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억울한 유형.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자기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자기가 성공하지 못한 건 다 남들 탓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이들은 앙심을 품고, 특히 자기를 비판하거나 질책한 사람들에게 적의를 느끼지. 이들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기고 심리적으로 무력하다고 생각해. 이들이 폭력에 의지하는 이유는 폭력성을 통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고 폭력은 주로 이들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향하지. 넷, 외상을 입은 유형."

다섯, 강박적이고 미성숙한 자아도취 유형. 여섯, 정신 이상의 경계선에 있는 피해망상과 질투가 심한 유형. 일곱, 정신 이상의 경계선을 한참 넘은 유형."

그 집은 달라진 건 전혀 없고 버려진 정도만 달라졌다. 내부는 똑같았다. 빛바랜 느낌. 마치 정적이 벽과 커튼에서 색을 빨아들이고 사진에서 얼굴들을 빼내고 책에서 기억을 뽑아낸 것처럼 보였다. 지난번에 못 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지난번에 생각하지 못한 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은 채로, 그들은 어젯밤에 도달한 지점으로 돌아왔다. 까맣게 타버린 건물과 호텔의 잔해와 함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그럼 여덟 번째는요?" 카야가 코트를 여미고 자갈밭에 발을 굴렀다.
"마티우치 교수는 그걸 ‘그냥 평범하게 나쁘고 화가 난’ 유형이라고 불렀어. 앞의 일곱 가지 유형이 조합된 형태."

미친 인간한테도 맥락은 필요할 거야. 분노가 폭발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정당하게 행동하는 거라는 확신을 주는 순간이 있지. 광기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을 스스로 해주는 외로운 대화야. 그리고 누구나 혼자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

뾰족하고 삐뚤빼뚤한 치아를 최대한 드러내 완벽한 얼굴을 망치면서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여자.

크고 텅 빈 집에서 함께 보낸 아침과 둘이 함께 나눠 피운 담배가 기억났다. 라켈은 첫 모금을 원했고, 카야는 늘 마지막 모금을 원했다.

사실 사람들한테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느낌만 심어주면 그 사람들은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해요.

작은 키에 화장기 없고 주름살 있는 얼굴로 봐서는 마흔보다는 쉰에 가까워 보였다.

테슬라의 첫 모델들이 직장에서의 짧은 일과를 마치고 윙윙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가끔은 좋은 사람도 무너져요."

"……별다른 도움 없이 독학으로 영어와 프랑스어를 익혔어요. 노르웨이어도 공부하던 중이었고요. 언어 능력이 뛰어난 거죠.

"플루니트라제팜." 카야가 말했다. "로힙놀이라고도 하고."

"고민이 끝나면 말씀해주세요, 런던 선생님." 카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와 같은 상대의 이름에서 왜 고독한 분위기가 풍기는지 몰랐다.

볼보일 거라고 짐작했다. 여기 뤼데르 사겐스 가 사람들은 볼보를 좋아했다. 폭스바겐도. 폭스바겐 에스테이트. 고가의 모델들. 그가 거주하는 스메스타에서는 아우디와 BMW를 더 좋아했다.

사람들은 누가 보고 있는 줄 모를 때 별별 특이한 행동을 한다.

"음. 엄마가 되면 권력을 잡잖아, 안 그래?"

일본의 한 연구에서는 방향 성분인 2-노넨알이 사십 세 이상인 사람들한테서만 검출되지만,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의 땀 냄새가 삼십 대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영국인들은 달라요, 알다시피. 미국인들은 거침없이 일하고, 누굴 잡으러 나갈 때면 거리를 휩쓸면서 ‘뱀의 절차’를 말해요. 거침없이 직진하면서 그야말로 도중에 벽이 나오면 다 부수고 지나가요. 그런 방법이 더 빠르기도 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니까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죠. 그에 비해 영국인들은……."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쓸었다. "그들은 몰래 벽을 타고 다니면서 눈에 띄지 않아요. 8시 이후에는 통행금지가 있지만 가끔 호텔 옥상에 있는 바에서 밖으로 나갔거든요. 영국인들은 보이지 않아도 내 옆에 있는 남자 몸에 빨간 점 두 개가 박힌 게 보였어요. 상대도 나한테서 같은 걸 봤고요. 영국인들이 자기네가 거기서 지켜보고 있다고 알리는 은밀한 메시지처럼.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경고하는 메시지. 그래서 더 안전하게 느껴졌어요."

