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영화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소설만 전설이다

 

-무려 반백년도 전에 나온 원작 <나는 전설이다(1954)>는 슬슬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걸작 장르소설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리메이크된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평범한 헐리우드 좀비-액션물이다. 슬프게도 리처드 매드슨보다 윌 스미스가 더 유명하기 때문에 나는 주연 덕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원작에까지 누명(?)을 씌우는 경우를 수차례 목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작품은 그 출발점과 초기 설정을 제외하면 아예 다른 작품이다. 단순히 작품의 질 문제를 떠나서 이 둘을 원작-영화화 사이로 묶기조차 부적절하다. 

가장 큰 차이는 원작 소설의 적들은 뱀파이어, 영화에서는 좀비라는 점이다. 단순한 설정 차이처럼 보이지만 작품 전체의 색깔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뱀파이어들은 어느정도의 지능이 있고 말도 할 수 있어서 매일밤 주인공 네빌의 집 앞에 장사진을 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방구석에 혼자 처박힌 그를 비웃는다. 네빌을 소리쳐 부르는 자는 한때 그의 친구였던, 지금은 흡혈귀인 남자다. 네빌은 매일밤 공황상태에 빠진다. 낮에는 혼자라서 외롭고, 밤에는 그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함께 모여 그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외롭다. 그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는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커뮤니티에서 축출당한 왕따다.

낮에는 그가 흡혈귀를, 밤에는 흡혈귀들이 그를 사냥한다. 불리한 쪽은 네빌이며 전세는 꾸준히 기운다. 그는 점점 커지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다. 영원히 혼자 남을 것이라는 두려움. 사실은 혼자 남은 자신이야말로 괴물이 아닌가라는 되물음. 엔딩에 다다르면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며, 동시에 이 한물 간(?) 공포 소설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된다. 세상 어떤 괴물도 유행 따라 퇴락하고 생멸하지만, 이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고독은 아직까지도 굳건히 사람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 자신, 그것도 홀로 남은 나 자신이다. 

영화에서 이런 딜레마는 깨끗이 세탁되어 있다. 좀비들은 지능이 (거의) 없는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네빌과 좀비들의 관계는 '고독한 사냥꾼과 소떼들의 싸움'과 진배없다. 네빌은 고민하지 않는다. 좀비들의 열등한 지능으로 인해 그의 인간성은 보장된다. 그러니 영화 속 네빌의 외로움은 그저 독수공방의 슬픔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 시시껄렁한 엔딩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영화 엔딩은 두 가지가 공개되었는데 도토리 키재기다). 그래도 장점을 찾자면... 초반부의 황량한 도시 풍경을 보는 재미는 있다.

아, 그리고 개 얘기를 해야 한다. 원작에도 개가 나오고 영화에도 개가 나온다. 원작의 개 이야기가 훨씬 슬프다. ㅠㅜ

 

-외국소설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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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외국소설/예술MD 2011-03-17 21:16   좋아요 0 | URL
네 오메가맨이 더 낫죠. 그렇지만 오메가맨 역시 원작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게 중평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탠다드 B급 영화랄까요. 요거는 누군가 다시 원작만큼 해 줘야!

stella.K 2011-03-1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고, 영화에선 나름 고독이 표현이 안 된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고독 보단 혼자 버려진 황량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나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원작에서 말씀 하시는 고독을 어떻게 다뤘는지 궁금하군요.
하긴 그런 얘기는 들었습니다. 영화가 원작을 가리웠다는.
그래도 영화는 고독을 말하려 하기 보단 허리우드식 영웅주의를 여지없이 깔았다는 느낌이들더군요.
홀로 남겨져도 폼생이다 이거지? 하는.

