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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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표는 십수 년 전 일본 취재진이 스쳐간 부족마다 걸려있는 '이찌반라면' 봉지를 모두 삼양라면으로 바꾸어 놓는 것, 물론 그러한 과정에는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우리의 라면을 그곳 부족들과 함께 나눠 먹는 신성한 의식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이 뉴욕의 타임스퀘어 중앙에서 LG나 삼성로고를 발견했을 때 큰 감동을 느낀다고들 하는데, 그것이 오지에서 내가 남긴 우리나라 라면봉지를 발견하는 감동보다 더할까." - 책속에서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사군자)는 KBS 다큐오락프로그램인 <도전 지구탐험대>의 카메라기자로 유명한 정승희씨가 지난 10년간 아마존 여러 부족을 취재한 그 뒷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것. 10년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2005년) 10월 30일 500회를 마지막으로 종영되었다. (촬영 도중 연이은 사고로 폐지 결정)
 
지금은 인디오들 사이에 워낙 유명한 그를 '충(chung)'이라고 부르고, '꼬레아'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처음 얼마간은 일본을 뜻하는 '하뽄!'이라고 했다고. 1970년대 NHK가 아마존을 취재하면서 취재 보답으로 당시 4000∼5000불 하는 일본제 야마하 모터보트를 선물하면서 그들에게 하뽄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기둥에 달린 삼양라면 봉지. 라면 봉지는 크기로 보나 밀봉으로 보나 인디오들에게 무척 유용하게 쓰인단다. 작은 열매나 코카차를 걸어두기에 좋고, 바퀴벌레의 침입을 막아 낼 수 있는 쓰임새 많은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

일본인만 보았던 그들이라 처음에는 동양인은 모두 하뽄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이 라면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두 나라의 역사 차이는 몰라도 '꼬레아'와 '하뽄'이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인정. 그 다음 날 어김없이 전날 끓여 먹은 개수만큼의 라면봉지가 기둥에 이(사진)처럼 걸린다고 한다. 10년 동안의 취재, 이제는 삼양라면 봉지가 워낙 많이 걸려있다고….

라면봉지를 꽁꽁 여며 싸맨, 셀 수도 없는 끈을 보면서 오래전 시골 할머니들의 고쟁이 속에 꽁꽁 들어있던 세월에 절은 순박한 쌈짓돈을 떠올렸다. 끈으로 수십 번 칭칭 동여매서 필요하여 꺼낼 때, 또 그 많은 끈을 풀어내야 하지만 결코 조바심내지 않을 인디오들의 생활. 원터치 뚜껑으로 길든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인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존 인디오들의 삶과 사랑, 아마존에 중독되다

개미를 입에 넣고 와작하고 씹으면 꼭 오렌지 주스를 먹는 것 같은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인디오들은 깨끗한 나뭇잎이나 촌띠나무 속을 먹고 사는 곤충들은 아주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모호이'는 먼 길을 갈 때마다 나뭇잎에 10마리씩 나란히 싸서 끈으로 딱 묶어 도시락으로 가져간다. 애벌레 중 제일 큰 것이 '모뻬이'다. 거의 15센티쯤 되는 소시지 크기인데 내가 알기로는 세상에서 제일 큰 애벌레다 - 책속에서

언젠가 KBS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인디오들의 애벌레 이야기를 인상 깊게 본적이 있는데 책으로 다시 만나니 반갑다. 인디오들이 간식으로 즐겨 먹는 애벌레는 '모호이'와 '모뻬이'만이 아닌 여러 가지.

여행지에서 먹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테마가 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아마존 여러 부족들의 먹을거리 이야기는 우리가 텔레비전 등을 통하여 만날 수 있는 먹을거리들과 그 차원부터가 다르다.

애벌레를 먹는 소녀가 무척 행복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그래서 그럴까? 나도 아마존에 가면 저자처럼 인디오들과 어울려 애벌레들을 먹을 수 있을 것 같고, 저자처럼 서울 한복판에서 애벌레 맛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고 말았다.

