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불멸의 기억
이수광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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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 대원을 남겨놓고 산을 내려갔다. 굶어 죽으나 일본군에게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배를 움켜쥐고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간신히 마을을 찾았다. 집이 일고여덟 채밖에 되지 않는 화전 마을이다. 나는 삽짝이 열린 집으로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문이 덜컹 열리고 몽둥이를 든 우락부락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너는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분명하다. 너희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어."

집주인이 몽둥이로 나를 때리고 사람들을 불러 묶으려고 했다. 러시아에 입적했다는 것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나는 그들과 싸울 수가 없어서 황급히 몸을 피했는데 골목에 일본군이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여 재빨리 피하려는데 일본군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향해 총을 쏘았다. 다행히 탄환이 뺨을 스쳤으나 맞지는 않아서 산속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이제는 동포들도 우리를 배신하는구나.' - <안중근 불멸의 기억> 중에서
 

<안중근 불멸의 기억>(추수밭 펴냄)의 한 장면이다. 무장투쟁에 패배, 동지들과 함께 살길을 모색하던 안중근은 이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이듬해 10월,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처단한다.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면.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일본의 협박과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는 등 국운이 풍전등화에 이르자 안중근은 민족의 살길을 모색하고자 상해로 떠난다. 그 무엇보다 나라를 구할 구국영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귀국 후 청계동에서 진남포로 이사(1906년), 삼흥 학교를 설립하고 돈의 학교를 인수하여 구국영재 양성에 나선다.

한편으로 안창호와 이준 열사 등의 애국지사들을 초빙하여 강연회를 열어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펼친다.

그런 중에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분사하고 그 때문에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 당한다.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해버리고 만다. 이에 분노한 안중근은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만주를 누비며 의병을 모아 최재형 등과 함께 무장투쟁(항일운동)을 시작한다.

"나는 얀치헤의 의병과 홍범도 부대와 연합하여 국내 진격작전을 전개하면 국권회복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두만강 일대에 배치하는 등 수비를 강화한다. 안중근은 두만강 일대를 넘나들며 일본 수비대를 공격, 국내 진격작전을 벌이지만 그러나 결국 참담하게 패배하고 만다. 독립군들의 의기는 충천했지만, 소지한 총이 제각기 다르다거나 전투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조건에서 일본보다 훨씬 불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립군(의병)들을 더욱 곤경으로 빠뜨린 것은 일본이 독립군들을 잡고자 민간에 심어둔 밀정과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에 협력하는 사람들인 '일진회'. 이는 일본인으로 그치지 않았다. 독립군에게 밥 한 덩이라도 베풀면 마을 전체 일본군의 보복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에 밥을 주고 안심시킨 다음 일본군에게 신고하여 사지로 몰아넣는 동포도 많았다.

또한 러일 전쟁 후까지 계속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민감한 문제들로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한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강제 이주되는 등, 무참하게 희생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독립군들을 힘들게 한다. 그리하여 독립군들은 졸지에 '러시아에 입적한 자'가 되어 몰매를 맞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참담함을 안중근은 또한 이렇게 회상한다.

"…그 동포의 집에서 며칠 동안 쉬며 비로소 옷을 벗자 거의 다 썩어서 몸을 가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이까지 득실거렸다. 나는 6월 23일(1908년) 이후 12일 동안 회령군을 벗어나지 못하고 폭우 속에서 길을 잃고 지냈다. 하룻밤도 집에서 자지 못하고 산속에서 뒹굴며 겪은 고초는 붓 한 자루로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노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안중근, 동지들의 원혼 때문에 참담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방황하던 그는 1909년 2월 7일, 김기룡 등 11인과 함께 "3년 안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와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리라. 거사가 성공하면 침체에 빠진 독립운동이 활력을 찾을 수 있으리라"며 손가락을 끊어 혈서로써 '대한독립'을 결의한다. 그 유명한 '단지동맹'이다.

