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신규 간호사 생활이 끝나고 과연 일이 편해졌을까? 답은YesorNo. 그래도1년 일했다고 손이 빨라지고 업무의 흐름에 익숙해지며 다른 간호사들과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업무를 임하는데 있어 효율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 하지만1년이 지나도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응급상황에 대한 부담은 쉽게 이겨낼 수 없었다.1년이 지나도 환자의 임종 순간에 눈물이 나는 것은 여전했다.

중환자실이라는‘공간’에 익숙해지는 것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가장 익숙해지기 힘든 부분은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그 특유의‘긴장감(Tension)’과 환자의 임종 순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이‘긴장감’ 때문이다. 이미 많이 아픈 환자들이지만 언제든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고 또한 급격하게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급격한 악화가 때로는 심폐소생술을 필요로 하는 응급상황을 발생시키고 중환자실 내에서는 실제로 이와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도 감당하기 쉽지만은 않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중압감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간호사들이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9년차 중환자실 간호사이지만 이‘긴장감’과 응급상황 시에 마구 솟아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억제하며‘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 없이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기에 업무를 배울 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근거를 자주 물어봤고 배운 모든 것을 개인 노트에 빠짐없이 기입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면 침대에 바로 기절할 수 있을 만큼 피곤했어도 그 노트에 손으로 기입한 내용들을 전부 컴퓨터 문서로 작성하고 잤다. 그렇게1년 넘게 매일 반복하여 파일을 완성했고 그것을 인쇄한 뒤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그때그때 찾아보고 해결했다.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다가 제거한 환자들에게 물으면 인공호흡관을 가진 채 숨을 쉬는 것은‘빨대를 물고 숨을 쉬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불편하고 공포감까지 든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 그런 불편감이 들지 않게 진정제를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제를 투여 받는 중환자실 환자들은 진정제 영향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움직이지 않는 채로 침상 안정이 지속되다 보면 욕창에 취약하게 된다. 그리하여 중환자실 간호사는 이런 욕창을 예방하기 위하여 환자의 자세를2시간마다 변경시켜준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간호사로 처음 일했을 때 환자가 침상에 반듯하게 누워있을 때 일의 효율이 증진되었다. 중환자실에서 일해 본 혹은 일하고 있는 간호사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키득키득 웃고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들 중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환자에 집착하는 간호사는 꼭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체위를 변경해야 환자가 나중에 후유증이 남지 않고 편할 수 있는지 책과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기억이 난다. 이처럼 중환자실에 머물렀던 기억이 후유증처럼 남은 환자들이 제법 많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이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매일 작성하고 있고 실제 중환자실에서 오랫동안 의식 없이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 간 환자에게 이 일기를 전달하며 오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환자들에게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던 기억은 조각난 것처럼 군데군데 기억이 끊긴 느낌이라고 했다. 그 일기를 읽으면서 그 조각들을 붙여나가는 느낌이었고 기억하지 못하는 오랜 기간 동안에도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본인을 위해서 일기를 남겨준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쏟아낸 것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 뒤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 더 열심히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작성하고 있다.

간호사로서의 내부고객은 함께 일하는 동료, 외부고객은 환자나 환자의 가족이었다.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되어본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두 가지는 꼭 알아야 한다. 하나가‘억제대(Restraints)’이고 다른 하나가‘중환자실 면회’이다. 억제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말 끝이 없을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신체보호대라고도 부르지만 아직 억제대라는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기에 억제대로 지칭하겠다.

예를 들어 환자가 스스로 기도를 유지하지 못하여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는데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 환자가 그 인공호흡관이 불편하여 그 관 없이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임에도 빼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환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예정 없이 관을 뺀 이 상황은 자가 발관(Self-extubation) 혹은 계획되지 않은 발관(Unplannedextubation)이라고 불리며 이는 응급상황이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그 인공호흡관을 다시 넣어야 한다. 다시 넣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는 시술이 아닐뿐더러 경우에 따라 다시 관을 삽입하는 동안 더 응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 인공호흡관을 제거하는 결정은 정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내려진다. 이런 예기치 않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중환자실에서는 인공호흡관을 가진 환자들에게 억제대를 적용한다. 환자가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억제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특별한 신경학적 문제없이 갑작스레 지남력(Orientation)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즉, 환자가 갑작스레 시간, 장소, 사람 그리고 상황에 대해 혼란을 겪어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의학용어로 섬망(Delirium)이라고 한다

섬망은 급작스럽게 발생하지만 대부분이 일시적이라면 치매는 진행성으로 발생하며 대부분이 돌이킬 수 없는 만성 질환이다.

섬망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다. 섬망으로 인한 환자들이 보이는 증상들도 개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다. 섬망을 겪는 많은 환자들은 본인이 왜 중환자실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상황에 대해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소리를 지르거나 의료진을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때론 충동적으로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거나 치료를 위해 가지고 있는 소변줄이나 약물이 투여되는 정맥관을 빼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로 인해 치료가 지연되거나 예정된 치료를 받지 못하여 경과가 나빠지는 경우를 대비하여 이런 상황에도 환자가 인공호흡관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억제대를 적용한다.

미국 병원에는 면회에 대한 제한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미국 병원은24시간 면회를 허용하는 자율면회를 실시하는 편이다. 중환자실 또한 자율면회에 예외는 아니다. 사실 이런 미국의 자율면회 시행과 그에 대한 이점들을 고려하여 내가 그 당시 일했던 중환자실에서 국내 최초로 중환자실 자율면회를 실시했었다. 정착시키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많은 의료진들의 노력 끝에 성공적으로 확립을 시킬 수 있었고 자율면회에 대한 환자와 가족들의 큰 호응과 만족도로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메르스 사건 이후로 이전의 제한된 면회 체제로 돌아갔다.

아주 절실하게 느꼈던 부분은 가려울 때 긁을 수 없다는 고통이 그리 심한지 몰랐다. 그 이후로는 억제대를 하고 있는 환자에게 가려운 곳이 있는지 꼭 여쭤보는 습관이 생겼고 대신 긁어주기도 한다.

역지사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을 해보는 것은 간호사만 가져야 하는 덕목은 아니지만 간호사이기에 꼭 가져야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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