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원작 -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영화 - 나는 전설이다 (프란시스 로렌스)
소설만 전설이다
-무려 반백년도 전에 나온 원작 <나는 전설이다(1954)>는 슬슬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걸작 장르소설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리메이크된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평범한 헐리우드 좀비-액션물이다. 슬프게도 리처드 매드슨보다 윌 스미스가 더 유명하기 때문에 나는 주연 덕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원작에까지 누명(?)을 씌우는 경우를 수차례 목격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두 작품은 그 출발점과 초기 설정을 제외하면 아예 다른 작품이다. 단순히 작품의 질 문제를 떠나서 이 둘을 원작-영화화 사이로 묶기조차 부적절하다.
가장 큰 차이는 원작 소설의 적들은 뱀파이어, 영화에서는 좀비라는 점이다. 단순한 설정 차이처럼 보이지만 작품 전체의 색깔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뱀파이어들은 어느정도의 지능이 있고 말도 할 수 있어서 매일밤 주인공 네빌의 집 앞에 장사진을 치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방구석에 혼자 처박힌 그를 비웃는다. 네빌을 소리쳐 부르는 자는 한때 그의 친구였던, 지금은 흡혈귀인 남자다. 네빌은 매일밤 공황상태에 빠진다. 낮에는 혼자라서 외롭고, 밤에는 그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함께 모여 그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외롭다. 그는 완전히 고립되었다. 그는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커뮤니티에서 축출당한 왕따다.
낮에는 그가 흡혈귀를, 밤에는 흡혈귀들이 그를 사냥한다. 불리한 쪽은 네빌이며 전세는 꾸준히 기운다. 그는 점점 커지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다. 영원히 혼자 남을 것이라는 두려움. 사실은 혼자 남은 자신이야말로 괴물이 아닌가라는 되물음. 엔딩에 다다르면 이 소설의 제목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며, 동시에 이 한물 간(?) 공포 소설이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된다. 세상 어떤 괴물도 유행 따라 퇴락하고 생멸하지만, 이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고독은 아직까지도 굳건히 사람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나 자신, 그것도 홀로 남은 나 자신이다.
영화에서 이런 딜레마는 깨끗이 세탁되어 있다. 좀비들은 지능이 (거의) 없는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네빌과 좀비들의 관계는 '고독한 사냥꾼과 소떼들의 싸움'과 진배없다. 네빌은 고민하지 않는다. 좀비들의 열등한 지능으로 인해 그의 인간성은 보장된다. 그러니 영화 속 네빌의 외로움은 그저 독수공방의 슬픔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 시시껄렁한 엔딩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영화 엔딩은 두 가지가 공개되었는데 도토리 키재기다). 그래도 장점을 찾자면... 초반부의 황량한 도시 풍경을 보는 재미는 있다.
아, 그리고 개 얘기를 해야 한다. 원작에도 개가 나오고 영화에도 개가 나온다. 원작의 개 이야기가 훨씬 슬프다. ㅠㅜ
-외국소설MD 최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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