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약 500매 분량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화제인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입니다.

출판사에도 번역 관련 문의가 여러 차례 왔다고 하네요. 어떻게 바뀌었길래 그렇게 많은 분량이 추가가 되었느냐는 거죠.

 

해서,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드리기 위해 출판사에서 원고 일부를 미리 받아 공개합니다.

 

비교 대상이 될 기존 번역 부분은 출판사와의 논의 끝에 여기에는 게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번역 여부를 가장 궁금해하실, 기존 번역본을 소장 중인 분들께서 우선 판단을 내려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공개되는 부분은 총 세 파트이며, 혹시 모를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스토리 진행 상 매우 중요한 부분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다소나마 궁금증이 풀리셨길 바랍니다. ^^

 

 

 

 

 

 

 

1.
(문학동네판 64~66쪽)

“최근 여기에 세키네 쇼코라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까?”
청년이 눈동자를 굴리며 기억을 더듬는 표정을 지었다.
“세키네 씨요?”
“네. 이름 한자는 1장, 2장 할 때의 장章에다, 그 뭐냐, 삼수변을 거꾸로 한 것 같은 부수가 붙은 겁니다만.”
“아하, 후지와라 쇼시의 쇼彰 말이죠?”
어느새 통화가 끝났는지 여자 사무원이 말했다.
“후지와라 미치나가의 딸이자 이치조 천황의 왕비였던 쇼시.”
“더 모르겠는데요.” 청년이 혼마에게 미소를 지었다. 혼마가 허공에 글씨를 써보였다.
“맞아요, 그거예요.” 여자 사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쇼시라는 사람은 무라사키 시키부(*겐지 이야기의 작가-옮긴이 주)가 모셨던 왕비였던가요?”
혼마가 묻자 그녀는 미소를 머금었다.
“네, 맞아요.”
청년은 점점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더니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지 커다란 서류첩을 펼쳤다.
혼마도 고전에는 매우 약했지만, 예전에 지즈코가 문화센터에서 ‘겐지 이야기 읽기’라는 강좌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한동안 툭하면 그 얘기를 듣곤 했다.
“경쟁자인 데이시라는 왕비 곁에서는 세이 쇼나곤(*헤이안 시대의 여성 작가-옮긴이 주)이 시중을 들었죠? 당시 조정에 시대를 대표하는 두 재녀才女가 있었잖습니까.”
“그랬죠. 나중에 데이시의 생가인 나카노칸파쿠 가문이 허망하게 몰락해버려서 두 재녀의 처지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스스로도 별걸 다 기억한다 싶어 놀랐다. 지즈코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건성으로 대답하기만 했는데.
그 기억을 떠올리자 무심코 웃음이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본론으로 돌아갔다.
“사진이 있습니다.”
주머니에서 세키네 쇼코의 이력서를 꺼내 사진만 보이도록 접어서 내밀었다. 다시 흥미가 생겼는지 청년이 일어서서 책상을 돌아 나왔다.
“……낯선 얼굴인데요. 최근에 왔던 사람들은 대체로 기억하는데.”
“저도 보여주세요.” 여자 사무원이 말했다. 청년이 혼마에게 이력서를 받아들더니 접은 상태 그대로 들고 가서 보여주었다.
“딱 봐선 모르겠네요. 우리 의뢰인이었던 분인가요?”
“오 년 전쯤에 미조구치 선생님에게 개인파산 수속을 의뢰했습니다.”
“오 년 전이면 제가 없었을 때군요.”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이력서를 돌려주었다. 이번에야말로 자기가 더이상 쓸모없겠다는 표정으로 의자로 돌아갔다. 여자 사무원이 책상에 양 팔꿈치를 짚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 사무실에 들어오는 의뢰의 90퍼센트 정도가 그런 일이라 내용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이름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이니 이렇다 할 반응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혼마는 이력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쇼코, 쇼코라…… 흐음, 분명히 들어본 것 같은데……”
“보나마나 그때도 이치조 천황이 어쩌니저쩌니 했겠죠?”
청년이 놀리자 여자 사무원이 웃었다.
“그랬겠지. 드문 이름이잖아. 보통은 그냥 평범하게 아키코라고 읽지 않겠어?”
심각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덧니 있던 그 사람인가?”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건 쇼코가 최근에 이곳을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변호사에게 의지하지는 않았다는 건가.
그때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혼마 씨인가요? 이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순간적으로 엉거주춤 일어서며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자, 정확히 눈높이가 일치하며 시선이 마주쳤다. 노인이 서 있었다.

 

 

2.
(문학동네판 82~85쪽)

그리고 지금, 혼마는 가즈야와 함께 그의 약혼녀가 살던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집의 공기는 혼마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냉랭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짧은 복도 왼쪽이 화장실과 욕실. 오른쪽이 조그만 부엌이었다. 벽 쪽에 냉장고와 그릇장과 전자레인지 받침대가 있고, 간신히 한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스테인리스 싱크대는 얼룩 한 점 없이 반들반들하게 닦여 있고 만져보니 손가락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개수대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맥주 캔이 보였지만, 그것은 분명 가즈야가 지난번에 다녀갔을 때 던져놓은 것일 테다. 그 외에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도 나지 않고 전체적으로 매우 청결한 느낌이었다.
바깥바람 때문인지 환풍기 날개가 천천히 두 바퀴 돌고 멈췄다. 날개가 반짝거렸다. 혼마는 부엌에서 나왔다.
거실 역시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넓이는 다다미 여덟 장쯤 될까. 가로로 긴 직사각형 공간이고, 오른쪽 안쪽에 침대가 놓여 있다. 베개 위까지 커버를 끌어올려서 정돈해놓았다. 침대 헤드보드 부분은 작은 선반처럼 되어 있는데 거기에 둥근 갓을 씌운 스탠드와 문고본 두 권이 놓여 있었다. 『북미 나 홀로 여행』과 『최신 유럽 쇼핑 정보』. 두 권 다 기행물이지만 내용은 대조적인 듯했다. 표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심히 읽은 티가 나는 책은 『북미 나 홀로 여행』이었다.
침대 바로 옆에 원기둥 모양의 쓰레기통이 창 쪽으로 놓여 있었다. 이것도 안이 깨끗하게 비었다.
방에 본래 설치된 붙박이장 외에는 조금 큰 의류용 서랍장 하나와 조립식 책꽂이. 바퀴 달린 작은 서랍장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무선 전화기가 올려져 있었다. 바닥에는 카펫이(감촉으로 보아 소재는 면 혼방이다) 깔려 있고, 둥근 원목 탁자와 그와 쌍을 이루는 의자 두 개도 보였다. 탁자 밑에는 옥수수 껍질로 짠 커다란 바구니가 있고, 그 안에 뜨다 만 스웨터와 뜨개바늘이 꽂힌 털실 뭉치 몇 개가 들어 있었다. 혼마가 그것을 손에 들자 가즈야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주려고 뜬다고 했어요. 다음 달에 스키장에 갈 예정이었거든요.”
“스키를 갖고 있었나?”
가즈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베란다 다용도실에 있습니다.”
창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보니, 원래는 물건을 놔두면 안 되는 옆집과의 경계면에 통신판매 카탈로그 등에서 흔히 보이는 로커형 수납장이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새 스키와 스키 부츠가 든 커다란 케이스가 있었다. 양쪽 다 먼지막이 비닐 커버를 씌우고 셀로판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스키를 언제부터 탔지?”
어깨 너머로 묻자 가즈야가 곧바로 대답했다.
“재작년부터예요. 저랑 사귀고 나서 탔으니까. 저는 학생 때부터 탔지만.”
“그녀가 스키 도구를 갖춘 시기는?”
“그것도 재작년이죠. 처음에는 스키복만 샀고, 작년 여름과 겨울 보너스로 스키와 부츠도 마저 구입했어요. 같이 사러 가서 분명히 기억해요.”
그러고 나서 무척이나 중요한 얘기를 하는 표정으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쇼코는 늘 현금으로 물건을 샀어요. 가게에서 할부를 권해도.”
혼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개인파산한 사람은 네가 알고 있는 ‘세키네 쇼코’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키에는 ‘로시뇰’, 부츠에는 ‘살로몬’이라는 상표명이 보였다.
“이건 스키 용품 중에서 비싼 편인가?”
가즈야가 부츠 케이스를 살짝 만지며 말했다.
“그렇게 고급은 아니에요. 특히 조금 지난 모델들은 저렴한 편이고요. 새 모델도 한꺼번에 다 갖추긴 힘들지 몰라도 하나씩 사면 별로 부담되지 않죠. 초보자에게는 적당한 브랜드일 겁니다. 스키복은 ‘크레송’이었던가?”
그녀는 분에 넘치는 사치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부츠 케이스를 치워보니 뚜껑에 ‘가정용 공구세트’라고 적힌 상자가 한쪽 구석에 세워져 있고, 그 옆에 걸레로 꽁꽁 싸매둔 작은 병 하나가 있는 게 보였다. 손에 들기만 해도 코끝을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뭘까요?”
가즈야가 들여다보며 물었다.
“가솔린이야.” 혼마는 대답하고서 병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고작 오 분 정도 밖에 있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손끝이 곱았다. 베란다는 이웃한 맨션의 벽 쪽으로 나 있고, 사생활 보호 차원인지 칸막이 위에 가리개용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채광이 몹시 나쁠  것 같았다.
“빨래는 어떻게 했을까?”
베란다에는 조그만 건조대 하나 보이지 않았다.
“빨래방을 이용했어요.” 가즈야가 대답했다. “이 집에는 세탁기를 둘 공간이 없습니다. 빨래를 말릴 만한 곳도 없고, 게다가 1층이라 속옷을 널기 꺼려진다고 했어요.”
실내로 들어온 혼마는 의자를 꺼내 앉았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구도 커튼도 별다른 고급 제품이 아니다. 다만 서랍장만은 푸조나무로 만든 듯한, 값이 꽤 나가는 물건 같았다. 오래 쓸 물건이니 좋은 걸로 마련하고 싶어 큰맘 먹고 산 건지도 모른다.
“여기 월세가 얼마쯤 하는지 아나?”
몸통 부분이 완성된 스웨터를 펼쳐놓고 바라보던 가즈야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혼마가 다시 똑같은 질문을 했다.
“아, 네…… 육만 엔이 좀 넘는다고 했습니다.”
“싸군.”
좁고 햇볕도 잘 안 들고 경비실도 없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도쿄 도내인데다 아직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건물이다.
“땅주인이 상속세 대책으로 지은 건물인가 봅니다. 이익이 너무 나도 곤란하겠죠. 쇼코는 이런 집을 찾아내는 게 특기라면서 은근히 자랑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가즈야는 의아해하는 눈길을 던졌다.
“그런 건 왜 물어보시죠?”
혼마는 서랍장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조금 전에는 몰랐는데 살짝 비껴 서서 보니 정면 손잡이 옆에 덧칠한 흔적 같은 큰 얼룩이 보였다. 아마도 저것 때문에 가격이 깎였을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은 매우 합리적인 쇼핑을 할 줄 아는 여자였던 모양이다.

