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는 우아하게 나이 들지 않았다. 나이와 싸우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나이 들었다. 보부아르는 불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했고, 자신의 분노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보부아르는 노화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노화를 받아들였으며, 본인은 아마 부정하겠지만 나이 듦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확실하게 나이 든 남자가 아니라 애매하게 나이 든 남자다. 젊은이보다는 늙었지만 진짜 늙진 않았다. 사이에 낀 이런 곤란한 시기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중년 후반’은 ‘후반’이라는 말 때문에 별로지만 ‘노년 초반’보다는 훨씬 나은데, ‘노老’라는 단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늙지 않았다.

지는 싸움이라는 것, 나도 안다. 이미 후퇴가 시작되었다. 내 수염이 처음 회색으로 변했을 때 나는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매주 수염을 갈색으로 염색했다. 하지만 염색을 하는 간격은 나도 모르는 사이 1주일에서 2주일로, 3주일로 늘어나고 있다. 결국 내가 흰 수염에 굴복하는 날을 상상할 수 있다. 충돌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나는 늙지 않았다.

나의 자기기만 능력은 수염 몇 가닥이 처음으로 하얗게 셌을 때 생긴 것이 아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은 사실 인성의 문제다. 노화는 새로운 성격 특성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의 특성을 더욱 증폭한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돈 쓰는데 신중한 젊은 남성은 늘 투덜대는 늙은 수전노가 된다. 감탄할 만큼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짜증날 만큼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 이런 성격의 강화는 늘 부정적인 쪽으로만 흘러가야 하는 걸까? 나이 들면서 그 궤도의 방향을 꺾을 수는 없는 걸까?더 나은 모습의 나이 든 내가 될 수는 없을까?

어쨌거나 ‘성공적인 노화’(정말 터무니없는 단어다.아, 이제 나는 나이도 성공적으로 들어야 하는 거야? 좋네 좋아. 무능하다고 느낄 만한 일이 또 하나 생겼군)에 관한 과학 연구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다이어트와 운동법, 예방의학에 관한 책도 부족하지 않고, ‘노인 요양 시설’에서의 삶이 얼마나 좋은지를 홍보하는 광택이 흐르는 안내 책자도 부족하지 않다. 철학이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태줄 수 있을까?

노화는 질환이 아니다. 병이 아니다. 비정상이 아니다. 문제가 아니다. 노화는 연속체이며, 우리 모두 그 연속체 위에 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늙어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당신은 늙고 있다. 갓 태어난 아기나 할아버지보다 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똑같은 속도로.

나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나이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고, 노화를 연구한 철학자 얀 바스는 말한다. "나이는 그 무엇의 원인도 아니다."1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바로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다.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카이로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여행은 나의 ‘기투企投’였다. 기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주의 용어다. 기투는 우리가 일상의 환경을 초월하게 해주고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우리의 기투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기투와 부딪칠 거라고 경고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뒤얽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 나의 기투(부녀간의 사랑 넘치는 프랑스 여행)는 소냐의 기투와 정면충돌했다. 소냐의 기투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내 경험상 다리는 몸을 상쾌하게 하고 정신을 자극한다. 또한 훌륭한 은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실존주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다룬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진정성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는데, 진정으로 자유롭다면 자기 불행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존주의자들에게 사람은 곧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더 이상의 반박은 없다. 우리는 온전히 실현한 기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추상적인 개념의 사랑이란 없으며, 오로지 사랑하는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천재란 없고, 천재적인 행동만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해 한 번에 한 붓질씩 자기 자화상을 그린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곧 그 자화상이며 "오로지 그 자화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스스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 것. 스스로를 그려나가기 시작할 것.

좋은 소식은, 우리가 사실성을 초월할 수 있고 자신의 사실성, 즉 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다는 거야.

카페를 사랑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카페 위에서 태어났다. 보부아르 가족이 살던 아파트에는 발코니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발코니에서 카페 드 라 로통드Cafe de la Rotonde가 내려다보였다. 어느 날 부모님이 나가고 집에 안 계실 때 보부아르는 여동생에게 아래층으로 몰래 내려가카페 크림cafe creme(크림 커피-옮긴이)을 마시자고 했다. 동생 엘렌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 엄청

어린 나이에, 실존주의자가 되기도 전에, 실존주의자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전에 보부아르는 "내 삶은 현실이 될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바로 실존주의다. 따라야 할 각본도, 지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삶이라는 이야기의 저자이자 감독이자 배우다.

보부아르가 어찌나 근면하고 유머가 없었는지, 한 친구는 보부아르에게카스토르Castor, 즉 비버(비버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동물로 유명하다-옮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 별명은 평생 보부아르를 따라다녔고, 보부아르는 이 별명을 명예의 훈장으로 여겼다. 보부아르의 전기를 쓴 프랑스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일이라는 단어에는 무슨 마법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이 단어는 특별한 광휘, 특별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보부아르에게 일은 삶의 암호와도 같았다."3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내 방어 수단은 일이다. 그 무엇도 내가 일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노년을 똑바로 바라보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읽기 쉽지 않은 585페이지짜리 책, 《노년》이다. 다음은 이 책의 한 문단이다.