그리고 몇 달 후인 10월 26일 하얼빈역. 우리 민족의 원흉이자 동아시아 평화를 짓밟은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살, 처단된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세기의 사건으로 일본의 침략과 만행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항일투쟁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러시아와 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
"첫 번째 대한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두 번째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킨 죄, 세 번째 을사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네 번째 무고한 조선인을 학살한 죄, 다섯 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여덟 번째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한 죄,…열다섯 번째…" - 책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분위기의 재판을 받으면서도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로 '이토 히로부미를 반드시 처단해야 하는 15항목'과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이유)를 조목조목 설파함으로써 일본과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다. 당시 세계 언론은 이 세기의 재판-사형까지 6차례-을 연일 톱뉴스로 다뤘다고 한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의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돌아오는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 불멸의 기억>은 이를 기념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정착시켰다는 평을 듣는 이수광씨, 책은 두 갈래로 영웅 안중근과 인간 안중근을 우리와 만나게 한다.  

한 갈래는 저자가 안중근과 당시 러시아에서 독립군의 대부로 알려졌던 최재형의 흔적을 찾아 떠난 10일간의 여정이다. 저자는 수많은 독립군들이 항일투쟁을 하던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기행하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 들려준다. 그 땅은 또한 100여 년 전 일제의 탄압과 굶주림에 지쳐 모여든 수많은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그들의 흔적도 들려준다. 

저자의 마지막 여정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한 여순감옥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순간 시신은 교수대 아래에 있는 침관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는데 이 침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과 많이 다르단다. 침관의 길이는 겨우 1m. 그러니 시신은 구겨져서 들어가야 한다. 일본은 이처럼 사자에 대해서도 인권을 침해했다. 

안중근도 마찬가지, 그 역시 침관에 구겨진 채로 박혀 삶의 마지막을 끝냈으리라. 책에는 이 침관 사진이 실려 있다. 안중근 의사가 이런 침관에 구겨진 채로 묻혔다는 사실을 안 그 순간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었다. 어떤 표현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먹먹해지는, 치오르는 분노, 이 비장한 슬픔들을 어찌 설명할까?

<안중근 불멸의 기억> 나머지 한 갈래는 안중근이 회상하는 자신의 서른두 살 삶이다. 사형을 하루 앞둔, 자신의 삶 그 마지막 밤인 1910년 3월 25일, 안중근 의사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자신의 생애를 반추하며 기억의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3천석 지기 부유한 집안 장손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유년시절, 일본군의 총과 화약을 구해 총 쏘기에 몰두한 나머지 당시 어지간한 호랑이 몰이꾼들보다 총을 잘 쐈던 청소년기, 결혼과 성령에 충만한 전교활동,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하기까지 등 안중근의 삶이 순서적으로 그려지는데 안중근의 회상 형식이라 이야기는 훨씬 진실하게 와 닿는다.

옥중 안중근은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한다. 또한 동지들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아내의 품속을 그리워한다. 그는 또한 하얼빈 거사를 앞두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거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의 품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까 흔들리기도 한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민족의 영웅 안중근을 달리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다.

그리하여 '어? 정말 안중근이 이랬을까?' 처음에는 이런 반감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모두 읽고 며칠 동안 자꾸 생각나는 것은 정작 안중근 의사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다. 안중근 뿐이랴. 우리에게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사람들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두만강과 백두산 일대에서 이름없는 들풀로 피고지던 수많은 의병들 또한 그랬으리라.

저자는 안중근 유적지 답사를 통해 영웅 안중근을 우리에게 만나게 하는 한편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집필했다는 <안응칠 자서전>을 바탕으로 안중근의 내면 세계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웅으로 부각된 인간 안중근을 만나게 한다. 안중근에게 감화를 받은 일본인 간수 '치바 도시치'의 이야기 또한 드라마틱하다.

저자는 이 책을 쓰고자 3년간 현지를 답사했단다. 때문일까? 저자가 안중근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면서 누군가의 나래이션을 듣는 듯,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다니는 것처럼 생생하게 와 닿는다. 하얼빈 의거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당시 러시아의 정치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단지동맹비와 단지동맹터, 안중근 의사의 사진이 걸린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집, 여순감옥서와 침관, 안중근의 가족과 면회를 동생 공근·정근이 면회를 하고 있는 장면, 이토 히로부미는 파렴치한 독재자요 안중근을 월계관을 쓴 영웅이라고 보도한 영국 <더 그래픽> 보도 기록 등, 책에는 당시의 기록 사진과 저자가 답사 중에 찍은 사진 또한 풍성하다.
 
