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박영희 지음, 강제욱 외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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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주인공은 선박 수리공 황일천씨다. 지금은 선박 수리공인 그는 한때 배목수였다. 배목수로 살던 그때가 그에게는 호시절이기도 했다. FRP선이 일본에서 몰려오기 시작한 1985년 이전, '배목수'는 바닷가에서 목에 힘깨나 줄 수 있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군수한테 시집갈 테냐? 배목수한테 시집 갈 테냐?라고 처자들에게 물으면, 열이면 열 당연히 배목수한테 시집가겠다고 대답한다"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호시절에 결혼도 하고 아들까지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조촐하고 한적한 삶을 꾸리고 있다. 벌이가 션찮다며 그의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진즉 대구로 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1980년~1990년, 양복점과 양장점을 밀어낸 자리에 기성복 판매점이 들어서고, 재래시장을 몰아낸 자리에 마트가 우후죽순 들어서서 호황을 누리던 그 시절, 그리하여 이 땅의 소규모 상인들이 설 땅을 잃어가던 그 즈음에 황일천씨도 대책 없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배목수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며 그와 함께 구룡포에 남은 그 옛날의 배목수들은 이제 10명 남짓, 어제, 그제와 같은 여전한 일상인 오늘 하루(책 속에서) 그의 일당은 1만6천원이었다고 한다.

“산다는 게 참 묘한 기라. 저거(FRP선)이 그때는 나를 하루아침에 놈팽이로 만든 원수 같은 거였는데 지금 그걸 고쳐주고 있으니……. 세상 더러운 거 아이가?”  - 그는 바다로 출근한다(선박 수리공 황일천씨 중에서)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시대의 장인들>(삶이 보이는 창)의 또 다른 주인공들은 세공사 김광주씨(사훈:'정밀세공·책임완수'), 제과제빵사 이학철씨(빵은 소녀를 닮았다), 이발사 문동식씨(가위질 반세기). 철구조물 제작사 김기용씨(밀리미터(㎜)와 싸우는 철구조물 제작), 자전거 수리공 임병원씨(자전거 빵꾸 때우는 거? 맹장수술하고 비슷해)다. 

“손만 살짝 갖다 대도 토라지는 소녀를 닮았다고 할까요. 빵처럼 변덕이 심한 식품도 드물 것입니다. 특히 공갈빵은 구울 때마다 맛이 다른데 날이 덥거나 추울 때, 맑은 날과 흐린 날 등 그날그날의 기후변화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 빵은 소녀를 닮았다(제과제빵사 이학철씨)

 “자전거 앞바퀴 살은 스물세 개를 걸고 뒷바퀴는 마흔 개를 거는데 이유는 간단해. 뒷바퀴에 힘이 더 실리기 때문이야. 우리네 인생도 이런 거 아닐까. 진짜 힘은 앞에서보다 뒷심에서 나오잖아" - 자전거 빵꾸 때우는 거? 맹장수술하고 비슷해(자전거 수리공 임병원씨)

저마다 다른 터전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전거 빵꾸 때우는 것이 맹장 수술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자전거 수리공 임병원씨의 말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사명을 다한다는 것, 자신이 선택한 일이 물밀듯이 밀려든 외국산과 거대자금이 양산한 산물에 밀리고 말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우직하게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조성기, 강제욱 등 6명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와, 르포집 <길에서 만난 세상>(국가인권위원회 기획)과 <아파서 우는게 아닙디다>(삶이 보이는 창) 등 주로 우리 시대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인권에 관한 르포를 주로 썼던 박영희씨가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했다. 

이들은 이 책을 왜 기획하게 되었을까?

지난해 12월, 대구민예총 주최로 경북 대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전시회'가 열렸다. 연극, 사진전, 미술 등 여러 장으로 나누어 평범한 사람들을 재조명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그런 전시회였다.

주최자인 대구민예총은 전시회에 앞서 주인공 몇 명을 선정, 그들을 기록하고자 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시대의 장인들>은 이렇게 나온 책이다. 그런데 대구민예총으로 하여금 평범한 사람들을 재조명하게 한 숨은 공로자가 따로 있다. 책 첫머리에서 먼저 만나는 사람, ‘사진기 수리공’ 김성민이다.