제한된 미래와 얼어붙은 과거. 이게 바로 노인들이 맞이하는 상황이다. 많은 경우 이 상황은 노인들을 마비시킨다. 모든 계획이 이미 수행되었거나 폐기되었고, 삶은 스스로 제 문을 닫는다. 그 무엇도 자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인들은 더 이상 그 무엇도 할 것이 없다.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다.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보부아르가 흄의 기요틴과 비슷한 인지적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존재-당위’의 함정이 아니라, 내가 ‘그럴 수도-반드시’ 문제라고 부르는 함정이다. 내가 루소처럼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깔 수도 있다고 해서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절망에빠질 수도 있다고 해서반드시 그들이 절망에 빠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든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보부아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라면 이러한 선택지를 인정할 것이다.

내 생각에 보부아르는 키케로의 밝음을 지나치게 만회하려 했던 것 같다. 보부아르는 로마인의 장밋빛 렌즈를 새까만 선글라스로 바꾸었다. 선글라스는 해로운 광선에서 눈을 보호해주지만 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빛은 엄연히 존재한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노년이 천천히 죽어가는 암울한 시기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년은 커다란 기쁨을 느끼고 창의적 결과물을 내는 시기일 수 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누구냐고? 바로 시몬 드 보부아르다.

"좋게 나이 드는 건 자유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나쁘게 나이 드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고."

나이가 들면 통제에서 수용의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수용은 체념과 다르다. 체념은 수용을 가장한 저항이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과 같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이우텐테스authentes에서 나왔다).

은퇴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특정 역할(은행원, 기자, 웨이터)로 평생을 살다가 급작스럽게 이 정체성을 빼앗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지? 우리는 톨스토이의 소설 속 주인공 이반 일리치처럼 자신의 삶 전체가 거짓말이었음을, 심지어 자신이 스스로에게 한 거짓말이었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유한성에 직면한 사람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배역에서 빠져나오는 배우처럼 자신의 역할을 더욱 기꺼이 폐기한다. 어쩌면 이반 일리치처럼 우리도 해방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순간이 너무 늦게 왔다 하더라도.

과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나는 치유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측면이다.
"추억에는 일종의 마법, 나이에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그 마법의 뿌리는 과거에 있지만 마법이 꽃을 피우는 것은 현재다.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과거를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만약 우리가 지나온 세계가 황폐하다면 음침한 사막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회상의 기쁨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있지만 그와 비슷한 부정적 단어, 예를 들면 죄책감이나 후회를 의미하는 단어는 하나도 없었던 고대 그리스인처럼 살면 왜 안 되는가?

나 또한 인생의 흐름을 되짚어보기 시작하고 뜻밖의 행운을 발견한다. 친구가 가장 필요했을 때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친구. 꼭 알맞은 때에 나타난 꿈의 직업과, 그리 꿈 같지 않았던 뒤이은 해고. 힐마르라는 이름의 한 아이슬란드 작곡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을 내가 만나야 했던 때에 전부 다 만났어요."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관찰이다.

우리는 위대한 정리를 통해 그저 인생의 흐름만 되짚어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씩 추억을 재구성한다. 보부아르는 마치 수공업자처럼 이 과정을 촉각적으로 설명한다. "현재 나는 내 삶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고, 지식의 불완전한 조각들을 다시 읽고, 다시 보고, 깎아내고, 간극을 메우고, 모호한 것을 명확히 하고, 산산이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하나로 붙이고 있다."

회상의 또 다른 위험(얼마간 보부아르의 발목을 붙잡은 위험)은 ‘만약에 함정’이다. 보부아르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이 내리지 않은 선택,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만약 다른 시대에, 다른 가족에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몸이 아팠을 수도 있고 공부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르트르를 안 만났을 수도 있다. 마침내 보부아르는 이런 생각들에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흘려보낸다. 보부아르는 "나는 내 운명에 만족하며 내 운명이 어떤 식으로든 변하길 원치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니체의 악마 앞에서다 카포를 소리 높여 외친다. 처음부터 다시 한번.

우리가 맺는 관계의 질은 행복 방정식의 가장 중요한 변수다. 보부아르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회고록 《모든 것이 끝나고All Said and Done》에서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 나의 애정과 우정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말한다.

나이 들었을 때 친구를 잃는 것이 특히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친구와 함께 과거의 일부까지 잃어버린다. 자기 자신의 일부까지도.

‘난 너를위해 살지는 않지만 너 덕분에, 너를통해서 살아.’ 우리의 관계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8

나이가 들면 특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부아르는 스스로에 대해 더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의 특이한 성격을 더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 겸손해지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유치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코페르니쿠스적 순간을 경험했다.