 

 

3.
(문학동네판 195~200쪽)

구리사카 가즈야가 이 이야기를 하러 집으로 찾아온 것이 월요일이다. 오늘은 금요일이니 이제 고작 나흘째다. 그런 단기간에 부상당한 무릎이 극적으로 회복될 리 없으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력의 문제다 싶었다.
재활치료는 일주일에 두 번으로 정해져 있다. 원칙상으로는 월요일과 금요일이니 오늘은 무단으로 빠지는 셈이지만, 다리 상태를 고려하면 그다지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딘가 미덥지 않은 프로그램에 따라 물리치료사에게 시달리는 것보다는 이렇게 돌아다니는 쪽이 훨씬 회복이 빠를지도 모른다고 열심히 자기정당화를 하는 스스로에게 쓴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또 전화해서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재활이라지만 병원에서 하는 건 아니다. 경찰병원에서 퇴원한 후 기능회복 트레이닝을 받는 게 어떻겠냐며 지인이 추천해준 스포츠클럽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립병원 몇 군데와 제휴를 맺어서 의사와 직접 연락을 취하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해준다고 했다.
공립 사립을 막론하고, 도쿄 도내나 근교 의료기관은 하나같이 인력 부족과 자금 부족, 그리고 설비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고민의 마지막 원인은 당연히 가파른 땅값 상승이다. 부지를 넓혀 건물을 증축하고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려면 억 단위의 돈이 날아간다.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맨 먼저 포기해야 하는 재활시설 등은 외부 기관에 위탁하거나 제휴하는 추세인 모양이다.
혼마의 담당자는 올해 서른다섯 살이 된 오사카 출신의 여자 트레이너였다. 전국 규모 지점망을 가진 외식산업에 종사하던 남자와 삼 년 전 결혼했고, 남편의 전근 때문에 도쿄로 왔다. 인상도 좋고 소탈했지만 혼마가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낑낑거리고 있자면 카운터에 한쪽 손을 짚고 매정한 표정으로, “참말로 못 쓰겄네. 도쿄 남자는 이리 근성이 없다니까” 하는 밉살스러운 말을 툭툭 던지곤 했다.
뭐든 꿀꺽 삼켜서 곧바로 동화시켜버리는 도쿄라는 도시에 들어와도, 간사이 사람만은 신기하게 타고난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간사이 사투리에도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말끝이 이른바 ‘표준어’로 바뀌어도 억양만은 절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금세 간사이 출신임이 드러난다. 그리고 혼마는 그런 면에 일말의 동경을 품기도 했다. 자기는 도쿄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완전한 도쿄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출신의 근거로 삼을 만큼 강렬한 ‘고향’의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호쿠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가의 셋째아들로 태어난 혼마의 아버지는 스무 살 때 일자리와 먹을거리를 찾아 종전 직후의 도쿄로 나와서 경찰관이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도쿄로 나오고 싶어서 경찰관이 된 것이다. 당시 도쿄는 혹독한 식량 사정 때문에 지방에서 이주 오는 것을 제한했지만, 경찰관이 되겠다고 하면 무조건 옮겨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렇다 할 확고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회 정의를 위해 열의를 다해 일한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일, 하루하루의 생활을 위해 경찰관이 되었다.
그럴 수도 있었겠다고 혼마는 생각했다. 그 당시 일본인은 그때까지 굳게 믿어왔던 대의를 잃고, 끈 떨어진 목각인형처럼 그저 망연히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나온 음식 접시를 받아드는 것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선뜻 새로운 대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일을 시작했을 당시의 심경을 그대로 연장시킨 듯 지극히 담담하게 경찰관 인생을 보냈다. 마치 그런 아버지에게 감화된 양 혼마 역시 경찰관이 된 것을 어머니는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이런 것도 핏줄 때문인가?” 살짝 불길한 것이라도 대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자기가 고생하고 살아서 그런지, 며느리인 지즈코에게는 처음부터 이상하리만큼 동정적이었다.
“헤어지고 싶으면 망설일 것 없다. 사토루 키우면서 살아갈 정도의 위자료는 내가 대신 슌스케한테 받아서 줄 테니까”라고 당당하게 공언했고, 혼마는 그런 행동에 적잖이 분개했었다. 지즈코는 그럴 때마다 대개 그냥 웃어넘겼지만.
그런 부모님도, 지즈코도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세 사람은 모두 북쪽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고향이 같았고, 지즈코는 니가타의 폭설 지역 출신이었다. 그래서 혼마는 부모님 댁을 방문해서 잡담을 나누다가도 문득문득 자기 혼자 겉도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이중에서 ‘고향’의 기억이 없는…… 뿌리가 없는 사람은 나뿐이구나, 하고.
지즈코는 “당신은 도쿄 사람이잖아”라고 했지만 혼마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스스로를 도쿄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가정을 꾸린 지리상의 도쿄와, ‘도쿄 사람’ ‘도쿄 토박이’라는 말에 붙는 ‘도쿄’ 사이에는, 너무도 명백해서 정의할 필요조차 없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차이는 예를 들면 ‘삼대가 잇달아 살지 않고서는 에도(*도쿄의 옛 이름-옮긴이 주) 토박이라 할 수 없다’는 식의 천박한 구분법에서 비롯한 것은 아닐 게 분명했다.
그 사람이 ‘도쿄와 피가 이어져 있다’고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 전적으로 그 한 가지에 달린 일이다. 그리고 그때의 ‘도쿄’는 ‘고향으로서의 도쿄’ ‘인간을 낳아 키울 수 있었던 도쿄’다.
그러나 현재의 도쿄는 더이상 인간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토지가 아니다. 땅의 기운이 사라지고, 비도 내리지 않고, 경작할 괭이도 없는 척박한 황무지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대도시로서의 기능뿐이다.
그것은 자동차와 매우 흡사하다. 제아무리 고급 사양에 성능이 뛰어나다 해도 사람이 그 안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 자동차는 타고 다니며 편리하게 사용하고, 이따금 정비를 맡기고 세차를 해주고, 수명이 다 되거나 질리면 새것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그것뿐이다.
도쿄도 그와 마찬가지다. 어쩌다보니 이 도쿄라는 차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지닌 다른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있더라도 개성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사용하게 된 것뿐이지, 본래는 언제든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이다.
인간은 새것을 사서 대체할 수 있는 대상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새로 바꿀 수 있는 것을 고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도쿄에 있는 인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뿌리 없는 풀이며, 대부분은 부모, 혹은 그 부모의 부모가 가지고 있던 뿌리의 기억에 매달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뿌리의 대부분은 이미 힘을 잃었고, 이들을 부르는 고향의 소리도 이미 쉬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초 같은 인간이 늘어만 간다. 혼마는 자기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업무상 이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가 상대의 말 속에서, 어미에서, 억양에서, 어휘 선택에서 그 사람의 ‘고향’을 또렷하게 추측하게 만드는 부분이 느껴질 때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무리지어 놀다 어느새 해가 지고, 친구들은 하나둘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자기를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정신을 차려보니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어린애 같은 심정이었다.
저녁 여덟시 삼십분. ‘라하이나’의 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맞아준 스무 살가량의 아가씨는 말투에서 어렴풋하게 하카타 억양이 느껴졌다. 그렇다, 규슈도 흡인력이 강한 토지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서 일할 때 세키네 쇼코는 고향 우쓰노미야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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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트리스 2012-02-0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던 시아출판사 판과 비교하며 봤는데, 이런 식으로 분량이 늘어난 거라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아출판사 버전을 이미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개정판을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건 진행과는 무관한 부분에서 분량이 늘어나 있어 속도감은 오히려 떨어지는 듯 합니다. 물론 또 사서 읽고 싶다면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미미여사의 작품이라면 국내 출간작 거의 모두를 읽었고, 일본소설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개정판에서 늘어난 부분들은 적어도 개인적인 흥미를 유발시키거나 '새로운 감동/재미'를 줄만한 것은 아닌듯 싶군요. 다만 늘어난 부분들이 '원서'에도 언급되어 있는 내용들인지는 궁금합니다.

비로그인 2012-02-08 11: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마케팅팀입니다^^

당연히 원서에 있는 내용들을 모두 번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완역본'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원서에 없는 문장이나 내용을 창작하지도 않았고 첨가하지도 않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원문에 가장 가깝게 충실히 옮겼습니다.

소설을 번역하면서, 번역가가 보기에 스토리 진행상 별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 묘사나 인물 및 심리 묘사는 번역가가 알아서 모두 생략하고
번역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구판인 시아출판사 판본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가 쓴 소설 그대로'를 온전히 맛보기 원하시는 분이라면
'완역본'을 찾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미 여사가 괜히 분량을 늘리려고 "사건 진행과는 무관한 부분"을 썼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판에서 누락된 부분을 모두 되살리면 작품의 밀도나 깊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재미와 감동의 깊이가 다릅니다.
미미 여사의 깨알 같은 캐릭터 묘사법을 떠올리신다면 상상이 가실 듯합니다.


문학동네의 책소개를 발췌해서 남겨놓겠습니다^^

"기존 번역본에서 빠지거나 축약되었던 부분을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되살려낸 결과 원고지 500매 정도의 분량이 추가된 완역본으로,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인간적이고 세심한 필치, 치밀한 구성력을 한층 생생하게 맛볼 수 있다."

감사합니다.

리아트리스 2012-02-07 22:38   좋아요 0 | URL
처음 원고지 500매 분량이 추가되었다는 홍보 문구를 봤을 때 깜짝 놀랐죠. '화차'는 제가 읽은 미미여사 작품 빅3에 들 정도로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는데, 이전 작품에 없었던 500매 분량이 추가되어 '완역'이 나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그 대단한 '화차'가 500매가 빠진 것이었다니!!
저는 시아출판사 판에서 크게 누락된 어떤 '새로운 내용'이 이번 개정판에서 되살아나는줄 알았습니다. 때문에 출판사에 문의도 했구요. 공개된 부분만으로 속단하기엔 성급한 감도 있겠지만 출판사측 답변과 위의 개정판 일부를 본 느낌을 종합해보니 역시 '새로운 내용'의 추가는 없고, 다만 원문을 보다 더 정확히, 더 상세하게 풀어서 번역했을 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늘어난 500매 분량이 개인적인 기대치와 어긋난데에서 오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더군요.
아무튼 '화차'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니 개정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비로그인 2012-02-08 10:51   좋아요 0 | URL
독자분들의 문의가 많아 알라딘 MD님의 블로그에 일부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했습니다.

(스포일러 우려로 스토리 진행상 중요한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미미 여사의 소설 원문에 가장 충실하게 번역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셨다고 하시니,
'인물', '사건' 등 원고지 500매 분량이 그것들과 무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곧 출간될 <화차>, 많이 아껴주세요(__)

감사합니다!

whywhowhy 2012-02-0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2는 부가적인 부분이니 그렇다치고, 3 같은 경우는 시아판에선 아예 숭덩 빠져 있군요.
윗분 말처럼 줄거리 진행에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만(그래서 저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도 지금껏 시아판을 읽으면서 별로 이상한 점을 못 느꼈던 거겠죠) 원래는 없던 주인공 혼마의 개인적인 회상이나 과거 이야기가 나오니 캐릭터 이해에는 확실히 깊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부분이 더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하나, 시아판에는 '구리자카' 가즈야였는데 여기선 '구리사카'로 바로잡혀 있네요. 시아판 읽으면서 좀 거슬렸던 부분이라 고쳐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내용 진행과는 상관없는 부분이지만요 ㅎㅎ

루이 2012-02-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어 번역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흥미롭게 살펴보았습니다. 구판 번역은 좋게 말하자면 군더더기(?)를 걷어내 속도감을 살린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별 이유 없이 군데군데 가위질을 해서 독자의 읽을 권리를 침해한 셈이 되겠네요. 역자 판단으로 가독성을 위해 원문의 문장을 함축적으로 바꿀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문단별로 통째로 들어내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의도가 어땠든 불성실한 번역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니까요.
갠적으로 미미 여사의 소설은 이런 사소한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내는 데 진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물론 전체 스토리 전개와 메시지성도 중요하지만) 문학동네 쪽 번역에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VANITAS 2012-02-1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서는 완역을 기본으로 해야 맞는거죠..출판사로서는 당연히 마케팅에 활용하는게 맞는거고요. 하지만 완역본이라도 번역의 질이 떨어진다면 칼질당한 번역이랑 다를 바 없겠죠.

tsjif 2012-02-1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아출판사 정말 괘씸하네;;아니 그럼 평역이라고 명시하던가 책 앞 부분에 명시를 하던가. 판권 계약할때 축약한다는 말이 들어가긴 했을지..이거 국내에 발매되는 해외소설들중 이런 책들이 많을까봐 겁나네요.

초콜리토 2012-02-2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화가납니다. 전 그게 그냥 다 완역본인줄 알았어요. 책을 또 사서 읽어봐야하나요? -_-;;; 읽는 것은 좋지만, 왠지모르게 거짓덩어리의 책을 갖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들었어요.(물론 이건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요)
 

<다, 그림이다>의 공저자 손철주, 이주은 님을 만났습니다. 이상하게 재미있는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표현할까? 아, 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妙 하다!

 

정말 그런지 한번 확인해 보시죠.

 

-알라딘 최원호, 이승혜 MD

 

 

 

 

 

알라딘: 일반적인 질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 책의 포맷이 특이한데요, 두 분이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이 기획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포맷의 책이 나오게 되었는지요?


손철주(이하 손): 에디터와 이주은 교수의 사전공작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서 저는 포획됐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미 다 정해진 다음에 같이 하자는 말씀을 들으셨나요?

