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좀 들어 주세요 속 깊은 그림책 3
윤영선 지음, 전금하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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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혓바닥 말고 다른 걸 그려보는 것은 어떠니?"
선생님이 말해요.
쉿! 내 꿈은 요리사예요.
혀에 대해 아는 게 나에겐 가장 중요해요. - 본문 외골수 이야기


혀만 그리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에게 선생님과 엄마는 혀만 그리지 말고 꽃이나 나무, 구름과 산, 가족들의 얼굴을 그리라고 한다. 그래도 아이는 계속 혀만 그리고 또 그렸다.

요리사가 꿈인 아이는 맛을 보든지,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으려면 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여러 사람의 혀가 정말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쓴맛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혀를 그리면 쓴맛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단맛이 나는 사탕을 좋아하는 내 혀에서는 꿀물이 뚝뚝 떨어질지도 몰라. 엄마의 젖을 빠는 동생의 혀에는 엄마의 마음이 묻어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혀는 참 신기하단 말이야. 그 많은 맛들을 어떻게 다 기억해낼까?'

요리사가 꿈인 아이에게는 예쁜 꽃에 팔랑거리는 나비도, 두둥실 떠다니는 양털 구름도, 밝게 웃고 있는 엄마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동생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얼른 자라 요리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온갖 맛있는 것을 맛볼 수 있는 혀만 생각날 뿐.

하지만 혀만 그리는 아이 옆을 지나면서 어른들은 한마디 툭! 던진다. 이유도 안 들어 보고.

"맨 날 혀만 그리니? 다른 것 좀 그려봐!... 다른 것은 그리지 못하니?"

그래도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자 어른들은 아이를 고집이 세다고 말한다. 외골수라고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어른들의 생각이고 기준일 뿐.

이때 마음을 열고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가 그리고 있는 혀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비슷해 보이거나 같아 보이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아이의 생각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외돌토리, 장난이 너무 심해 또래들에게 따돌림 받는 심술꾸러기, 엄마 품을 벗어나지 못하는 응석받이, 늘 대장이 되고 싶어 우쭐거리는 아이, 툭하면 울음부터 터트리는 울보, 무엇이든 해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는 아이, 무엇이든 따라하고 일을 벌이는 괴짜, 엉뚱한 놀이만 하는 공상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어수선한 극성쟁이, 굼뜨고 느린 아이, 편식 하는 아이...

이처럼 나머지 주인공들은 어른들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꾸짖고 염려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지금 내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고 지난 날 나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보호자라는 생각에 가르치려고만 하고, 어른이 되면서 어느 새 까맣게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심술꾸러기는 단지 친구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아 장난을 칠뿐이라고 말한다. 응석받이는 친구들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라서 엄마 옆에만 있는 거라며 노는 법을 알려달라고 말한다. 싸움꾼으로 소문난 아이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면서 싸움은 무조건 나쁜 것이냐? 고 묻기도 한다. 또 다른 아이들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책 속에는 외톨이, 응석받이, 심술꾸러기, 울보, 싸움꾼, 산만한 아이 등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롯이 반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에 너무 서툴러서 미처 배우지 못했고 잘 몰라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감정표현도, 말하는 것도 서툰 아이들의 속사정과 진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어른들을 향하여 외롭게.

<내말 좀 들어 주세요>는 짧지만 가슴에 콕콕 와 닿는 글과, 글에 어울리는 그림이 저마다 한편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이야기는 18편.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짤막한 글로 표현했는데, 몇 줄 안 되는 글들은 그림과 어울려 메시지가 강하다.

버릇없다고, 편식한다고, 툭하면 동생을 때린다고, 부산스럽다고 혼내기만 했던 아이들을 무조건 혼내기보다 나름의 이유를 한번 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아이들은 훨씬 근사한 이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잘 하고 얌전하기를 바라는 부모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의 꿈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했던 나의 버릇과 가벼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또 잘하는 것만 눈에 띄게 칭찬하지 말고 못하는 것, 좋지 않은 점도 속사정을 들어보면 용기와 힘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이 책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에 대해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점에서 4~7세로 기준을 잡은 책이지만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좀 느리면 어때요. 오래 걸려서 그렇지 원하는 곳은 다 갈 수 있어요."
"친구들은 내가 자기들보다 굼뜨다고 나를 끼워주지 않아요. 조금만 기다려 주면 나도 잘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화가 나거나, 무엇이 잘 안될 때 나는 눈물이 나요. 울지 않고 또박 또박 말하기란 나에게 정말 어려워요."
"내 말을 들어 주어 고마워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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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여름 2008-03-15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혀만 그리는 아이에 대한 글을 읽으니, 정말 그 아이가 그런 생각을 했을 거 같아요~^^
다른 사람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거, 어렵지만 의외로 재미있을 수도 있겠네요. 다른 사람의 말에도, 행동에도 더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필터 2008-03-16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혀만 그리는 아이...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