노인들의 문제는 어린 척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어린 척을 못 하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 일곱 살을 따라 해야 할 때 스물일곱 살처럼 군다. 노년은 호기심, 더 나아가 경이를 되찾는 시기다. 결국 철학자는 뇌가 더 커진 일곱 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행은 삶에 새로움을 되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라고 확신하며 다시 여행길에 나섰다.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 보내는 이틀은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극작가 유진 이오네스코의 여행 공식에 동의했다. 여행을 통해 보부아르는 계속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보부아르는 여행길에서 평화를 느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원을 품은 순간을 산다. 나 자신의 존재도 잊어버린다."

보부아르는 노년에 수동성이 아닌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열정은 반드시 외부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일거리가 아닌 프로젝트를 가져라. 프로젝트는 의미를 제공해준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소아과 의사 벤저민 스폭은 1968년에 베트남전 반대운동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스폭은 여든 살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이에 공공연하게 항의하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9 이게 바로 노년의 장점 중 하나다. 줄 것은 더 많아지고 잃을 것은 더 적어진다. "노인의 노쇠한 신체에 깃든 두려움 없는 맹렬한 열정은 감동적인 광경이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습관은 우리와 이 세계를, 우리 자신의 세계를 하나로 이어준다. 습관이 왜 생겨났는지를 기억하고 끊임없이 그 가치를 의심하기만 한다면 습관은 유용할 수 있다. 습관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습관을 지배해야 한다.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드는 데에도 장점이 있다." 니체처럼 보부아르도 지난 삶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최대한 오랫동안 즐겼다."

노년은 삶의 패러디가 아니다. 삶 자체가 삶의 패러디다. 노년은 특히 강력한 한 방일 뿐이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삶에 매달린다. 하지만 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건설적인 물러남이라고 부르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건설적인 물러남은 만사 무관심하거나 세상에서 등을 돌리는 게 아니다. 조심스럽게 한 발 물러나는 것이다. 여전히 기차에 탄 승객이고 여전히 다른 승객을 신경 쓰지만, 부딪치고 흔들리는 것에 전보다 덜 불안해하고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덜 걱정하는 것이다.

아흔일곱 살까지 살았던 버트런드 러셀은 관심사의 원을 확장시켜서 "더 넓고 덜 사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아의 벽이 조금씩 약해지도록, 자신의 삶을 점점 더 보편적인 삶에 어우러지도록 할 것"11을 제안한다.

프랑스의 평론가 폴 발레리가 시에 관해 한 말은 우리 삶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 삶에는 결코 끝이 없다. 그저 포기할 뿐. 끝마치지 못한 일은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세상에 끝마치지 못한 일을 남기지 않고 떠나는 사람은 삶을 온전히 살아낸 것이 아니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좋다. 그들의 계획 안에서 내 계획을 발견하면 내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후에도 내 삶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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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체험을 할 때 중환자실에 누워있으면서 느낀 것이 하나 더 있었는데 누군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더 무섭고 불안하며 치료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 당시 영어를 잘하진 못했지만 중환자실에 일하면서 미국 중환자 간호 저널을 보며 최근 중환자 간호의 경향이 어떤지 알아보곤 했다. 지식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관련 저널을 읽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란 생각을 항상 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때 아주 적절하게《미국 중환자 간호 저널(AmericanJournalofCriticalCare,AJCC)》에서2008년에 소개된DailyGoalsWorksheet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중환자실에서 사용되는Worksheet에는 단순히 큰 계획들만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식이, 재활, 그날의 검사, 통증관리, 수면조절 등등 환자의 회복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이Worksheet가 가진 많은 장점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이Worksheet와 관련된 논문을 포함한 근거 있는 자료들 모아 의료진들을 설득할 준비를 했다. 사실 이를 도입하고 싶었던 이유가 환자와 그 가족을 위한 치료계획 공유 이외에도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간호사’에게도 이런 치료계획 공유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와서‘처방’이라는 것을 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처방을 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의료인으로서 처방을 내고 난 뒤 그 처방이 실제 이루어졌는지 확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확인하지 않는 이유가 처방을 이행하는 간호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라 처방이 이행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본인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는 일이 의료인의 업무라면 본인이 낸 처방이 제대로 이행되어 환자가 적절한 치료와 중재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그 처방 이후 환자 상태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 또한 의료인의 업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처방을 수행하는 사람은 간호사이고 그렇기에 처방에 대한 간호사와의 의사소통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호사로서 그 처방이 왜 이행되어야 하는지 얼마나 빨리 이행되어야 하는지 알면 그에 따라 업무의 우선순위를 변경해 일의 효율도 증진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왜 이행하는지 궁금해 하는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의사가 처방을 내서 해야 됩니다.’ 이상의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환자도 본인이 어떤 치료를 받을 예정인지 또 스스로 이행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알아야 치료에 더 협조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치료계획은 환자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렇기에 환자와 그 가족이 치료계획을 설정하는 팀에 포함되어야 한다. 환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것은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자 체험을 통해 침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로만 둘러싸여 본인의 치료계획이나 목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는 것은 불안감만 조성할 뿐 회복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더 열정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간호사로서 생활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근무환경 혹은 업무 분위기가 굉장히 삼엄하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일하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의사, 동료 간호사, 약사, 환자, 보호자, 간호조무사, 방사선사, 다른 부서 간호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원무과 직원 등 잠깐 생각했는데도 이 정도이니 실제로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일을 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직업이면 실제 옆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간호사라도 의사소통이 편해야 덜 힘들 텐데‘간호사의 진짜 적은 간호사’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같이 일하는 선후배 간호사들과의 의사소통을 가장 어려워하는 간호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회식을 통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모든 회식이 그런 건전하고 건설적인 자리가 아님을 알기에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단체 회식을 반기는 간호사보다 그렇지 않은 간호사들이 더 많았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이 동료로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기를 바랐고 단순히 개인적인 부분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주 입 밖으로 말할 일 없는 본인이 가진‘간호’에 대한 가치관들이 공유되기를 원했다.

