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19
안완식 지음 / 들녘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았던 이 책의 서문에는 몇 가지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실려 있어서 책을 바짝 쥐고 읽게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바나나가 향후 10년 안에 멸종할 위기에 처했단다. 물론 저자의 연구가 아니라 관련 학계의 주장을 저자가 전하고 있다.

원래 바나나 종자는 다양했는데, 지금처럼 씨도 없고 길쭉하며 달디단 바나나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자 재배 농가가 너나없이 선호하게 되면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특정지역에서 재배하는 바나나나 일반 토종 바나나들이 개량종자에 밀리면서 흔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근세의 일이다.

그런 와중에 중앙아시아의 한 바나나 농장에서 그 지역을 휩쓸고 있는 질병에 현재의 개량종자의 바나나가 저항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멸종 경고가 발령됐다. 국제 간의 교류와 수입이 활발해지면서 시작된 '생태계의 패스트푸드화'로 나라마다 자국의 토종동식물의 위기를 느끼는 요즘, 바나나의 멸종 위기는 재배 농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2009년부터 수입 종자에 비싼 로열티 물어야

"돈만 주면 아무 때나 쉽게 살 수 있는 과일인데 무슨 말? 관련 학자들이 알아서 대처할 것인데 설마 아주 사라지고야 말겠어?"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저자의 단호한 말은 오히려 멸종 위기에 처한 우리 토종 종자들을 염려하게 한다. 게다가 까맣게 잊고 있던 문제인, 2009년부터 수입 종자에 대해 비싼 로열티를 물어야만 하는 현실이 아득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현재 우리 주변에도 '바나나 멸종 경고'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제약이 개발되어 있지 않아 병이 걸리면 베어 내는 수밖에 별도리 없는 '소나무 재선충병'. 토종 소나무들이 재선충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변형 개량된 품종인 F1 바나나는 훨씬 무력하게 밀리고 말지도 모르겠다.

미처 몰라서 그렇지 우리 곁에서 지금 현재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토종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가? 저자가 이 책을 낸 목적은 토종종자 지키기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09년부터 물어야 하는 종잣값과 관련이 깊은데 이 이야기 역시 그리 희망적이지는 못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딸기의 90%가 일본 종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2002년 우리나라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하여 2009년부터는 남의 종자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가면 일본에 지불해야 할 딸기 종자 사용료가 자그마치 일 년에 700억 원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종자 사용료를 내야 할 것은 딸기만이 아니다. 그 외에 감자도 상당한 량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며 상당한 양이 소비되고 있는 외국산 장미도 마찬가지다. 현재 상태에서 딸기 사용료를 내야 한다면 농가가 짊어져야 할 액수는 딸기 한 포기당 100원꼴이 되어 생산단가의 상당한 인상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서문에서


딸기 한 그루당 일본에 지불해야 하는 돈은 100원, 그럼 딸기 한 근에 얼마를 더 얹어 먹어야 하고, 감자 한 알에는 얼마를 더 얹어야만 할까? 그런데 이것은 딸기나 감자, 장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재배하고 있는 작물 중 외국에서 개발한 모든 품종, 꽃집에서 살 수 있는 꽃 중 외국에서 개발한 모든 종류의 꽃이 해당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몇 년 전(2002년 이후) 농가마다 위기를 느끼면서 시급한 대책을 호소했던 일이 이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더 암담한 것은 우리나라 종묘상 대부분이 IMF 때 외국계 종묘회사로 넘어 가버렸고, 이 종묘상에서는 대부분 자국에서 개량한 종자씨앗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봄이면 종묘상마다 가득한 대부분의 묘목들은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2009년부터 종자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묘목들인 것이다.

이 정도의 위기라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토종 씨앗을 채집해야 하는 필요성이 급박해질까?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는, 현재 우리가 처한 토종종자 부족 현실에 대한 대처의 책으로 나온 것이다.

20여 년간 우리 토종 씨앗채집의 끈질긴 성과물

내가 우리의 토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1985년의 일이다. 그때 대략 모은 것이 2만 여종 되는데 10년 후 다시 종자 모은 곳들을 조사해보았더니 그전에 있던 종자들 중 10%로도 남지 않았음을 보고 아주 놀라고 말았다. 또 10년이 지나 몇 곳을 조사해보았더니 남은 10%의 10%로도 채 되지 않았다. 너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나마라도 모아 놓은 것이 있으니 다행이라면 참 다행한 일이다.

종자는 종자은행(gene bank)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으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지만, 종자로써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 중요한 것은 농가 현지에서 계속 재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출간될 가치는 있는 것 같다. -서문에서


20여 년 동안 저자가 우리의 작물 토종씨앗에 바친 노력과 집념을 이 책에 담은 것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늘 먹고 살아가는 것들 60여 가지이다. 매일 먹는 밥, 즉 벼부터 시작하여 김치나 나물로 먹는 채소들과 최근 재배 농가가 많아진 연꽃까지이다. 고추냉이나 양배추도 그 대상에 들어 있다.

어떤 씨앗이 좋고 작물에 따라 어떻게 채집해야 하는가. 토종씨앗을 채집하기 위한 시험 재배를 할 때 다른 종과의 교잡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채집한 씨앗은 어떻게 보관해야 발아율이 높은가? 각 작물별 특징과 재배 방법 등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작물이나 채소의 현황까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실었다.

종자 채집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으며, 어떤 변화과정을 겪었고,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 주고 있어서 일반인들도 눈여겨보면 생각 외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는 책이다. 야생화 사전에서는 다루지 않는 식물인 작물들의 생태적 특성과 꽃과 열매에 대한 정보들을 이야기와 사진으로 충분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꾼이 아닌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먹고사는 채소에 대해 좀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어렸을 때는 시시하고 하찮게만 보였던 배추나 무 등의 꽃들이 최근 예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종자 로열티 문제로 떠들썩했던, 잊고 있던 문제를 서문에서 절박하게 읽었음인지 아주 흥미롭게 읽은 책이 되었다.

조선시대, 사신으로 중국에 간 권씨 문중의 어떤 이가 가져온 볍씨를 250년이나 지난 지금 현재까지 조상 대대로 물려 재배하고 있다는, 이천의 '자채미'와 함께 임금에게만 진상되었었다는 '자광벼' 이야기는 개량종만이 우수품종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은 상업농과 기계농이 일반화되면서 종자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모종조차 모두 사다 심는다. 이런 상황이 계속 되면 이제 종자를 받을 줄 아는 농부가 사라지고 말 것 같아 두렵기만 했다. 종자를 받을 농부가 없다는 말은 종자입장에서는 더 이상 진화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다. 채종할 줄 아는 농부가 모두 없어지기 전에 하루빨리 채종에 관한 책을 내야겠다는 조바심이 이 책을 내게 만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 저자 안완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