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의학, 과학을 초대하다 1
다나카 마치 지음, 이동희 옮김, 정해관 감수 / 전나무숲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 즉 가장 강한 독은 무엇일까?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의 저자 '다나카 마치'는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 중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보툴리누스균을 손꼽는다. 독성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치사율이 높다는 뜻이다.
 
보툴리누스균의 독성은 LD50=0.0005㎎/㎏으로 표시되는데 이때의 LD50은 반수치사량이다. 체중 50㎏의 사람이 보툴리누스톡신 0.0005㎎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다. 흙 속에서 살고 있는 파상풍균도 LD50=0.0005㎎/㎏으로 독성이 치명적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극물 살인에 자주 쓰인 투구꽃의 독성은 LD50=0.3㎎/㎏, 위험성이 비교적 많이 알려진 청산가리는 LD50=10㎎/㎏이다.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5500명의 피해자와 11명의 사망자를 낸 사린가스가 LD50=0.35㎎/㎏ 정도이고 보면 이 보툴리누스균이 대단한 독성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토록 강한 독성의 보툴리누스균을 현대인들이(경우에 따라)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안전하고 위생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서 말이다.
 
"보툴리누스(botulinus)란 라틴어로 '소시지'라는 뜻으로, 서양에서 보툴리누스균은 이름 그대로 햄이나 소시지에 의해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독소는 이론상 1그램으로 1000만 명을 죽일 수 있으며,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소 중에서 단연 으뜸을 자랑한다. 독성의 강도는 청산가리의 20만 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 책 속에서
 
보툴리누스균은 산소가 없는 상태를 좋아하는 혐기성 세균으로 레토르트 식품이나 통조림 등, 밀폐된 가공식품에서 발생하여 식중독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여타의 식중독들처럼 구토를 동반한 위장장애로 시작, 시력 장애와 전신마비 등의 증상과 함께 사망을 초래한다.
 
산소가 있는 경우엔 아포로 존재하다가, 산소가 없어지면 증식을 하기도 한다. 보툴리누스균 아포가 있는 고기가 가공되어 밀봉되는 순간 보툴리누스균은 증식을 시작하여 슈퍼 등에 진열되어 구매자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을 먹어줄 희생자(?)를 위해 자라고 있다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1984년에 일본 규수에서 가공된 연근겨자무침을 먹은 사람 중 36명이 이 보툴리누스 식중독에 걸려 그중 11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연근겨자무침을 진공 팩에 담아 밀봉했기 때문에 빚어진 참극이었다.
 
흔히, 연근겨자무침처럼 소독하여 가공한 진공 팩 제품이나 가열하여 밀봉한 레토르트 식품 등과 같은 가공 식품은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진공 팩 제품=멸균 제품'이란 믿음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인데, 일본에서 발생한 이 대형 식중독사고는 이런 잘못된 믿음을 버리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비약하여, 더욱 쉽고 더욱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향한 가공식품의 끔찍한 역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할까?
 
그런데 이토록 끔직한 보툴리누스균의 위험은 가공 식품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벌꿀 등에 존재할 가능성이 다분한 보툴리누스 아포를 통해 영유아에게만 특이하게 발생하는 '유아 보툴리누스증(infant botulism)'이란 것도 있기 때문이다.
 
독과 약은 하나? 독을 알면 약이 보인다?
 
하지만, 목숨까지 앗아가는 이 끔찍한 보툴리누스균이 요즘에는 일부 사람들과 성형외과로부터 선호되고 있다. 아름다움을 가꾸는 마법의 약이요, 세월을 거슬러 젊음까지 되돌려 준다는 '보톡스'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중략)보툴리누스 독소로 만든 '보톡스'라는 약품이 눈주름이나 미세한 주름을 없애는 데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톡스는 환부에 주사하면 표정근의 움직임을 억제해 주름을 없애는 효과가 있다...(중략) 보톡스의 원리는 간단하다. 주름을 없애고 싶은 부위에 보툴리누스 독소를 주사하면 주변의 신경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이 분비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표정근으로 가던 신호 전달이 차단돼 웃어도 주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밖에도 눈 밑 주름을 느슨하게 만들어 눈을 크게 하거나,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할 때도 보툴리누스 독소를 이용한다." - 책 속에서
 
이쯤 되면 위험하고 해롭다고 알려진 독과, 안전하고 이로운 것으로 맹신하기도 하는 약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보툴리누스와 보톡스뿐이랴. 이 책에서는 이처럼 사용자와 환경 등에 따라 약이 되는가 하면 독이 되는, 야누스적인 독과 약의 실체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의 저자 다나카 마치는 독의 종류별 특성과 다양한 실체를 조목조목 흥미롭게 들려준다. 다루고 있는 독(이야기)들이 추리물 등에서 독극물 살해와 관련하여 만나던 것들이 아닌, 슈퍼마켓 등의 식품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툴리누스나 0-157처럼 최근에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들, 식물이나 동물을 통하여 늘 우리 곁에서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라 읽는 내내 긴장하였다. 
 
마지막 장 '독살사건 수첩'은 세기적인 독극물 살인 사건 모음이다.
 
자신의 부모, 형제 등을 비롯하여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독극물로 살해한, 희대의 살인범 브랭발리에 후작부인, 악명 높은 탈륨 독살범 그레이엄 영, 투구꽃 살인사건, 감기약 살인 사건 등을 추리물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독과 약을 주제로 한 의학과 과학의 흥미로운 접목'이라고 표현하면 어떨까? 용어 자체만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 지식들과 우리 몸에 적용되는 의학적인 원리와 지식들을 쉽게 알 수 있는 그런 책이었으니 말이다.
 
다나카 마치의 <약이 되는 독, 독이 되는 독>! 그동안 끊임없이 궁금해 하였으나 명쾌하게 알지 못했던 독과 약에 대한 궁금증들을 맘껏 풀면서 읽었다.
 
책을 통해, 위생적이고 안전하다는 믿음과 함께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거니와 편하고 싶어 이따금씩 구매하기도 했던 가공식품이나 소시지, 햄 등이 내 아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기를 감추고 있었다는 가능성 앞에 아득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책속 내용을 몇개만 더 소개하면....▲사실은 산소도 원래는 독이었다? ▲우리가 즐겨먹는 야채에도 독은 얼마든지 들어있다? ▲아이들이 피망을 싫어하는 이유는 피망의 독 때문이다? ▲독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독이다? ▲복어는 왜 자기 독에 중독되지 않을까? ▲전갈이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조개의 독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담배 한 갑은 성인의 니코틴 치사량이다? ▲다이옥신은 인류에게 위협적인 존재일까? ▲코카의 중독성과 코카콜라의 상관관계는? ▲마약은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 걸까? ▲해독제는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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