 없고 외톨이같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다른 간호사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손에 익숙해지면서 실수도 적어지고 지적을 받는 날도 줄어든다. 그리고 다른 간호사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예전에는 엄청 크게 지적받았던 것도 지적받는 정도가 좀 덜해지기도 한다.

너무 현실적인 예인데 군대 이등병 생활도 밑에 다른 이등병들이 들어오면서 아주 조금 편해진다. 관심의 방향이 그들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간호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1년이 지나고 다른 신입 간호사들이 들어오면서 선배 간호사들의 관심이 그 쪽으로 많이 쏠렸다. 그렇다고 노력 없이 그저1년만 버티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말은 아니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라는 직업만 첫1년이 힘든 것이 아니고 그 신입 간호사로서의 생활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끝은 있다.

환자의 생명과 관계된 간호사들의 일은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함께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간호사라는 사실에 대해 조금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좋겠고 이 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런 자부심과 마음가짐이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들보다 조금은 선배 간호사인 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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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억울한 유형.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자기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 건 다 남들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은 앙심을 품고, 특히 자기를 비판하거나 질책한 사람들에게 적의를 느끼지. 이들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심리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해. 이들이 폭력에 의지하는 이유는 폭력성을 통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고 폭력은 주로 이들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향하지. 넷, 외상을 입은 유형."

다섯, 강박적이고 미성숙한 자아도취 유형. 여섯, 정신 이상의 경계선에 있는 피해망상과 질투가 심한 유형. 일곱, 정신 이상의 경계선을 한참 넘은 유형."

그 집은 달라진 건 전혀 없고 버려진 정도만 달라졌다. 내부는 똑같았다. 빛바랜 느낌. 마치 정적이 벽과 커튼에서 색을 빨아들이고 사진에서 얼굴들을 빼내고 책에서 기억을 뽑아낸 것처럼 보였다. 지난번에 못 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지난번에 생각하지 못한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채로, 그들은 어젯밤에 도달한 지점으로 돌아왔다. 까맣게 타버린 건물과 호텔의 잔해와 함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럼 여덟 번째는요?" 카야가 코트를 여미고 자갈밭에 발을 굴렀다.
"마티우치 교수는 그걸 ‘그냥 평범하게 나쁘고 화가 난’ 유형이라고 불렀어. 앞의 일곱 가지 유형이 조합된 형태."

미친 인간한테도 맥락은 필요할 거야. 분노가 폭발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정당하게 행동하는 거라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 있지. 광기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스스로 해주는 외로운 대화야. 그리고 누구나 혼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뾰족하고 삐뚤빼뚤한 치아를 최대한 드러내 완벽한 얼굴을 망치면서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여자.

크고 텅 빈 집에서 함께 보낸 아침과 둘이 함께 나눠 피운 담배가 기억났다. 라켈은 첫 모금을 원했고, 카야는 늘 마지막 모금을 원했다.

사실 사람들한테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느낌만 심어주면 그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해요.

작은 키에 화장기 없고 주름살 있는 얼굴로 봐서는 마흔보다는 쉰에 가까워 보였다.

테슬라의 첫 모델들이 직장에서의 짧은 일과를 마치고 윙윙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가끔은 좋은 사람도 무너져요."

"……별다른 도움 없이 독학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어요. 노르웨이어도 공부하던 중이었고요. 언어 능력이 뛰어난 거죠.

"플루니트라제팜." 카야가 말했다. "로힙놀이라고도 하고."

"고민이 끝나면 말씀해주세요, 런던 선생님." 카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와 같은 상대의 이름에서 왜 고독한 분위기가 풍기는지 몰랐다.

볼보일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 뤼데르 사겐스 가 사람들은 볼보를 좋아했다. 폭스바겐도. 폭스바겐 에스테이트. 고가의 모델들. 그가 거주하는 스메스타에서는 아우디와 BMW를 더 좋아했다.

사람들은 누가 보고 있는 줄 모를 때 별별 특이한 행동을 한다.