 

손: 우리를 엮은 것에 나는 포박당한 거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것은 삼자가 오래 머리를 맞대고 얘기를 나눴죠. 이런 꼴이 나오게 된 것은 합작의 결과입니다.

 

이주은(이하 이): 제가 작년에, 마종기 선생님하고 루시드폴이 쓴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편지 형식이 신선했어요. 저도 이런 식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의 출판사 담당자가 제 대학원 후배에요.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은데 파트너가 어떤 사람이 좋을까’ 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대뜸 손철주 교수님은 어떠냐. 손 교수님이 나랑 작업을 하시겠냐 (웃음) 그렇게만 얘기가 나오고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 어느날 손철주 선생님을 만날 일이 생겼어요. 같이 식사를 하는데 제가 한 번 여쭤봤어요. 같이 한 번 써보실래요? 그렇게만 말씀을 드리고 생각할 시간을 드렸어요. 선생님이 여행을 다녀오시고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셋이 합작이 시작이 됐습니다.


알라딘: 그러면 원고는 꼭지마다 왔다갔다하면서 쓰여진 건가요? 한 분이 먼저 쓰고 다른 분이 다음에?


이: 아니에요. 처음 계획을, 어떤 것들을 써야겠다 어느 정도 정하고 시작해야 될 것 같아서 저도 목차를 짜고 선생님도 목차를 짰어요. 합의를 하면서 진행이 됐습니다.


알라딘: 제시된 주제들이 주로 어둡지 않은, 무난한 소재들이 선택이 된 것 같습니다. 두 분이 같이 고르신 건가요? 단어들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손: 우리는, 거대한 담론을 거론할 만한 - 이 교수는 제외하고- 저한테는 그런 깜냥이 없어요. 


이: (웃음) 저도 없어요. 저도 일상적인 거 좋아해요.


손: 사소하지만 삶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 주제어가 무엇인가 하고 여러 개를 뽑았죠. 그 중에 어떤 것들이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만한 키워드인가 고민해보고 그래서 열 개 정도가 나왔습니다.


알라딘: 혹시 책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있었습니까?


손: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인데 그 질문 속에는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알라딘: 이 책을 읽다가 느낀 점이 있는데요, 이따가도 여쭤보겠지만 먼저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이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다수의 독자가 공감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기획과정에서 빠졌다거나 물려놓은 주제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손: 이 질문에 대해서는 허무한 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딱 하나가 있어요. ‘남녀의 시각’이에요. 출판사 담당자가 이거는 했던 말 또 하는 것 아니냐 하면서 가차없이 빼버렸어요. 아마 글이 신통치 않았겠지. (웃음)


알라딘: 실제로 본문까지 작성이 됐다가 편집과정에서 빠진 건가요?

 

손: 네, 그렇죠.

 

알라딘: 그 주제에 대해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 맨 처음에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 꼬집어 내기가 어렵더라고요. 각각의 입장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볼 때 내가 그 그림의 어느 부분에 교감하는가가 관건이 되지, 내가 여자라서, 남자라서 관점이 다른 건 아닌 것 같아요. 남녀 시각의 차이를 꼬집는다는 게 어려웠어요. 어렵다보니까 글이 문장을 장악하지 못해서 난해해졌나봅니다.

 

알라딘: 그 주제만 가지고 책이 한 권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맞아요. (웃음) 그리고 그 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제가 여자 대표자가 아니고, 손 교수님이 남자 대표자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남녀로 구분지을 수 없는 경험들이 있어요.
 

 

본격적으로

 

알라딘: 제가 이 책의 카피를 썼을 때 느낀 점입니다. 두 분의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른 점이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손철주 선생님은 그림을 먼저 보고 그 안의 형식이나 기법을 서술함으로써 이야기를 먼저 풀어나가세요. 이주은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떤 그림에서 시작된 영감이나 흥취를 포착한 뒤에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다른 예술 작품들로 옮겨갑니다. 단지 문장의 스타일이 아니라 구성 자체가 그런 식인데요, 손철주 선생님과 달리 안에서 파생해서 밖으로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이주은 선생님의 경우에는 이전 글에서 보여졌던, 외부로 확장되는 식의 글쓰기가 보다 심화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글이 대조적인 위치를 갖게 되었고요. 이것이 편집과정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잡아가는 전략적인 기획인지, 자연스럽게 합이 이렇게 맞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손: 저에 대한 지적은 100% 맞습니다. 저는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텍스트에서 찾습니다. 이번 책의 경우 텍스트는 제가 고른 그림이겠죠. 그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 이런 스타일은 과거에 기자였던 이력과 관련이 있을 거예요. 어떤 담론을 먼저 가지고 그 담론에 합당한 텍스트를 찾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반대로 텍스트를 먼저 고르는 편이예요. 일단 텍스트 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슨 뜻이냐면, 기자는 기사를 쓸 때 팩트 중심의 기사를 씁니다. 그 팩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글을 읽는 독자의 몫이에요. 저는 그렇게 글을 써 왔기 때문에 팩트, 텍스트 즉, 그림 그 자체가 저에겐 더 중요해요. 그 텍스트는 물론 제가 지향하는 키워드도 포함하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키워드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 견강부회를 잘 해야 돼요 (웃음).

저는 텍스트 안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포함되어 있는 가치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깊이 들어가면 미술 전문 서적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책에서) 결국 미술이라는 텍스트 속에서 삶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텍스트를 분석하면서도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삶의 컨텍스트로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에, 글을 어디까지 심화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늘 가지고 있었죠. 이 책을 쓸 때는.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이: 저는 서양미술 속에 있는 그림들을 제가 보는 방식으로 사람들한테 소개하는 것 같아요. 서양미술을 볼 때 다른 것들이 많이 끼어들어요. 그 그림을 볼 때. 이거 영화 속에서 본 것 같은데? 책 속에 나온 장면같은데? 이렇게요.
제가 보는 방식으로 소개하다보니까, 하나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패치워크식으로 하나의 그림에 도달하기 위해서 조각들을 잇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만드는 작업만 제가 하는 거예요. 연결고리를 잘 만들지 않으면 억지스럽지만 잘 만들면 자연스럽게 조각보 안에서 하나의 그림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 조각보 안에는 책도 있고,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어요. 그 조합 안에서 그림을 발견하고 ‘이게 이주은이 보는 방식이야’ 이렇게.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는 단서들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 일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런 식의 글쓰기를 <당신도 그림처럼>에서 시작했다가 이번에 더 본격화한 것 같아요.


알라딘: 소재를 이어붙이는 식의 글쓰기를  점점 심화시킨 거군요.

 

이: 네, 자기가 보는 방식으로 결국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에 에세이집을 몇 권 냈을 때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먼저 제 이야기를 했어요. 이제 제 얘기를 거의 다 하고 (웃음) 이제 제 얘기보다는 제가 본 것들, 모두가 봤을 만한 것들, 모두가 나눌 수 있는 주변에 있는 소재들을 끌어다 오면 더 공감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요.

 

알라딘: 친근한 소재를 가져와서 같이 공유하는 방식이군요.

 

이: 네, 같이 수다를 떠는 거죠. 이 그림 보면 뭐 생각나지 않니, 아 맞다맞다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저는 텍스트를 파고들기보다는 처음부터 컨텍스트에서 출발하는 방식입니다.

 

손: 이 교수가 중요한 얘기를 했어요.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언어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맞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에 왕분이라는 문인이 있는데 그 문인이 ‘일체경어개정어야 一切景語個情語也’라는 말을 했어요. 모든 경치를 말하는 언어는 모두 다 자신의 정을 드러내는 말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어떤 경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책의 경우에는 그림이죠- 그 이야기는 내 자신의 정서와 내 자신의 경험과 내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드러내는 언어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 글은 경치를 자연의 이치라든가 과학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에요. 감상이란 그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소재를 가지고 문학, 음악, 작곡을 하건,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다 제 정에 겨워서 우는 소리라는 얘기입니다. 감상이란 그런 겁니다.

비평도 마찬가지죠. 비평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층위가 있습니다. 어떤 비평이라도 텍스트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끔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평론가들은 그 텍스트를 통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 오류가 생깁니다. 경지를, 예술을 이야기하면서는 특히 그 오류는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과학적 언어와는 다른 것이죠.

 

알라딘: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여기에 대해 질문을 몇 가지 더 드리려고 했는데 결론이 나왔네요. 계단을 밟아가려고 생각했는데 본의 아니게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습니다.


손: 그것은 인터뷰를 위해서 질문을 짜는데... 아마 질문을 짜오셨을 겁니다.
내가 이렇게 물어보면 이 사람은 이런 답을 하고 다음의 내 질문은 이렇게 한다는 계획을 준비하지 않습니까. 생각대로는 절대 안됩니다. 저는 기자를 해봐서 압니다. 좋은 질문은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답이 따라오지는 않아요. 전후 순서가 바뀌고, 어떤 대답이 더 가치있는지의 등위가 헷갈리게 되요. 인터뷰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 혼란 중에서도, -우리 인터뷰와는 관계가 없는 얘기에요(웃음)- 억지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대답을 유도해서 내가 써야 할 글 쪽으로 몰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어요. 내 의도와는 다른 일탈된 언술들이 나왔을 때도 그 말의 줄거리를 잡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유능한 기자가 되는 겁니다. 다음에 던져야 할 질문이 대답하는 와중에 일치감치 나왔다고 해서 결코 절망하거나 질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때는 자기의 질문을 포기하고 그 사람의 말에서 단서를 잡아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게 좋은 겁니다.


알라딘: 저자 인터뷰를 여러 번 하다보면 느끼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글을 쓸 때도 개요대로 가지 않고 쓰다보면 처음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하는데, 인터뷰는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재미있기도 해요.


손: 그렇죠. 생각지도 않은 답이 나왔을 때, 내 글을 쓰는데 있어서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예요. 인생에서 대통이 있는 게 아니에요.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알라딘: 서른 하나입니다.


손: 김훈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정말 말 안들을 나이입니다(웃음). 그런데 내 말, 내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삶이잖아요. 누구도 자신의 말에게 삶이 복종하게끔 만들 수는 없어요.


알라딘: 많이 와 닿는 말씀입니다. (웃음)


이: 좀 이상한 인터뷴데요? (웃음)

 

 

 


 

인생, 묘, 하다

 

알라딘: (이주은 선생님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앞의 다른 책들에서 다 하셨다고 했는데, 독자 입장에서 느낀 바로는, 다루기는 했으나 비껴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그렇죠, 완전 노출시키면 안되죠. 제가 완전 소설가도 아니니까. (웃음) 분위기만 풍기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했어요.

 

알라딘: <당신도 그림처럼> 에서는 개인적인 경험의 비율이 줄었다가 이번 책에서는 다시 종종 등장하는데요, 유독 그런 부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주로 어두운 순간들이었는데요. 왜 그런 순간들이 주로 표출이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째서 어두운 순간만 글로 쓰여지는 걸까요?


이: 제 성격이 아마 그런가봐요. 기쁠 때는, 발산을 하면서 기뻐하는 거예요. 저는 제 인생이 기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쁠 때는 그걸 만끽하는데, 안 좋거나 좌절하거나 어둡거나하는 부분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죠. 글쎄요, 잘난 척, 약간의 엘리트 의식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어두운 면은 꾹꾹 누르는 거예요. 억압된 것이 그림자로 남는 거죠. 그러다가 어떤 그림을 봤을 때 그 위에 그림자가 덮이는 거예요. 어두운 기억들이 그림 위에 덮이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알라딘: 평소의 삶에서 의식적으로 누락시켰던 부분들이 그림 이야기를 할 때 나오는 거군요.

 

이: 네, 평소에는 잊고 있다가 올라오는 거죠.


알라딘: 선생님의 어두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지금까지 쓰신 책은 전체적으로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죠. 힘들지만 잘 살아봅시다하는 (웃음) 이런 류의 내용이 많았으니까요. 각종 교양서 중에서 생의 어두움을 이렇게 회복해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말하는 책은 많은데, 직접적으로 정면으로 바라보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책에서 자화상을 이야기한 글 같은 '직접적으로 어두운' 글을 써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 저는 어떤 것을 극복하자, 지금 이 단계가 힘드니까 다음 단계로 넘

어가자라는 입장은 아니에요. 힘든 것도 삶의 한 측면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제가 좋아하지 않는 건 극복의 신화들이에요. 저희 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살았고, 그걸 우리에게 알게모르게 강요했는지도 모르죠. 고통을 모른 척 피하는 건 비겁해요. 피하지 않고 보는 것. 지금 순간이 고통이었을지라도 괜찮다라는 입장. 왜냐하면 생이라는 건 그런 단계들이 얼룩져있는 것이니까요. 그게 근본적인, 삶에 대한 제 입장입니다.