인디오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인 여러 가지 애벌레들, 악어, 아마존 강의 명물인 육식물고기, 메추리알만 한 말벌의 알, 만주오까나무 이야기 등, 인디오들의 건강한 먹을거리 이야기도 풍성했다. 발암 물질 걱정, 식품첨가물이나 항생제 걱정,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 음식 하나 마음대로 안심하고 먹기 어려운 우리들의 먹을거리보다 훨씬 건강해 보인다고 할까?

앞서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푸른길)란 책에서 문명인들이 아마존에 침입하여 저지른 만행에 대해 워낙 인상 깊게 읽어서인지 그 내용이 쉽게 잊혀 지지 않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날 침입자들이 남긴 상처와 지금도 자원을 노리는 문명이란 검은 손으로 신음하고 있는 아마존이 아프고 안타깝다.

아마존 어디에서든 북부, 남부 구분없이 고무로 만든 공놀이를 즐기는데, 이 고무공을 만드는 고무액은 인디오들에게 '하얀 피'로 불린다. 수많은 인디오들의 목숨을 앗아간, 아마존을 황폐하게 한 대표적인 것 중 그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문명인들은 고무나무 액을 차지하기 위하여 짐승보다 못한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아마존의 여러 부족 남자들을 끌어다가 고무액을 채집하면서 먹이지도, 재우지도 않았고, 게으르다고 채찍질을 하면서 일만 시켰기 때문에 많은 인디오들이 죽었다. 고무나무 1톤에 인디오 7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심심할 때 몽둥이로 인디오의 머리를 부수면서 놀기도 했다나.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젊은 여자들을 가두어 놓고 부지런한 일꾼을 만들겠다며 여자들이 임신할 때까지 강간했단다. 아들이 태어나면 고무나무 액을 긁을 노예로 쓰고, 딸이 태어나면 아무 곳에나 던져 버렸다. 이때 여러 명의 여자가 탈출해 여자들만의 부족들이 생겨났다. 200년 넘게 여자들만으로 아나콘다까지 잡으며 살아가는 야르보족이 이렇게 생겨났다.

침입자들은 고무나무만이 아니라 카카오 등을 채집하면서도 인디오들을 착취했는데, 건축재로 쓰인 밀페소나무 벌목에도 많은 인디오들이 착취했다. 밀페소나무 한그루에 인디오 한 명이 죽어갔고, 그 대신 정복자들 집에는 대들보 하나가 세워졌다고 한다.

문명을 가속하는데 지대한 발전을 하게 한 타이어의 역사는 인디오들의 아픈 역사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명의 이기와 횡포가 씁쓸하다. 우리가 한때 '미개인'이라고도 불렀던 아마존 인디오들에게 문명이 어떻게 스며들어 어떤 상처와 어둠을 남겼는지,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이 문명인들에 의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를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아마존이여 영원 하라!' 빌고 또 빌어 본다

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아마존을 취재하는 조건으로 10만불을 요구하는 '후나이(아마존 외부인 감시단?)'에게 "배 째!"라면서 드러눕고, 결국 500불로 협상, 그러고도 20불을 자존심 값으로 빼고 주는 등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아마존 오지 여러 부족을 취재한 그 뒷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다.

몸을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옷을 입고 살지 않는(심지어는 그곳까지 드러내놓고 사는) 지구 최후의 에덴동산이라 불리는 곳에서 사는 싱구족, 아마존의 신비 분홍 돌고래, 청바지도 뚫을 정도로 강한 모기인 헤헨, 열이 많은 사람만 골라 초죽음을 만드는 털진드기와의 전쟁, 메이나꾸 부족의 엄청난 바퀴벌레의 역사 등 이색적인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흥미롭다. 삶과 죽음이 녹아있는 그들의 축제나 성인식도 인상 깊다.