"음. 엄마가 되면 권력을 잡잖아, 안 그래?"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방향 성분인 2-노넨알이 사십 세 이상인 사람들한테서만 검출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의 땀 냄새가 삼십 대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영국인들은 달라요, 알다시피. 미국인들은 거침없이 일하고, 누굴 잡으러 나갈 때면 거리를 휩쓸면서 ‘뱀의 절차’를 말해요. 거침없이 직진하면서 그야말로 도중에 벽이 나오면 다 부수고 지나가요. 그런 방법이 더 빠르기도 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니까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죠. 그에 비해 영국인들은……."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쓸었다. "그들은 몰래 벽을 타고 다니면서 눈에 띄지 않아요. 8시 이후에는 통행금지가 있지만 가끔 호텔 옥상에 있는 바에서 밖으로 나갔거든요. 영국인들은 보이지 않아도 내 옆에 있는 남자 몸에 빨간 점 두 개가 박힌 게 보였어요. 상대도 나한테서 같은 걸 봤고요. 영국인들이 자기네가 거기서 지켜보고 있다고 알리는 은밀한 메시지처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하는 메시지. 그래서 더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언젠가 라켈이랑 올레그랑 나랑 자동차 여행으로 스웨덴의 풀루피엘레트에 간 적이 있어. 올레그가 학교에서 올드 시코라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가 거기 있다고 배웠거든. 만 살 가까이 된 나무야. 가는 길에 차에서 라켈이 그 나무는 인류가 처음 농경을 시작하고 브리튼 섬이 아직 유럽 대륙에 붙어 있던 때부터 있던 나무라고 말해줬어. 그 산에 도착해서 올드 시코가 바람에 휜 작고 볼품없는 전나무인 걸 보고 우린 실망했지. 산림관리원 말로는 그 나무 자체는 몇백 년밖에 안 된 거고 여러 그루 중 하나고, 그 나무들이 나온 뿌리계가 만 년이 된 거라더군. 올레그는 슬퍼했어. 반 아이들한테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를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 있었거든. 물론 우린 그 볼품없는 나무의 뿌리는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올레그한테 그랬어. 선생님께 가서 뿌리는 나무가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나무는 캘리포니아 화이트 산맥에 있는 오천 년 된 나무라고 말하라고. 그러니까 올레그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내내 뛰어다니더군.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반 친구들한테 으스대고 싶었던 거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라켈이 내 옆에 붙어서 날 사랑한다면서 우리의 사랑이 그 뿌리계와 같다고 했어. 나무는 썩기도 하고 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우리는 싸울 수도 있고, 내가 술에 취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도, 우리도, 어느 누구도, 땅속에 묻힌 부분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건 언제까지나 거기에 있을 거고 항상 새로운 나무가 뻗어 나와 자랄 거라고."

"당신이 그랬어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바보라서 돌에든 피부에든 아무것도 새기지 말고 수용성 물감만 써야 한다고. 그래야 과거를 지우고 과거의 자기를 잊을 수 있다고."

"빈 페이지라고 했어요. 새로운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자유. 문신은 우리를 정의하고 낡은 가치관과 의견에 매달리게 한다면서. 당신이 가슴에 예수 문신을 새긴 걸 자주 예로 들었잖아요. 무신론자에게 예수 문신이 있는 게 터무니없어 보이니까 낡은 미신들에 매달리는 데 자극제가 되어준다면서."

왜 사람들은 주방 벽에 인생의 사진을 붙여놓을까? 잊고 싶지 않아서? 아니면 술이나 세월이 우리 기억에서 색과 선명도를 옅게 해서? 사진은 더 나은 기록, 더 정확한 기록이다. 그래서 그는 이 사진 한 장 말고는 사진을 전혀 남기지 않은 걸까? 차라리 잊고 싶어서?