 

알라딘: 이 주제와 관련해서 처음 질문 드렸을 때, 중심을 약간 비껴갔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질문을 드렸었죠. 그때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대답셨습니다. 만약 고통을 그대로 바라보자라고 생각을 하셨다면, 더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제가 성숙한 소설가 같은 사람이었다면 삶의 고통이나 내가 느낀 바를 폭로하듯이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 근본 입장은 필터를 끼고 보는 거예요. 그림이라는 필터처럼. 필터를 끼고 현실의 어떤 면들을 조금 미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몽환적으로. 전 그런 부분이 손 선생님과 맞는 면이라고 생각해요. 손 선생님에게도 약간 몽환적인 부분이 있어요.

 

손: 몽환을 쉬운 말로 번역하면 흐리멍텅. (웃음)

 

이: 저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면도 있어요. 그렇다고 완전 4차원은 아니고(웃음), 환상과 현실을 왔다갔다하는데, 환상과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에는 환멸도 느껴요. 환상, 현실, 몽환, 환멸,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해요. 선생님과 맞는 부분이 있다면 서로가 약간 환상을 쫓는 면들이라고 생각해요.


손: 그걸 그림으로 대입을 하자면,

중국의 오랜 화론에 보면, 그림의 화품, 그림의 품격을 분류한 사람이 있어요. 가장 오래된 화품의 등급으로 신품, 묘품, 능품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신품은 귀신 신자, 귀신같은 작품이고 묘품은 아주 묘-한 작품, 능품은 아주 능한 작품을 말하는 거죠. 능품은 이른바 잘 그렸다, 명작이다라는 것들이고, 신품은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이라는 얘기에요. 하늘의 뜻을 드러낸 작품은 모든 화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가치이긴 하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당대 속에서 실현 불가능한 겁니다. 신의 뜻을 어떻게 알겠어요?

누구나 잘 그린 그림은 능품으로 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 잘 그렸다고 동의하는 겁니다. 신품은 인간으로서 그걸 가려낼 수는 없지만 이디얼Ideal적인 측면, 궁극의 가치가 이런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거죠.
그 중간에 묘품이라는 게 있어요. 이게 정말 묘한 거예요. 묘하다는 말은 묘하기 때문에 묘한 거예요. 저는 그 묘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하면,  남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어떤 연유에선가 마음 속 어딘가에 딱 걸리게 되는 그게 묘품이에요. 모든 사람이 잘 그렸다고 이야기하는 능품과는 다른 겁니다. 나에게로 와서 활짝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죠. 다른 사람한테는 그것이 풀에 불과할지라도 나에게는 꽃으로 보이는 작품이에요. 몽환이라는 말도 그런 묘한 정서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점에서는 나도 몽환적인 점이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묘품이에요.


이: 서양에서도 그런 게 있어요. 알베르트라는 수학자가 인체의 아름다움을 600개의 비율로 나눴어요. 정말 완벽한 미녀의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미녀를 사랑하기란 어렵죠. 대부분의 사람은 눈과 코의 비율이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비율이 틀어진 상태, 코가 짧고 인중이 길고 이런 것들이, 그 사람만의 삐뚤어진 부분이 나한테는 너무 매력적인 거잖아요.

 

알라딘: 마치 서양미술에서 풍크툼을 설명하는 부분 같습니다. 중국에서도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다니 처음 들었는데 재미있네요.

 

손: 묘품을 그려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이것이야말로 명품이 되고, 신품이 될 것이다 하는 확신에 차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것으로 됐다, 더 이상 덧칠할 필요가 없다는 시점에서 작품이 탄생하지 않습니까? 아무 보장도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끝을 냈을 겁니다. 필유곡절입니다. 그 작품을 할 수 밖에 없는 곡절과 연유가 자기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이죠. 그런 것이 묘품입니다. 그런 몽환이 어느 한 사람을 평생을 매달리게 하는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손 선생님의 몽환과 제 몽환은 다를 거예요. 화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스트들은 아닌 것 같아요. 뭔가 필터링을 하고 있어요. 저는 항상 그림을 이중적으로 봐요. 가장 행복한 순간에 어두운 면을 같이 보기도 하고, 가장 어두운 순간에 행복한 면을 보기도 하고. 그림이 항상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알라딘: 그것이 선생님 자신의 캐릭터와도 연관이 있나요?

 

이: 그냥 제 캐릭터는 단순한 형이에요. (웃음)

 

알라딘: 손철주 선생님도 책을 읽다보면 본인의 이야기를 안하시죠.

손: 제 얘기를 안한다고요? 제가 이주헌씨와 대담을 했는데요. 이주헌씨가 말하길, 자기는 자기 글에 자기를 집어넣을 수가 없는데, 손선배는 자기 글에 완전히 집어넣는다고 합디다.


이: 손 선생님이 글에 자신을 집어넣는 방식은 옛 선인들의 말에 중첩시키는 방식이에요. 누구누구가 이르기를, 이렇게 인용을 했지만 그게 다 선생님 말씀이에요.

 

손: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잖아요.

알라딘: 물론 그 글투나, 다루고 있는 문구들을 보면 아, 이런 얘기인 것 같다는 느낌이 오죠. 기계적으로 비평을 하는 게 아니라 컨텍스트를 다루면서, 말하자면 빌려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요.


이: 인용을 위한 인용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 하시는 거죠. 음흉스러운 사람이죠. (웃음)

 

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복화술에 관심이 많아요. 글을 쓰는 행위가 ‘팩트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이지 않습니까. 글은 내가 쓰지만, 내가 인용하거나 거론하고 있는 소재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듣게끔 하는 이른바 복화술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요. 어디 밖에다가는 처음 하게 되는 말인 것 같은데...
내가 내 말로 떠들면 연설처럼 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내 말인데 내 말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를 해야 그것이 객관성을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즉자적이 아니라 대사적으로 독자들이 여기도록 하는 거죠. 그건 기법적 측면에 관한 것일텐데 저는 제 글이 ‘나’가 많이 들어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라딘: 다루고 있는 주 소재가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에 빗대서 말을 하는 것이군요.

 

이: 모든 인용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서 끌어오는 거예요. 인용은 결코 객관적이지 않죠. 학술서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어떤 입장으로 끌고 나가려면 계속 그쪽 인용문만 끌어오거든요. 그럼 엄청난 서포트를 받게 되죠.

 

손: 글쓰기를 잘하려면 견강부회를 잘 해야 된다니까 (웃음). 그런데 박음질이 드러나면 하수가 되는 거죠. 그 박음질, 이음매가 드러나고 하면 안되는 거죠. 재단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재봉이 어렵다는 거죠.

 

이: 통하는 게 있네요. 아까 패치워크라고 했던 것.

 

 

 


다, 그림이다?


알라딘: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꼭지가 일종의 짧은 동양화론, 서양화론인데요. 두 분이 다른 스타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 선생님은 거죽 안에 있는 성정, 기운을 말씀하셨고, 이 선생님은 외면을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환영을 창조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죠. 그 마지막 꼭지에 대해서 조금씩 더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이 세계는, 혹은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인데요. 사실 저는 이 책의 마무리는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분량상 짧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더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손: 형상의 바깥에서 기이함을 얻는다. 사의간필이라는 기법적 측면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외형을 그리되 그 외형이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뜻을 드러내는 것이 동양화에서 사의 기법이라는 거예요. 외형이 아니라 뜻을 그리는 거죠.  그럼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상외기득이다. 형상 바깥에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아마 소식과 같은 걸 거예요.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 내용은 초자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삶의 비의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인생에서도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을 통해 저것을 말하기. (잠시 침묵) 글을 쓰는 자도 '인생은 고해다' 하면 사실 다 끝나는 거예요. 더 쓸 말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얼마나 많은 문학인들이 인생이 고해라는 걸 수많은 작품으로 거듭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들어 저것을 말하기인데, 그걸 삶에 대입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일종의 불교의 연기론 같은 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생겼구나 싶습니다. 내가 마음 속으로 미워하는 사람이 못 되기를 나혼자서 기원했기 때문에 그 다음날 그 친구가 가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거예요. 황당한 얘기처럼 보입니까? 이건 몽환이 아니고 제가 살아 온 경험이에요.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한다? 말이 안되죠. 근데 칭찬이 반복되면 고래가 춤추는 거 맞아요.

조선시대 귀빈들 사이에서 사람 저주하면서 찌르는 인형 있지 않습니까, 그거 효과가 있습니다. 세상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무슨 얘기하다가 인생론까지 와버렸지?

 

 

 
알라딘: 질문이 그것입니다. (웃음)

 

손: 동양화에 기본정신을 더 이야기하면서 인생과 관련된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라(웃음). 그것이 생기는 이유는 이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라딘: 눈에 안보이는 일종의 인과법칙이군요.

 

이: 그런 게 동양적 사고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서양적 사고는, 예를 들어 별이 떨어지는 걸 봤는데 동양에서는 별이 떨어졌으니 이쪽에서 영웅이 태어나겠구나 하고, 서양에서는 그 별을 파악해서 천문학이 발달하고요. 서양에서는 있는 그 자체로 정복하려고 애쓰고 동양에서는 어떤 사후 징조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미술에서도 나타납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시대에서부터 모방론이 나오고 똑같은 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요. 똑같은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닮은꼴은 속성도 비슷하다는 거죠. 그래서 서양에서는 분류학이 발달합니다. 닮은꼴이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에요. 결국 환영은 끊임없이 추구되어 오면서 서양미술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계속 환영과 현실에 대해서 쭉 이야기 하게 됐어요.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인상과 인상이 가지는 내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그런데 김훈 선생님이 서문에서 그 둘을 모아주셨어요. 하나는 솔거의 그림을 똑같이 그린 것. 하나는 신비로움이 빠져버린 그림. 앞뒤가 딱 맞물리는 결과가 나왔어요. 신기해요. (웃음)


 

BONUS
 

알라딘: 이제 간단한 질문이 남았습니다. 근래에 본 책, 영화, 그림 등에서 인상 깊게 본 작품이 있으신지.


손: <그날들> 윌리 로니스. 그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는 그런 책을 좋아하나봐. <한번은,(빔 벤더스)> 그것도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사진이 가진 속성 같아요. 한 순간.

 

손: 윌리 로니스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이 주제를 한 번에 포커싱을 해서 응축해나가는 힘이 없어요. 파편화된 문장들이죠. 그래서 인생과 더 닮아있어요. 글도 너무 잘 설계된 글은 가짜 같아요. 못 쓰는 글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아주세요.
내가 만일 그 사진만 봤다면 그 사진에 담겨져 있는 그날들의, 그 순간에 딱 한번 벌어진 일에 대해서 온전히 내가 간취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아요. 로니스의 그 못 쓴 글을 읽을 때, 그 사진이 정말 생에서 딱 한 번 벌어진, 위대할 수 있고 경이로울 수 있는 일이 되는구나...
저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느냐, 로니스처럼 글을 못 써야 될 것 같아. (웃음) 저도 내가 선택한 그림을 독자에게 확 안겨주고 싶은 허영심이 있어요.

 

알라딘: 그 책의 특징을 확실히 파악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저는 최근에 <흑산>을 읽었어요. (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인터뷰에서 빼야겠는데요. (웃음. <그날들>은 <다, 그림이다>가 나온 이봄 출판사의 책이고, <흑산>은 손철주 선생님이 주간이신 학고재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손: 이거는 꼭 넣어야 해. 앞에 건 빼더라도 이주은 교수가 <흑산>을 추천했다, 손철주가 <그날들>을 추천했다. (웃음)

 

이: 소설가라면 인간의 고통, 슬픔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주인공에 대한 묘사보다는 인간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요. 소설가는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인데, 한번쯤 권할 만한 책인 것 같아요. 휴머니즘 차원에서요.

 

손: 생애의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소설에서는.