저자는 10년 동안 100회 넘게 아마존을 취재했다. 아마존에 갔다 올 때마다 가져간 팬티 10여장을 모두 인디오들에게 나누어 주고 결국 입은 팬티까지 벗어주고 노팬티로 돌아오는 사연을 들려주는데 재미있고 뭉클하였다. 저자의 말처럼 속옷을 나누어 입는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인가. 아마존과 속옷을 나누어 입는 특별한 사이인 저자는 아마존을 안타까워한다.

지금 아마존의 여러 부족들이 갈림길에 서 있다. 싱구족이나 야르보족처럼 자연 속에서 건강하고 밝게 살 것인가? 아니면, 문명의 껍질을 입고 도시 노동자로 살 것인가? 지금처럼 문명과 자연의 언저리에서 어정쩡하게 살아갈 것인가? 인디오들에게 이런 고민과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을 보장하는 듯 밝은 웃음 속에 감추고 있는 어둡고 포악한 문명이다. 인디오들이 사라져야 문명인들이 아마존의 풍성한 자원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아마존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저자처럼 아마존이 영원하길 간절히 바랬다. 비록 책으로 만나는 아마존이었지만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낙원을 생생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인간이 꿈꾸어야 하는 진정한 행복의 낙원 말이다.

"아마존이여 영원 하라! 빌고 또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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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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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엄마가 면허를 따겠다는 생각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평범하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솔직히 매사에 어설프고 덜렁대는 엄마가 면허를 딴다는 게 겁이 난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나나가 아기였을 때, 유모차 하나도 제대로 밀지 못해 도랑에 빠뜨린 적도 있는 엄마가 정말로 면허를 딸 수 있을까. 차라리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어른이 되어 면허를 따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노란아기코끼리가 다가왔다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 나는 11살 소년이다.내 이름은 '요'. 사람들은 요군이라고 부른다.
 
요즘 우리 집은 철지난 장마전선이 턱 버티고 있는 것처럼 칙칙하고 우중충하다. 장마 중에도 햇볕은 종종 나기 마련인데 우리 집 장마 전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손님이 왔을 때만 겨우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엄마의 느낌은 예전과 달랐다. 아무래도 뭔가 굉장히 근사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근사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해. 지금보다 크고 멋진 집으로 이사를? 굉장히 근사한 물건을 사려는 것은 아닐까? 아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멋진 일일지도 몰라.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뭔가 근사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거창한 기대를 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운전면허를 따서 직접 운전을 하겠다는 뜻밖의 말을 한 것이다.

엄마의 말은 너무 뜻밖이었다. 게다가 염려스럽다. 통조림 하나 따는데도 손가락을 베고야 마는 덜렁이 우리 엄마, 기계치인 엄마가 운전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느 날 면허도 따기 전에 작고 노란, 상처투성이 낡은 자동차 한 대가 온다. 노란 아기 코끼리다.

노란코끼리가 온지 한 달 후에 엄마는 면허를 간신히 딴다. 하지만 덜렁이 초보운전 엄마가 오죽하겠는가! 폼 재면서 바닷가로 드라이브 갔다 돌아오다가 열쇠를 꽂아둔 채 문을 닫아 가족은 몇 시간동안 고속도로에서 고생한다. 주차를 잘못해 견인당하기도 하고 작은 사고로 라이트가 박살나는 등 온갖 일들이 정신을 쏙쏙 빼놓는다.

이 가족의 마지막 이야기는 '노란 코끼리와의 이별'이다. 가족들은 3년 전 아버지와의 마지막 여행 추억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멋진 저녁을 먹고 펜션으로 돌아오다가 엄마는 치명적인 사고를 내고 말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덜렁대다가 낸 사고다. 노란 코끼리는 멋진 차를 들이 받고 나가 떨어져 콘크리트 벽에 부딪치며 심하게 파손됐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사고였다. 나나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얼어붙어버렸고 엄마도 나도 덜덜 떨고 있는데 이런 가족에게 피해 차량의 운전자가 다가와 필요이상의 짜증과 모멸스런 훈계를 장황하게 한다. 운전자가 여자인 것을 알고 여자가 쓸데없이 차를 끌고 돌아다닌다느니 집에 쳐 박혀 살림이나 하라는 등등.