직업에 대한 애정이나 가치관을 입 밖으로 꺼내보는 것은 그 직업에 대한 또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상기시켜줄 수 있기에 좀 더 자주 언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달 무작위로 같이 일하고 있는 중환자실 간호사들 중 두 명을 선정하여 본인이 생각하는 간호사로서의 강점과 간호에 대한 가치관에 대해 인터뷰하고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본인이 생각하는‘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또한 다른 간호사들에게 인터뷰 당사자인 그 간호사만의 장점을 인터뷰했다. 그렇게 언급된 고유의 장점을 토대로 그 간호사만의 별칭을 만들었다. 간호사로서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보며 초심을 다시 찾고,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기 바쁜 부정적인 업무 분위기를 완화하고 서로의 장점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보자는 뜻이 담겨있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칭찬’에 약하다. 사소한 칭찬이 생각지 못한 엄청난 동기부여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간호사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간호사 세계는 이‘칭찬’에 참 인색하다고 생각했다.

돈도 들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 것이 칭찬인데 굳이 인색할 필요 없지 않을까?

‘Murse’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아마 처음 듣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Murse는 남성을 뜻하는Male이라는 단어와 간호사를 뜻하는Nurse가 합쳐진 합성어로 미국에서 남자 간호사들을Murse(멀스)라고 부른다.

업무 특성 때문에 간호사는 여자 직업이 되어야 한다? 어째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이 왜 꼭 여자의 일이 되어야 하는가? 남자 간호사에 대한 역사가 길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첫 남자 간호사가1970년대에 나온 것을 감안하면 그리 짧은 역사도 아니다.

미국에는 한국보다 훨씬 많은 수의 남자 간호사들이 존재하고 사회 전반에 걸친 직업에 대한 성(性) 고정관념이 확실히 덜하다. 예를 들면‘간호사는 여자 직업이고 소방관은 남자 직업이다.’

남자 간호사에 대한 낯설음은 여전하고 그에 대한 성 고정관념도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수는 늘고 있는데 남자 간호사에 대한 사람들의 생소함은 왜 여전한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생각한 세 가지 잠재적인 이유를 공유하고 싶다.
첫째는 남자 간호사 리더의 부재. 쉽게 말하면 유명한 사람이 없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에게 남자 간호사의 존재는 여전히 낯설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남자 간호사의 존재를 알리기엔 간호를 이끄는 남자 간호사 리더 이야기나 성공한 남자 간호사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 수는 매년 늘어나지만 앞서 설명했던‘간호 관리자’의 역할을 하는 남자는 아주 드물다. 한국에서 일할 당시 그 큰 삼성서울병원의 수많은 간호 관리자 중에 남자는 단 한 명이었다. 동료 간호사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남자 간호사로서 본받을 만한 롤 모델의 부재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남자 간호 관리자나 간호계 내 남자 리더의 부재는‘역사가 짧기 때문에’라는 이유일 수도 있고‘그런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아직 없기 때문에’라는 이유일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자 간호사 중에서도 리더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현재 일하는 남자 간호사들 혹은 앞으로 일하게 될 남학생 간호사들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롤 모델을 갖는다는 것은 좀 더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 리더들 중 누군가가 조금 더 나아가 간호계를 이끄는 리더들 중 한 사람이 되는 날도 꿈꿔본다. 물론 앞서 성(性) 고정관념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표출했기에 굳이‘남자’ 간호사 리더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포인트는 남자 간호사도 같은 간호사이기에 병원의 간호부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간호계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으며 그런 날을 기대해본다는 것이다.