알라딘: 여기까지입니다. 오늘 매우 즐거운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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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ko1900 2011-12-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인터뷰 중 제일 재밌는 인터뷰 기사!!

snow_drop 2011-12-1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알차네요~ㅎㅎ

잠퇘지 2011-12-1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요 일간지 인터뷰보다 심도있고 알찬 인터뷰 기사네요. 와...오랫동안 만나셨나 봐요.
재밋는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안녕반짝 2011-12-1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분의 만남 자체가 정말 너무 멋집니다!

비로그인 2011-12-12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인터뷰를 읽다니 기쁘네요.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

lomo86 2011-12-1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 첫번째 사진 두 분 너무 귀여우세요!!! 인터뷰 내용도 뭔가 깨알같이 꽉 참!!
 

*본 대담은 스포일러 등의 문제로 전문을 싣고 있지 않습니다.

 

<미세레레>로 돌아온 프랑스 스릴러의 자존심,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국내 프랑스 번역의 1인자 이세욱의 대담 

 

         

 

이세욱  당신의 소설을 번역하는 것은 『늑대의 제국』 『검은 선』에 이어 이번으로 세번째다. 앞선 세 작품은 번역자가 아니라 독자로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첫 소설을 읽자마자 당신의 특별한 재능에 주목했고, 이후 당신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죽 지켜보았다. 당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공할 서스펜스의 위력에 휘말린다. 마치 악마적인 기계장치에 빠져버린 것처럼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헤어날 수가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독자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다. 프랑스 신문과 방송들도 당신을 일컬어 ‘서스펜스의 거장’ ‘마법사’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궁금하다.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당신만의 비방이 있는가?

그랑제  비결이 있다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자체에 있다. 서프라이즈로 가득 찬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사람들은 스릴러 작가들이 어떤 비법이나 특별한 작법에 따라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무엇보다 먼저 하나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본디 그 자체에 뜻밖의 전개나 반전 등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고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구성의 비법이 아니라 작가가 상상해낸 이야기 자체다. 진실을 찾아 나아가는 인물들과 우여곡절과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을 담고 있는 아주 복잡한 이야기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나는 어떤 구성 방법을 적용해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저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뿐이다. 내 이야기는 뭐랄까, 하나의 음악처럼 만들어진다. 먼저 하나의 멜로디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다음에 나는 그 멜로디를 편곡하여 관현악으로 만든다. 하지만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것은 멜로디이지 화음이나 편곡이나 어떤 기교가 아니다. 특히 기교는 아니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냈다고 할 때는 그 결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혼령의 숲』은 한 젊은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파리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여자는 수사판사이고 애정 문제로 마음을 앓고 있다. 450쪽이 지나면 독자들은 이 여자를 아르헨티나의 으스스한 숲속에서 보게 된다. 처음엔 어느 누구도 이런 도착점을 짐작할 수가 없다. 이런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해내는 것, 그것이 내 작업의 요체다.
따지고 보면 이런 글쓰기는 내가 기자였던 시절에 일하던 방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 독자들에게 무언가 놀라운 것,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을 제공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서스펜스의 반대 지점에 있는 것은 뻔한 결말이다. 결과가 훤히 들여다보인다면 책장을 빨리빨리 넘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리 없다. 끊임없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세욱  그러자면 아주 자세한 시놉시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랑제  그렇다. 나는 각각의 장章에 무엇을 담을 것인지를 기록한 아주 상세한 시놉시스를 만들어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대개 각각의 장은 기계장치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는가 싶으면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독자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번 장만 읽고 그만 자야지 하다가도 그 장이 끝나면 더 읽고 싶어져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이세욱  놀라운 결말을 지닌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당신의 소설들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이기 위해 엄청난 연구 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소설에는 역사, 사회, 과학 등에 관한 정보가 아주 풍부하다. 때로는 그 정보들이 너무 촘촘해서 지나치게 교육적인 의도를 지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랑제  사실 기자 시절에 자료 조사를 치밀하게 하는 버릇을 들였다. 나중에 소설을 쓰면서 내가 조사하고 연구했던 것들을 종종 활용했다. 지금도 나에게 부족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르포 기사를 쓸 때처럼 여행을 하고 조사 작업을 벌인다. 그럼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채워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일은 아주 미묘하다. 서스펜스와 정보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다보면 독자들을 따분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한편으로는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상상력을 전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내 상상력은 실제의 역사와 현실에서 비롯된다. 사실 내 이야기에는 언제나 현실적인 바탕이 있다. 실제와 허구를 결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실제로 일어났거나 벌어지고 있는 일에 사실이 아닌 것을 뒤섞으면 때로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세욱  같은 맥락에서 디테일의 정확성을 고집하는 까닭을 묻고 싶다. 당신의 소설에서는 언제나 세부사항을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의지,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미세레레』의 주인공 카스단이 매일같이 먹는 약은 그냥 여느 항우울제나 항불안제가 아니라 ‘데파코트’ 500밀리그램 한 알과 ‘세로플렉스’ 10밀리그램 한 알을 섞은 것이다. 빌헬름 괴츠가 사는 곳은 그냥 ‘가장’이라는 거리가 아니라 정확하게 그 거리 15-17번지에 있는 건물의 3층이다. 볼로킨이 스스로에게 마약 주사를 놓는 장면이나 SM 클럽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랑제  내 소설들에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못 환상적이다. 그 자체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있을 법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매우 사실적인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에 진실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세욱  독자들이 머뭇거리지 않고 묘사된 장면의 내부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인가?

그랑제  그렇다. 독자들이 내 이야기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깊은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디테일들은 또다른 측면에서 소설에 기여한다. 독자들이 현실감을 느끼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내가 문득 칠레의 현대사를 놓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독자들은 아주 주의 깊게 그 정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그것은 내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세욱  하지만 외국 독자들에게는 사실성을 높이려는 당신의 배려가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디테일들이 때로는 문화적 장벽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랑제  내가 프랑스의 옛 영화나 흘러간 노래들을 소설에서 다루면 프랑스의 젊은 독자들은 그런 것들을 낯설어한다. 하물며 외국의 독자들은 프랑스 사회와 문화의 세세한 요소들을 얼마나 낯설게 느끼겠는가? 나는 종종 내 소설의 번역자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해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이세욱  문화적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소설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현실적인 공간들을 답사하고 당신을 직접 만나는 것도 그런 길들 가운데 하나다. 주석을 달아서 번역자가 불쑥 개입하는 방식도 있지만 나는 소설의 서스펜스를 감소시키는 그런 무거운 방식을 피하고자 한다. 소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은 내가 찍은 사진들과 함께 출판사의 온라인 카페에 올릴 생각이다.

그랑제  어쨌거나 매우 고마운 일이다. 보아하니, 한국 독자들도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다.

이세욱  그렇지는 않다. 스릴러는 SF와 마찬가지로 하위 장르에 속한다는 편견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당신처럼 스릴러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는 작가도 드물고 독자들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당신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프랑스 스릴러의 황제’라는 별명에 걸맞은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랑제  한국의 스릴러 영화는 매우 강력해 보이던데.

이세욱  한국 영화를 많이 보는가?

그랑제  스릴러 영화를 여러 편 봤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아주 훌륭하더라. <괴물>도 봤다. 비록 영화를 통해 풍광을 보았을 뿐이지만, 한국이 매우 매력적인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 가는 길에 부산을 경유한 게 전부라서 한국에 가봤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다.

이세욱  여행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여행을 아주 많이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미세레레』를 번역하면서 소설의 무대로 설정된 파리의 여러 성당과 몽수리 정수장, 라르마탕 서점 등을 찾아가보았다. 『늑대의 제국』을 번역할 때는 터키를 여행하기도 했다. 일종의 ‘그랑제 문학 순례’인 셈인데 그때마다 공간의 특성을 포착하는 당신의 감수성에 놀랐다.

그랑제  대학 시절에 나는 지독한 책벌레였다. 책만 들이파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는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을 뿐 여행 따위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책이었고, 가장 멋진 여행조차 책 속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공부를 마치고 언론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르포 기행을 많이 하게 되었다. 프랑스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던 내가 온 세계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뉴욕 같은 대도시들뿐만 아니라 북극 지방이나 사막이나 정글 같은 아주 험난한 여행지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르포 기사를 쓰는 한편으로 여행중에 내가 느낀 바를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그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경험, 공간에 대한 감수성을 활용해서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추리소설은 언제나 여행을 담고 있다. 어떤 세계, 어떤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행 말이다. 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주인공들과 더불어 칠레와 아르메니아를 여행하고, 다른 나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요컨대 나는 여행, 취재, 조사 작업, 시사 감각, 어떤 여행지에서 받은 인상 등이 내 소설들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것을 아주 기쁘게 여겼다. 하지만 서른 살이나 되어서야 여행을 하기 시작했으니 아주 늦은 나이에 세상물정을 알게 된 셈이다.

이세욱  내가 알기로 당신은 한때 악의 기원에 관한 3부작을 쓰고자 했다. 그런데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당신이 그 생각을 버렸다고 한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라면 이유는 무엇인가?

그랑제  사실이다. 3부작이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3부작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랑스에서 3부작을 쓰는 것이 너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작가치고 3부작을 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스릴러 작가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심하다. 그래서 나는 3부작 타령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애초에 계획했던 작품들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구상했던 3부작의 첫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검은 선』이고, 두번째 작품은 악마의 문제를 다룬 『림보의 서약』이다. 세번째 책은 『혼령의 숲』인데, 선사시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악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인간이 악한 동물이라는 것, 같은 종의 개체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는 희귀한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국 나는 독자들에게 약속한 대로 3부작을 다 쓴 셈이다. 다만 그 작품들에 ‘3부작’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는 모든 소설에서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를 읽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당신의 3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을 읽었는데 아주 좋더군요.” 『미세레레』는 3부작에 들어 있지 않지만, 독자들은 이 작품 역시 악의 기원을 규명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모든 책에서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세레레』 역시 악에 관한 하나의 설명이다. 이 작품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나 나쁜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 이런 문제를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벌어진 흉악한 범죄들을 놓고 보면, 괴물과도 같은 범인들의 배후에 끔찍한 어린 시절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에 악의 열쇠, 악의 기원은 사랑이 없는 세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나쁜 교육이다.

이세욱  사실 폭력이나 악은 당신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다. 한국의 일부 독자는 당신의 소설들이 인간의 잔인하고 어두운 이면을 매우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 듯하다. 당신이 폭력을 묘사하는 것은 사회 고발의 한 형식인가?

그랑제  언제나 그렇다. 처음엔 약간의 오해도 있었다. 내 소설에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내 묘사가 너무 치밀하고 정교하다면서 나 자신이 폭력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말했다. “아니다.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쓴다. 내가 폭력에 관해서 글을 쓰는 것은 폭력이야말로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폭력을 용인한 적이 없다. 폭력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에 관한 글을 쓴다. 그들은 사랑의 문제를 안고 있다. 나라고 해서 애정 문제에서 자유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인간은 왜 폭력적인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고통을 가하는가? 나에겐 그게 미스터리다. 나는 인간의 그 미스터리에 관해서 쓰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를 보든 인간이 괴물로 돌변했던 시기가 있다. 나는 몇몇 아시아 국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거기에서도 그런 일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8년 캄보디아에 혹독한 독재체제가 들어섰을 때 문맹의 젊은 농민들이 갑자기 괴물로 변하여 사람들을 죽였다. 이십 년 전에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런 사건들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다. 사람들이 돌연 괴물로 변하는 일은 캄보디아나 르완다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벌어진다. 인간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잔인한 괴물로 변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내 소설들은 주로 악당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악한 자들은 사람들을 잇달아 살해함으로써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전쟁 때에는 모든 병사가 연쇄살인범으로 변할 수 있다. 한 가정의 착한 아들이었던 병사가 갑자기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살인마로 변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현상은 인류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전에는 내가 그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은 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지 못하는가? 인간은 왜 타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는가? 정말이지 나는 그 물음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다음 소설에서도 그 문제를 다룬다. 선사시대에 인간들 사이에 폭력과 전쟁이 출현한 것은 그들이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남의 가축과 식량을 훔치려고 함에 따라 전쟁이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모두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도처에서 짐승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다가 원시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 경작을 시작하고 가축을 갖게 되면서 자기네 것을 노리는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 만남에서 소유 의식과 시샘과 폭력이 생겨난다.

이세욱  장자크 루소가 생각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나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인가?

