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장 신정희 - 흙과 불, 그리고 혼
신정희.이웅환 지음 / 북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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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잠든 시각, 몸빼 안주머니에 차고 있던 돈주머니에 차고 있던 돈을 꺼내기로 했다. 우녁장사 밑천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더 급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돈주머니 끈을 아예 가위로 잘라내고 주머니째로 들고 집을 튀쳐 나갔다. 밤 11시의 캄캄한 밤길이었지만 어둠이 문제가 아니었다."-책 속에서

사기장 신정희 선생(2007년 6월 18일 별세)의 자서전 <흙과 불 그리고 혼-사기장 신정희>(북인출판사)에서 처음 만난 부분이자, 책을 모두 읽고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번, 이렇게 몇 번을 읽어 보았던 '장모님, 지금도 못난 사위 놈을 미워하세요?' 소제목의 글 한 구절이다.

"사기장의 길은 내 운명이고, 종교다!"

몇 번을 읽었던 구절의 정황은 이렇다. 또래들이 공부를 할 때 산으로 들로 일을 하러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무리의 학생들에 둘러 싸여 있는 '백자부'의 시인 교사 김상옥(1920~2004년)을 멀찍이서 만나게 된다. 1949년 어느 날이었다.

"이게 바로 고려청자 쪼가리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담겨 있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이 바로 이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김 선생은 그 청자 파편을 개울물로 깨끗이 씻고는 그 조각을 종이에 싸가지고 호주머니에 고이 집어넣었다.-책 속에서


우리 그릇과 이렇게 만나게 된다. 지천에 널려 있어서 귀찮도록 발에 채이던 사금파리들이 이제 더 이상 하찮은 존재가 아니었다. 사금파리를 모으면서 우리 도자기에 눈이 조금씩 뜨이고, 우리 도자기를 찾아 전국을 누비면서 우리 사발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속에는 500여 년 전에 맥이 끊겨버린 황도사발도 있었다.

묻혀버린 조선사발을 재현해내리라는 열정과 집념만으로 가마를 만들고 아무에게도 배운 적조차 없는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다. 문제는 돈이었다. 공사판 등에서 일을 하며 돈을 마련하기도 하였지만 늘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도 반드시 재현해야만 하는 그릇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돈을 융통해보려고 집에 들른 어느 날, 행상에 지쳐 잠든 아내의 돈주머니를 잘라내고 만 것이다. 책 속에서 사기장 신정희 옹은 부인에게 속죄하고 있었다. 부인의 눈물겨운 고생과 희생이 있어 재현된 조선의 사발, 황도사발이라는 표현도 맞겠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손에 땀이 난다. 그야말로 별놈의 짓을 다 했다. 그만큼 우리 사발을 재현해 보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탓이리라. 그 누구도 이런 나의 열정을 꺾을 수가 없었다. 사기장의 길은 내 운명이고, 종교다. 또 깨달음의 길이었다. 내가 사기장의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사실 나는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도, 오직 옛 사발을 재현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던 것이다. 운명 같은 도자기와의 만남에 후회는 없다. 지금도 흙을 만지면 포근하고,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책 속에서

몇 번을 읽었던 '장모님, 지금도 못난 사위 놈을 미워하세요?'는 이렇게 끝난다. 책 속에는 우리 그릇 재현에 일생을 바친 한 장인의 많은 부분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가장으로서 돌보지 못한 가족에 대한 속죄의 마음이 묻어나는 이 부분을 난 제일 좋아한다. 이 부분부터 읽었기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사실 마음이 울컥할 때가 많았다.

"우리 옛 사발은 해질녘 다정히 걸어가는 노부부의 멋"

우리의 옛 사발, 조선의 사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토록 번성하였던 우리의 옛사발들이 어떻게 왜 묻히고 만 걸까? 옛 사발 재현의 의미는 무엇이고 그 가치는?

조선시대, 고려청자와 동질 흙으로 빚은 다음 얇게 백토를 덧입히고 다시 그 위에 다양한 기법으로 무늬를 넣어 환원번조나 산화번조하는 다양한 분청사기가 시도된다.

고려 상감청자를 이은 상감 분청사기, 귀얄이란 도구로 백토를 성글게 혹은 곱게 입힌 귀얄 분청, 흑색에 가까운 철사 안료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은 철화 분청사기, 도장을 찍듯 일련의 무늬를 새긴 인화문 분청사기, 백토를 입히고 선각하거나 선각한 부분만을 남기고 긁어내는 조화와 박지 분청사기, 백토 물에 아예 덤벙 빠뜨려 백토를 입힌 덤벙 분청사기.

이처럼 다양한 분청사기가 시도되어 조선백자와 함께 활짝 꽃을 피울 때 임진왜란이 터지고 만다. 혹자들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지칭할 만큼 우리의 많은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가고 가마는 파괴되었으며, 우리의 분청사기는 까마득하게 묻히고 만다.

반면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 각 지역마다 배치하여 다양한 도자기 굽기를 시도한 일본에선 우리의 도공들에 의한 도자기 문화가 활짝 꽃피게 된다. 18세기, 조선 왕실에서는 왕실의례에서마저 수입 자기들을 쓰게 되면서 분청사기는 더더욱 묻히고 만다. 이렇게 묻힌 조선 사발들. 일본이 우리의 도자기를 질투하여 깔아뭉개버린 이름 막사발.

역사의 굴곡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묻혀버림이었든, 외래 문물을 선호하고 소중한 내 것을 도리어 하찮게 여겨 버린 몰지각에 의한 잊음이든, 임진왜란과 함께 안타깝게 맥이 끊겨버린 조선의 황도 사발을 재현해 낸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 사기장 신정희 옹이다.

도자기를 만든 적이 전혀 없는 순 초자가 묻혀버린 우리의 소중한 유산에 대한 일념만으로 재현(1968년)한 사발이요, 문화재 전문가들조차 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감정할 만큼, 그리하여 문화재 도굴범으로 몰릴 만큼 완벽하게 재현해 낸 황도사발이다. 일본인들이 '이도다완'이라 부르고 국보로 지정한, 만남 자체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는 그 그릇이다.

"나에게는 선생도 없었다. 선생이라고 하면 오륙백 년 전의 우리 사기장들이 내 선생이었다. 우리 사발과 우리 옛 그릇들은 그야말로 소박하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우리 민족성하고 같다. 우리 사발은 보이지 않는 멋과 맛을 간직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화려한 채색 도자기가 젊은 청춘 남녀라면, 우리 그릇은 해질녘 석양아래 다정하게 걸어가는 노부부의 맛과 멋을 지니고 있다. 완숙의 경지이며 더 이상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美)의 극치이다"-사기장 신정희

<흙과 불 그리고 혼-사기장 신정희>에는 도자기에 귀의한 사기장 신정희 선생의 이야기가 일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쿠와바라 시세이'의 풍성한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가마가 있는 마을을 '점촌'이라 부르고, 가마일을 하는 사람들을 '점놈'이라 부르며 홀대하던 1970년대, 사기장 신정희의 도자기 작업을 귀하게 여기며 렌즈에 담은 그 사진들이다. 풍성한 도자기 사진과 우리 그릇 이야기도, 아버지로부터 도자기 기술을 전수받은 장남 신한균씨의 아버지와 도자기 이야기도 읽는 맛이 꽤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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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1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여'는 구호로만 그치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네요.
그래도 이런 신념을 가진 분들의 집녑으로 복원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의 정신을 살리고 신념과 집념을 증명한 책이라 생각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