"엄마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고 낸 사람이 아빠였으면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텐데…."

소년은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슬프기만 하다. 사고의 충격으로 운전할 자신이 없어진 엄마가 아는 사람들에게 구원요청을 하지만 당장 달려와 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용기를 내어 차를 끌고 간신히 돌아온다.

거대한 코끼리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어 간신히 돌아오는 상처투성이 노란 아기 코끼리.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함께 섞여 달라다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잘 하잖아'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우리도 이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떻게든 씩씩하게 살아가야해.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놀란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말이야. 엄마는 이제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 갈 거야" - 마지막 이야기에서

희망과 용기의 노란 코끼리는 오늘도 씽씽 달린다

이 책은 폐차 직전의 작은 차 <노란 코끼리>가 우리 집에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11살 요군의 성장 소설이다. 그리고 바람을 피운 아빠에게 이혼을 당한 엄마가 이혼의 아픔을 이겨내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희망과 용기를 상징하는 노란 코끼리다. 나무에 매달려있던 수많은 노란 리본처럼!

자유기고가인 엄마는 '알뜰 수납법' '아이 제대로 키우는 법' 등 엄마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기사를 주로 쓰기 때문에 늘 힘들어 한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는 돈을 벌어야 하는 엄마. 엄마는 늘 바쁘고 집안 살림은 지저분하여 소년은 투덜대지만 엄마가 안쓰럽고 늘 염려된다. 11살 소년의 눈에 비친, 이혼을 했지만 용감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엄마 이야기다.

<노란 코끼리>를 읽다가 저자의 또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세상을 향하여 새로운 삶의 눈을 떠가는 11살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 본 것처럼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다면 두해 전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마음을 한번이라도 더 들여다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잔소리와 꾸지람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더 앞섰을 것이다.

훔치고 싶도록 좋은 문장도 많고 감동적인 부분도 많은,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 <노란 코끼리>다.

"나는 가방에서 나나의 팬티를 한 장 꺼내 갈아입혀 주었다.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오줌 좀 싼 걸 가지고 울면 안 돼. 강하고 씩씩하게 살아야 한단 말이야.'" (동생 나나에게 주인공이)

지금쯤 엄마는 낯선 고장의 호텔 침대에 혼자 동그마니 앉아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을 싫증날 정도로 곱씹고 있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 한 곳이 이상하게 찌릿찌릿하며 안 된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정신이 없는 건 덜렁대는 성격 때문이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진 거, 어쩌면 전보다 일을 더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빠가 없어서 두 사람 몫을 혼자 하다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내 가슴에는 이제 어두운 기운이 드리워졌다. 마치 유리창을 신문지로 막듯이.-엄마의 실수로 낯선 도시에서 미아가 될 뻔했던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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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7-01-2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은 이야기네요..리뷰 잘 읽었습니다^^

필터 2007-02-07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고맙습니다...^^

2007-02-07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 파기의 즐거움 - 손가락 하나로 만나는 해방감
롤랜드 플리켓 지음, 박선령 옮김, 존 하이햄 그림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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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일부러 생각해본 적 없는 '코 파기에 대한 호기심과 고민'이 <코 파기의 즐거움>이란 책제목을 보는 순간 불쑥 치밀어 올랐다.