벽에 붙이려고 고른 사진은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바라는 모습만 찢어서 붙인 파편에 불과하다. 사진은 거기에 담긴 이미지보다 그 사진을 붙인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알리는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를 두었고(이름이 말해주듯이) 두 문화에 한 발씩 단단히 딛고 선 사람이었다.

눈앞의 고리에 걸린 낡은 카탈리나 재킷을 보았다. 1980년대에는 그 고가의 짧은 면 재킷이 오슬로의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유니폼이었다. 세계 어디에선가는 그라피티 화가들이 입는 옷이었다. 하지만 외위스테인은 그 재킷을 보면 폴 뉴먼이 떠올랐다. 어떻게 누군가는 세상 재미없는 옷을 입고도 당장 따라 사 입고 싶을 만큼 근사해 보일까. 어차피 그걸 입고 거울로 자기를 보면 실망감이 들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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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22-06-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있는 유형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정확히 어떤 대상을 범주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잠시 스쳤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들 연구에서도 꼭같진 않지만 닮은 형태로 범주화했었고, 어떤 사람들이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인정받는 사람, 선한 사람, 성공한 사람 못지 않게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알고 싶어서요.
이렇게 인용문 위주로 정리해주시는 것도 적지 않은 울림을 충분히 주네요.

라로 2022-06-06 12:47   좋아요 0 | URL
살인자 유형이에요. ^^;;
요 네스뵈의 책을 안 읽어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그의 초기작들은 센세이셔널 합니다.
심리학 책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러면 많은 책을 찾아봐야 하니까
그건 보다는 저널 위주로 읽어보시는 것을 또한 추천드려요.
 

"셋, 억울한 유형.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자기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 건 다 남들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은 앙심을 품고, 특히 자기를 비판하거나 질책한 사람들에게 적의를 느끼지. 이들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심리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해. 이들이 폭력에 의지하는 이유는 폭력성을 통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고 폭력은 주로 이들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향하지. 넷, 외상을 입은 유형."

다섯, 강박적이고 미성숙한 자아도취 유형. 여섯, 정신 이상의 경계선에 있는 피해망상과 질투가 심한 유형. 일곱, 정신 이상의 경계선을 한참 넘은 유형."

그 집은 달라진 건 전혀 없고 버려진 정도만 달라졌다. 내부는 똑같았다. 빛바랜 느낌. 마치 정적이 벽과 커튼에서 색을 빨아들이고 사진에서 얼굴들을 빼내고 책에서 기억을 뽑아낸 것처럼 보였다. 지난번에 못 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지난번에 생각하지 못한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채로, 그들은 어젯밤에 도달한 지점으로 돌아왔다. 까맣게 타버린 건물과 호텔의 잔해와 함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럼 여덟 번째는요?" 카야가 코트를 여미고 자갈밭에 발을 굴렀다.
"마티우치 교수는 그걸 ‘그냥 평범하게 나쁘고 화가 난’ 유형이라고 불렀어. 앞의 일곱 가지 유형이 조합된 형태."

미친 인간한테도 맥락은 필요할 거야. 분노가 폭발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정당하게 행동하는 거라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 있지. 광기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스스로 해주는 외로운 대화야. 그리고 누구나 혼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뾰족하고 삐뚤빼뚤한 치아를 최대한 드러내 완벽한 얼굴을 망치면서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여자.

크고 텅 빈 집에서 함께 보낸 아침과 둘이 함께 나눠 피운 담배가 기억났다. 라켈은 첫 모금을 원했고, 카야는 늘 마지막 모금을 원했다.

사실 사람들한테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느낌만 심어주면 그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해요.

작은 키에 화장기 없고 주름살 있는 얼굴로 봐서는 마흔보다는 쉰에 가까워 보였다.

테슬라의 첫 모델들이 직장에서의 짧은 일과를 마치고 윙윙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가끔은 좋은 사람도 무너져요."

"……별다른 도움 없이 독학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어요. 노르웨이어도 공부하던 중이었고요. 언어 능력이 뛰어난 거죠.