'우리는 안중근의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10월 26일이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삶을 던져 민족의 원흉을 제거한 날이라는 걸 몇이나 알까? 우리들은 영웅들을 역사 속에 박제화 시켜놓고 나라와 사람을 구하는 일은 그들이나 하는 거창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분분하던 생각들이다. 작가는 압록강 철교 위에서 탄식한다.

"목숨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치열하게 독립 투쟁을 한 선열들에게 부끄러워해야 한다. 역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민족은 또다시 역사의 횡포를 만날 것이고, 역사를 통찰할 줄 모르는 민족은 미래로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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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 꽃술을 터뜨리다 - 한쪽 가슴만으로도 행복한 여자
곽정란 지음 / GenBook(젠북)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첫째가 유치원에 다니던 1997년, 어린이 독서운동가인 저자의 어린이 독서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청소년이다. 하지만 난 서점에 갈 때면 동화책 코너에 들러 '어떤 책이 있나?' 안부를 묻듯 들러 가끔 내가 읽을 동화책을 사기도 한다. 저자의 글 덕분에 '동화는 아이들만 읽는 것이 아닌, 어른들까지 읽는 것'이란 것, 동화책 읽는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던 저자의 신간 한권이 눈에 띄었다. '유방암을 이겨내고 평범한 독서운동가에서 전문 산악인, 마라토너로 살기까지, 곽정란이 전하는 희망 바이러스'라는 책 설명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중인 이종 사촌이 가슴 아프게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암은, (아직까지는) 내게는 이정도의 작은 아픔일 뿐이다. 하지만 막연히 삶을 두렵게 하는 것은 '암'이다. 남편의 줄어들지 않는 흡연과 음주가 늘 걸린다. 암세포는 스트레스가 키우기도 한다는데, 최근 몇 년 동안 계속되는 불운으로 남편이 마음고생을 참 많이 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책 표지 안쪽에는, 저자가 추천해 준 책을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아동기를 지나 이제는 청소년이 된 그 10년 동안 유방암 진단을 받은 저자가 발병전보다 훨씬 더 용감해진 이야기, 유방암으로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 안쪽을 도려내고 더 여성스러워진 저자의 프로필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소개되고 있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한 책이다.

참으로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누구에게나 크든 작든 삶의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에게 찾아든 시련은 유방암(2기). 책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던 1998년이었다. 그녀에게 어느 날 불현듯 찾아든 '암'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전환점이 된다.

결국 질병이든, 또 다른 까닭으로든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동안의 삶을 바라보게 된다. 질병은 그래서 우리 삶의 집행 유예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수술을 끝내고 조직 검사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밤이다. 창밖은 깊은 밤인데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켜졌고, 거리에는 차들이 바쁘게 질주하고 있었다. 창밖의 현란한 풍경은 오히려 내 비극을 더 드러내 주는 것만 같았다. 며칠 뒤면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로인해 내 인생은 또 달라질 것이다. 내 종양이 수술을 받은 가슴 부위에 국한되는 것인지 아니면 임파선이나 그 이상으로 전이가 된 것인지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 절박한 순간에 가족이 생각났다...-책속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아픈 한때가 불현 떠올랐다. 저자에게 유방암선고가 인생의 시련이었다면 내게는 2004년의 화재가 최근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내게, 아무런 죄도 없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았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스럽건만, 나의 아픔은 전혀 알바 아니라는 듯 해가지면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켜졌고 4월 봄 거리엔 사람들로 넘쳐났다.

'저거 한 사발 사다가 끓여 함께 먹으면 좋을 텐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를 팔고 있는 두부 장수 앞을 지나며 어머님 댁에 가 있는 아이들 생각에 왈칵 눈물을 솟았다. 반찬 가게 앞을 지나며, 아이의 손에 어묵 꼬치를 쥐어주고 있는 젊은 엄마 옆을 지나며, 꽁치 한마리만 더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사람 옆을 스치며…,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빼앗긴 설움에 눈물이 자꾸 나왔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길거리로 내쫓긴 그 봄 내내, 내게는 참 많은 것들이 다시 보였던 것이다. 그것들 대부분은 그때까지 늘 보며 생활했던 흔하디흔한 것들이라 그냥 스치며 그 가치를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남들이 글로 소중하다고 말하니까 나도 앵무새처럼 소중하다고 따라했을 뿐, 실은 돈보다 절대 우선하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화재만 나지 않았어도 더 많은 것을 얻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전혀 보이지 않았을, 하지만 소중하기 그지없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을 빼앗겨 버린 상실감이 무척 커서 하루 하루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때 나의 고통과 저자의 고통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저자는 암이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우리들이 소중한 줄을 모르고 살아왔던, 그야말로 사지육신 멀쩡한 몸의 소중함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소소한 행복들을 다시 바라보고 그 소중함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었다. 유방암으로 여성성의 상징인 유방을 도려내며 오히려 더 여성스러워졌다는 그녀의 용기 있는 미소는 그래서 무척 감동스럽게 읽혀졌다.