둘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의 제한된 활동 반경. 한국에서 일할 당시, 대부분 의식이 있는 환자들이 입원해있는 일반 병실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남자 간호사들보다 환자들이나 보호자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술실 혹은 면회시간이 극히 제한된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남자 간호사들이 더 많았다.

PA라는 이름은 미국에서 빌려왔을 것이다. 같은PA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만 한국PA와 미국PA는 교육 및 훈련과정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PA는 국가적으로 자격이 인증된 직업이며 주 정부의 법 보호 아래 면허를 가지게 되고 업무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명백하게 지정되어 있다.

한국은PA가 하는 일이 각 병원 혹은 부서마다 다르고 보통은 의사가 위임한 일을 한다.

한국PA 간호사는 전공의 수가 부족한 과에 많은 편이다. 수술을 직접 보조하는PA도 있고 레지던트들이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병실에 입원해있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PA도 있다. 어떤 날은 수술실 어떤 날은 내원 환자를 돌보는 일, 이런 식으로 둘 다 수행하는PA도 있다. 최근에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법이 통과되면서 전공의들이 주당80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지정되면서 부족한 의료 인력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텐데 이 잘못된 형태로 확립된 한국PA 간호사 제도를 확대시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생길 수 있는 문제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은 이PA 간호사의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국가가 인정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은 인력으로부터 받은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PA 간호사도 결국은 같은‘간호사’라는 타이틀이기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전문 간호사’는 무엇인가?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2000년부터 시행된 전문 간호사(AdvancedPracticeNurse,APN)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증하는 전문 간호사 자격을 갖고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의료기관이나 지역사회 내에서 간호대상자(개인, 가족, 지역사회)에게 상급수준의 전문가적 간호를 자율적으로 제공한다. 또한, 환자, 가족, 일반간호사, 간호학생, 타 보건의료 인력 등을 교육하고 보수교육이나 실무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에 참여한다. 현재 의료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전문 간호사 분야는 보건, 마취, 가정, 정신,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 종양, 임상, 아동으로 총13개이다.’

PA 간호사를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남자 간호사 중에 특히PA 간호사 역할을 수행하는 남자 간호사들이 많기 때문이다.PA 간호사에 대한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는 이유는 비판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같은‘간호사’로서 걱정의 마음이 있어서이다. 의사인력이 부족한 것은 분명한 문제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PA라는 이름만 빌려 미국의PA 시스템을 법이나 체계적인 교육 및 훈련과정 없이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문화나 관습으로 인한 영향은 간혹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동안은‘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처음 간호사로 일한9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남자가 간호학과를 다니는 것이, 남자가 간호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의아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지는 날. 그리고 남자가 간호계의 리더가 되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그런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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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의 신규 간호사 생활이 끝나고 과연 일이 편해졌을까? 답은YesorNo. 그래도1년 일했다고 손이 빨라지고 업무의 흐름에 익숙해지며 다른 간호사들과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업무를 임하는데 있어 효율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 하지만1년이 지나도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응급상황에 대한 부담은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1년이 지나도 환자의 임종 순간에 눈물이 나는 것은 여전했다.

중환자실이라는‘공간’에 익숙해지는 것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가장 익숙해지기 힘든 부분은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그 특유의‘긴장감(Tension)’과 환자의 임종 순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이‘긴장감’ 때문이다. 이미 많이 아픈 환자들이지만 언제든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고 또한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급격한 악화가 때로는 심폐소생술을 필요로 하는 응급상황을 발생시키고 중환자실 내에서는 실제로 이와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도 감당하기 쉽지만은 않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중압감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간호사들이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9년차 중환자실 간호사이지만 이‘긴장감’과 응급상황 시에 마구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억제하며‘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 없이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기에 업무를 배울 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근거를 자주 물어봤고 배운 모든 것을 개인 노트에 빠짐없이 기입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면 침대에 바로 기절할 수 있을 만큼 피곤했어도 그 노트에 손으로 기입한 내용들을 전부 컴퓨터 문서로 작성하고 잤다. 그렇게1년 넘게 매일 반복하여 파일을 완성했고 그것을 인쇄한 뒤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그때그때 찾아보고 해결했다.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다가 제거한 환자들에게 물으면 인공호흡관을 가진 채 숨을 쉬는 것은‘빨대를 물고 숨을 쉬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불편하고 공포감까지 든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그런 불편감이 들지 않게 진정제를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제를 투여 받는 중환자실 환자들은 진정제 영향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움직이지 않는 채로 침상 안정이 지속되다 보면 욕창에 취약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환자실 간호사는 이런 욕창을 예방하기 위하여 환자의 자세를2시간마다 변경시켜준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간호사로 처음 일했을 때 환자가 침상에 반듯하게 누워있을 때 일의 효율이 증진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해 본 혹은 일하고 있는 간호사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키득키득 웃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중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환자에 집착하는 간호사는 꼭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체위를 변경해야 환자가 나중에 후유증이 남지 않고 편할 수 있는지 책과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기억이 난다. 이처럼 중환자실에 머물렀던 기억이 후유증처럼 남은 환자들이 제법 많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이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매일 작성하고 있고 실제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의식 없이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 간 환자에게 이 일기를 전달하며 오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환자들에게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기억은 조각난 것처럼 군데군데 기억이 끊긴 느낌이라고 했다. 그 일기를 읽으면서 그 조각들을 붙여나가는 느낌이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오랜 기간 동안에도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본인을 위해서 일기를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쏟아낸 것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 뒤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 더 열심히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다.

