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 인터뷰.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라는 것.
저자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니만큼, 그 분들은 서로 다른 개성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금이 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그 사람의 '캐릭터'가 아니라, 그런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진 사람 역시 누군가의 어머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공통점, 혹은 자녀를 두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 아버지들의 공통점이겠죠. 집 나와 산 지 10년을 맞이한 담당MD는 그 '모든 부모님들'의 어떤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이금이 작가의 '보편적 개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소년MD 최원호
-소희의 방
알라딘: 우선 독자 여러분들께 인사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이금이: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까요? (웃음) 작가는 작품으로 인사를 드려야겠죠. 1년에 두 권 정도를 내고 있습니다.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쓰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알라딘: 이번에 쓰신 <소희의 방>은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속편 격입니다. 속편을 쓴 게 처음은 아니신데요.
이금이: 네, 밤티마을 큰돌이네 집이 있어요.
알라딘: 청소년 소설에서 속편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속편을 쓰겠다고 특별히 마음먹었던 적은 없어요. 제가 쓰고 싶다고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요. 독자들이 10년 가까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뒷 얘기가 궁금하다고 편지를 써 주었는데도 그동안 쓰지 못했어요. 그 이야기가 저를 당기지 않으면 저는 쓸 수가 없어요. 저를 포함한 누구도 그걸 쓰겠다, 써 달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거죠. 그래서 원래 속편을 염두에 둔다거나 하지 않아요. 굳이 이유를 두자면... <너도 하늘말나리야> 같은 경우에는 약간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리고 결국엔 저역시도 '아 더 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그건 나중에 든 생각이고,
어느날 강연회를 마치고 오는데, <소희의 방>에 대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쓸 때는 몰랐는데, 쓰고 나서 보니 소희가 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소희의 말들을 따라다니면서 그걸 기록했다는 느낌이었어요. 이 작품을 1년 만에 썼거든요. 제가 장편을 이렇게 일찍 써낸 경우가 없어요.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할까
알라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책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소재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에서 보다 어두운 소재들을 사용하시는데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이금이: 현실이...그렇잖아요(쓴웃음).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대상이 그러니만큼 어두운 얘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청소년 소설의 경우에는 좀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야 하는데, 글과 현실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잖아요. 제가 쓴 글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들어요. 왜 이렇게 모범적인 애들만 나오느냐고도 하고(웃음).
알라딘: 이 질문을 드린 건 08년에 발표하신 단편집 <벼랑> 이후로 더욱 어두운 소재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서입니다.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도 무척 미묘한 결말을 맺으셨고요. 어떤 계기가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금이: 벼랑(웃음). 그거 쓸 때 저도 한참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얘기가 나올 수밖
에 없
었어요(웃음). 우리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무척 많을 때였어요. 평범한 길을 가지 않기로 한 큰아이, 작은아이 생각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죠. <벼랑>에도 그런 '다른 길'을 선택한 아이들이 나오죠. 제 자신이 바로 그 현장에 있었어요. 그래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얘기를 하지 못했어요. 소설 속의 아이들, 등장인물들과 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거죠. 그게 우리 아이들이었고 저였으니까.
<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를 쓸 때는 예전보다 더 현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알라딘: 그렇게 노력하신 이유는...?
이금이: 글쎄요. 원래부터 의도를 가질 수는 없어요. 만약 의도를 갖고 시작했다고 해도 쓰다보면 원래 의도와도 달라지니까요.대신 저는 '이 작가는 우리 현실을 어른 입장이 아니라 우리 입장에서 쓴 것 같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요.
알라딘: 방금 말씀하신 게 일종의 작가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금이: 작가관...이라고 하면 이해와 소통이랄까? 사실 제 글들은 전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비극적인 결말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독자로서도 그래요. 비극으로 종결된 책을 읽고 나서 '그래서 어떡하라구?" 라는 생각이 들면 힘들어요. 실제 현실이 그렇죠. 답이 없고... 그건 저도 아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 알게 될 것들이잖아요. 청소년들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은 친구들이잖아요. 그 친구들에게 미리부터 세상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
알라딘: 그렇다면 <벼랑> 이후에 다소 어두워진 느낌은 어떤 일관된 변화는 아닌 거군요?
이금이: 제가 특히 초기에 비판을 받았던 게, 전체적으로 너무 낙관적이라는 거였어요. 제 성격이 원래 갈등을 싫어해요. 실제로도 막 따지고 해야 할 상황이라도 그냥 '아 됐어' 하고 말아요. 작품에서도 그런 성격들이 드러나죠. 등장인물들이 다 자식 같은데 거기다가 어떻게 막 쏘아붙이겠어요. 못했어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이게 내 작품들의 공통된 약점이 아닌가 해서 노력한 점은 있어요. '문학적'인 노력이죠(웃음). 저는 이야기가 딱 짜여진 게 실제 삶에서도 가능한 걸까 생각을 해요. 생각하다 보면 완전하게 짜여진 플롯과 마무리를 써도 되느냐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게 고민이 돼요.
