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까도 그랬듯이 지금도 서로 껴안지 않았다. 그는 그녀 옆에 선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가 되려고 달아나요." 그가 말했다. 혼자여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녀는 그것이 더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 중요했고, 중요한 것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 가고 싶었다. 엘리는 개들을 불러들이며 속삭였다.
"당신을 어떻게 미워하겠어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안함이란 얼마나 쓸모없는 감정인가. 하지만 그가 느낀 것은 무엇보다 바로 그 감정, 마음속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이었다. 그녀의 잿빛 푸른 눈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얼룩처럼 보였다.

말하면 안 되는 일, 결코 말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둘 다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 딜러핸 인생의 은밀한 사랑이 큰 응접실을 뒤덮었고, 나중에는 코널티 양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스냅과 루도 카드게임이나 핀볼게임 등도 나타났다. 불가능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들리는 것은 엔진 소리뿐, 바다는 고요하고 가을 아침의 싸늘한 기운이 남아 있다. 무엇을 기억하게 될지 너는 안다, 그는 생각에 잠긴다. 허술한 기억이 무엇을 간직하게 할지 너는 안다. 다시 열쇠가 판석 위로 떨어진다. 다시 길에서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육지가 사라지고 바다 위에 춤추는 햇살만 남을 때까지 그곳을 계속 바라본다.

긴 세월 동안 그는 특유의 나직하고 명상적인 문장으로 무수한 사랑과 좌절, 희망과 낙심, 관조와 수용의 세계를 그려왔다.

대개 상처를 입고도 저항하거나 타인을 바꾸려들지 않고 상처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우러나오는 트레버의 소설은 화려한 수식 없이도 슬픔을 온전히 느끼게 하고 가장 거친 인물에게도 감정이입하게 하는 고요한 힘이 있다.

이렇게 저마다 어두운 과거와 씨름하며 살아가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여리고 선량한 사람들이다.

《여름의 끝》에는 보답 없는 사랑과 지워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 그리고 희망이 있다.

평범한 일상을 강조하고 심오한 가치나 감정의 문제는 오히려 가볍게 언급하는 서술 방식은 낯선 대조가 주는 환기의 효과를 높일 뿐더러 간략하고 절제된 문장에 정교한 묘사를 능가하는 울림을 준다.

"내게 글쓰기는 전적으로 신비한 작업이다. 그런 신비를 믿지 않는다면 글쓰기란 별 가치가 없는 일일 것이다. 나는 소설이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끝날지 모를 뿐만 아니라 바로 뒤 몇 줄에 어떤 문장이 나올지도 알지 못한다."

또한 지금까지 다양한 인물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들의 성격과 생각을 온전히 살려내는 작업에 매진하게 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라고 하면서,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매혹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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