그랑제  그렇다. 바로 루소가 한 얘기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는 착한 미개인이 있었다. 소유가 발생하면서 착한 미개인이 악당으로 변한 것이다. 루소가 약간 몽상적이긴 했지만,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시샘, 이웃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세욱  다시 『미세레레』로 돌아가서, 프랑스 언론의 보도를 보니까 이 작품의 탄생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전하고 있더라. 애초엔 영화의 시나리오로 구상되었다던데……

그랑제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프랑스의 한 영화잡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시네 라이브>라는 잡지다. 그 친구들이 한 가지 기획을 했다. 작가들에게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고르게 한 다음 그 영화의 속편을 구상하여 시놉시스를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가장 먼저 원고를 청탁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서 속편이 나오지 않은 작품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마라톤 맨>을 골랐다. 당신도 아마 보아서 알겠지만, 아주 훌륭한 스릴러 영화다. 나는 그것의 속편을 구상했다. <마라톤 맨>에서 나치 잔당과 대결을 벌였던 주인공이 몇 해 뒤에 다시 나치 잔당과 맞닥뜨리는 상황을 상상했다. 동일한 주인공이 남미와 미국에 정착한 네오나치 세력과 대결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써나갔다. 읽어보니 재미가 있었다. <시네 라이브>의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냈더니 아주 훌륭하다면서 잡지에 곧 싣겠다고 했다. 내 소설을 내는 출판사에도 미리 알려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알뱅 미셸 출판사의 사장에게 말했다. “리샤르, 미리 알아두라고 하는 얘긴데, 이런 시놉시스를 잡지에 실을까 하는데……” 그는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아니, 이런 것을 잡지에 거저로 내준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잡지에 실을 수 없어. 이 시놉시스로 소설을 쓰게. 내가 잡지사에 협박을 해서 싣지 못하게 하겠어. 만약 그들이 이것을 싣는 날에는 소송을 당하게 될 거야.” 결국 <시네 라이브>는 시놉시스를 싣지 못했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미세레레』를 썼다. 결과적으로 리샤르의 생각이 옳았다. 덕분에 내가 멋진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세욱  몇몇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쓴 것으로 아는데, 요즘도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하고 있는가?

그랑제  이젠 영화 쪽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한때는 내가 구상한 이야기를 시나리오의 형태로 쓰기도 했다. <비독>이 그런 경우다. 내가 시나리오를 썼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작업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어떤 멋진 이야기가 떠오르면 소설을 쓸 것이다. 내가 잘하는 일만 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나는 혼자 작업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자기가 구상한 이야기를 남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시나리오 작가든 자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만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이세욱  당신의 소설들을 영화로 각색하는 일에는 여전히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내 소설을 각색하는 경우에는 감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어느 정도 작업에 참여한다. 현재는 『미세레레』의 각색을 놓고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이다. 곧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미켈레 플라치도를 만나기로 했다. <로만초 크리미날레(범죄 소설)>라는 갱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그 영화 한번 봐라. 한 세대 전의 이탈리아 사회를 아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영화다. 그 감독이 『미세레레』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서 다음에 만나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들의 공동각색 작업은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처음으로 각색한 영화를 봤을 것이다. <크림슨 리버> 말이다. 관객들은 그 영화의 결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샀다. 그것을 두고 나는 곧잘 이런 농담을 했다. “영화를 잘못 만든 것이 나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책을 많이 팔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미세레레>의 시나리오를 쓸 것이다. 아 그래, 한 가지가 더 있다. 카날 플뤼스에서 방송하게 될 스릴러 시리즈의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카날 플뤼스는 프랑스의 거대 티브이 채널이다. 거기에서 <황새의 비행>을 가지고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원래 어떤 제작사에서 영화를 만들겠다고 가져간 작품인데 십 년이 지나도록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저작권을 되찾아서 다른 제작사와 티브이 시리즈를 만들기로 다시 계약한 것이다. 사실 내 소설들을 영화화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영화로 각색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데군데 잘라내어 영화를 만들기는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적이 없다. 난관이 너무 많다.

이세욱  『검은 선』과 『림보의 서약』도 영화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랑제  먼저 『림보의 서약』에 대해서 말하자면,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 감독은 내 친구인 프레데릭 셴데르페르다. <범죄 현장> <비밀 요원> <악당> 등을 만든 감독이다. 우리는 시나리오 작업을 함께 했다. 그뒤에 제작자가 다른 것을 요구해왔다. 그 바람에 소설의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내가 보기에 셴데르페르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프로젝트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영화라는 게 늘 그런 식이다. 몇 해 동안 공을 들이고도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다.
『검은 선』은 프랑스의 또다른 감독 올리비에 마르샬이 영화로 만드는 중이다. 캐스팅은 이미 끝냈다고 하는데, 감독이 티브이 쪽의 다른 일을 맡는 바람에 촬영이 지연되고 있는 듯하다. 내 소설들이 영화로 각색될 때마다 매우 불안하다. 결국 내 소설과 전혀 다른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세욱  어쨌거나 소설을 낼 때마다 영화 제작자들이 달려든다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닌가?

그랑제  그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내 소설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크게 성공한 적은 없다. <크림슨 리버> <늑대의 제국> <돌의 집회> 어느 것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제작자들이 계속 내 소설을 산다. 대개는 어떤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해서 성공하지 못하면 제작자들이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그게 영화 산업의 생리가 아닌가? 그런데 내 경우에는 매번 제작자가 나타난다. 내 이야기를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욱  <돌의 집회>의 여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당신이 직접 모니카 벨루치를 선택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랑제  그건 기자의 추측이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판에서 작가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내가 영화 제작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흔히들 영화에서는 감독이 대장이다, 제작자가 대장이다 하는 식으로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영화판에는 대장이 없다. 영화마다 사정이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모니카 벨루치를 캐스팅한 것은 당시에 그녀가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런 스타가 주연을 맡으면 영화가 잘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 대장은 바로 모니카 벨루치다. 시나리오 작가는 대개 여러 번 작품을 고쳐쓴다. 처음엔 제작자의 주문에 따라 시나리오를 쓴다. 그러고 나서 감독이 선정되면 이번엔 감독의 요구에 따라서 모든 것을 다시 쓴다. 새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감독은 캐스팅에 들어가고 스타를 끌어들인다. 그러면 작가는 그 스타에 맞춰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피카소가 해놓은 스케치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색칠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영화판에는 늘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서 끼어들어서 걸작 스케치를 망쳐버리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내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것은 뤽 베송처럼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이세욱  당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는가?

그랑제  없다. 정말이지 그건 전혀 다른 일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우선 나는 작가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지만 이미지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모른다. 다음으로, 영화는 글쓰기와 전혀 다른 직업 철학을 요구한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작업한다. 나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영화를 만들 때는 그와 정반대다. 영화감독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촬영감독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하고 배우들을 배려해야 하며 제작자의 요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스탠리 큐브릭이 그러지 않았는가. 영화감독 노릇을 하는 것은 놀이공원의 범퍼 카를 타고 『전쟁과 평화』를 쓰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조용히 책을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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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12-0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랑제의 '미세레레'는 이세욱님의 번역이어서 더 기대됩니다.
검은선이 충격적이었지만 참 좋았고...그래서 그의 전작을 두루 섭렵하게도 됐었으니까요.
이세욱님의 경우 '로아나'에서 신뢰을 굳히게 되었는데,
로아나 한권을 번역하기 위해 영역본까지 두루 섭렵하신 열정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암튼, 책은 주문 완료 하였으니,
'닥치고 독서~!'하면 될테고,
혹시, 인터뷰 전문 내용을 볼 수 없을까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2-05 16:31   좋아요 0 | URL
네, 인터뷰 전문은 2권 맨 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비밀인데요. 이세욱 번역가를 직접 만나는 행사도 곧 할 겁니다.;
 

번외 코너로 독자 여러분의 투고작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 공개된 작품은 저작권과는 관계 없으나 추후 다른 공모전 등에 개정 응모 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응모전마다 기존 발표작에 대한 개념이 달라서 명확하게는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 

clancy님의 투고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 

 

 

아이들의 장난 

살랑살랑 봄바람에 총각 가슴도 처녀만큼이나 설렌다. 하물며 눈앞에 연분홍 플래어스커트와 착 달라붙어 몸매가 드러나는 티셔츠 차림의 아가씨가 하늘하늘 걸어간다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바람을 타고 온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골목을 나오는 찰나 내 앞을 스쳐간 짧은 사이 시야에 박힌 그녀의 프로필이 아른거린다. 뽀얀 피부, 볼록한 이마, 오뚝한 코, 소녀시대 윤아를 연상시키는 청순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이중적 매력.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 뒤를 쫓으며 원래 가려던 길과는 반대로 가고 있었다. 딱 내 이상형의 외모, 차림으로 보아선 대학생이나 되었을까. 불알 달고 태어나 이런 인연을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다. 어떻게든 말이라도 걸어 볼 생각으로 다가가는 순간 그녀가 멈춰 섰다. 혹여 내가 쫓아오는 걸 눈치 챈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움찔했지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기 위한 것임을 곧 눈치 챘다.  

어떻게 말을 거나 머릿속으로 궁리하는데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에 쬐깐한 사내애 셋이 우르르 몰려 선 게 보인다. 어림잡아 3,4학년이나 되었을까. 녀석들은 그녀 뒤에 몰려서선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낄낄 거렸다. 바로 옆이다 보니 녀석들 이야기가 어쩔 수 없이 귀에 들려온다.  

“뚤래! 난 5천원.” 

“씨발, 그럼 엄창 걸고 만원!” 

하, 쥐방울만 한 녀석들이 말본새 하고는 절로 혀를 차게 된다. 슬쩍 보니 멀쩡하게 생긴 것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메이커, 명품들로 치장한 도련님들이다. 개중 하나가 흘끔 그녀를 곁눈질 하며 음흉하게 웃고 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놈들도 남자였고 그녀는 팔랑거리는 스커트 차림이다. 저 나이또래 녀석들이 어떤 놀이를 즐기는지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니, 아니다 난 저 정도로 되바라지진 않았지.  

순간 그녀와 가까운 쪽 녀석이 살금살금 그녀 옆으로 다가선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의 우려가 맞아 떨어진 건가.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놈들이 예의 ‘아이스께끼’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그리곤 도망치려는 녀석을 잡아 혼내준다. 그러면 나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가 상승할 것이다. 자연스레 대화로 이어지고 번호도 딸 수 있을지 모른다. 이건 하늘이 내린 기회란 생각마저 들었다. 순간 가운데 녀석이 옆의 녀석 옆구리를 툭 치는 게 보였다. 일단 현행범으로 잡을 수 있게 기다리자, 그녀의 치마 속 구경은 덤으로 생각하고. 

신호를 받은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녀석은 무심한 듯 앞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역시 익숙한 장난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신호등만 줄곧 바라보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딴 짓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의 그녀처럼. 그때 누군가 앞으로 나서면 무의식중에 신호가 바뀐 줄 알고 따라 나서게 되는 거다. 그리고 잘만하면 옆의 사람이 신호가 바뀌지 않았는데도 착각해서 횡단보도를 건너게끔 할 수 있다. 물론 무심코 앞으로 나섰던 사람은 바보가 된 느낌을 받으며 금방 뒤로 물러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스마트폰 화면에 정신이 팔려 주위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끼이익!’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며 일으키는 소음이 귀청을 흔들었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그녀가 공중에 떠올랐다. 가냘픈 몸은 순식간에 10여 미터를 튕겨 나가 반대편 차선에 신호 대기 중인 은색 소나타 후드 위로 떨어진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이 하늘을 보고 있다. 하지만 후드 반대쪽에 걸린 다리는 지면을 향하고 있다. 충격으로 허리가 완전히 돌아간 모양이다.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녀를 친 택시 운전사가 문을 열고 나왔고 은색 소나타 운전자도 벌벌 떨며 밖으로 나오다 그만 주저앉는다. 소란 속에서도 그녀는 미동조차 않는다. 나는 그제야 망할 놈의 초딩들을 찾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앞에선 이미 녀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길 건너 코너를 돌아가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어가던 놈들 중 하나가 옆의 녀석을 툭 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척 했던 놈이다. 못된 장난질의 주동자. 멍청한 내가 순간이나마 응원을 보낸 녀석. 순간 시야에 들어온 광경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옆의 아이가 놈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고 있었다.

