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거 사면서 딸아이 것도 사주려고 했더니 자기는 내년까지 사용할 것이 많다면서 안 사도 된다고 한다. 모처럼 전화를 건 김에 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물어봤다. 뭘 전공할 것인지. 그랬더니 아직도 고민 중인데 뭘 안 하고 싶은지는 안다고 했다. 그래서 뭘 안 하고 싶냐고 했더니 소아과와 산부인과는 안 하고 싶단다. 언제쯤 알 것 같냐고 했더니 조만간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딸이 수술을 좋아하는 걸 알지만 수술은 레지던시 기간이 긴데 거기다 펠로십까지 길다고 고민이란다. 30살이 되기 전에 가족을 계획하고 싶다고. 


아! 딸아이는 아이를 안 낳을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구나! 나는 정말 어쩌면 할머니가 될 수도 있구나! 소름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가슴이 막 뛰었다. 딸아이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하지만 한편으로 딸아이가 가족을 구성하고 싶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것은 또 싫어서 "너 아직 30살이 되려면 멀었잖아."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너 낳았을 때 30살이었어. 왜 뭐 때문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둘 다 그 얘길 하면서 막 웃었다. 왜 웃었지? ^^;;


땡스기빙 연휴에 우리 가족은 중간은 아니지만 유타 주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먼저 엔 군이 처음으로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의 가족이 엔 군을 라스베가스 여행에 초대했다고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고, 딸아이는 중요한 시험 때문에 너무 바쁜 데다 사위가 직장을 다니게 되어 이번 연휴는 함께 할 시간이 없다고 해서 땡스기빙은 각자 뿔뿔이 제멋대로 보내기로 했다. 


사실 나도 어디 가고 싶지 않다.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거나 아니면 DNP 서류 전형 마치고 싶다. 딸아이에게 엄마가 DNP를 할 생각을 한다고 하니까, 그거 다 끝나면 엄마 몇 살이냐? 그리고 몇 살까지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봐서 좀 놀랐다. 물어보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을 했지만, 딸아이가 원래도 저렇게 이성적인 아이였지,, 나랑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나는 아이와 잘 지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서로 떨어져서 지내다 보니까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 관계가 좋아지는 데에는 내가 노력을 많이 했다. 내가 워낙 딸아이에게 지은 죄가 많아서, 다행히 착한 아이는 나를 용서했고, 우리는 좋은 관계가 되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내가 왜 그렇게 구박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나는 XX엄마였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내 입으로 아이의 얼굴을 보고 내가 잘못했다고 했을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아이도 나를 용서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아~ 비가 와서 우중충한 날씨가 내 감성을 건드려서 그런가? 왜 이렇게 솔직한 거야??^^;; 아무튼 비가 오니까 공부는 안 되고 자꾸 수다만 떨고 싶네, 이러면 안 돼!!!!!! 수다 그만 떨고 공부하자, 그리고 학교 신청할 때 제출할 Goal Statement 적어보자. 



지금 읽고 있는 전영애 선생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가 목표를 향해 가고자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책 원래부터 좋아하는데 아직 다 읽으려면 멀었는데도 그분의 다른 책을 방금 주문했다. <인생을 배우다>


이 책의 제목이 너무 평범하니까 찾기 힘들었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인생을 배우길' 얼마나 원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을 배우는 방법이 많이 있겠지만, 역시 좋은 책을 읽고, 직접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는구나. 그리고 조급해 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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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10-17 11: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제 분홍공주가 곧 열일곱 살이 됩니다. 저도 죄를 지어버렸어요. 왜 첫째에게는 이렇게 말실수를 많이 하게 되는 걸까요. 사과하긴 했는데 아직 어려서 잘 와닿지 않나 봅니다. 저도 아이가 크면 라로님 같은 관계가 되고 싶은데...저와 딸아이도 너무 달라서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게 참 어렵답니다.

라로 2022-10-17 15:08   좋아요 1 | URL
분홍공주와 우리 막내가 동갑이죠! 벌써 그렇게 컸어요, 우리 아이들이!!^^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블랑카님과는 비교하기도 힘든 죄를 딸에게 지었답니다. 그 아이가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말로 그렇게 용서를 비는 것도 부족한데,,, 제 마음이 간절했는지 잘 되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아이에게 늘 조심하고 그래요, ^^;; 그런데 첫 아이에게 그렇게 되는 건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애를 잡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는데,,, 그걸 기다리지 못했어요. 아이 스스로 잘 알아서 하는데 말이에요,, 순간의 결과를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못하는 것을 제가 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뭐 그런 거요, 제가.^^;; 암튼 저 블랑카님이 상상하실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엄마였는데도 딸과 기적적으로 화해를 했으니 블랑카님은 문제 없으실 것 같은데요?^^;

psyche 2022-10-17 1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이치 양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그 어려운 의대 공부를 하는 것도 대단한데 아기 낳을 생각도 하고 있네요. 라로님 몇년 지나면 할머니가 되시는 건가요? ㅎㅎ
첫째를 키울 때는 정말 잘못하는 게 많은 거 같아요. 잘 해보려다보니 더 그렇게 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 아이에게 직접 잘못했다고 말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사실 속으로 미안하게 생각해도 막상 얼굴보고 잘못했다고 말하기 쉽지 않거든요. 라로님도 에이치 양도 리스펙트!