그녀는 '음식'과 '섭생'도 암을 이겨내는데 중요하지만 그보다 마음 치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사이코드라마를 통한 치료(미술 치료, 동작 치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 그리하여 2003년 9월 22일 유방의 날에 자신이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유방암 여성들을 위한 예술 치유 공연을 기획한다. 그 행사명은 '숨은 꽃, 꽃술을 터뜨리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그 후, 독서를 통한 내적인 충만 못지않게 중요한 육체의 가치를 위해 산을 오르기 시작, 2004년에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310m)에 오른다. 이때의 기쁨을 다른 환우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에 '유방암 여성들과 함께하는 히말라야 치유 트레킹'을 기획, 6명의 유방암 환우들과 히말라야에 올라 유방암 여성들의 치유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후, 암벽 등반 등 체계적인 등반 교육을 받는다. 그리하여 한라산 동계 등반(2005년), 일본 시로우마다께 등반(2007년)을 감행한다. 올해 네팔 히말라야의 아마다블람(6,856m) 원정을 준비하던 중, 혹독한 환경에서 자신을 시험하고자 이집트에서 열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 도전, 50도가 넘는 열사의 사막 250여km를 10kg의 배낭을 메고 6박7일 동안 달린 끝에 완주한다.

그녀는 또한 틈틈이 병으로 입원한 아이들과 지난날의 자신처럼 암을 선고 받은 여성들, 또 다른 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사람들을 찾아 '치유를 위한 자원봉사'를 한다. 그녀 역시 지난 날 병실에서 숱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때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봉사한 것이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두가지가 있다.   첫째,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걱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고 불필요하다.   둘째,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을 하는 대신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훨씬 큰 성과를 가져 올 것이다.-책속에서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책속에서 만난 글이다. 가슴을 도려내는 수술을 마치고 돌아 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한 수녀님의 쪽지 한장, 그 내용이다.

이 책은 이 과정들을 때론 담담하고 때론 감동스럽게 4부로 담고 있다. 아무렴. 지금처럼 당당하게 서기까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더 많았겠지. 저자의 투병과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들이 책 이야기와 함께 보석처럼 빛난다. 발병하기 전보다 발병 후 더 건강해진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큰 용기가 될 것 같다.

'암'이라는 장거리 마라톤을 뛰어가고 있는 내 이야기가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단거리 마라톤을 시작한 분들에게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또 아픈 이를 돌보는 가족에게 위로를, 그리고 아프지 않은 분들에게는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삶이, 아픈 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임을 알리고 싶어서다. 이제 또 다시 출발점에 섰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젠 혼자 달리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당신과 함께 달린다. "출발!" - <숨은 꽃, 꽃술을 터뜨리다>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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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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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바람의 아이들 펴냄)는 "사춘기 아이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에게는 바이블처럼 많이 알려진 책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반항이 이해되더라. 아니 요즘 애들 참 불쌍한 생각까지 들더라. 네 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라며 친구가 권해 읽게 된 책이다.  
 
봄과 여름 내내 딸아이(중1)의 이성 친구 문제로 고민했다는 내게 이 책을 권한 고향친구는 나와 비슷한 아이문제로 이미 혹독한 경험을 치른 바 있는, 학부형으로선 선배다.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꽃잎이 흩날리듯 사라져 간 모든 소년들에게