 

 
 



오해의 변 

"그래, 끝내. 이 미친 새끼야!“ 

토요일 아침 전화벨소리에 비몽사몽 기다시피 잠자리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여보세요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분노어린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리고 내가 어, 저, 뭐 따위를 늘어놓는 사이 그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회사 일이 바빠 몇 차례 약속을 어긴 것으로 심하게 다투긴 했지만 거기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를 바로 어젯밤 전달했었다. 간밤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그녀의 이런 반응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12월, 이제 두 주 후면 크리스마스였고 뒤이어 송년이네 신년이네 이벤트가 이어질 텐데 그 전에 우리 사이 꼬인 감정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서 어젯밤 그녀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사들고 찾아갔던 것이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느라 그녀가 자취하는 원룸 건물이 보이는 골목 어귀에 도착했을 때엔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12월 서울의 밤공기는 기록적 추위를 보이고 있었다. 영하의 기온에 얼어붙은 얼굴은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을 때마다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달랑 하나뿐이던 가로등도 맛이 가버려 골목은 칠흑처럼 컴컴했다. 덕분에 튀어나온 블록에 발이 걸려 제대로 자빠지기까지 했었다. 그 바람에 가슴에 품고 있던 종이봉투에서 군고구마들이 튀어나와 골목길 위를 굴렀다. 핸드폰 액정 불빛에 의지해 얼른 주워 담긴 했는데 혹시 흙이라도 묻었던 것일까? 하지만 겨우 그런 정도로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낼 여자는 아니다.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지 머리가 욱신거렸다. 쪼그리고 앉아 다리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뭐가 문제인지 떠올려 본다. 전달 방법이 문제였을까. 토라진 그녀가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문 앞에 봉투와 편지를 놓아두고선 건물을 빠져나와 문자를 보냈었다. 

‘문 밖에 선물 놔두고 가. 잘자용.’ 

발신함에 저장된 문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흔히 하는 농담처럼 이모티콘이 없어서 그런 건가. 아니다, 그것도 이 정도 화를 불러일으킬 이유는 아니다. 그럼 편지가 문제인가? 편지의 내용은 나의 잘못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조목조목 열거하며 무조건 잘못했다며 용서를 비는 것이었다. 근무 시간 틈틈이 쓰긴 했지만 몇 번이고 내용을 확인했고 심지어 팬시점에서 산 낯 뜨거울 정도로 아기자기한 편지지에 손 글씨로 직접 정성들여 쓴 것이었다. 좋아했다면 모를까 화낼 이유는 없는 형식과 내용이다. 아님 고구마인가, 아니다 가늘고 길어 볼품은 없지만 맛만큼은 끝내주는 고구마는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품종이다. 그럼 대체 뭐야? 문제는 다른 데 있나. 내가 또 뭔가 그녀 성질을 건드릴 만 한 짓을 했었나? 갑갑한 마음에 마른세수를 한다.  

‘뭐지?’  

뭔가 구린 냄새가 나서 보니 오른손 끝에 희미하게 갈색 얼룩이 묻어있는게 보인다. 코를 가져다 대 보니 제대로 똥냄새가 올라온다. 어째서? 순간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진다. 길고 가느다란 고구마, 영하로 떨어진 기온, 어두운 골목길, 자빠지며 쏟아진 고구마를 주워 담던 일. 그녀가 사는 동네엔 유달리 유기견이 많다. 그 골목길을 오가며 몇 번인가 개똥을 밟을 뻔 했던 경험도 있었다. 

설마! 

아마도 그녀는 간밤에 바로 고구마를 먹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니까. 편지만 읽어보고 아침이나 되어서 봉투를 열어봤겠지. 모든 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내 이야길 믿어줄까, 내 사과를 받아줄까. 이번엔 좀 더 제대로 된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향수가 좋을 것 같다.

 


 


형의 이별 공식

효정이가 사라졌다. 3일 전부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 혼자 사는 자취방엔 몸싸움의 흔적이 있었다. 옆집에서도 실종 전날 밤 남자와 다투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프랑스 유학을 4주 앞두고 벌어진 일이라 경찰에서도 단순가출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었다. 자연히 의심의 눈길은 남자문제로 향했고 경찰이 나를 찾아왔다.  

“민형도씨 혹시 형님은 어디 계신지 알아요.” 

실종일 알리바이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때 등을 물어보던 떠꺼머리 형사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형에 대해 물어본다는 건 효정과 형의 관계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쾌한 불안이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며 형사를 돌려보내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두서없는 상념의 단편이 얼음 결정마냥 가지를 뻗어나간다. 효정과 형은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다. 서로 술자리에서 몇 번인가 마주치던 둘은 어느 새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형의 이름은 형진, 둘이 같은 알파벳 이니셜이라며 재수생이던 나에게 헤죽거리던 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수줍은 형에게 효정이는 곧 질리고 말았다. 싸움이 잦아졌고 언성이 높아질 때도 늘었다. 두 번째 수능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던 어느 겨울밤 효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과 심하게 다투었다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다. 그녀의 불만을 받아주며 밤새 술을 마셨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건 허름한 모텔방 침대에서였다. 죄책감과 불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재수생이란 신분에 억눌렀던 욕구는 지난 1년간 분출할 구석만 찾고 있었으니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쨌든 형과는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었으니까. 사정 이야기를 들은 형은 힘없이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그럼 안 되잖아.” 

그 모습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 형제가 애지중지하던 햄스터가 죽었을 때였다. 내다버리라는 어머니의 말에 곧잘 수긍했던 나와 달리 형은 울먹이며 그럼 안 된다고 웅얼거렸다. 형은 미물에게 쏟던 애정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은 똑같았다. 

한동안 형이 효정이에게 계속 매달린다는 사실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다. 심지어 나에게 형을 설득해보라는 말까지 했다. 드디어 대학에 합격해 신입생 기분을 낼 시기였기에 나는 효정이도 형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효정의 연락을 씹어버리기 시작했고 형과의 사이도 어색해졌다. 결국 형은 자원입대했고 얼마 못가 나와 효정이의 관계도 끝이 나버렸다.  

어느 새 밤이 되었다. 집엔 나 혼자였다. 부모님은 나흘 전부터 강원도에 가있었다. 형이 탈영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신병의 탈영,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의 실종. 다들 빤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다시 만나고 있다는 건 모를 것이다. 언젠가 전화로 형이 말해줬다. 효정이 면회를 왔다고, 외출 끊고 부대 앞에서 만났다고. 아직 미필이라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마침 핸드폰 벨이 울렸다. 효정이 번호다. 순간 미친년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쩌면 우리 형제 사이에서 핑퐁질 하는 걸 즐기고 있는 지도 모르지. 

“여보세요” 

아무런 답이 없다. 다시 여보세요 묻고 귀를 기울이자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뭐야, 효정이 너 혹시 우리 형이랑 같이 있어?” 

순간 ‘가가가각’ 무언가 긁어대는 듯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른 장작 갈라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긋난 태엽소리 같기도 한 기분 나쁜 소리에 난 몸이 굳어버렸다.  

죽은 햄스터는 락앤락에 담겨 한동안 냉동실에 보관됐다. 마냥 썩게 방치할 수도 없고 형의 반대에 버리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밤엔가 나는 보았다. 아무도 없는 주방, 냉장고 불빛 속에서 락앤락 통을 든 형이 무언가 먹고 있었다. 가가각, 가가각. 작은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귀에 날아와 박혔다. 그것은 사랑을 쏟던 존재를 차마 보내지 못한 형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가가각, 가가가각. 전화기에서 그날 밤 들었던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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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 2011-12-06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장난'은 잘 읽긴 했는데 마지막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오해의 변'은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작품이네요. *을 집어들고 있는 여자를 상상하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형의 이별공식'은 마지막이 오싹~하네요. 역시 재밌게 읽었습니다.
 

 

 

 

  

4페이지 미스터리 공모전 본상 수상작 

 

 

대상

독점

 

나는 요즘 죽고만 싶다. 왜냐하면 아빠 엄마를 동생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 형준이가 밉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나는 이 집에서 찬밥 신세가 되었다. 매일 아침 엄마와 산책을 나가는 일도 없어졌고,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안아주는 것도 이제는 항상 형준이었다. 

나는 지금 너무 괴롭다. 괴로워서 죽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나의 이런 마음을 엄마 아빠에게 표현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엄마! 아빠!’ 하고 불러보고 싶지만, 그 말은 항상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는다. 항상 내가 원하지 않는 이상한 소리만 자꾸 나온다. 그런 내가 너무 밉고, 나 자신이 싫다. 나는 자기혐오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살이 말라가고 있었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역시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내 앞에 놓인 밥그릇을 보며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그러자 형준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던 엄마가 나를 쳐다보며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형식이 너 오늘도 또 밥 남기는 거야? 너 자꾸 그러면 엄마가 다른 집에 보내버린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허겁지겁 밥그릇에 담긴 바삭바삭한 밥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이런 하찮은 일로 부모에게 버림받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밥그릇을 싹싹 비운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안기며 뽀뽀를 시도했다.  

“어머, 얘가 왜 이래? 냄새 나! 절로 가!” 

엄마는 나를 거칠게 떼어놓으며 형준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고, 혼자 거실에 남겨진 나는 슬펐다. 역시 엄마한테는 형준이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슬퍼졌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 대신 침만 입 주변으로 흘러내렸다. 눈물 하나 마음대로 못 흘리는 내 자신이 너무 처량해서 죽고만 싶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된 만큼, 형준이가 죽도록 미워지는 날이었다. 

한 달 동안 나는 집에 형준이와 나만 남겨지는 순간을 간절히 기다렸다. 그동안에는 엄마 아빠 말도 잘 들었고, 형준이와도 최대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긴 시간 동안의 나의 인내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지금 나는 형준이와 단둘이 거실에 있다.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침을 질질 흘리면서, 서서히 형준이에게 접근했다. 

미란은 요즘 형식에게 너무 소홀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지 형식이 좋아하는 햄을 잔뜩 사가지고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왔습니다.” 

습관처럼 하는 그 말에 형식이 현관에 와서 그녀를 반긴다. 그녀는 형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며, 이제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예쁜 아들 형준이 그녀의 이런 습관에 어서 오세요 엄마, 하고 자신을 반겨줄 거란 생각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형식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후 거실로 들어서는 미란. 형식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른다. 

투두둑. 미란이 손에 들고 있던 볶음용 햄이 든 비닐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며 낸 소리였다. 

거실 바닥은 원래 작은 ‘동물’이었을 거라고 짐작되는 작은 고깃덩이들이 산산조각 난 채 흩어져 있었고, 그 고깃덩이에서 나온 피라고 짐작되는 붉은 액체가 거실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망연자실한 미란은 천천히 그녀의 발에 들러붙어 ‘꼬리를 흔들고 있는’ 형식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형식의 ‘주둥이’에는 붉은 액체가 잔뜩 묻어 있었다. 

나는 ‘세 번째 다리―남들한테는 없는 나만의 다리’를 있는 힘껏 좌우로 흔들며 엄마에게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멍 멍 멍!” 

그러고는 이제는 제발 나만 사랑해달라고 애원했다. 

“왈, 멍, 왈왈, 멍멍!” 

아, 나는 대체 언제 말을 할 수 있게 될까. 얼른 말을 배워야 엄마 아빠한테 사랑받을 수 있을 텐데. 

거실에는 개 짖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고, 형준이라고 불리던 고깃덩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미란이 서 있다. 
 

 

 

 

우수상

경품 당첨


 
“또 된 거야? 남들은 한 번도 안 되는 걸 자기는 매번 잘도 되네. 회사에도 경품 당첨되는 것처럼 떡하니 붙으면 참 좋을 텐데.” 

경품으로 온 헤어드라이기를 바라보며 퇴근한 아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 받아놨지?”  

부끄럼 없이 옷을 벗으며 욕실로 들어가는 아내. 지금의 우리는 설렘 따윈 예전에 사라진, 사랑 없는 권태기 부부였던 것이다.  