언젠가 라켈이랑 올레그랑 나랑 자동차 여행으로 스웨덴의 풀루피엘레트에 간 적이 있어. 올레그가 학교에서 올드 시코라는,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가 거기 있다고 배웠거든. 만 살 가까이 된 나무야. 가는 길에 차에서 라켈이 그 나무는 인류가 처음 농경을 시작하고 브리튼 섬이 아직 유럽 대륙에 붙어 있던 때부터 있던 나무라고 말해줬어. 그 산에 도착해서 올드 시코가 바람에 휜 작고 볼품없는 전나무인 걸 보고 우린 실망했지. 산림관리원 말로는 그 나무 자체는 몇백 년밖에 안 된 거고 여러 그루 중 하나고, 그 나무들이 나온 뿌리계가 만 년이 된 거라더군. 올레그는 슬퍼했어. 반 아이들한테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를 봤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들떠 있었거든. 물론 우린 그 볼품없는 나무의 뿌리는 보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올레그한테 그랬어. 선생님께 가서 뿌리는 나무가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나무는 캘리포니아 화이트 산맥에 있는 오천 년 된 나무라고 말하라고. 그러니까 올레그는 다시 기분이 좋아져서 내내 뛰어다니더군. 어서 집으로 돌아가 반 친구들한테 으스대고 싶었던 거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라켈이 내 옆에 붙어서 날 사랑한다면서 우리의 사랑이 그 뿌리계와 같다고 했어. 나무는 썩기도 하고 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우리는 싸울 수도 있고, 내가 술에 취할 수도 있지. 하지만 아무도, 우리도, 어느 누구도, 땅속에 묻힌 부분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그건 언제까지나 거기에 있을 거고 항상 새로운 나무가 뻗어 나와 자랄 거라고."

"당신이 그랬어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바보라서 돌에든 피부에든 아무것도 새기지 말고 수용성 물감만 써야 한다고. 그래야 과거를 지우고 과거의 자기를 잊을 수 있다고."

"빈 페이지라고 했어요. 새로운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자유. 문신은 우리를 정의하고 낡은 가치관과 의견에 매달리게 한다면서. 당신이 가슴에 예수 문신을 새긴 걸 자주 예로 들었잖아요. 무신론자에게 예수 문신이 있는 게 터무니없어 보이니까 낡은 미신들에 매달리는 데 자극제가 되어준다면서."

왜 사람들은 주방 벽에 인생의 사진을 붙여놓을까? 잊고 싶지 않아서? 아니면 술이나 세월이 우리 기억에서 색과 선명도를 옅게 해서? 사진은 더 나은 기록, 더 정확한 기록이다. 그래서 그는 이 사진 한 장 말고는 사진을 전혀 남기지 않은 걸까? 차라리 잊고 싶어서?

벽에 붙이려고 고른 사진은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바라는 모습만 찢어서 붙인 파편에 불과하다. 사진은 거기에 담긴 이미지보다 그 사진을 붙인 사람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알리는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를 두었고(이름이 말해주듯이) 두 문화에 한 발씩 단단히 딛고 선 사람이었다.

눈앞의 고리에 걸린 낡은 카탈리나 재킷을 보았다. 1980년대에는 그 고가의 짧은 면 재킷이 오슬로의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유니폼이었다. 세계 어디에선가는 그라피티 화가들이 입는 옷이었다. 하지만 외위스테인은 그 재킷을 보면 폴 뉴먼이 떠올랐다. 어떻게 누군가는 세상 재미없는 옷을 입고도 당장 따라 사 입고 싶을 만큼 근사해 보일까. 어차피 그걸 입고 거울로 자기를 보면 실망감이 들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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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22-06-05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있는 유형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정확히 어떤 대상을 범주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잠시 스쳤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들 연구에서도 꼭같진 않지만 닮은 형태로 범주화했었고, 어떤 사람들이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인정받는 사람, 선한 사람, 성공한 사람 못지 않게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도 어느 정도는 알고 싶어서요.
이렇게 인용문 위주로 정리해주시는 것도 적지 않은 울림을 충분히 주네요.

라로 2022-06-06 12:47   좋아요 0 | URL
살인자 유형이에요. ^^;;
요 네스뵈의 책을 안 읽어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그의 초기작들은 센세이셔널 합니다.
심리학 책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러면 많은 책을 찾아봐야 하니까
그건 보다는 저널 위주로 읽어보시는 것을 또한 추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