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나곤이 보기에는 작디작은 요소가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쇼나곤은 세 겹 부채는 좋아하지만 다섯 겹 부채는 용납하지 않는다(다섯 겹 부채는 "너무 두껍고 밑 부분이 못생겼다"). 공기 중에 눈이 올 듯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기쁘지만 "비가 올 기미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은 그날의 분위기를 망친다." 딱좋아주의 철학이다. 모든 것은딱 좋거나 완전 글렀거나 둘 중 하나다. 1센티미터 삐끗하는 것은 1킬로미터 삐끗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소는 이마에 흰색 털이 약간 섞여 있어야 하지만 고양이는 반드시 새까만 색이어야 한다. "하지만 고양이의 배는 예외인데, 배만은 새하얘야 한다." 음악 연주는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오로지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밤에만 그러하다.

쇼나곤이 진정한 기쁨이라 선언하는 것은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알맞아야 한다. 분위기와 계절에 어울려야 한다. 본질에 들어맞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름은 극도로 더울 때가 최고이며, 겨울은 지독히 추울 때가 최고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냄새를 무시한다. 수많은 책이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음악의 철학을 논하지만, 향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칸트는 감각에 그 어떤 미적 지위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냄새는 가장 뿌리 깊은 감각이다. 생후 6주밖에 안 된 아기들도 다른 여성의 냄새보다 자기 엄마의 냄새를 훨씬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냄새는 다른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강렬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슬프게도, 이제 냄새는 질 나쁜 감각 취급을 받는다. "냄새가 난다"라는 말은 곧 나쁜 냄새가 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의심스러울 때도 "냄새가 난다"라고 표현한다.

"달콤한 시럽을 뿌려 반짝이는 금속 그릇에 담아낸 빙수. 수정으로 만든 묵주. 등나무꽃. 매화꽃 위에 내려앉은 눈. 딸기를 먹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 연못에서 꺾은 작은 연잎."

그 실마리는 불교 개념인무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사랑한 모든 것은 언젠가 죽어 없어지고, 그건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문화는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일부 문화는 감내한다. 일본 문화는 찬양한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6 14세기 승려 요시다 겐코吉田兼好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만개한 꽃보다 막 꽃이 피어나려는 나뭇가지, 시든 꽃잎이 떨어진 정원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말한다. 벚꽃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수명 때문에 사랑스럽다.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 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7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소로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꽉 붙잡거나 이용하거나 남김없이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러한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나는 너무 세게 쥔다. 언제나 대상을 파악하려 하고,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무상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쇼나곤은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인 전문가처럼 글을 쓰면서 "미치노쿠 지방에서 만든 종이"에 손을 올렸던 때를 떠올린다. 당시 사람들은 종이와 나무에카미, 즉 신적인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장인들은 나무로 가장 소중한 물건을 만들었다. 경전 두루마리를 담는 금박 상자, 자개를 박은 백단향나무 함, 병풍, 거울, 붓, 잉크 받침대, 악기,바둑판.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종이와 나무, 밀짚 같은 평범한 소재가 금이나 귀한 보석 같은 호화로운 소재 못지않은(때로는 더 큰) 관심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이토야는 문구점인데, 이 말은 요요마가 첼리스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와비라고 부른다.와비는 해진 기모노와 땅에 쓸쓸히 떨어진 벚꽃 이파리, 희곡 한두 개가 빠진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찢어진 청바지나 낡은 가죽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면와비를 따른 적이 있는 것이다.

좁은 세상은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쇼나곤은 구석에 살았다. 아름다운 구석에.

헤이안 시대 사람들은 시를 썼다. 음악을 연주했다. 몹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다. 오늘날에는 코나 커피를 내리거나 온라인 축구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나 나타나는 집중력과 성실함으로 향을 조합했다.

삶이 곧 예술이었고 예술이 곧 삶이었다. 예술과 삶은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떼어놓기가 불가능했다. 이 시대의 일본인은 관념적인 추론보다 미적 경험을 더욱 귀하게 여겼다. 보는 방식, 듣는 방식, 그리고 당연히, 냄새 맡는 방식이 무엇을 아는가보다 더 중요했다.

