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 - 달동네 외과의사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
최충언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앞표지 안쪽 저자의 프로필이 눈에 우선 띈다. 저자는 부산 송도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달동네에 태어나 그 골목을 누비며 자라 의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1학년 때,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7년 징역을 선고 받는다. 이때, 출생신고를 늦게 한 덕을 본다. 간발의 날짜 차이로 교도소가 아닌 김천 소년교도소에 수감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것이다.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그는 수감 중에 천주교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는다. 이때 그는 다짐한다. '가난하여 돈이 없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의사로 살리라!'고.

의대를 졸업, 의사가 됐다. 1997년 IMF.그가 과장으로 근무하는 병원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쳤다. 외과의사 관장 3명 중 1명은 잘려야 할 판. 그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스스로 그만둔다. 그런 그가 취직한 곳은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료진료 해주는 구호병원이다.

"죽디 살디 한번 해보자, 할배!"

머리가 유난히 희끗희끗한(선천적으로) 저자에게 한 수녀님이 할배라 부른다. 허물없는 호칭이다. 책을 받아들고 목록에서 이 제목이 참 재미있어서 내용도 재미있을 줄 알고 먼저 찾아 읽었는데, 왠걸 마음 아픈 이야기였다.

18살 미혼모가 2주 앞당겨 출산한 아기가 정체불명의 커다란 혹을 가지고 태어난다. 너무 어린 생명, 수수의 칼을 들이대기 참 애처로운 그런 생명...수녀님은 저자에게 말한다. "죽디 살디 하느님 소관이다. 한번 해보자. 할배!"(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 소관이다. 우린 최선을 다하자.)

저자는 오후 1시에 수술시간을 잡는다. 하지만 그 아기는 수술 직전에 죽는다. 저자와 저자를 할배라고 부르는 수녀님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이 리뷰의 제목으로 내가 선택한 이말은 저자와 저자와 뜻이 같은 수녀님들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마음이 담겨 있는 그런 말인 것이다.

꽃다지 꽃 노랗습니다/산수유 개나리/낮은 민들레꽃 노랗습니다/지친 아내 얼굴도 노랗습니다/일 끊겨 넉 달/오늘도 새벽 로타리 허탕치고 돌아서는/노가다 이십 년/내 인생도 노랗습니다/말짱 황입니다 - 김해화 '노란 봄'

'가난은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배부른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일 것이다. 나누고 나누면 못할 일도 아닐 것인데 힘없는 민중들의 삶은 고달프고 서럽기만 하다. 요한 씨의 겨울 나기를 지켜보면서 그의 어깨를 누르는 가난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웃으며 살아가야 하겠지? 목련이 봉오리를 터트리지는 않았지만 봄이다. 요한 씨의 봄이 '말짱 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책속에서

1941년생 요한씨가 항문병과 함께 앓고 있는 병은 협심증, 신부전증 외에 양쪽 고관절 대퇴골이 썩어 들어가는 '대퇴골 두무혈성 괴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 병은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 지나친 음주가 원인인 경우가 많단다.

고관절에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하면 되련만 치료비가 수 백 만원. 돈이 없는 요한씨는 임시방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그러니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치료는커녕, 끼니까지 걱정할 판이다. 이 때문에 다른 병까지 생겨난다. 아프지만 치료할 수 있는 돈이 없어 죽음으로까지 이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전형이다.

"과장님, 입원 좀 해야겠십니뎌."
"왜요? 항문이 또 곪았습니까?"
"똥구멍도 우리하니 아프고, 도대체 허기가 져서 못 살겠다 아입니꺼!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춥기도 춥고 배가 고파 친구 집에 가서 남아있던 밥과 김치를 마구 퍼먹어도 배가 고파서…."

항문 검사를 해보니 수술했던 곳이 다시 발그스레해져 있었고 살짝 눌렀더니 조금 아파했다. 통원치료를 해도 괜찮을 듯했지만 추운 날씨에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움막 같은 집에서 혼자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니 차마 통원치료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원하십시다. 요한씨." 

이런 경우는 얼마간 사회 입원이다. 굳이 병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다른 까닭으로 입원을 결정하는 경우였다. 주방 수녀님에게 밥을 꼭꼭 눌러 담아 달라고 부탁도 했다. 고관절만 이상이 없다면 다시 수술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수술 뒤 똥이 새는 가장 나쁜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말이다. -책속에서

눈이 귀한 부산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2006년 어느 날, 저자는 퇴근 길에 47일간 입원했다가 퇴원, 얼마전에 통원 치료를 온 요한씨의 까칠한 얼글을 떠올리며 안타까워 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요한씨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견뎌내야만 하는 참혹한 겨울이다.

책은 이처럼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아픈 사연들로 계속된다. 차라리 모르고 있으면 좋겠다 싶을만큼 너무 아픈 사연들. 그나마 다헹인 것은 저자나 저자가 일하는 구호 병원 수녀님들, 구호병원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어쨌건 책을 읽는 동안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아프고 참혹한 사연과 헌신적인 봉사에 자꾸자꾸 울컥울컥해진다.

책속에는 영등포 쪽방촌에서 평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다 얼마전에 타계한, 우리 사회 의사와 성직자들에게 귀감으로 살았던 '쪽방촌의 슈바이처 선우경식 원장님'이나 가난한 나라 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태석 신부 등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의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부디 꼭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 이런 의사 참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많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참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많다. 이 책 자체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나왔거니와 이렇다할 홍보가 힘든 가난한 출판사에서 나왔다. 또한 이 책의 수익금은 무료진료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 치료비로 쓰인다니 말이다.

저자는 8년간 근무한 구호병원을 그만두고 현재는 부산의 가장 가난한 달동네에 후배와 함께 남부민의원을 운영 중이다. 구호병원이나 가난한 아이들의 공부방인 우리두리 공부방,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무료진료소) 도로시의 집 등과 5분 10분거리인 곳.(저자가 모두 봉사를 하는 곳이다)

구호병원에는 저자가 담당하던 외과의사가 여전히 없다. 저자가 일주일에 공식적으로 2회, 일요일이나 퇴근 후 틈틈이 그들을 진료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후배와 함께 운영하는 남부민의원은 부산의 가장 가난한 달동네에 위치, 저자와 공동 운영자 후배는  오늘도 3000원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는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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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2008-10-05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주전에 부산에 출장갔다가 방송에서 뵌 분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책좀 사보려고 검색하는 중에 리뷰를 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