2006년 9월 29일, 대구 가톨릭병원에서 한 사진기 수리공이 죽었다. 사람은 물론 기술이고 물건이고 예술까지 서울로 서울로 죄다 몰려드는 판국에, 되려 서울의 고장 난 카메라들을 대구로 끌어 내리게 할 만큼 전국의 사진가들에게 유명한 사진기 수리공 김성민이 자신을 덮친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죽은 것이다.

그가 생을 마감하던 그날, 그가 숨을 거둔 병실 복도에는 그가 고쳐 부활한 사진기로 찍은 사진 100여 점이 걸려 있었다. 사진가 40여 명이 그의 회복을 기원하며 마련한 ‘회복 기원 사진전’이란 타이틀과 함께

"… 돌아앉아 사진기 수리에 열중인 그의 뒷모습이 그립다. 우리는 성민이의 노력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전시'를 통해 사진 도시 대구의 꿈을 이뤄보려고 아등바등할 작정이다. 이 부박한 세상에 기어코 일하는 사람들의 영웅담 하나 만들어보련다…." - 김성민 추모의 글 중에서

그 후 2007년. 대구민예총은 김성민의 죽음을 추모하는 한편, 한 사진기 수리공과 같은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에 바치는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종합전시회'와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지’, ‘많이 가진 것 없어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 소중한 거야’ 때로는 이처럼 부족한 것이 훨씬 많은 삶을 애써 위로하지만, 써야할 돈이 벌 수 있는 돈을 상회할 때면 허공중에 사라지는 위안이 되고 만다. 

‘그래도 삶의 순정과 진실을 절대로 놓아선 안 되지.’ 돈 때문에 성급해지고 기가 죽으려는 순간을 위로하는 한마디를 책의 발문에서 만났다. 혹은 책속의 사람들, 혹은 내가 오늘도 만날 이웃들을 위로할 한마디라고 추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 옛날에는 정부에 찍혀 탄압받는 단체였는데, 기특하게도 국민세금을 타서 뜻 깊은 행사를 연다.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 세상은 민주주의로 여전히 돌아가는데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통계지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라고 하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달그락거린다. 달그락 달그락.허나 터덕거려도 기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가야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 사진전, 혹은 책을 여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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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의학, 과학을 초대하다 1
다나카 마치 지음, 이동희 옮김, 정해관 감수 / 전나무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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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 즉 가장 강한 독은 무엇일까?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의 저자 '다나카 마치'는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 중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보툴리누스균을 손꼽는다. 독성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치사율이 높다는 뜻이다.
 
보툴리누스균의 독성은 LD50=0.0005㎎/㎏으로 표시되는데 이때의 LD50은 반수치사량이다. 체중 50㎏의 사람이 보툴리누스톡신 0.0005㎎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흙 속에서 살고 있는 파상풍균도 LD50=0.0005㎎/㎏으로 독성이 치명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극물 살인에 자주 쓰인 투구꽃의 독성은 LD50=0.3㎎/㎏, 위험성이 비교적 많이 알려진 청산가리는 LD50=10㎎/㎏이다.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5500명의 피해자와 11명의 사망자를 낸 사린가스가 LD50=0.35㎎/㎏ 정도이고 보면 이 보툴리누스균이 대단한 독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토록 강한 독성의 보툴리누스균을 현대인들이(경우에 따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안전하고 위생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서 말이다.
 
"보툴리누스(botulinus)란 라틴어로 '소시지'라는 뜻으로, 서양에서 보툴리누스균은 이름 그대로 햄이나 소시지에 의해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독소는 이론상 1그램으로 1000만 명을 죽일 수 있으며,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소 중에서 단연 으뜸을 자랑한다. 독성의 강도는 청산가리의 20만 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 책 속에서
 
보툴리누스균은 산소가 없는 상태를 좋아하는 혐기성 세균으로 레토르트 식품이나 통조림 등, 밀폐된 가공식품에서 발생하여 식중독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여타의 식중독들처럼 구토를 동반한 위장장애로 시작, 시력 장애와 전신마비 등의 증상과 함께 사망을 초래한다.
 
산소가 있는 경우엔 아포로 존재하다가, 산소가 없어지면 증식을 하기도 한다. 보툴리누스균 아포가 있는 고기가 가공되어 밀봉되는 순간 보툴리누스균은 증식을 시작하여 슈퍼 등에 진열되어 구매자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먹어줄 희생자(?)를 위해 자라고 있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1984년에 일본 규수에서 가공된 연근겨자무침을 먹은 사람 중 36명이 이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걸려 그중 11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연근겨자무침을 진공 팩에 담아 밀봉했기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었다.
 