소설에 앞서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재준이는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어이없게 죽어버린 중3 소년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재준이의 죽음은 친구들이나 학교에 어지간한 충격이었다. 문제라고는 전혀 일으킬 수 없는 여자처럼 곱상한 아이, 부모와 선생님 말 잘 듣고 아픈 엄마를 배려하는 이해심 많고 참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재준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미는 더더욱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학 온 지 몇 달이 지났건만 무관심으로 자신을 '왕따'시켜 버리는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는 지겨운 학교에서 반항적인 날라리 전학생인 자신에게 '친구'라는 손을 내민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런 유미에게 어느 날 재준이 엄마가 찾아와 "며칠 전에 우연히 찾아 낸 재준이의 일기장인데 네가 먼저 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일기장에 적힌 수수께끼 같은 말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재준이가 죽기 3일 전까지 쓴 일기장 첫 장에는 이처럼 알듯 말듯 수수께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예고라도 한 걸까?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을 작정하거나 준비했던 것은 아닐까? 단순 오토바이 사고가 아닌 자살?

유미가 재준이의 일기장을 읽어 나가면서 재준이와 있었던 그간의 이야기들, 학교와 선생님, 친구와 부모님, 함께 나눈 고민 등을 회상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이 중학생 소설은 계속된다. 

우리 엄마 역시 내게는 감옥이다. 모든 걸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 같지만 그러기에 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항할 필요가 없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감옥이다.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책속, 재준이의 일기 중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싸우거나 어쩌다 한번 학원을 빠지는 것으로도 천식 발작을 일으켜 죽음 직전까지 가는 엄마, 이 때문에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들이 되어야만 한다. 

마주칠 때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밖에는 할 말이 없는 아버지도 어떻게든 참아야만 하는 감옥이다. "형이니까!" 부당하게 양보하고 더 많이 이해해야만 하는지라 동생도 때론 감옥이다. 재준이의 고민은 우리에게 무척 낯익다. 

아니 누구나 참고 사는 고민이라는 생각에 재준이의 죽음이 나약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하지만, 어느 날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재준이처럼 이해심 많고 말 잘 듣는 아이거나 유미처럼 '왕따'당하는 아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만 아찔해지고 말았다.

말 잘 듣는 아이가 죽음을 선택? 아찔하다

'그리 대단할 것 없어 뵈는 우정과 사랑으로 목숨 걸고 고민하는 아이들, 외진 곳으로만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 귀를 뚫었던 내 아이, 무릎까지 닿는 교복치마를 줄였으면 하고 떼쓰던 내 딸, 오토바이로 거리를 질주하는 아이들, 성적 올리기에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아이들…' 

책을 통해 만나는 이 아이들은 어느 날 내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내 아이이자 우리 주변의 낯익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딸에게 나는 어떤 엄마였던가. 나 역시 이런 아이들을 눈흘기며 '싹수가 노란 불량학생'으로만 단정 짓고 마는 그런 어른 아니던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참 담담하고도 잔잔하게 이처럼 낯익은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들려준다. 엄마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내게 책을 권한 친구의 말처럼 올해 나를 어지간히 힘들게 한 사춘기 내 아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그런.

이 책은 중학생 아이들의 세계를 아주 잘 담았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어느 날 한 소년의 죽음을 접한 작가가 소설을 쓰고 또래의 수많은 중학생 아이들이 원고를 읽은 후 작가에게 자신들의 세계와 고민 등을 전달, 작가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여 소설을 수정했다는 이야기를 작가의 말에 간단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이유 없는 반항을 이유 있는 반항으로 받아들여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어른들이 좀더 많아지길! 아직 떠날 수 없는 나이에 꽃잎이 흩날리듯 아프게 사라져야만 하는 불행한 아이들이 더 이상 없기를!

"2001년 9월 9일. 한 소년이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죽음의 소식을 듣기 직전까지도 나는 그 소년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그런 애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죽음에 접한 것처럼 통곡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내내 울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한테 그 또래의 딸이 있었던 탓일까요? 나는 아마도 그때 그 소년의 부모의 심정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누군가 내 심장에 칼질을 해대는 것처럼 숨을 쉴 수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생전의 그 소년과 절친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침 나는 그 애에게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언젠간 꼭 네 얘기를 써주마. 그것이 꼭 너를 그린 얘기는 아닐지라도 너처럼 어이없이 어느 날 사라져버린 어린 넋들의 이야기를 내 꼭 써주마…."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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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동안의 표류
김갑수 지음 / 어문학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오월동주'라고 했다. 다시 말해 같은 배에 타면 이방인끼리도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는 모두 한나라 백성으로 골육의 정을 나눴으니 산다면 같이 살고 죽는다 해도 함께 죽을 것이다. 이 감귤 한조각과 술 한 방울은 가히 천금처럼 소중한 것이니, 네가 관리하되 기갈이 심한 사람을 구하는데 사용하라."-책속에서

금남 최부(1454~1504)의 <표해록(漂海錄)>을 바탕으로 한 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어문학사 펴냄)에서 만난 한 부분이다. 정황은 이렇다.