코 파기에도 역사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코 파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코를 파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코 파기 방법은? 효율적인 코 파기 방법이 있긴 있나? 코 파기가 교양적인가? 비교양적이며 지저분할 뿐인가? 코 파기는 콧구멍을 확실히 커지게 하는 일등공신? 정말, 코 파기와 코딱지로 책 한권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 호기심들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배꼽 잡으면서, 끝내는 목이 쉰듯하고 눈물까지 눈 끝에 묻혀가기를 되풀이 하면서 속 시원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은근히 신경 쓰이는 코딱지를 빼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답답해 하다가 순식간에 해결한 그 시원함이랄까?

책을 쓴 사람은 코딱지와 코 파기의 전문가 '롤랜드 플리켓'. 그는 손가락 하나로 누릴 수 있는 즐거운 해방감인 코 파기의 역사부터 들려준다. 6천 년 전 이집트 소년 왕 '투탕카멘'의 미라에서 발견된 아주 작은 코딱지 하나부터 추적해 나가는 지난 역사속의 코 파기의 기록들을 따라 가다보면 '장미전쟁-코딱지의 귀환'을 만나게 된다. 전혀 뜻밖의 세계사다.

장미전쟁까지 일으킨 코딱지의 발견?

1066년에 일어난 헤이스팅스전투(Battle of Hastings)가 문제라면 문제다. 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 상습적으로 코 파기를 즐기던 '헤럴드 왕'은 통치기간 중 웨섹스(Wessex)와 머시아(Mercia)지방에 코 파기 관습을 널리 퍼뜨린다. 덕분에 사람들은 코 파기가 지저분하거나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지 않고 맘껏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코를 파다가 죽고 만다. 헤이스팅스전투를 지휘하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신경 쓰이는 코딱지를 해결하는 그 순간에 노르만디 궁수가 날린 화살에 급소를 맞고 만 것이다(바이외 태피스트리에 이 비운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전한다고).

헤럴드왕의 죽음 덕분에 통치자가 된 '윌리엄 왕'은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를 금지하는 '코 파기 법령'을 내린다. 아울러 전투태세를 갖춘 병사들이 아예 코 파기 생각을 못하도록 쇠장갑을 개발하여 착용시키는 한편, 이 법을 어기는 자들을 사형하게 된다. 이런 억압적인 방법으로 이후 650년 동안 이 법령은 철저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200여 년 전부터 공을 세운 귀족들이 그 대가로 파티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해오고 있었고, 왕들은 어떻게든 요구를 묵살하고 있었다. 그러나 '존 왕'의 통치중인 1215년에 이 법령은 결국 폐지된다. 존 왕은 일정 규칙을 세워 귀족들의 권리를 인정해주었는데, 무엇보다도 존 왕 자신이 코 파기 마니아였다.

그러나 귀족들에게만 주어진 혜택일 뿐. 평민들은 이후 170년 동안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 자유를 얻지 못한다. 때문에 코 파기의 자유를 얻으려는 평민들의 목소리는 지방 곳곳에서 툭툭 불거진다. 하지만 힘없는 평민들의 권리주장은 번번이 무시당할 뿐. 급기야 1381년에 폭동으로 이어지고 '리처드 2'세의 명령으로 주모자 2명이 사형, 잠시 잠잠해진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나 이 문제는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면서 심한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때 코 파기를 반대하는 입장의 보수적인 사람들은 코 위에 하얀 덮개를,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빨간 덮개를 코에 씌우고 20여년에 걸친 오랜 논쟁을 벌인다. '장미의 전쟁-코딱지의 귀환'에 대한 기록이다.

코 파기의 즐거움, 보다 떳떳하게! 보다 현명하게!

-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전 세계 편집자들을 뒤집어지게 한 바로 그 책!( 뒤표지에서)
- 코 파기의 역사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인기 있는 취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코 파기에 대한 책이 극히 적다는 사실은 놀랄만하다.(머리말)
- 이 책은 코 파기의 즐거움, 그리고 유쾌함을 말해주고 있다. 작은걸 기대하고 들어 간 손가락에 생각 외로 큰 것이 걸렸을 때와 같은 통쾌함! 당신에게 코가 있다면 정독하고 따라해 볼 것을 권한다. 코가 있다면!(디시 인사이드 대표 김유식)


공공장소에서의 코 파기의 자유를 쟁취한 장미전쟁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세계 각국의 코 파기의 역사. 손가락 하나로 즐기는 자유지만 각 나라의 역사적 배경이나 관습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이 흥미롭다.