흔히, 연근겨자무침처럼 소독하여 가공한 진공 팩 제품이나 가열하여 밀봉한 레토르트 식품 등과 같은 가공 식품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진공 팩 제품=멸균 제품'이란 믿음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인데, 일본에서 발생한 이 대형 식중독사고는 이런 잘못된 믿음을 버리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비약하여, 더욱 쉽고 더욱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향한 가공식품의 끔찍한 역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할까?
 
그런데 이토록 끔직한 보툴리누스균의 위험은 가공 식품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벌꿀 등에 존재할 가능성이 다분한 보툴리누스 아포를 통해 영유아에게만 특이하게 발생하는 '유아 보툴리누스증(infant botulism)'이란 것도 있기 때문이다.
 
독과 약은 하나? 독을 알면 약이 보인다?
 
하지만, 목숨까지 앗아가는 이 끔찍한 보툴리누스균이 요즘에는 일부 사람들과 성형외과로부터 선호되고 있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마법의 약이요, 세월을 거슬러 젊음까지 되돌려 준다는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중략)보툴리누스 독소로 만든 '보톡스'라는 약품이 눈주름이나 미세한 주름을 없애는 데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톡스는 환부에 주사하면 표정근의 움직임을 억제해 주름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중략) 보톡스의 원리는 간단하다. 주름을 없애고 싶은 부위에 보툴리누스 독소를 주사하면 주변의 신경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이 분비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표정근으로 가던 신호 전달이 차단돼 웃어도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밖에도 눈 밑 주름을 느슨하게 만들어 눈을 크게 하거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할 때도 보툴리누스 독소를 이용한다." - 책 속에서
 
이쯤 되면 위험하고 해롭다고 알려진 독과, 안전하고 이로운 것으로 맹신하기도 하는 약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보툴리누스와 보톡스뿐이랴. 이 책에서는 이처럼 사용자와 환경 등에 따라 약이 되는가 하면 독이 되는, 야누스적인 독과 약의 실체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의 저자 다나카 마치는 독의 종류별 특성과 다양한 실체를 조목조목 흥미롭게 들려준다. 다루고 있는 독(이야기)들이 추리물 등에서 독극물 살해와 관련하여 만나던 것들이 아닌, 슈퍼마켓 등의 식품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툴리누스나 0-157처럼 최근에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 식물이나 동물을 통하여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라 읽는 내내 긴장하였다. 
 
마지막 장 '독살사건 수첩'은 세기적인 독극물 살인 사건 모음이다.
 
자신의 부모, 형제 등을 비롯하여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독극물로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브랭발리에 후작부인, 악명 높은 탈륨 독살범 그레이엄 영, 투구꽃 살인사건, 감기약 살인 사건 등을 추리물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독과 약을 주제로 한 의학과 과학의 흥미로운 접목'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용어 자체만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 지식들과 우리 몸에 적용되는 의학적인 원리와 지식들을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니 말이다.
 
다나카 마치의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그동안 끊임없이 궁금해 하였으나 명쾌하게 알지 못했던 독과 약에 대한 궁금증들을 맘껏 풀면서 읽었다.
 
책을 통해, 위생적이고 안전하다는 믿음과 함께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거니와 편하고 싶어 이따금씩 구매하기도 했던 가공식품이나 소시지, 햄 등이 내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를 감추고 있었다는 가능성 앞에 아득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책속 내용을 몇개만 더 소개하면....▲사실은 산소도 원래는 독이었다? ▲우리가 즐겨먹는 야채에도 독은 얼마든지 들어있다? ▲아이들이 피망을 싫어하는 이유는 피망의 독 때문이다? ▲독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독이다? ▲복어는 왜 자기 독에 중독되지 않을까? ▲전갈이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조개의 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담배 한 갑은 성인의 니코틴 치사량이다? ▲다이옥신은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일까? ▲코카의 중독성과 코카콜라의 상관관계는? ▲마약은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 걸까? ▲해독제는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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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과학 - 과학엔터테이너 최원석의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37
최원석 지음, 이부용 그림 / 살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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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한 콜라 회사가 학교 근처 등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 시음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콜라 매출 만년 2위인 펩시가 부동의 1위인 코카콜라를 맛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이른바 '펩시 첼린지'라는 콜라 시음 대회였다. 이것은 텔레비전 광고로도 제작되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눈을 가린 사람 중 대다수가 펩시콜라를 선택했다. 시청자들에게 '자기네 광고니까 당연히 저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실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현장, 즉 '펩시 첼린지'에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펩시를 선택했다는 것이 이미 공식화된 소문이다.