간호사로서의 내부고객은 함께 일하는 동료, 외부고객은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되어본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는 꼭 알아야 한다. 하나가‘억제대(Restraints)’이고 다른 하나가‘중환자실 면회’이다. 억제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신체보호대라고도 부르지만 아직 억제대라는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기에 억제대로 지칭하겠다.

예를 들어 환자가 스스로 기도를 유지하지 못하여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는데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환자가 그 인공호흡관이 불편하여 그 관 없이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빼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환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예정 없이 관을 뺀 이 상황은 자가 발관(Self-extubation) 혹은 계획되지 않은 발관(Unplannedextubation)이라고 불리며 이는 응급상황이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그 인공호흡관을 다시 넣어야 한다. 다시 넣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시술이 아닐뿐더러 경우에 따라 다시 관을 삽입하는 동안 더 응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 인공호흡관을 제거하는 결정은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내려진다.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중환자실에서는 인공호흡관을 가진 환자들에게 억제대를 적용한다. 환자가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억제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특별한 신경학적 문제없이 갑작스레 지남력(Orientation)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즉, 환자가 갑작스레 시간, 장소, 사람 그리고 상황에 대해 혼란을 겪어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의학용어로 섬망(Delirium)이라고 한다

섬망은 급작스럽게 발생하지만 대부분이 일시적이라면 치매는 진행성으로 발생하며 대부분이 돌이킬 수 없는 만성 질환이다.

섬망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섬망으로 인한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들도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섬망을 겪는 많은 환자들은 본인이 왜 중환자실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상황에 대해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소리를 지르거나 의료진을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때론 충동적으로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거나 치료를 위해 가지고 있는 소변줄이나 약물이 투여되는 정맥관을 빼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치료가 지연되거나 예정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경과가 나빠지는 경우를 대비하여 이런 상황에도 환자가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억제대를 적용한다.

미국 병원에는 면회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미국 병원은24시간 면회를 허용하는 자율면회를 실시하는 편이다. 중환자실 또한 자율면회에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이런 미국의 자율면회 시행과 그에 대한 이점들을 고려하여 내가 그 당시 일했던 중환자실에서 국내 최초로 중환자실 자율면회를 실시했었다. 정착시키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많은 의료진들의 노력 끝에 성공적으로 확립을 시킬 수 있었고 자율면회에 대한 환자와 가족들의 큰 호응과 만족도로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메르스 사건 이후로 이전의 제한된 면회 체제로 돌아갔다.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은 가려울 때 긁을 수 없다는 고통이 그리 심한지 몰랐다. 그 이후로는 억제대를 하고 있는 환자에게 가려운 곳이 있는지 꼭 여쭤보는 습관이 생겼고 대신 긁어주기도 한다.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을 해보는 것은 간호사만 가져야 하는 덕목은 아니지만 간호사이기에 꼭 가져야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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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나는 이유는 기다림 자체보다는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데 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본다. 마치 그 안에 답이 있는 것처럼(그 안에 답은 없다).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 걱정은 아무 쓸모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내 걱정의 에너지가 열차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내 조바심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고, 만약 내가 조바심치기를 잠시라도 멈추면 온 우주가 소멸할 거라고 믿어왔다.

여러 다양한 철학은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소로의 저항 정신은 10대의 마음을 끈다. 니체의 불꽃같은 강렬한 아포리즘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자유를 강조하는 실존주의는 중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토아철학은 나이 든 사람을 위한 철학이다.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 패배도 몇 번 해보고, 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 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고통과 질병, 거절, 짜증나는 상사, 건조한 피부, 교통체증, 카드빚, 공개적 망신, 지연되는 열차, 죽음 같은 것들. 스토아학파를 낳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철학에서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든 행운에 준비되는 법."

스토아철학의 흐름은 미국 역사를 관통한다.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를 포함한 건국의 아버지들에게서 시작해1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바로 두려움 그 자체"라는 스토아 사상의 정수를 드러내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빌 클린턴은 마르쿠스의 《명상록》을 지혜가 가득한 경이로운 작품으로 여기고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삼았다.