“이따가 오늘 받은 행운의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려줘.” 탕에 몸을 담군 아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잘나가는 아내와 달리, 반년 전 정리해고로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나. 사십을 코앞에 두고 재취직에 자신감을 잃어갈 무렵, 경품응모나 할까 시작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내는 물론 탐탁지 않은 듯했고 “우리 아이 갖지 않을래?” 하고 무심코 꺼낸 말에는 각방까지 쓰기 시작했다. 경품 응모를 하면서 신기했던 점은 당첨된 물건들이 하나같이 집에서 망가져 사용할 수 없게 된 것들이나 내가 꼭 갖고 싶어 했던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이상했고, 이게 만약 운이라면 얼마 안 가 운이 다 소진될까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전 회사 동료였던 여자에게서 온 “만나고 싶어요.”라는 한 통의 문자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미혼인 그녀는 예쁘지는 않았지만 아내와는 달리 상냥했고 그래서 잠시 사귀었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 나는 지금의 아내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그녀에게 전보다 더 매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의 입에서 “나 임신했어요.”라는 말이 나오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배가 점점 불러오자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내 인생의 마지막 행운처럼 온 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  

“우리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 걸까?”  

떠보듯 꺼낸 말에 아내가 대답했다. “행복은 본인이 만드는 거야.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지금의 나는 가진 것이 없다. 모두 아내의 것. 자연스럽게 지금 가진 것을 유지하면서 새 생활을 시작하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 끝에 나는 그날부터 여행 상품권이 걸린 경품에 응모했다. 혹시 안 되더라도 내 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또 모종의 음모까지 준비하면서. 역시 이번에도 행운이 따랐다. 여행권이 온 것이다. 아내에게 제주도 여행을 제안했다. 웬일로 흔쾌히 승낙했다. 아직 초여름이지만 밤바다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아내는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내 의견을 잘 따라주었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에 이끌린 척 아내를 로맨틱하게 안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방심한 사이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있는 힘껏 깊은 바닷물 속에 처넣어버렸다. 그녀가 괴로운지 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얼마 후 그녀의 미동은 멈췄다. 나는 그 길로 호텔로 뛰어가 아내의 사고를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아내의 장례식 날. 그녀의 회사 동료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여자 후배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선배는 남편 분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남편 분의 경품 취미를 시간 날 때마다 메인컴퓨터로 지켜보고 있었어요.”  

“무슨 말이에요?”  

통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내가 묻자 “원격제어예요. 집의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심어놓으면 다른 컴퓨터에서, 연결된 집의 모니터를 볼 수 있는 거죠.”  

그 순간 여태 있었던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아내가 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고요?”  

“네. 그리고 불임이셨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선배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여행 간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다음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진료를 받았던 병원을 찾았다.  

“남편 분에게는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집으로 돌아와 우편물을 챙겼다. 아내의 카드명세서를 뜯자, 여태 왔던 경품들이 결제되어 있었다. 당첨자 목록에 이름도 없었는데 운이 좋아 당첨됐다고 행운을 믿은 나. 인생에 없을 내 아이가 생겼다고 행복해하던 나. 이런 최악의 바보 같은 내가, 내 생애에서 최고의 경품인 아내를 죽인 것이다. 아내가 타살임이 밝혀졌는지, 창문 너머로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모든 것을 단념한 채 헤어드라이기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퇴근한 아내가 습관처럼 몸을 담갔던 욕조의 물속에 몸을 뉘였다.  

“행운의 드라이기로 머리도 말려줘.”  

살아생전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 말대로 드라이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내를 마지막으로 본 바닷가의 물속에서 그녀가 날 데리러 오는 듯 어둠속에서 헤엄쳐 오고 있었다.
 

 

 

가작

강의실 7101호 

딸깍. 소리가 났다. 

누구지?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다. 

벌써 며칠째 환청에 시달렸다. 소리가 난 곳에 아무도 없으니 환청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귀신인가? 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율곡관 1층의 작은 강의실. 복도 끝에 자리한 이곳은 6시가 넘으면 항상 입을 다물었다. 그저 낮 동안 사람들이 일으킨 먼지가 가라앉으며 투욱 툭 소리 낼 뿐이다. 난 그걸 눈 내린다 말한다.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간 사람들의 발걸음에 눈이 허공으로 솟았다가 다시 소복이 쌓인다. 강의실의 저녁은 항상 눈 내리는 겨울이 한창이고 나는 매번 추위를 느낀다. 

밤마다 강의실을 찾은 지 벌써 수년이다.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 고르고 골라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이 강의실은 내 학창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구도서관 자리로 철학과 전용강의실을 옮기기 전, 이 강의실은 철학과 전공이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이어지던 곳이었다.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고, 창문은 아이비가 넝쿨째 뒤덮어 빛 몇 줄기가 겨우 들어오는 어두운 곳. 그나마 그 너머는 의대건물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젠장 맞을 강의실! 지청구꾸러기 같은 강의실이었지만, 전용강의실이 바뀌던 날, 난 교수님의 삐뚤빼뚤한 칠판 위 글씨와 허름한 책상들의 나열을 꽤 오래 바라보았다. 순간 위잉, 천장 위 프로젝터가 움직였다. 램프 수명이 다한 프로젝터는 누런빛을 쏘아대더니 어느새 다시 원위치로 머리를 돌리고 멈추었다. 그것도 벌써 삼 년 전 일이다.  

내가 이 강의실에서 하는 일이란 그저 하루 종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가끔 아이비 열매의 개수를 세거나 창문 앞 라일락의 잎사귀 수를 세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건 별을 헤는 것과 같아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바람이라도 불면 잎사귀는 그 위치를 바꾸고 나는 다시 하나, 둘…… 헤고 있다. 딸깍, 다시 소리가 났다. 놀라 뒤돌아본 곳엔 무뚝뚝한 표정의 경비아저씨가 서 있다.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날 무시한다. 그가 나가고 나는 그간의 환청이 그의 탓이었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 다시 가만히 앉아있기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멀리 건물 입구에서 자물쇠 채우는 소리가 들린다. 강의실 불을 켜는 법이 없는 나는 아저씨에게 들키는 법이 없다. 아침 5시, 다시 입구는 열린다. 그뿐이다. 

팔 년 전, 내게 작은 사건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고양이와 쥐, 개와 같은 동물들이 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운 겨울밤에 난 곧 잠길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율곡관 옆 구름다리 위를 뛰고 있었다. 술에 취한 내 다리는 휘청거렸고, 어어 하는 사이 나는 5층 높이의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야아옹, 한참 후 나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놀랍게도 사위가 온갖 동물로 가득했다. 무얼 하는 걸까? 고양이가 내 낯을 핥았고, 난 인상을 썼다. 어느새 눈이 내렸고, 주위엔 온통 눈 위에 찍힌 동물들 발자국으로 가득했다. 눈은 계속 내려 내 시야를 가렸고, 나는 젠장, 젠장,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만큼 사랑해!! 팔 년 전 여자친구가 쓴 낙서가 흐릿해지긴 했지만 아직 창틀 아래에 온전히 남아 있다. 내가 죽고 몇 날 며칠을 울던 그녀는 내 후배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앉았던 이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이 나란히 수업을 듣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아이비 큰 잎에 숨어 숨을 죽였고, 난 책상 아래로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았다. 다 지난 일이다. 두 사람이 졸업한 지도 벌써 오 년이나 됐다. 나는 머물렀고, 모두 떠났다. 늙어가는 교수님의 얼굴이 그래도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딸깍,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난 문으로 다가갔다. 웬걸, 소리의 주인공들이 어느새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고양이가 내 다리에 등을 문질렀고, 쥐들은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기니피그들은 구석에서 뭔가를 계속 갉아댔고, 토끼는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어느새 개와 돼지도 들어오고 강의실은 난장판이었다. 동이 터오고 동물들은 하나 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줄지어 나가는 그 끝에 나도 선다. 그들은 줄줄이 창문 밖 동물위령탑 안으로 들어간다. 위령탑 앞에서 주저하던 나는 차마 그들을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 그저 한없이 슬퍼졌다. 결국 나는 다시 커다란 아이비 잎 밑으로 숨어들고 바람에 몸이 흔들렸다. 이내 강의실에 교수님이 오시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기나긴 낮은 끝나지 않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내 입에서 하이쿠 시인 바쇼의 시 하나가 어이쿠 튀어나왔다.  

너무 울어 / 텅 비어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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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152 2011-11-1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대상작 처음 3줄 읽고 "설마 개 아니야?" 헀는데...

clancy 2011-11-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정한 심사를 거쳐 뽑힌 작품들인 만큼 축하드리고 인정받아야 할겁니다. 아쉬움은 내 글 공개로 풀어봐요~ http://clancy.tistory.com/188

비로그인 2011-11-1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4페이지 책읽고 비슷하게 쓰면 대상 주는군. 반전이 심사기준이면 처음 공고낼때 '미스테리 요소가 포함대 있어야 합니다.'는 또 뭐야? 미스테리 요소가 포함 된 것과 4페이지 형식을 따른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심사위원하고 주최측에게 농락당한 기분이다. 그냥 본심작들 제목이나 좍 적어서 우롱당한 사람들 기분이나 풀어달라!

지존뮤탈 2011-11-13 13:21   좋아요 0 | URL
4페이지 미스터리 공모전에서 4페이지 미스터리 단편선에 실린 작품의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을 뽑았다고 지금 주최측에 따지시는 겁니까? 도대체 공모전의 취지는 제대로 알고 공모전에 참가하신 것은 맞나요?
그래놓고 주최측에게 '왜 내 훌륭한 작품이 당선 되지 않았냐' '무슨 공모전이 이따위냐' 하는 식으로 따지시는 겁니까, 지금?

외국소설/예술MD 2011-11-15 11:09   좋아요 0 | URL
자신의 출품작도 수상작에 뒤지지 않는다, 혹은 내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다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submind@aladin.co.kr로 작품을 보내 드리면 이 코너에 똑같이 게재해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다른 분들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지요? (메일 주소를 틀리게 기입해서 수정했습니다;)

지존뮤탈 2011-11-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냐... 사람들이 심사가 왜 그렇게 비틀어졌습니까? 자신이 수상을 못 했다고 깎아내리는 데에 혈안이 된 꼴이라니...
정말 꼴사납군요.

clancy 2011-11-1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소설/예술MD / 메일주소 맞나요? 계속 발송실패하는데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1-15 11:08   좋아요 0 | URL
아...실수가 있었군요.; submind@aladin.co.kr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Moo 2011-11-1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품당첨>은 일본드라마 기묘한이야기의 한 회가 생각나네요. '네카마인 남자'.
표절했다는게 아니고 흐름이 비슷하네요. 남편이 부인을 죽이는 거나 알고보니 부인이 그랬다는거.

미도 2011-11-16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상에 대한 심사평이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라 해서 기대했었는데 반도 읽기 전에 알아버렸네요. 근데 4페이지 미스터리를 조금 읽어봤는데, 비슷한 형식의 글인거 같긴 해요. 어차피 공모전이고 프로가 쓴 글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순 없지 않나요. 무조건적인 비평은 좀 보기 않좋네요.

원더북 2011-11-1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모작 수가 많았던 것에 비해 한 분의 심사위원이 최종 수상작을 가리는 건 객관성이 상당히 떨어져 보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아직도 추리와 미스터리의 불모지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알아줄만한 장르문학 작가 분들이 몇몇 분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 선정도 누구나 수긍할만 한 선택이 아닌 것 같구요. 오히려 여러 심사위원들이 함께 선정한 1차 심사작들이 객관성 면에서는 더 믿음이 가고 궁금할 따름입니다. 본선 심사에서 인터넷 네티즌 투표라도 하셔서 일정 부분 반영하셨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작품의 길이가 짧아서 가능하기도 하고 호응도 괜찮았을 텐데요.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다음 번에 또 이런 이벤트를 한다면 좀 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으면 해서 말씀드려 봅니다.

2011-11-18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8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2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 2011-11-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작 작품이.. 무슨 내용이죠?

Moo 2011-11-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선진출자 리스트는 안올려주시는 건가요? 당선작 발표 이후로 글이 안올라네요.

외국소설/예술MD 2011-12-01 12:29   좋아요 0 | URL
네 본선 리스트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합니다. 늦게 전해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fntlfnvmf 2011-12-0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상은 정말 의외네요.. '산책'이라는 단어에서 정체를 알았는데.. 그런 반전의 글도 심심치 않게 어디선가 봤던 것 같고.. 저는 가작이 감성적이라 너무 마음에 드네요 어쩐지..ㅎㅎ 미스터리한 느낌도 가장 많이 들고..ㅎ

manda 2011-12-07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상 좀 의외...반전을 암시하는 부분도 많고... 반전 자체도 그냥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