더욱이 재미있는 사실은, 시음대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펩시콜라를 선택했음에도 코카콜라보다 판매율이 여전히 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눈을 가리고 펩시를 선택한 사람들이 매장에서는 코카콜라를 선택한 것일까? 이와 관련해 미국 베일러 의대 몬태규 교수팀이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상표를 알면 맛이 달라진다?

박사팀은 우선 텔레비전 광고에서 본 것처럼 실험자들의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맛보게 했다. 그런 다음 mri 분석을 했다. 결과는 펩시콜라를 마셨을 때 뇌의 반응이 훨씬 활발했다. 즉, 만족감을 관할하는 부위인 '배쪽피각(ventral putamen)의 활성화가 펩시콜라를 마셨을 때 훨씬 활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의 구매는 코카콜라가 여전이 앞선다. 이것은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제품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광고는 한 제품의 생명이고 진실이다? 상표가 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 상표를 알면 맛이 달라진다?

어떻게든 많이 팔기를 바라는 한 기업의 광고 아이디어에 불과할 것 같은 '펩시 첼린지'의 뒷이야기는 광고가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광고가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과학 엔터테이너 최원석의 <새빨간 과학>'이란 제목과 '사람을 매혹하는 15초 과학의 위장술'이란 부제만 보아서는 이 책이 최근 몇 년, 다양하게 출판되고 있는 생활 과학서 정도로만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광고' 이야기다.

저자는 광고를 실험대에 올려 낱낱이 해부한다. 물리학을 전공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과학 대중화를 위한 활발한 활동(ebs 자문, 일간지 기고)을 하고 있는 저자가 '15초의 과학'이라는 광고 속에서 과학적인 것들의 과학상식과, '15초의 과학'임에도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광고의 과장과 허위를 조목조목 짚어준다.

첫 번째 이야기는 과자 및 가공식품들. 끝없이 부드러워지고 맘껏 바삭바삭해지기를 바라는 과자 속에 식품첨가물과 트랜스 지방이 과다하게 들어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하게 아는 사실이다. 2000년의 화두인 웰빙바람 속에 아이러니하게 지난 2005년과 2006년에는 식품첨가물과 트랜스지방으로 우리 사회는 많은 논란에 휩싸였고 진실공방이 뜨거웠었다.

백번을 강조해도 모자란 식품, 식품 광고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식약청의 일련의 조치들과 '단 1g도 넣지 않습니다'와 같은 기업들의 양심을 미루어 이젠 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여전히 뭐가 뭔지를 확실히 모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자주 거론되는 몇 가지 용어만 빼고는 용어 자체도 어렵고 규정도 복잡하여 도대체 무엇이 왜 나쁜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문적인 용어, 어려운 이름들이 포장재와 광고에 끝없이 등장한다. 또한 광고주가 교묘하게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광고를 치장하기 때문이다.

칼슘이 포함되어 있어 뼈에 좋다는 우유가 있다. 하지만 '골다공증이 예방된다'거나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준다'고 적지 않고 '뼈 건강을 생각한다' '뼈가 좋아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소비자는 '그러잖아도 뼈에는 우유가 좋다는데 칼슘을 더 첨가하였다니 골다공증은 100% 예방할 수 있을 거야'라고 믿으며 일반 우유보다 비싼 칼슘 첨가 우유를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니들이 광고를 알아?... 광고를 보는 눈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왜 코카콜라를 선택할까? ▲과자는 달콤한 독일까? ▲ 한방 화장품과 천연 화장품이 더 좋다? 자연산은 안전? 인공산은 위험? ▲우유 찬성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의 진실은? 저지방 우유가 저렴한 외국에 비해 우리가 비싼 이유는? ▲비타민 c, 칼슘, 미네랄 함유 음료 광고들처럼 정말 보통 사람들의 영양분 섭취가 그렇게 부족할까? ▲바르는 비타민 c와 코엔자임의 진실은? ▲한우, 국산 돼지고기를 먹고 힘내자는 광고 이전에 육식이 몸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것이 과연 친환경적일까? 무조건 재활용만이 해결책?

