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장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조심하는 것보다도, 호기심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가르쳐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무슨 새로운 일이 있는지 알아보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군수님께 이건 참으로 재미있는 독서 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편지를 아무거나 읽어보십시오.

한데, 군수님께서 편지를 읽지 않으신다는 게 유감천만입니다.
정말이지 훌륭한 대목들이 있거든요. 얼마 전 어느 육군 중위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아주 경박한 무도회에 관해서 자세히 써놓았던데… 아주, 아주 좋았습니다. "친애하는 벗이여, 내 삶은 말하자면 엠피레오5) 에 머무르고 있는 것과 같네.
귀족 아가씨들이 넘쳐나고, 음악이 연주되고, 군기가 춤을 추고…."

저는 뭔가를 예감하고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저러고 있는 것이오."

그 사람 마누라가 3주 전에 출산을 했는데, 아주 활달한 남자아이를 낳았죠. 아버지 처럼 여관 주인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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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키릴로비 치는 무척이나 살이 쪘고 온종일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네…."

군수
그리고 침상마다 라틴 문자든 아니면 다른 어떤 외국 문자든 간에, 참, 이건 당신 소관이로군, 흐리스티안 이바노비치. 병명을 써놓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누가 언제, 몇 월, 며칠에 발병했으며… 또한 병실로 들어가면 계속 재채기를 해대야 할정도로 환자들이 독한 담배를 피우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렇 지, 그런 환자들 수가 적은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환자 관리가 소홀하다거나 의술이 형편없다고 여기게 마련입니다.

인간은 단순 합니다. 죽을 사람이라면 죽고, 회복될 사람이라면 회복되는 거죠. 게다가 흐리스티안 이바노비치가 환자들에게 알아듣도록 설명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 사람은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하거든요.

약간의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이건 다름 아닌 신의 섭리인 데, 볼테르2) 주의자들이 쓸데없이 신에 대항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군수
역사 선생에 관해서도 지적할 게 있습니다. 엄청나게 박식한 거로 보아서는 그가 타고난 학자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열을 내며 강의를 한다 이 말입니다.

물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영웅이지만, 대체 의자는 왜 부수느냐 이 말입니다? 그 때문에 국고에 손실을 입혔습니다.

군수
그건 사실 별일도 아닙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암행하는 관리가 문제입니다! 불쑥 들이닥쳐서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오, 여보게들, 다들 여기 있었군! 근데 여기 재판소장은 누구지?"
"랴프킨탸프킨입니다." "랴프킨탸프킨을 이리 불러오게! 그리고 누가 자선병원장이지?" "제믈랴니카입니다." "제믈랴니 카를 이리로 불러오도록!"바로 이런 게 끔찍한 겁니다!

그 안에 뭔가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아니면 단순한 편지인지 확인해 보자는 말입니다. 만일 고발하는 내용이 없다면, 다시 편지를 봉하는 겁니다. 하긴, 열린 편지 그대로 전해도 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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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늙도록 공직 생활을 했고, 딴에는 제법 똑똑한 인간. 뇌물을 받기는 하지만 매우 진중하게 처신한다. 꽤나 진지한 나머지 훈계하는 걸좋아하는 인물.

성격이 거칠게 형성된 사람들이 그렇듯이, 두려움이 기쁨으 로, 저열함이 오만함으로 아주 재빠르게 바뀐다.

안나 안드레예브나
군수의 부인으로 교태를 잘 부리는 시골풍의 여인이며 그렇게 늙진 않았다. 하루의 절반은 소설책과 앨범1) 을 읽고, 나머지 절반은 헛간과 하녀 방에서 집안의 잡일을 돌보며 살아왔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허영심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관청 사무실에서‘얼빠진 놈’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 하나로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행동한다. 무엇이든 간에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일 줄 모른다.

유행에 맞추어 옷을 입는다.

도브친스키가 보브친스키보다 좀 더 키가 크고 진지한 반면, 보브친스키는 더 허물없이 굴고 생기발랄하다.

랴프킨탸프킨
책을 대여섯 권 읽은 사람인지라 자유사상가인 편이다.

연기자들은 마지막 장면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대사는 단번에 느닷없이 모든 관객에게 감전된 것처럼 충격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모든 배우가 눈 깜빡할 사이에 상황을 돌변시켜야 한다. 경악에 찬 비명이 마치 한 사람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듯이, 모든 여성에게서 한꺼번에 튀어나와야 한다. 이러한 연기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연출 효과를 전혀 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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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say much more, except that it all happened
in silence and peaceful simplicity, and something that felt
like the bliss of a certainty and a life lived
in accordance with that certainty.

I must remember this, I thought, as we fly back
to America.
Pray God I remember this.

「나는 나의 고양이 제프리를 생각하게 될 테니까For I Will Consider My Cat Jeoff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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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까도 그랬듯이 지금도 서로 껴안지 않았다. 그는 그녀 옆에 선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가 되려고 달아나요." 그가 말했다. 혼자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녀는 그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엘리는 개들을 불러들이며 속삭였다.
"당신을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안함이란 얼마나 쓸모없는 감정인가.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무엇보다 바로 그 감정, 마음속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이었다. 그녀의 잿빛 푸른 눈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얼룩처럼 보였다.

말하면 안 되는 일, 결코 말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둘 다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 딜러핸 인생의 은밀한 사랑이 큰 응접실을 뒤덮었고, 나중에는 코널티 양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스냅과 루도 카드게임이나 핀볼게임 등도 나타났다.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들리는 것은 엔진 소리뿐, 바다는 고요하고 가을 아침의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너는 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허술한 기억이 무엇을 간직하게 할지 너는 안다. 다시 열쇠가 판석 위로 떨어진다. 다시 길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육지가 사라지고 바다 위에 춤추는 햇살만 남을 때까지 그곳을 계속 바라본다.

긴 세월 동안 그는 특유의 나직하고 명상적인 문장으로 무수한 사랑과 좌절, 희망과 낙심, 관조와 수용의 세계를 그려왔다.

대개 상처를 입고도 저항하거나 타인을 바꾸려들지 않고 상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트레버의 소설은 화려한 수식 없이도 슬픔을 온전히 느끼게 하고 가장 거친 인물에게도 감정이입하게 하는 고요한 힘이 있다.

이렇게 저마다 어두운 과거와 씨름하며 살아가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여리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여름의 끝》에는 보답 없는 사랑과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그리고 희망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강조하고 심오한 가치나 감정의 문제는 오히려 가볍게 언급하는 서술 방식은 낯선 대조가 주는 환기의 효과를 높일 뿐더러 간략하고 절제된 문장에 정교한 묘사를 능가하는 울림을 준다.

"내게 글쓰기는 전적으로 신비한 작업이다. 그런 신비를 믿지 않는다면 글쓰기란 별 가치가 없는 일일 것이다. 나는 소설이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끝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바로 뒤 몇 줄에 어떤 문장이 나올지도 알지 못한다."

또한 지금까지 다양한 인물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성격과 생각을 온전히 살려내는 작업에 매진하게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라고 하면서,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매혹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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