먼저 종이를 골라야 한다. 아무 종이나 골라선 안 된다. "전하고자 하는 정서뿐만 아니라 계절, 심지어 그날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적절한 두께와 크기, 디자인, 색깔"10의 종이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다양한 구성과 붓질을 실험하며 초안을 여러 번 써본다. 내용과 글씨가 마음에 든다면 널리 쓰이는 여러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해 종이를 접고, 그에 어울리는 나뭇가지나 꽃잎을 동봉한다. 마지막으로 "똑똑하고 잘생긴 전달자"11를 불러 올바른 주소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이메일은 편리하지만 편리함은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편리함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즉 ‘편리세’가 있으며, 잃어버린 친밀함과 박탈당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 비용이다. 의식적으로든 아니든 우리는 기꺼이 편리세를 지불한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아름다움은 윤리적 덕목으로 여겨졌다(오늘날에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곧 미적으로도 조화로운 사람이다. 아름다움은 좋은 삶의 필수 요소일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의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너그럽고 이타적인 행동이다.

철학자의 일이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12이라면 쇼나곤은 확실히 철학자다. 쇼나곤은 우리에게 세상을,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이것 좀 봐. 정말 놀랍지 않니? 너무 작고 너무 아름다워. 만약 니체의 말처럼 철학자의 일이 "삶을 더욱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면, 쇼나곤은 철학자다. 쇼나곤의 글을 몇 시간 읽고 나면 색채가 더욱 선명해 보이고 음식은 더 맛있어진다.

우리의 정체성은 자기 주위에 무엇을 두기로 선택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주변에 무엇을 두느냐는 선택이다.

철학은 우리가 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을 겉으로 드러내 보인다. 어떤 것이 자신의 선택임을 깨닫는 것은 더 나은 선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말했듯, "일하는 동안 곁에 두기 위해 처음으로 작은 꽃을 꺾은 사람은 인생의 기쁨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13

나는 내 단정치 못함에 이상한 자부심이 있는데, 지적 깊이는 단정함과 반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은 더 중요한 것을 선호한다. 광각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처럼 디테일은 넘어가고, 웅장하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

"넌 큰 건 제대로 하는데 작은 건 못해." 어느 날 교습이 끝나고 강사가 내게 말했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작은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강사는 중요하게 여겼다. 나는 아니었다.

작은 것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또한 내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어느 날 쇼나곤이 잘 짜인 다다미 위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데이시 중궁이 말했다. "정말 별것 아닌 사소한 것이 네게 위안을 주는구나. 그렇지 않느냐?" 쇼나곤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지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이 간다.예, 왕비마마. 정말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마마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사소하지는 않답니다.

슬픔은 무척 무겁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건 환상이다. 어쩌면 슬픔은 우리 생각보다 가벼울 수 있다. 어쩌면 꼭 용감무쌍한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흔히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작은 것들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할 수도 있다. 어쩌면 구원은 보기보다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저 손을 뻗어서 문을 닫는 것뿐이다.

커다란 일본은 못생겼다.
하지만 작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 처음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언제나 그 자리에 숨어 있었던 세계에 감탄하는 열 살짜리가 된 기분이다. 어디서나 작은 아름다움이 보인다. 자동판매기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불빛, 한입 깨물 때까지 김이 계속 바삭하도록 특별 포장한 삼각형 모양의오니기리, 완벽한 나무 상자에 담긴 사케 한 잔.

점심을 먹은 후 공책을 꺼내 대문자로 쓴다. "일본 탄환열차: 목록." 좋은 시작이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다.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더 작게 들어가야 한다.일본 탄환열차에서 나를 즐겁게 한 것들. 더 낫다.

질 좋은 종이 위에 내 목록을 적었다. 미치노쿠산 종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훌륭한 종이다.

오타쿠는 괴짜라는 뜻이다. 괴짜의 나라 일본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이 단어에 비난의 기미가 덜하다. 어떤 집단에서오타쿠는 명예의 훈장이다.

바텐더는 어렸을 때 자기 방 창문으로 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그 열차가 평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에 자기 옆을 지켜준 든든한 존재였다고 말한다.

"기차를 타면 차분하고 행복해져요." 그가 말한다. "기차에서는 인생에 대해 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제대로 만든 유리잔의 단단함과 그럭저럭 괜찮은 위스키의 맛, 은은하게 달콤한 아로마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는 내내 눈앞에 펼쳐진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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