"플루니트라제팜." 카야가 말했다. "로힙놀이라고도 하고."

"고민이 끝나면 말씀해주세요, 런던 선생님." 카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와 같은 상대의 이름에서 왜 고독한 분위기가 풍기는지 몰랐다.

볼보일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 뤼데르 사겐스 가 사람들은 볼보를 좋아했다. 폭스바겐도. 폭스바겐 에스테이트. 고가의 모델들. 그가 거주하는 스메스타에서는 아우디와 BMW를 더 좋아했다.

사람들은 누가 보고 있는 줄 모를 때 별별 특이한 행동을 한다.

"음. 엄마가 되면 권력을 잡잖아, 안 그래?"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방향 성분인 2-노넨알이 사십 세 이상인 사람들한테서만 검출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의 땀 냄새가 삼십 대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영국인들은 달라요, 알다시피. 미국인들은 거침없이 일하고, 누굴 잡으러 나갈 때면 거리를 휩쓸면서 ‘뱀의 절차’를 말해요. 거침없이 직진하면서 그야말로 도중에 벽이 나오면 다 부수고 지나가요. 그런 방법이 더 빠르기도 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니까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죠. 그에 비해 영국인들은……."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쓸었다. "그들은 몰래 벽을 타고 다니면서 눈에 띄지 않아요. 8시 이후에는 통행금지가 있지만 가끔 호텔 옥상에 있는 바에서 밖으로 나갔거든요. 영국인들은 보이지 않아도 내 옆에 있는 남자 몸에 빨간 점 두 개가 박힌 게 보였어요. 상대도 나한테서 같은 걸 봤고요. 영국인들이 자기네가 거기서 지켜보고 있다고 알리는 은밀한 메시지처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하는 메시지. 그래서 더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언젠가 라켈이랑 올레그랑 나랑 자동차 여행으로 스웨덴의 풀루피엘레트에 간 적이 있어. 올레그가 학교에서 올드 시코라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가 거기 있다고 배웠거든. 만 살 가까이 된 나무야. 가는 길에 차에서 라켈이 그 나무는 인류가 처음 농경을 시작하고 브리튼 섬이 아직 유럽 대륙에 붙어 있던 때부터 있던 나무라고 말해줬어. 그 산에 도착해서 올드 시코가 바람에 휜 작고 볼품없는 전나무인 걸 보고 우린 실망했지. 산림관리원 말로는 그 나무 자체는 몇백 년밖에 안 된 거고 여러 그루 중 하나고, 그 나무들이 나온 뿌리계가 만 년이 된 거라더군. 올레그는 슬퍼했어. 반 아이들한테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를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 있었거든. 물론 우린 그 볼품없는 나무의 뿌리는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올레그한테 그랬어. 선생님께 가서 뿌리는 나무가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나무는 캘리포니아 화이트 산맥에 있는 오천 년 된 나무라고 말하라고. 그러니까 올레그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내내 뛰어다니더군.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반 친구들한테 으스대고 싶었던 거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라켈이 내 옆에 붙어서 날 사랑한다면서 우리의 사랑이 그 뿌리계와 같다고 했어. 나무는 썩기도 하고 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우리는 싸울 수도 있고, 내가 술에 취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도, 우리도, 어느 누구도, 땅속에 묻힌 부분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건 언제까지나 거기에 있을 거고 항상 새로운 나무가 뻗어 나와 자랄 거라고."

"당신이 그랬어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바보라서 돌에든 피부에든 아무것도 새기지 말고 수용성 물감만 써야 한다고. 그래야 과거를 지우고 과거의 자기를 잊을 수 있다고."

"빈 페이지라고 했어요. 새로운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자유. 문신은 우리를 정의하고 낡은 가치관과 의견에 매달리게 한다면서. 당신이 가슴에 예수 문신을 새긴 걸 자주 예로 들었잖아요. 무신론자에게 예수 문신이 있는 게 터무니없어 보이니까 낡은 미신들에 매달리는 데 자극제가 되어준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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