외국소설/예술MD 2011-03-18 16:52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독수공방의 슬픔이라고 표현.. 아 그건 그냥 여자가 없어서라고 읽힐 수도 있겠군요.;

원작을 읽어보시면 제목이 얼마나 멋지게 적용되는지를 잘 알 수 있는데요, 영화에서도 제목을 의미심장하게 쓰려고 했나 봅니다만, '나는 영웅이다' 정도가 더 맞는 제목 같습니다. 님이 짱입니다 같은거죠. 원작은 그 반대입니다. 그냥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와도 싸워야 하거든요. 여러모로 고생 많이 한 사람한테 정이 더 가는 게 인지상정인가봅니다.;
 

원작 vs 영화

원작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스티븐 킹) 

영화 - 쇼생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걸작 콤비  

 

-93년, 원작이 국내에 처음 출간되었을 때 소설가 장정일은 그의 독서일기에서 '이게 심심풀이로 쓴 소설이면 죽어라 노력하는 다른 소설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영화 사이트 IMDB에서 독자투표 1위를 달리고 있다. 과연 이 콤비는 원작-영화 콤비계의 엄친아 1순위다. (참고. 심심풀이로 쓴 소설이란 말은 스티븐 킹이 직접 한 얘기다. 쇼생크 탈출이 포함된 네 개의 중편을 모아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고, 킹은 이 중편들은 원래 각 장편들을 집필하는 사이에 그냥 재미로 쓴 거라고 말했다)

둘다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빼어난 (교도소 탈출)드라마다. 사실 여기서 소개가 끝나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 원작과 영화를 한 자리에 놓고 보면 특이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호흡, 혹은 분위기다. 두 작품을 모두 접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원작과 영화가 상당히 닮아 있다고 말한다. 세세한 설정에 차이가 있음에도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오페라를 트는 앤디'가 원작에는 없다) 두 작품은 거의 같은 정서를 공유한다. 이 닮음은 스토리가 비슷한 것만으로는 느낄 수 없다. 분위기다. 소설의 문장이나 전개가 나아가는 속도와 무게감을 영화의 연출이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각색에서부터 쇼트의 길이와 카메라 앵글, 배우들의 캐릭터까지 거의 모든 변수가 작용한다. 특히 각색이 중요하다. 일례로 원작에서 교도소장은 (현실적으로) 여러 번 바뀌지만, 영화에서는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교도소장을 단 한 명으로 끌고 간다. 그래야 원작의 무게감과 같은 입지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작의 설정을 자신에 맞게 바꾸어야만 원작의 무게와 속도를 공유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어렵고, 거의 본능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원작과 영화가 각각 걸작인 경우는 많지만, 그 둘이 같은 호흡을 느끼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쇼생크 탈출> 이후 스티븐 킹이 프랭크 다라본트에게 자기 작품의 영화화를 맡기다시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열 번 넘게 보았다. 영화가 끝나가고 레드의 나레이션이 펼쳐지는 순간, 'I wish...'로 시작하는 그 시 같은 혼잣말이 들려오면 소설의 마지막 장이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이렇게 원작과 영화가 멋지게 닮아 있는 경우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쉽게 만나기 힘든 아름다운 한 쌍이다.  

-외국소설MD 최원호 

  

 

p.s: 오늘부터 한 달 동안(근무일 기준;) 영화와 원작에 대한 짤막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연재 도서들은 영화 원작소설 이벤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영화 티켓 보관 수첩을 드립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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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시내 2011-03-18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네요. 건필하세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3-18 11:41   좋아요 0 | URL
열심히 하겠습니다. ^^;
 

Histoire(s) du cinéma...의 엽서들

(장 뤽 고다르, Video, 1997-1998)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은 특별한 영화입니다. 영화에 관한 영화. 굳이 분류하자면 이미지의 충돌과 공격적인 텍스트 삽입으로 만들어진 비디오 아트에 더 가깝죠. 그의 후기작은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아서 '미디어 아티스트' 고다르를 잘 떠올리지 못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작품으로 국내에 DVD가 출시된 <아워 뮤직>을 권해 드립니다. VHS 특유의 공격적인 원색과 과격한 편집으로 빛나는 초반부는 넋놓고 보기 좋죠. 물론 이 계열에 익숙치 않은 분들께는, 좀,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영화의 역사(들)>은 고다르가 '찍은' 영화가 아니라 고다르가 재편집한 '영화들'이므로, 이 엽서(사이즈의 이미지들)의 주인공은 고다르가 아니라 여기로 불려온 '장면들'입니다. 본래의 맥락에서 분리되어 겹쳐지고 분열하고 텍스트의 배경으로 전락하는 장면들. 현대미술 전시회에서나 팔 것 같은 이 엽서들은 그 장면들의 흔적입니다. 캡쳐죠. 맥락에서 완전히 분리시킨 광어회 같은 겁니다. 그러니 그냥 맛보시면 됩니다. 이게 원래 무엇인지, 무슨 장면인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 영화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아래 이미지들은 다음 주에 시작될 예술 분야 이벤트의 증정품,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 엽서 세트의 일부입니다.
한 세트는 총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올해 예술분야에서는 다양한 분야, 다양한 종류의 엽서를 제작할 계획에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마음에 드는 위치에 두고 볼 수 있는 것만큼 예술 분야다운(?) 증정품이 없다는 결론에서죠. 단 하나의 이미지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끌어서 곁에 두게 된다면 그건 저의 큰 보람이자 기쁨이 되겠습니다. 좋아해주신다면 저도 행복해질 것 같아요(부끄럽). 다음 세트도 이미 준비중입니다.;