이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는 지혜를 규정하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 인생 전체에 걸친 맥락주의, 가치 상대주의,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과 혼란을 관리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간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그 사람은 견유학파인 크라테스였다. 견유학파는 고대의 히피들이었다. 이들은 아주 조금만 먹었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으며 권위에 도전했다.

제논은스토아 포이킬레stoa poikile(‘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진 주랑’이라는 뜻이다)에 자리를 마련했다. 스토아 포이킬레는 양옆으로 기둥이 늘어선 주랑으로, 이곳에서 사람들은 장을 보고 사업을 하고 잡담을 나누었다. 제논은 실제 전투와 신화 속 전투를 그린 벽화 사이를 힘차게 걸어 다니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스토아학파가 주랑, 즉 스토아에서 모였기에 이 철학자들은 스토아학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스토아학파에게 철학은 공적인 행위였다. 이들은 결코 정치에서 물러나 있지 않았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박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다."3

스토아학파는 유리잔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잔이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긴다. 정말 아름다운 유리잔이 아닌가? 수백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유리잔의 끝을 예상하고 유리잔이 있음에 더욱 감사해한다. 애초에 유리잔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을 상상한다. 친구의 부서진 유리잔과 그때 자신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상상한다. 아름다운 자기 유리잔을 타인과 함께 나누는데, 다른 사람들 역시 로고스, 즉 합리적 질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너무나도 참인 동시에 너무나도 명백한 문장이다.당연히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렸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이 말을 들으려고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왔던가?

자신이 더 똑똑하거나 더 부유하거나 더 날씬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것은 본인이 먹거나 먹지 않은 것 때문이거나 받지 않았거나 받았던 건강 검진 때문이거나 하지 않았거나 지나치게 많이 한 운동 때문이거나 먹거나 먹지 않은 비타민 때문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자기 운명의 통제권을 갖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토아학파는 답한다. 대부분이 자기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부도 명성도 건강도 통제할 수 없다.

스토아철학은 이처럼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상황과 성과를 "무관한 것"이라 칭한다. 이런 무관한 것들은 우리의 인성이나 행복에 티끌만큼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관한 것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므로 스토아철학은 무관한 것들에 ‘무관심’하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몸이 아픈데도 행복하고, 위험에 처했는데도 행복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행복하고, 나쁜 평판을 듣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내게 보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게 데려오라! 신들의 이름으로, 그렇다면 나는 스토아철학자를 보게 될 것이다!"

적이 우리의 몸을 해할 수는 있어도 우리 자신을 해할 순 없다. 스토아철학을 공부한 간디는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 나를 해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고통이 밀려드는 와중에 롭은 간신히 에픽테토스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롭은 이 말을 되뇌고 또 되뇌며 밀려드는 고통을 다스렸다.넌 내게 아무것도 아니야. 전보다 나았다.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나았다. "내 몸은 나의 통제하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내 몸을 통제한다는 환상을 전부 제거했어요."

지난 일을 돌아보면 이런 스토아적 태도가 결과를 바꾸진 않았음을 롭도 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롭이 고통을 견디는 방식을 바꿔주었다. 롭은 고통스러웠지만 삶이 다르게 흘러가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더하진 않았다.

에픽테토스는 기원후 55년에 오늘날 터키 지역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로마 황제의 고문이었던 에픽테토스의 주인은 그를 때렸다. 에픽테토스는 태연하게 고통을 참았다. 이야기에 따르면 하루는 에픽테토스의 주인이 그의 다리를 비틀며 고문하기 시작했다. "계속 그렇게 하면 다리가 부러질 겁니다." 에픽테토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주인은 계속해서 에픽테토스의 다리를 비틀었고 결국 다리가 부러졌다. 에픽테토스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다리가 부러질 거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에픽테토스는 평생 다리를 절었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철저하게 실용적이었다. 소크라테스처럼 에픽테토스도 무지를 진정한 지혜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필요한 단계로 여겼다. 철학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내면세계를 지배하라, 그러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스토아철학은 말한다.

우리는 너무 자주 자신의 행복을 타인의 손에 맡긴다. 고압적인 상사나 변덕스러운 친구, 인스타그램 팔로어 같은 타인의 손에. 노예였던 에픽테토스는 이런 고난을 스스로 부여한 속박에 빗댄다.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키케로는 궁수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궁수는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한 가장 훌륭하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시위를 놓고 나면 화살의 궤적이 더 이상 자기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고 숨을 내쉰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 심오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명백한 2000년 전의 생각을 받아들인다.

스토아철학의 목표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느끼는 것이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는 것을 나도 안다. 우리는 자기 감정이 정확하다거나 부정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은 그냥 감정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스토아학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감정은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우리에게 밀려오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드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고전 연구자 A. A. 롱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이 나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 것이어야 할 성취를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다."5 우리 생각과 행동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 우리 감정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감정은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결과이며, 이 판단은 틀린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못 이해했거나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그런 판단이 말 그대로 실제 경험과 다르다고 말한다.