이 책은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식품과 일상용품 등의 광고를 중점적으로 실험하고 해부하여 중요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어 본다.

어떻게든 구매를 하게끔 해야 하는 광고주(기업)의 목적과 어떻게든 좋은 물건을 사려는 소비자의 목적, 그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숨겨진 것들을 <새빨간 과학>은 꽤 진지하고 과학적이며 흥미롭게 접근하여 파헤친다. 과학적인 상식과 최근 이슈가 되었던 것들이 풍성하여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는 청소년부터 일반인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무한정 리필되는 광고의 풍성함속에 살고 있다. '어떤 연예인이 어떤 광고에, 몇 번' 나오는가에 따라 그 연예인의 인기도가 판단될 정도이다. 그래서 광고는 '니들이 게 맛을 알아?'와 같은 유행어를 낳았고 이 한마디로 신구씨는 광고계 스타가 되었다.

유행어를 끝없이 양산하고 수많은 광고 스타가 나온다는 사실은, 광고가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광고를 보는 우리의 눈이 이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빨간 과학>은 '광고를 알 만큼 알고 제대로 보자'는 것이다. 한 제품을 대신하는 광고를 제대로 알아야 현명한 구매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의 주체인 우리들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책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광고를 너무 쉽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현명하고 객관적인 소비 주체라고 자부하면서 실은 광고를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광고에 그대로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광고를 일단 분석해 볼 것을 스스로에게 주문한다. 현명한 선택에도, 과학적인 사고에도, 객관적인 분석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책속의 수많은 광고의 진실과 거짓들이 내게 마치 이렇게 묻는 듯했다.

'니들이 광고를 알아?'(앗! 어느 새 입에 붙은 것이 광고 유행어다.)

----------덧붙여

사실 박카스나 비타500이 내세우는 건강성분인 타우린과 비타민C는 어떤 업체나 쉽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카피 제품들이 따라 올 수 없는 두 제품의 맛에 성공의 비결이 있을 것이다.

맛있다 보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러한 자양강장제를 마치 물 마시듯 마시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타우린과 비타민C가 몸에 좋은 성분이기는 해도 과다 섭취하게 되면 문제가 된다.

타우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항산화작용과 해독작용이 있어 피로회복제로 사용된다. 마른 오징어의 흰색가루에 풍부한 것이 바로 타우린이다. 하지만 타우린을 과다 복용하게 되면 설사나 위궤양 등의 부작용이 있다. 비타민C는 대표적인 항산화제로 알려져 있으나 과다 복용하게 되면 오히려 산화제로 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다른 문제는 방부제인 안식향나트륨을 과다 섭취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타민C의 1일 권장량은 70㎎인데 왜 이렇게 많이 넣는 걸까?(100ml 기준 700~1200㎎) 이는 소비자들이 비타민을 마치 부작용이 없는 보약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없다면 부족한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베타카로틴, 비타민A, 비타민E 등의 항산화제 비타민 보충제가 사망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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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9
안완식 지음 / 들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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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았던 이 책의 서문에는 몇 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서 책을 바짝 쥐고 읽게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바나나가 향후 10년 안에 멸종할 위기에 처했단다. 물론 저자의 연구가 아니라 관련 학계의 주장을 저자가 전하고 있다.

원래 바나나 종자는 다양했는데, 지금처럼 씨도 없고 길쭉하며 달디단 바나나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재배 농가가 너나없이 선호하게 되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특정지역에서 재배하는 바나나나 일반 토종 바나나들이 개량종자에 밀리면서 흔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근세의 일이다.