이 엽서 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는 고다르 엽서 제작에 힘써주신 이모션픽처스, 그리고 그 자회사(?) 이모션북스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는 좋은 책을 내 주신 데 대한 것도 포함됩니다. 이 모든 기획이 바로 저 책, <고다르 x 고다르>가 나옴으로써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럼 다음 주에 이벤트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행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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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1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데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2-17 19:20   좋아요 0 | URL
레알!

스티그마 2011-02-1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엽서를 꼭 받아보고 싶습니다 행운의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됩니다 ^^

외국소설/예술MD 2011-02-21 17: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만족하실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_+

shyu99 2011-05-05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구입해도 엽서 받아볼수 있나요?
정말 멋지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5-06 16:57   좋아요 0 | URL
아..지금은 다 소진되었습니다. 시즌 한정이라서요. ^^;

미우 2011-06-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모에요.... 엽서이벤트는 지난 이벤트라고 첨부터 쓰여있던가 해야죠. 저는 책어제 주문하고 왜 엽서가 없나.. 한참 찾았어요. 아 속상해 정말

외국소설/예술MD 2011-06-08 23:34   좋아요 0 | URL
네 죄송합니다; 종료 표시하겠습니다. 추가로 사무실에 재고 있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11-06-1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엽서세트 꼭 필요한데요. 받고 싶어요. 꼭요 ㅜ.ㅜ

외국소설/예술MD 2011-06-21 11:09   좋아요 0 | URL
아 떨어졌어요..;;
 

  그를 데려갔다. 흐린 날의 바닷가에. 영화 속에 그를 잃어버리고, 버리고 왔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쳐다보라고, 그리고 잊으라고, 앞으로 조금 걸어가고, 그리고 다시 잊으라고. 그리고 바람 속 새와, 유리 속 바다, 담 속 유리. 문득 그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몰랐다. 어떻게 더 걸어가야 할지를, 어떻게 더 바라봐야 할지를. 그래서 나는 자꾸만 더 앞으로 가라고, 그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것은 가능하다고 애원했다. 그는 거기 도달했다. 그는 더욱 나아갔다. 그는 바다를, 길 잃은 개를, 바람 속 새를, 유리를, 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바로 그때 필름이 떨어졌다. 암전. 1981년 6월 14일 저녁 7시의 일이다. 나는 사랑했구나, 하고 깨달았다.






양혜규, <셋을 위한 목소리>에서 발췌한 영화 '대서양의 남자'의 나레이션.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 영화의 각본, 연출, 그리고 저기 쓰여진 말들을 소리내는 목소리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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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 인터뷰.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라는 것.


저자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만큼, 그 분들은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금이 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그 사람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런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공통점, 혹은 자녀를 두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의 공통점이겠죠. 집 나와 산 지 10년을 맞이한 담당MD는 그 '모든 부모님들'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이금이 작가의 '보편적 개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MD 최원호





-소희의 방


알라딘: 우선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금이: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웃음) 작가는 작품으로 인사를 드려야겠죠. 1년에 두 권 정도를 내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쓰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번에 쓰신 <소희의 방>은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속편 격입니다. 속편을 쓴 게 처음은 아니신데요.

이금이: 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이 있어요.