알라딘: 2006년에 알라딘과 인터뷰를 하셨을 때,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성과는 있으셨는지(웃음).
이금이: (웃음) 제 스스로는 간간히 들어간다고 봐요. 나름(웃음) 구현하고 있어요. 독자분들이 더 잘 아실 것 같아요.
알라딘: 본격적으로 코믹한 작품을 쓰실 생각도 있나요?
이금이: 그건 안되겠어요(웃음). 전체적으로 그렇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알라딘: 얼마전 하셨던 인터뷰에서 시각장애인 어린이들에게 한마디를 요청받은 적이 있으셨죠.
이금이: 네, 오디오북 이야기가 나오면서요.
알라딘: 그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 직접적으로 나 아닌 누군가와 소통하기는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이금이: 장애를 실제로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 세계를 결코 알 수 없는데... 그래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생각하다가 마음의 눈이라는 얘길 하긴 했는데...(한숨) 실제로 시각장애인 아이들에게 그런 얘길 진심으로 할 수는 없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삶을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글을 쓸 때도 간접 경험이 필요해요. 꼭 내가 겪은 일들이 아니라도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가끔은 소설에서는 모든 걸 이해하는데 실제로는 못하는 엄마라는 얘기도 들어요(웃음). 아마 아이들의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래도 노력하는 엄마,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엄마가 되려고 해요. 청소년 소설까지 쓰면서 그런 엄마라니(웃음). 그런데 우리는 그 시기(청소년기)를 지나왔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과 어른이 대립할 때면 어른들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지내본 사람들은 그래도 아니까요. 아직 아이들은 어른이 어떤 건지 모르잖아요.
알라딘: 그럼 그 소통에 대한 생각들이 실제로 자녀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나요?
이금이: 큰 아이는 무던한데... 둘째는 그렇지 않아요(웃음). 이제 다 컸잖아요. 떠나보낸다고 생각해요. 욕심을 가지면 안돼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욕심... 저를 이해해주기보다는 나중에 자기들도 애를 낳아서(웃음) 그 아이들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걸 겪으면서는 알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라도 '엄마 마음을 알겠다'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알라딘: (잠시 침묵. 엄마 생각함) 그런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을 쓰실 생각은 없으세요?
이금이: 저는 픽션이 좋아요(웃음). 논픽션으로 쓸 소재가 생겨도 그걸 가지고 픽션을 쓰는게 재미있어요. 그냥 논픽션을 쓰기에는 아까워요(웃음). 그리고 소설 외에 다른 글을 쓰기가 참 힘들기도 해요. 심사평 몇 줄 쓰는 것도 정말 힘들어요(웃음).
알라딘: 지금까지 말씀하신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꾸로 현실에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피엔딩을 선호하시는 건, 희망 같은 걸까요 아니면 그리 되어야 한다는 당위 같은 걸까요.
이금이: 기본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는 그 댓가를 얻어야 기분이 좋아요. 등장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어떤 이상적인 세계죠.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글 속에서라도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게 좋아요. 인간의 다면적인 모습 중에 굳이 나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고귀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에도 이런 모습들이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끔. 롤 모델을 삼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을 제시하고 싶어요. 다만 그게 문학적으로 얼마나 개연성이 있느냐가 중요하겠죠.
알라딘: 이제 막바지입니다(웃음). 독자분들께 추천하고픈 책이 있으시다면.
이금이: 추천을 잘 못해요(웃음).
알라딘: 그럼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이금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파우스트>예요. 청소년들은 재미가 없을텐데(웃음). 저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어요. 정확하진 않은데 '놀기에는 너무 젊었고 소망하기엔 너무 늙었다*' 같은 문장이 있어요. 대단한 문장이죠. 처음에 다소 지루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참고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 고전을 많이 읽지 못한 게 아쉬워요. 그건 작가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더 느끼게 되는 아쉬움이에요. 고전이, 살아가면서 앞에서 이끌어주는 스승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 읽었더라면.
(*민음사판 파우스트에서는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로 나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라틴 문학을 좋아해요.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요. 이사벨 아옌데 같은 작가들. 주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자신을 극복하는 당당한 주인공들이 멋져요. 독자들에게 기억되는 강렬한 주인공들이죠. 그런 게 좋아요.
알라딘: 마지막으로 이 흉흉한 시대에(웃음) 독자분들께 안부 인사를 전해주세요.
이금이: 요즘 사회 분위기가 참...(웃음). 요즘은 블로그에 글을 잘 못 쓰겠어요. 연평도 문제라거나, 이런저런 문제들 앞에서 일상의 기쁨을 얘기한다는 건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지도 모르잖아요.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위안도 받고...
...미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달려 있어요. 현재를 가장 소중히 여기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알라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