라로 2022-10-17 15:12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를 낳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제가 떳떳하지 못한 엄마라서 제대로 물어보지 못했거든요, 궁금해도.^^;; 오늘 용기를 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술술 얘기해주네요. 그리고 자세한 계획들이 있더라구요. 다만, 일과 가족을 위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할 생각을 하는 건 안타까와요,, 어쨌든 할머니가 될 수도 있을 가망성이 느껴져서 넘 좋앗어요!!!ㅎㅎㅎ 저 오늘도 교회에서 어떤 아기 보면서 남편이랑 그랬거든요,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언제 되냐?ㅎㅎㅎㅎ

근데 프님!!! 지금 한국 아니세요??? 시차 적응 벌써 하신 거에요??????? 잘 도착하셨죠???

psyche 2022-10-17 15:44   좋아요 0 | URL
아직 미국이에요. 화요일 밤 비행기로 가요.

2022-10-1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0-17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이 둘이나 있어서 너무 좋은데, 가끔 아들 없는 남편한테 조금 미안하기도 했어요. 아들과만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또 있잖아요. ㅎㅎ 하나 더 낳아줄걸 그랬나 하면서.... 물론 진심은 아닙니다. ㅋㅋ
부모와 자식의 관계만큼 어려운게 또 있을까요? 그래도 라로님의 진심이 따님한테 통해서 참 다행이에요. 우리 다 조금씩 관계에서 실수들을 하고 살잖아요. 에 우리 딸들은 뭐 없나 물어봐야..... ㅠ.ㅠ 워낙에 저도 뭐 잘못한게 많아서 딱 집어내기도 힘드네요. ㅠ.ㅠ

라로 2022-10-17 15:55   좋아요 0 | URL
물론 그렇지만 따님들이 아들 같다면서요?^^;; 그러니 남편분도 만족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따님들이 결혼하면 아들이 둘이나 생기니 얼마나 좋아요!!! 왜 아들이 결혼하면 딸이 생긴다는 말은 없을까요?? 저는 아들이 둘이니 딸도 둘이 생길거라는 마음으로 잘해주고 싶어요.^^
바람돌이님이나 프님처럼 딸들과 잘 지내는 분들 넘 부러워요,, 저는 죄인이라,,, 나중에 딸이 아이를 낳게 된다면 관계가 좀 더 좋아지겠죠??^^;;; 바람돌이님이 잘못한 거 많다는 말씀 왜 안 믿어지나요??^^;;;

바람돌이 2022-10-17 17:30   좋아요 1 | URL
한국남자들의 로망, 아들과 목욕탕 가기. 그리고 우리 남편의 진짜 로망 아들과 축구하기, 물론 딸과도 축구를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애기때나 좋아했지 조금 크니까 싫어하더군요. 아빠 대실망입니다. ㅎㅎ
애들이 결혼하면 있는 딸도 멀리 사는 친척쯤 되는거 아닌가요? ㅎㅎ

라로 2022-10-18 13:50   좋아요 1 | URL
나중에 사위들이랑 가시고 축구 하시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대신 따님들이 얼렁 결혼해야 하나요??ㅎㅎㅎ
하긴 저도 있는 딸이 멀리 시집을 가니 얼굴 보기 힘들어요.
제가라도 보러 가야 하는데 넘나 바빠서(는 핑계고;;;)
암튼 어차피 다 그런게 인생이죠, 뭐.^^;;

책읽는나무 2022-10-1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이 첫째라 말 실수가 잦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아들이 첫째인데 정말 구박을!!!ㅋㅋㅋ 둘째들한테는 또 첫째만큼 마음이 안그렇더군요.^^
그리고 전 배혜경 작가님의 영화 책, 머리글의 그 부분이 늘 한 번씩 떠오르는데요.
부모가 자식을 용서하는 게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더 쉽게 용서를 해준다는 대목에서 정말 울컥하면서 늘 가슴에 새기게 되더군요.
아이는 우리가 엄마이기 때문에 이미 용서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계속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라로 2022-10-18 01:2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첫째인데다 저랑 너무 반대라 그런 것 같아요. 더구나 더 그랬던 건 제 딸이 혼내면 절 좀 무서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더 욱 했어요. 저보다 단단한 아이라 제가 무서울리가 없었죠. ㅎㅎㅎㅎ 그리고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쥬??^^;;;
부모를 더 쉽게 용서하는 것도 맞아요. 저도 그래요. 저도 부모님께 첫째라고 엄청 구박 받고 자랐는데 원망이가 별로 없어요. 별로라고 한 이유는 엄마 돌아가시기전에 있었던 일은 잊히지 않아서,, 그게 원망일까요??^^;;; 암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나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