그런 와중에 중앙아시아의 한 바나나 농장에서 그 지역을 휩쓸고 있는 질병에 현재의 개량종자의 바나나가 저항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멸종 경고가 발령됐다. 국제 간의 교류와 수입이 활발해지면서 시작된 '생태계의 패스트푸드화'로 나라마다 자국의 토종동식물의 위기를 느끼는 요즘, 바나나의 멸종 위기는 재배 농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09년부터 수입 종자에 비싼 로열티 물어야

"돈만 주면 아무 때나 쉽게 살 수 있는 과일인데 무슨 말? 관련 학자들이 알아서 대처할 것인데 설마 아주 사라지고야 말겠어?"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저자의 단호한 말은 오히려 멸종 위기에 처한 우리 토종 종자들을 염려하게 한다. 게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문제인, 2009년부터 수입 종자에 대해 비싼 로열티를 물어야만 하는 현실이 아득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현재 우리 주변에도 '바나나 멸종 경고'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제약이 개발되어 있지 않아 병이 걸리면 베어 내는 수밖에 별도리 없는 '소나무 재선충병'. 토종 소나무들이 재선충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변형 개량된 품종인 F1 바나나는 훨씬 무력하게 밀리고 말지도 모르겠다.

미처 몰라서 그렇지 우리 곁에서 지금 현재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토종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 저자가 이 책을 낸 목적은 토종종자 지키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09년부터 물어야 하는 종잣값과 관련이 깊은데 이 이야기 역시 그리 희망적이지는 못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딸기의 90%가 일본 종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02년 우리나라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여 2009년부터는 남의 종자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가면 일본에 지불해야 할 딸기 종자 사용료가 자그마치 일 년에 70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종자 사용료를 내야 할 것은 딸기만이 아니다. 그 외에 감자도 상당한 량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며 상당한 양이 소비되고 있는 외국산 장미도 마찬가지다. 현재 상태에서 딸기 사용료를 내야 한다면 농가가 짊어져야 할 액수는 딸기 한 포기당 100원꼴이 되어 생산단가의 상당한 인상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서문에서


딸기 한 그루당 일본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100원, 그럼 딸기 한 근에 얼마를 더 얹어 먹어야 하고, 감자 한 알에는 얼마를 더 얹어야만 할까? 그런데 이것은 딸기나 감자, 장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재배하고 있는 작물 중 외국에서 개발한 모든 품종, 꽃집에서 살 수 있는 꽃 중 외국에서 개발한 모든 종류의 꽃이 해당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2002년 이후) 농가마다 위기를 느끼면서 시급한 대책을 호소했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더 암담한 것은 우리나라 종묘상 대부분이 IMF 때 외국계 종묘회사로 넘어 가버렸고, 이 종묘상에서는 대부분 자국에서 개량한 종자씨앗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봄이면 종묘상마다 가득한 대부분의 묘목들은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2009년부터 종자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묘목들인 것이다.

이 정도의 위기라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토종 씨앗을 채집해야 하는 필요성이 급박해질까?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는, 현재 우리가 처한 토종종자 부족 현실에 대한 대처의 책으로 나온 것이다.

20여 년간 우리 토종 씨앗채집의 끈질긴 성과물

내가 우리의 토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1985년의 일이다. 그때 대략 모은 것이 2만 여종 되는데 10년 후 다시 종자 모은 곳들을 조사해보았더니 그전에 있던 종자들 중 10%로도 남지 않았음을 보고 아주 놀라고 말았다. 또 10년이 지나 몇 곳을 조사해보았더니 남은 10%의 10%로도 채 되지 않았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나마라도 모아 놓은 것이 있으니 다행이라면 참 다행한 일이다.

종자는 종자은행(gene bank)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으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지만, 종자로써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농가 현지에서 계속 재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출간될 가치는 있는 것 같다. -서문에서


20여 년 동안 저자가 우리의 작물 토종씨앗에 바친 노력과 집념을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늘 먹고 살아가는 것들 60여 가지이다. 매일 먹는 밥, 즉 벼부터 시작하여 김치나 나물로 먹는 채소들과 최근 재배 농가가 많아진 연꽃까지이다. 고추냉이나 양배추도 그 대상에 들어 있다.

어떤 씨앗이 좋고 작물에 따라 어떻게 채집해야 하는가. 토종씨앗을 채집하기 위한 시험 재배를 할 때 다른 종과의 교잡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채집한 씨앗은 어떻게 보관해야 발아율이 높은가? 각 작물별 특징과 재배 방법 등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작물이나 채소의 현황까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실었다.