알라딘: 청소년 소설에서 속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속편을 쓰겠다고 특별히 마음먹었던 적은 없어요. 제가 쓰고 싶다고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요. 독자들이 10년 가까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뒷 얘기가 궁금하다고 편지를 써 주었는데도 그동안 쓰지 못했어요. 그 이야기가 저를 당기지 않으면 저는 쓸 수가 없어요. 저를 포함한 누구도 그걸 쓰겠다, 써 달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거죠. 그래서 원래 속편을 염두에 둔다거나 하지 않아요. 굳이 이유를 두자면... <너도 하늘말나리야> 같은 경우에는 약간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리고 결국엔 저역시도 '아 더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나중에 든 생각이고,

어느날 강연회를 마치고 오는데, <소희의 방>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나서 보니 소희가 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소희의 말들을 따라다니면서 그걸 기록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작품을 1년 만에 썼거든요. 제가 장편을 이렇게 일찍 써낸 경우가 없어요.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할까

알라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소재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보다 어두운 소재들을 사용하시는데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현실이...그렇잖아요(쓴웃음).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대상이 그러니만큼 어두운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청소년 소설의 경우에는 좀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하는데, 글과 현실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잖아요. 제가 쓴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들어요. 왜 이렇게 모범적인 애들만 나오느냐고도 하고(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드린 건 08년에 발표하신 단편집 <벼랑> 이후로 더욱 어두운 소재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도 무척 미묘한 결말을 맺으셨고요. 어떤 계기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금이: 벼랑(웃음). 그거 쓸 때 저도 한참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웃음). 우리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을 때였어요. 평범한 길을 가지 않기로 한 큰아이, 작은아이 생각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죠. <벼랑>에도 그런 '다른 길'을 선택한 아이들이 나오죠. 제 자신이 바로 그 현장에 있었어요. 그래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얘기를 하지 못했어요. 소설 속의 아이들, 등장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거죠. 그게 우리 아이들이었고 저였으니까.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를 쓸 때는 예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알라딘: 그렇게 노력하신 이유는...?

이금이: 글쎄요. 원래부터 의도를 가질 수는 없어요. 만약 의도를 갖고 시작했다고 해도 쓰다보면 원래 의도와도 달라지니까요.대신 저는 '이 작가는 우리 현실을 어른 입장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쓴 것 같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요.

알라딘: 방금 말씀하신 게 일종의 작가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금이: 작가관...이라고 하면 이해와 소통이랄까? 사실 제 글들은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비극적인 결말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독자로서도 그래요. 비극으로 종결된 책을 읽고 나서 '그래서 어떡하라구?" 라는 생각이 들면 힘들어요. 실제 현실이 그렇죠. 답이 없고... 그건 저도 아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알게 될 것들이잖아요. 청소년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에게 미리부터 세상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알라딘: 그렇다면 <벼랑> 이후에 다소 어두워진 느낌은 어떤 일관된 변화는 아닌 거군요?

이금이: 제가 특히 초기에 비판을 받았던 게, 전체적으로 너무 낙관적이라는 거였어요. 제 성격이 원래 갈등을 싫어해요. 실제로도 막 따지고 해야 할 상황이라도 그냥 '아 됐어' 하고 말아요. 작품에서도 그런 성격들이 드러나죠. 등장인물들이 다 자식 같은데 거기다가 어떻게 막 쏘아붙이겠어요. 못했어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이게 내 작품들의 공통된 약점이 아닌가 해서 노력한 점은 있어요. '문학적'인 노력이죠(웃음). 저는 이야기가 딱 짜여진 게 실제 삶에서도 가능한 걸까 생각을 해요. 생각하다 보면 완전하게 짜여진 플롯과 마무리를 써도 되느냐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게 고민이 돼요.

알라딘: 2006년에 알라딘과 인터뷰를 하셨을 때,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성과는 있으셨는지(웃음).

이금이: (웃음) 제 스스로는 간간히 들어간다고 봐요. 나름(웃음) 구현하고 있어요. 독자분들이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알라딘: 본격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쓰실 생각도 있나요?

이금이: 그건 안되겠어요(웃음). 전체적으로 그렇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알라딘: 얼마전 하셨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어린이들에게 한마디를 요청받은 적이 있으셨죠.