1487년(성종 재위 중) 9월 '추쇄경차관'의 임무를 띠고 제주도에 간 최부가 이듬해인 1488년 윤 정월, 부친상으로 고향 나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한다. 

최부와 그 일행 43명이 제주도를 떠난 것은 윤 1월 3일. 일행은 열흘 가까이 밥은커녕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에 최부는 배를 샅샅이 뒤지게 하여 황감(감귤) 50개와 술 두 동이를 찾아낸다.

조선은 신분과 계급이 엄격한 시대다. 최부는,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적대 관계로 한 배에 타 풍랑 앞에 서로 협력했음에서 유래한 '오월동주'의 예를 들어 신분과 계급 상관없이 가장 위급한 사람 먼저 구할 것을 명령한다. 

최부에게는 양반이요, 최고 상관자인 자신의 목숨이나 아랫것들의 목숨이나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때만이 아니다. 최부는 조선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까지의 몇 달 동안 이 원칙을 고수한다. 최부와 그 일행 43명이 떠날 때의 그 인원 그대로 조선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표류 당시 34세였던 조선 선비 최부의 이런 성품과 위험에 처할 때마다 발휘되는 기개, 통찰력이 바탕이 된 지도력 덕분이다.

또 한 가지,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도 결코 흔들림 없는 예(禮)와 효(孝) 때문은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이들을 왜구나 첩자로 거짓 보고하거나 의심하던 중국인들조차 최부가 아버지의 산소 앞에 나아가지 못함을 함께 슬퍼하고 조선의 예(禮)와 효(孝)에 관심을 두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조선 선비로서의 최부의 참다운 면모나 굽힘없는 기개는 감동스럽다. 당시 이들의 굶주림과 기갈이 어느 정도인가. 돛도 이미 망가져버려 운명을 오직 하늘과 바람에 맡기고 있는, 물 한 방울 받을 수 있는 그릇 하나조차 없는 상황이다. <오백년 동안의 표류>에서 작가는 이렇게 표현한다.

"… 입술이 타서 변색된 사람을 골라 감귤과 청주를 미량씩 배급했다. 그야말로 단지 혀만 적실 정도였다. 그나마 감귤과 청주는 곧 바닥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마른 쌀을 씹었다. 어떤 사람은 오줌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얼마 안 가서 오줌도 나오지 않게 되자, 오줌이 나오는 사람의 가랑이로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가는 일이 벌여졌다. 표류인들의 가슴은 뜨겁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소리를 내기도 힘들어져 모두가 쉰 목소리로 속삭이는 형국이 되었다. 표류인들은 그늘을 찾아 엎드려 개처럼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 책속에서

북을 찢어 빗물을 받고, 입고 있던 옷의 물을 짜 마시는 등으로 최부 일행은 목숨을 겨우겨우 연명하다가 표류 14일 만인 윤1월 16일 중국 태주부 인해현 우두외양에 표착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일행의 고난은 끝나지 않는다. 해적과 강도, 최부 일행을 왜구로 몰아 출세하려는 일부 중국 관리들의 음해와 무고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135일간의 중국에서의 표류 또한 만만찮기 때문이다.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인터넷신문인 <오마이뉴스>에 '제국과 인간'이란 역사소설을 연재 중인 시민기자이자 작가인 저자 김갑수는 최부의 인품과 <표해록>을 소설 형태로 잔잔하게 들려준다. 

이야기는 두 갈래다. 하나는 최부 일행의 표류나 그 기록인 <표해록>을 따라가는 것, 또 하나는 최부 기념사업회 답사 일행에 기록 작가로 참여한 신응천의 백선묘를 향한 사랑, 그 표류이다. 

최부 일행이 표류했던 500여 년 전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때문에 보충설명도 필요하다. 저자는 이 부분을 답사 일행 중 한사람인 교수, 기자, 대학생 등의 입을 빌려 들려줌으로써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표해록>을 좀 더 쉽게 소개해준다. 