코 파기, 코딱지 하나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나? 싶을 만큼 코 파기 이야기들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저자에 의하면 코 파기에도 규칙이 있고 효율적인 방법이 분명히 있다. 콧구멍이 커지지 않으면서 교양 있고 우아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빼내는 그런 방법 말이다.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코 파기에 대한 현명하고(?) 적절한 방법들은 유용할 듯하다. 직업에 따라 코 파기 횟수가 달라지고 별자리에 따라 코 파기나 코딱지에 대한 인식이 다른 만큼 역사 속 중요한 인물들 또한 저마다 습성이 다를 터. 저자가 한국인이었다면 '띠'에 따라 연구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사람들의 코의 형태는 24가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11가지. 11가지 코 파기 기술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고집하는 것은 전통적인 풍차 돌리기. 설문에 의하면 자그마치 67%를 차지한다.

저자는 조언한다. "1973년에 '코딱지 빨리 파기대회'에서 죽은 사람도 있다. 경우에 따라 위험한 코 파기도 있다. 연주를 하거나 접착제를 만지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코 파기를 시도하지 마라.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현명하게 즐기라"고.

오늘 날까지 전해지는 코 파기 노래모음이나 악보. 코 파기 관련 용어도 진지하다. <코 파기의 즐거움>은 코딱지와 코 파기가 주제. 언뜻 허무맹랑한 우스개 같은 이 이야기들은 너무 진지했다. 때로는 촌철살인까지 느껴지면서. 때문에 믿어야 할지 웃고 말아야 할지 수도 없이 망설이고 손끝까지 웃음기가 가득 배어 끝내 밑줄한줄 긋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코 파기는 전 인류, 전 세대가 가장 평등하고 빈번하게 즐겼을 법한 유쾌한 취미(지은이에 따르면, 책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코 파기 취미가들에 의하면)같다. 그것도 코와 손가락이 발생했을 때부터 시작된. 나는 왜 한 번도 코 파기의 역사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왜 한 번도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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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7-01-19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제목때문에 미치겠어요!(웃겨서!)

필터 2007-01-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응!~~~재미있어요..내용도...읽는 내내 코가 근질거리고 장난끼가 발동할 만큼!
 
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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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주인공 우룽이 홍수로 모든 것을 잃고 '대홍기 쌀집'이 있는 와장가로 가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은 부둣가 조직패거리 두목 아바오. 그는 사람을 우습게 죽이는 악명 높은 부자 '뤼대감'의 심복이기도 했다.

아바오는 선량한 남자를 죽이고 뺏은 쌀을 와장가 대홍기 쌀집 펑사장에게 팔아넘기는데…. 우룽은 몰래 쌀 무더기를 따라가 그 쌀집의 일꾼이 된다. 하루 종일 개처럼 일하고 멸시받는 대가는 밥을 먹여주는 것뿐.

쌀집 주인 펑사장은 돈밖에 모르는 인색한 노인. 펑사장의 큰딸 쯔윈은 뤼대감의 수많은 노리개중 하나였고 작은딸 츠윈은 하루 종일 악담과 저주만 퍼부어댔다.

쯔윈은 뤼대감과 아바오 사이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쯔윈은 버려지고 아바오는 살해당한다.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한 펑사장이 쯔윈과 우룽을 결혼시키지만 어느 날 우룽을 죽여 달라고 폭력배들에게 돈을 건넨다.