이금이: 네, 오디오북 이야기가 나오면서요.

알라딘: 그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 직접적으로 나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기는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이금이:
장애를 실제로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세계를 결코 알 수 없는데...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생각하다가 마음의 눈이라는 얘길 하긴 했는데...(한숨) 실제로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그런 얘길 진심으로 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삶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글을 쓸 때도 간접 경험이 필요해요. 꼭 내가 겪은 일들이 아니라도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가끔은 소설에서는 모든 걸 이해하는데 실제로는 못하는 엄마라는 얘기도 들어요(웃음). 아마 아이들의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노력하는 엄마,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엄마가 되려고 해요. 청소년 소설까지 쓰면서 그런 엄마라니(웃음). 그런데 우리는 그 시기(청소년기)를 지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과 어른이 대립할 때면 어른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지내본 사람들은 그래도 아니까요. 아직 아이들은 어른이 어떤 건지 모르잖아요.

알라딘: 그럼 그 소통에 대한 생각들이 실제로 자녀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나요?

이금이: 큰 아이는 무던한데... 둘째는 그렇지 않아요(웃음). 이제 다 컸잖아요. 떠나보낸다고 생각해요. 욕심을 가지면 안돼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욕심... 저를 이해해주기보다는 나중에 자기들도 애를 낳아서(웃음) 그 아이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걸 겪으면서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라도 '엄마 마음을 알겠다'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잠시 침묵. 엄마 생각함) 그런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을 쓰실 생각은 없으세요?

이금이: 저는 픽션이 좋아요(웃음). 논픽션으로 쓸 소재가 생겨도 그걸 가지고 픽션을 쓰는게 재미있어요. 그냥 논픽션을 쓰기에는 아까워요(웃음). 그리고 소설 외에 다른 글을 쓰기가 참 힘들기도 해요. 심사평 몇 줄 쓰는 것도 정말 힘들어요(웃음).

알라딘: 지금까지 말씀하신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꾸로 현실에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피엔딩을 선호하시는 건, 희망 같은 걸까요 아니면 그리 되어야 한다는 당위 같은 걸까요.

이금이: 기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는 그 댓가를 얻어야 기분이 좋아요. 등장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어떤 이상적인 세계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글 속에서라도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좋아요.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 중에 굳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고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에도 이런 모습들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끔. 롤 모델을 삼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제시하고 싶어요. 다만 그게 문학적으로 얼마나 개연성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알라딘: 이제 막바지입니다(웃음). 독자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이 있으시다면.

이금이:
추천을 잘 못해요(웃음).

알라딘: 그럼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이금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파우스트>예요. 청소년들은 재미가 없을텐데(웃음). 저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어요. 정확하진 않은데 '놀기에는 너무 젊었고 소망하기엔 너무 늙었다*' 같은 문장이 있어요. 대단한 문장이죠. 처음에 다소 지루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참고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 고전을 많이 읽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건 작가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더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에요. 고전이, 살아가면서 앞에서 이끌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읽었더라면.

(*민음사판 파우스트에서는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틴 문학을 좋아해요.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요. 이사벨 아옌데 같은 작가들.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자신을 극복하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멋져요.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강렬한 주인공들이죠. 그런 게 좋아요.

알라딘: 마지막으로 이 흉흉한 시대에(웃음) 독자분들께 안부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금이: 요즘 사회 분위기가 참...(웃음).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잘 못 쓰겠어요. 연평도 문제라거나, 이런저런 문제들 앞에서 일상의 기쁨을 얘기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지도 모르잖아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위안도 받고...

...미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달려 있어요. 현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알라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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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k7529 2011-01-06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좋아하는 작가분입니다... 외국에 있어서 새 작품 소식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네요. 한동안 <너도 하늘말나리야>와 "소희"라는 이름을 잊고 지냈는데, 이 인터뷰가 그 기억들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서울로 올라간 소희가 어떻게 지낼지.. 보고 싶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1-01-21 09:41   좋아요 0 | URL
네, 시리즈는 역시 좋아하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는 맛이 최고죠. 소희를 다시 만나보시면 아마 좀더 컸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2011-01-06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