그리하여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고전 <표해록>이 쉽고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까지 난 왜 표해록을 잊고 있었나?'하는 반성과 함께 '올 가을 표해록 한권 구해 읽어야지'하는 마음까지 먹게 할 만큼 말이다. 

 <동방견문록>,<입당구법순례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

최부의 <표해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문으로 바다와 중국을 표류한 최부의 여정이 담겨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혔거니와 문학사적, 사료적 가치가 높다.  
 
2006년 언론보도에 따르면 90년대부터 <표해록>에 대해 연구해 온 북경대학 갈진가 교수는 <동방경문록>이나 <입당구법순례기>보다 <표해록>이 훨씬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중국 명나라 초기와 전기의 사회 상황, 정치, 군사, 경제, 문화, 교통과 수로, 풍습, 인물 등을 정밀하게 기록했기 때문. 

특히 '회통운하' 등 기록이 대부분 상실된 중국의 운하 연구에 귀중한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표해록>의 가치는 외국에서 먼저 인정했다. 최초 학술적인 번역은 '존 메스킬'이란 미국학자가 했다. 앞서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인 1769년에 <당토행정기>라는 이름의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갈진가 교수는 답사 마지막 날 일정인 심포지엄에 참가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묻는다. 

 "왜 한국인은 최부를 모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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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샤라쿠
김재희 지음 / 레드박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슈샤이 샤라쿠는 조선의 신윤복이다?"

'김홍도가 아니고 신윤복이 샤라쿠? 어떻게 신윤복이 샤라쿠일 수 있다는 거야?' <색, 샤라쿠>(레드박스 펴냄)를 향해 물었다. 책의 띠지에 '도슈샤이 샤라쿠는 조선의 신윤복이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슈샤이 샤라쿠(이하 샤라쿠)'는 일본 '에도(현재 도쿄)에서 1794년에 활동한 화가다. 그의 종적이란 에도에서의 10개월이 전부, 활활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불꽃처럼 활동하다가 어느 날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전설의 화가다.

1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샤라쿠가 남긴 작품은 140여 점. 샤라쿠가 종적을 감춘 이후 200여 년 동안 마네, 모네, 드가, 고흐 등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샤라쿠의 영향을 받는다.

당시 일본에는 가부키(일종의 연극)가 성행했다. 가부키 배우들의 그림을 판화로 찍어 판매하는 전문 출판업자까지 있었다. 어린 소년들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부키 배우들의 그림을 구매하고 좋아했다.

그런데 대부분 화가들이 가부키 배우들을 단지 '예쁘고 멋있게'만 그렸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샤라쿠는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묘사해 그림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과 배역을 연상할 수 있게 했다. 

불꽃처럼 활동하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전설의 화가

샤라쿠의 인물 목판화는 이제까지 일본의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한 그런 인물화였다. 

일본은 그동안 샤라쿠를 주목해 연구했다. 연구서만도 100여 종이 출판될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출신지와 생몰연대 등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샤라쿠의 정체'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한일 사학자 이영희 교수다.

이영희 교수는 <또 한사람의 샤라쿠>(1998)라는 책에서 당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김홍도가 일본에 첩자로 건너가 화가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김홍도가 샤라쿠였을 근거들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하지만, <색, 샤라쿠>는 '김홍도가 아닌 신윤복이 샤라쿠'라고 가정한다. 많은 이들이 공공연히 김홍도가 샤라쿠라고 알고 있는데 저자는 감히 신윤복이 샤라쿠라고 가정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처음에는 단원이 연풍현감 재임 당시 일본에 건너가 샤라쿠라는 풍속화가로 활동했다는 가설을 토대로 소설을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단원과 관련된 자료들을 연구하다 보니 이미 50대에 접어든 그가 그처럼 떠들썩하게 활동하면서 과연 의심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혜원 신윤복이 단원의 그림을 굉장히 많이 모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록에는 없지만 사제지간이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혜원이야말로 샤라쿠와 그림의 성향이나 소재가 비슷해보였다. 나는 혜원이 샤라쿠일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이 생각은 여러 미술 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확신으로 굳어졌다." - 저자의 말

가권(신윤복)은 도화서 화사로서 어진을 그리는 자리에 나가게 되는데 출세를 염두에 두고 왕의 눈에 띄고자 전전긍긍하던 중 무례한 죄를 짓고 김홍도가 현감으로 있는 연풍현으로 보내진다. 뛰어난 화공이자 연풍 현감인 김홍도는 정조의 밀명을 받아 연풍의 지리를 이용해 일본으로 보낼 간자들을 양성하던 중이었다.