하지만 펑사장의 계획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쯔윈은 뤼대감이 아이를 빼앗아가자 뤼대감의 첩이 되어 떠난다. 그런 얼마 후 우룽은 그녀의 동생 츠윈을 협박강간, 남편이 되어 대홍기 쌀집을 차지해 버린다.

물질에 대한 욕심만 끝없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 악담과 저주만 쏟아지는 곳, 근친상간과 음모, 복수(살인)만 꿈꿀 수 있는 곳…. 수많은 낮과 밤에 향긋한 쌀 냄새와 비릿한 욕정의 냄새가 뒤엉켜 진동하는 대홍기 쌀집에서 태어난 우룽의 아이들은 훗날 서로를 죽이려고 혈안이 된다.

처음부터 대홍기 쌀집에 가족의 정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때문에 우룽의 아이들도 오직 내 것을 챙기려고 형제끼리 숱하게 싸우고 죽일 기회만 노릴 뿐이다. 우룽과 츠윈이 자식들에게 늘 보여준 모습대로. 원하는 대로.

1930년. 우룽과 츠윈에게는 세 아이가 있고 큰 아들 미셩은 10살이다. 하지만 우룽에게 자식들은 창고에 가득 넘쳐나는 쌀보다 하찮은 존재들일뿐. 어느 날 자기의 잘못을 고자질했다며 미셩이 여동생을 죽이자 우룽은 미셩의 다리를 분질러 평생 절름발이로 만든다.

이 정도가 이 소설의 배경이자 반절에 해당하는 대략의 줄거리다. 이후의 이야기는 악담과 저주, 복수 속에 태어난 우룽의 두 아들과 두 며느리, 쯔윈이 낳은 아들이 어떤 고리로 서로를 파멸시켜 가는지를 숨 막히도록 치열하고 생생하게 들려준다.

<쌀>은 생존에 관한 소설이다. 먹기 위해,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팔고 운명을 내던져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쑤퉁은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필치로 인간의 본능과 뼛속 깊은 절망감을 보여준다. 시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이, 또는 우리가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정말 남다르지 않을까. 이 책의 내용을 먼 옛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고 우리의 삶과 대입시켜 읽는다면, 더 깊은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김은신 (옮긴이)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

<쌀>을 읽는 내내 우울했다. 그리고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러면서도 쉽게 놓지 못하고 계속 빠져들었다. 위험을 느끼면서 쉽게 놓지 못하고 늪에 빠져들 듯. 저자 쑤퉁은 생생한 인물 묘사와 적나라한 상황설정으로 우리가 부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을 너무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사실 너무나 슬픈 인간들의 이야기다).

쑤퉁의 소설은 아쉽게도 이번이 처음이다. <쌀>이란 제목을 보면서 <쌀>은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다. 쌀 한 줌 때문에 모든 삶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던 <감자>(김동인)에 나오는 복녀도 떠올랐다. 죽음보다 무섭다는 보릿고개에 멀건 나물죽만 먹어 얼굴이 누렇게 뜬 사람들과 송기를 너무 먹어 피똥을 쌌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 아닐까 싶었다.

역시 그랬다. 쑤퉁은 <쌀>하나로 "밥만 먹여 달라!"며 애원하던 순박한 주인공이 삶의 속임수를 배우고, 마침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우습게 짓밟고 부를 축적하는 과정, 즉 순수한 인간이 물질에 눈이 멀어 악한이 되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고 비열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쌀 하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

하지만 작가는 어쩌면 평범할지도 모르는 이 뻔한 소재로 '아름다운 함정'을 파두었다. 첫눈에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한번 읽기시작하면 쉽게 놓지 못하는 그런.