화를 내는 운전자는 부정확하다. 이 운전자가 부정확한 것은 2 더하기 2가 3이라는 말이 부정확한 것과 같다. 삶이 지금과 다르길 바라는 것은 이성의 지독한 실패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반응에 동의함으로써 반사 반응을 정념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인상에서 동의로 이어지는 끈을 잘라내야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식 멈춤(나는 이를 "위대한 멈춤"이라 부른다)이 도움이 된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선명한 인상에 빠져들지 말고 이렇게 말하라. ‘인상이여, 잠시 기다리게. 네가 무엇인지, 무엇을 나타내는지 살펴보게 해주게. 너를 따져보게 해주게.’" 고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내리는 선택임을 깨달아야만 더 나은 선택을 내리기 시작할 수 있다.

"발가락을 찧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낸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언제나 자유롭게 동의를 거둘 수 있다.이것이야말로 온전히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로렌스는 말 그대로 고통에 마음을쓰지 않았다.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경험하고 증폭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징징대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이름부터가 와이너다Weiner(징징대는 사람이라는 뜻의 Whiner와 발음이 같다-옮긴이). 투덜거리고 끙끙거리고 불평하고 푸념하고 투정을 부리고 싶다. 하지만 스토아철학의 격언을 떠올리며 꾹 참는다. "훌륭한 사람은 탄식하지도, 한숨을 쉬지도, 불평하지도 않는다."

마르쿠스도 불평불만이 고통을 줄여주지 않고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내게 상기시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면에서든 불평은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자발적 박탈의 목표는 고통이 아니라 기쁨이다. 때때로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에 더욱 감사하게 되고, 덜 얽매이게 된다.

기쁨을 포기하는 것은 삶에서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6

그로부터 몇 년 후 마이애미에 살 때, 나는 여름인데도 가끔씩 차의 에어컨을 껐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차 안은 점점 더워졌고 땀에 젖은 피부가 폭스바겐의 가죽시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즐겼다. 더위가 어떤 느낌인지를 상기하고, 현대식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에게 변치 않는 깊은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자발적 박탈일까? 그럴 수도. 하지만 나는 이것을 자발적 박탈이 아닌 간헐적 사치라 생각하고 싶다. 예상치 못한 1등석으로의 좌석 업그레이드, 모두가 가고 싶다고 말하는 레스토랑에서 돈을 펑펑 쓰는 것, 1주일간의 캠핑 여행에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

만약 공중목욕탕에 간다면 "그곳에는 물을 튀기는 사람들, 거칠게 떠미는 사람들, 욕을 하는 사람들,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젖는다고,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 놀라선 안 된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이 숙소가 아니라 나의 태도다. 게다가 스토아철학은 상황이 언제나 더 악화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스토아 진료실에서 놔주는 또 다른 백신은프리메디타치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 즉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이다. 세네카는 인생이라는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지를 예상해보라고 말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유배, 고문, 전쟁, 난파 사고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7하라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은 미래의 고난을 상상하는 것은 미래의 고난에 대해 걱정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걱정은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다. 하지만 고난을 예상하는 것은 구체적인 행위이며, 더 구체적일수록 좋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고난이 가진 영향력을 빼앗고 지금 가진 것에 더욱 감사할 수 있다.

예상된 고난은 힘을 잃는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두려움은 그 크기가 줄어든다. 최소한 스토아철학은 그렇다고 말한다.

스토아철학의 핵심에는 깊은 숙명론이 있다. 우주는 내가 쓰지 않은 대본에 따라 움직인다. 언젠가는 직접 연출을 하고 싶겠지만, 포기하는 게 좋다. 우리는 연기자다. 자기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내가 나이팅게일이라면 나는 나이팅게일의 역할을 연기할 것이다. 내가 백조라면 백조의 역할을 연기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토아철학은 "지금 가진 것을 욕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안다. 욕망한다는 것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 아닌가? 어떻게 이미 가진 것을 욕망할 수 있지? 내가 보기엔 니체가 이 질문에 가장 훌륭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에 체념하지 마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스토아철학은 힘들다. 스토아철학은 쉽지 않으며 쉬운 척하지도 않는다. 그리스의 중용 사상은 거의 들어 있지 않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철학이다. 사람은 고결하거나 고결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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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느낀 감각은 냄새였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고 말해주는 냄새였다. 어느 집에든 냄새가 있다. 옷, 땀, 페인트, 음식, 비누, 그런 냄새. 하지만 외부 냄새의 파도에서 그 집으로 들어간 순간의 느낌은 마치 여느 집을나설 때의 느낌과 같았다. 냄새가 멈췄다는 느낌.

그는 거실로 내려갔다. 주방. 그 집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강등.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이미 결판이 났다. 중력의 법칙처럼 피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반대 힘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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