종자 채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으며,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고,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있어서 일반인들도 눈여겨보면 생각 외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책이다. 야생화 사전에서는 다루지 않는 식물인 작물들의 생태적 특성과 꽃과 열매에 대한 정보들을 이야기와 사진으로 충분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꾼이 아닌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먹고사는 채소에 대해 좀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어렸을 때는 시시하고 하찮게만 보였던 배추나 무 등의 꽃들이 최근 예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종자 로열티 문제로 떠들썩했던, 잊고 있던 문제를 서문에서 절박하게 읽었음인지 아주 흥미롭게 읽은 책이 되었다.

조선시대, 사신으로 중국에 간 권씨 문중의 어떤 이가 가져온 볍씨를 250년이나 지난 지금 현재까지 조상 대대로 물려 재배하고 있다는, 이천의 '자채미'와 함께 임금에게만 진상되었었다는 '자광벼' 이야기는 개량종만이 우수품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은 상업농과 기계농이 일반화되면서 종자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모종조차 모두 사다 심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이제 종자를 받을 줄 아는 농부가 사라지고 말 것 같아 두렵기만 했다. 종자를 받을 농부가 없다는 말은 종자입장에서는 더 이상 진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다. 채종할 줄 아는 농부가 모두 없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채종에 관한 책을 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이 책을 내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 저자 안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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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고릴라
다이앤 포시 지음, 최재천.남현영 옮김 / 승산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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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코코와 퍼커는 가까스로 우리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이 책(안개속의 고릴라)을 쓰고 있는 1978년 나는 코코와 퍼커가 서로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 책속에서

'코코'와 '퍼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둘은 인간에 의해 각각 십여 마리의 가족들이 몰살당한 야생의 고아들로, 독일의 퀼른 동물원에 보내졌었고 서로 의지하다가 한 마리가 죽자 남은 한 마리는 더 이상 살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아프리카 열대 우림에서 고릴라들과 생활하는 다이앤 포시(dian fossey,1932~1985.12.26)에게 어느 날 르완다 국립공원 관리소장이 찾아와 동물원에 보낼 새끼 고릴라 한 마리를 잡아 줄 것을 부탁한다. 고릴라 한 마리에 대한 대가로 독일의 퀼른시 공무원이 약속한 것은 랜드로버 1대와 금일봉.

고릴라의 가족 관계는 인간처럼 끈끈하기 때문에 새끼 1마리를 지키기 위해 집단의 고릴라들이 죽을 때까지 저항하고, 잡힌 새끼 고릴라도 결국 삶을 포기하고 만다는 사실까지 설명하지만, 야생의 동물들을 보호해야 하는 국립공원 소장에게마저 고릴라는 경제적 수단으로 유통이 가능한 상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런 그들이 새끼를 살리고자 저항하는 어른 고릴라들과 새끼가 속한 집단의 고릴라 10여 마리를 모두 몰살한 후 잡은 것이 코코였고, 마음의 상처로 삶을 포기하여 다 죽어가는 코코를 대신하기 위해 잡은 새끼 고릴라가 퍼커였던 것. 퍼커의 부모와 집단도 코코의 경우처럼 인간에게 몰살당했다.

퍼커 또한 가족을 잃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포시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코코처럼 죽음을 선택한 상태였다. 몇 주 간격으로 포시의 캠프에 온, 같은 아픔을 가진 어린 두 고릴라(포시에 따르면 3~4살)는 죽음 직전 서로에게 의지하여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되지만, 야생으로 돌려보내려는 포시의 주장과 달리 동물원에 보내진 이 둘은 결국 죽고 만다.

"코코는 몇 분간 내 무릎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창문 아래에 있는 긴 의자로 다가가 비소케 산의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꽤 힘들게 의자 위로 올라가 창문 건너편의 산비탈을 응시했다. 코코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고릴라가 그렇게 우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코코는 수풀로 만들어 준 잠자리로 돌아갔다." - 책속에서

코코와 파커가 가족들과 함께 살던 숲속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잠결에 흐느끼는 등의 이야기를 읽으며 유괴당한 아이들의 불안과 아픔을 보았다면 지나칠까? 인간들의 비뚤어진 욕심 때문에 가족과 집단이 몰살당해 시시때때로 훌쩍이고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회상하는 어린 고릴라 코코와 파커의 이야기는 참으로 마음 아팠다.