당시 일왕은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무사들이 사회를 쥐락 펴락했다. 가뭄과 기근으로 농민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등 일본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일본은 통신사를 중단하는 등의 쇄국정책을 편다. 

반면, 조선은 안정되어 있었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고자 일본을 정복하려는 정조의 꿈도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어떤 외침도 막아낼 수 있는 화성 행궁을 건설하는 한편 화공들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일본 각지의 지도와 정보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홍도, 신윤복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내

 김홍도는 그림과 여자, 술에만 환장했던 철없는 사내 가권을 간자로 키워 일본에 보낸다. 그의 임무는 일본 무사들에게 빼앗긴 일왕의 밀서를 찾는 것.

<색, 샤라쿠>의 많은 부분은 가권, 즉 신윤복이 조선의 간자로 일본에 스며들어 불꽃같은 예술 활동과 냉혹하고 철두철미한 첩자 활동을 하는 에도가 배경이다.

당시 에도는 도쿠가와 막부의 중심가로 인구 100만이 넘는 향락과 사치의 도시였다. 저자는 가권과 함께 에도의 거리를 걷는 듯 에도의 화려한 밤거리와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생생한 현장감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자지러질듯 교태어린 게이샤의 웃음과 샤라쿠의 그림을 사려고 몰려든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고 할까?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상 역사 추리소설인 <색, 샤라쿠>의 또 다른 즐거움은, 여러 장르의 장점과 재미를 찰지게 반죽하여 적당하게 발효시킨 듯 흥미롭고 스릴있게 펼쳐지는 퓨전 팩션이라는 점이다.

첩자와 닌자들의 냉혹하고 살벌한 세계, 화가들의 예술세계, 에도 시대의 독특한 풍속과 풍물, 무사들의 냉혹함, 사회 혼란을 틈타 끊임없이 일어나는 섬뜩한 연쇄살인 사건 등이  긴박감 있게 그려진다. 특수한 기녀인 '오이란'의 세계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저자 김재희는 <훈민정음 암살사건> <백제 결사단> 등 민족적 자긍심이 강한 작품들을 주로 써왔다고 한다. <색, 샤라쿠>에서도 저자의 역사인식과 민족적 자긍심은 민중의 마음으로 그려진다. 저자의 이런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 마음에 쏙 드는 한 단락.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있다. 시어머니의  계략으로 굶어죽은 며느리가 환생했다는 새. 어쩌면 우리 백성은 소쩍새 전설에 나오는 그 며느리 신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도 배를 채울 밥은 늘 모자란다. 솥의 크기를 속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큰 솥은 뒤로 감추고, 작은 솥만 내밀며 이것이 최선이라고 순진한 마음들을 속인다.

 하지만 백성은 소쩍새가 아니다. 힘없이 굶어 죽어 전설처럼 슬픈 노래나 부르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솥이 적으면 그것을 녹여 곡식을 벨 낫을 만들리라. 적을 벨 검을 만들리라. 그리하여 큰 솥을 숨긴 자를 벌하리라. 주상은 그 백성의 마음까지 헤아리시고 큰 솥을 준비하시는 것이다. 만백성이 넉넉하게 밥을 나눌 수 있는 크고 든든한 솥을…, 그리고 나는 그 솥에 부어지는 쇳물이 되리라. - 책 속 '가권'의 고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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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9-0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관심도서인데 아직 못 봤어요. 님의 리뷰로 분위기 파악하고 갑니다. 감사^^

필터 2008-09-10 10:25   좋아요 0 | URL
지난해 가을에 어떤 책에서 김홍도가 샤라쿠였다는 관련글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책 대충 설명을 보면서 '신윤복이 어떻게 샤라쿠라는거야? 억지주장 아냐?'의 반감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기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김홍도가 아닌 신윤복이 샤라쿠일지도 모른다는 강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살면 빌려드릴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