<쌀>은 쑤퉁을 대표하는 장편소설중 하나로 <이혼지침서>와 함께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 <쌀>은 출간 당시 성악설(性惡說)의 화두를 던졌고, 이 소설을 영화화 한 <대홍기 쌀집>은 '인간본성의 추악함을 드러내고 직접적인 성애묘사를 담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7년간 상영금지 처분을 받는 등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대홍기 쌀집'이 있는 와장가는 문명화된 도시를 상징하고 쌀은 돈을 상징한다. 우룽이 홍수로 모든 것을 잃은 펑양수는 치열한 세상에서 살기위해 우룽이 잃어버린 순수한 본성. 죽는 순간 누구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고향이다. 하지만 우룽은 고향에 닿지 못하고 죽는다.

우룽은 쌀 때문에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버렸다. 그 대신 그가 얻은 것은? 그렇다면 우리에게 쌀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가? 인간 본성은 악에 가까울까? 선에 가까울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가? …책을 읽는 동안 묻고 물었다.

"야한 통속극과 참혹한 비극 사이를 오가는 작품. 이 열정적인 소설에서 쑤퉁은 사람들 사이의 배신과 음모, 근친상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작품의 배경인 쌀집은 문명을 상징하고, 빈번하게 등장하는 성적 묘사는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소설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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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사랑 2007-01-19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군요, 그렇지만 리뷰는 참 잘 읽히게 쓰세요~^^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 시에서 배우는 삶과 사랑
천양희 지음 / 샘터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에 떨리는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바람이 분다...살아봐야 겠다"던 발레리의 시 한구절이 떠로른다. 나는 이 구절을 너무 좋아해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일수록 잔잔한 날보다 바람 부는 날이 더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중략) 바람개비가 바람의 힘으로 돌아가듯이 나도 바람의 힘으로 신명을 얻고 시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바람은 바람(風)이면서 바람(願)이다.-249페이지 바람이 분다,살아봐야겠다 편에서.

바람을 좋아한다는 시인의 고백을 듣는다,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바람을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바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때문에 바람이 부는 날이면 집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나선다고.

스페인의 타레가가 정원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알함브라의 궁전>을 작곡했던 것처럼 시인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바람부는 날><바람을 맞다>란 시를 적었노라고 고백한다.

나도 시인처럼 바람을 좋아한다. 시인처럼 바람속에서 살아갈 힘을 더 얻기 때문이다. 바람이 모질면 모질수록 좋다. 너무나 모질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만큼 바람이 심한 거리를 걸을 때면 눈에서는 설핏 눈물이 솟고 그럴 때면 어떻게든지 살아내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바람부는 세상에 대한 오기가 솟고 바람이 많은 내 삶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시인처럼 바람이 부는 날이면 때로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바람속으로 들어가 나도 모르게 삼켜버린 것들을 재채기 하듯 토해낸다.

<천양희의 시의 숲울 거닐다>는 요즘 며칠간 내가 빠져 본 시인들의 시를 통한 삶과 사랑의 세계였다. 황량한 삶의 바람속에 서있던 터라 위로가 되는 귀절마다 밑줄을 긋게 되었다. 그리하여 훗날 바람이 거새다는 것도 잊을 만큼 거친 바람속에서 헤매기만 할 때 위안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은 시인들과 많은 시를 만났다.시인이 소개하는 시들은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인들의 삶과 사랑, 때로는 시의 주제가 되고 때로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때로는 희망이나 절망의 이유가 되는 시인들의 많은 일화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아름다움을 헤아릴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잘견하는 것...자기가 태어나기전보다 세상을 조근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랄프 왈도 에머슨 <무엇이 성공인가>

이제까지 성공은 내가 우선 풍성하고 편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때문에 내 눈앞에 나의 것이라고 정해진 것들을 가져다 놓기에만 전전긍긍했던 것 같다. 때문에 나의 삶의 벌판에는 이토록 모진 바람이 늘 불고 있는지 모른다.

며칠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오늘 밤도 겨울바람이 불고 바람은 문틈으로 스며들어 삶의 무게로 시리기만한 어깨를 더욱 시리게 한다. 바람이 분다,,,하지만 더욱 모질게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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