인류학자 다이앤 포시가 죽음과 바꾼 고릴라의 안전

<안개속의 고릴라>는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 오랑우탄의 어머니 '비루테 갈디카스'와 함께 '유인원 3대 여성 연구가'로 잘 알려진 '다이앤 포시'가 1966년부터 15년간 아프리카 열대 우림에서 고릴라들과 생활하며 관찰·연구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이 1983년에 출판되자 세계의 이목은 다이앤 포시와 고릴라들에게 쏟아졌다.

제인 구달과 비루테 갈디카스, 다이앤 포시는 거의 같은 시기에 영장류인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들과 함께 살면서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못 알려진 것들을 세계인들에게 알려 이들의 보호를 호소했다. 다이앤 포시의 이 책은 당시 밀렵으로 개체수가 250마리밖에 안 남은 고릴라 보호에 세계인들이 관심을 두게 하였다.

반 밀렵단체를 조직하여 밀렵꾼들이 설치한 덫 등을 제거하거나 그들의 밀렵을 방해하던 그녀가 고릴라 보호를 위한 전사가 된 것은, 그녀가 특별한 친밀감을 가졌던 수컷 고릴라 디지트가 밀렵꾼들에게 희생되면서부터다. 그녀는 디지트 기금을 만들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고릴라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게 된다.

하지만 <안개속의 고릴라>를 출판한 3년 후에 얼굴이 난자당한 채 살해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녀의 죽음, 누가 왜 죽였을까?

다이앤 포시가 숲에 머물기 전에 수많은 고릴라들은 영양 등 다른 동물들과 함께 밀렵되었다. 코코나 파커처럼 우리 속에 가두고 돈을 벌거나 구경하기 위하여, 손가락이나 팔 등을 잘라 기념품으로 팔기 위하여, 고릴라를 잡아 끓여 먹으면 고릴라처럼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일종의 미신 등으로 인해 영장류인 고릴라들은 죽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방해와 간섭으로 밀렵이 힘들어지면서 밀렵꾼들은 여러 차례 살해를 계획한다. 흑마술인 '수무'라는 것으로 불안감을 조성하여 그녀와 함께 덫을 제거하러 다니는 원주민들이 두려움으로 더 이상 자신들의 뒤를 쫒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일꾼으로 가장하여 캠프에서 일하겠다고 찾아와 포시의 머리빗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모아 저주 인형을 만들어 화형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포시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며 지키고자 했던 고릴라들의 안전과 보호는 그녀의 죽음과 함께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다이앤 포시가 죽은 지 3년, 그녀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진 1988년 르완다 발행 1000 세파 프랑에 그녀가 15년간 함께 생활하였던 산악 고릴라를 도안으로 넣어 세계인들에게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질 뻔했던 인간의 친척인 고릴라들은 다행스럽게 지금 우리와 함께 지구 한편에서 살아가고 있다. 밀렵은 그나마 조금 줄어들었다지만 개발로 이들이 살아갈 땅도 많이 줄어 든 상태다. 안개 속에 있는 고릴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책은 모두 12부. 베토벤이 이끄는 제5집단을 비롯한 제8집단, 넌키 집단 등, 은색등(우두머리) 고릴라를 중심으로 10~20 마리에 이르는 각 고릴라 그룹의 사랑과 탄생, 일상과 죽음이 세세하게 소개된다. 문장 일부만 바꾸면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여길 만큼 인간과 유사한 고릴라들의 생활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번번이 혼나고, 동생에게 양보하면서 속상해하는 누나의 이야기는 왠지 낯익다. 새끼를 잃고 달관한 듯 위장된 수다를 떠는 암컷 고릴라도 우리들의 모습을 닮았다. 목적을 위해 투정부리는 꼬마 고릴라에게선 고집쟁이를 보았다.

<안개속의 고릴라>를 읽기 전까지 사실 고릴라는 단지 한 종류의 동물에 불과하였다. 영장류라고 하나 동물원에서 원숭이나 침팬지와 함께 볼 수 있는 동물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만 생각해 온 나의 무지가 부끄러웠다. 다이앤 포시를 통하여 만난 고릴라들의 감정은 우리들과 많은 부분이 같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훨씬 오래전, 지금처럼 진화하지 못한 먼 옛날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음을 덧붙이고 싶다. 살해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멸종 위기에 처한 고릴라 보호에 앞장섰던 다이앤 포시의 마지막 일기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인생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과거 속에서 살기 보다는 미래를 지키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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