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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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개.

 

개는 발바닥에 까만 굳은 살을 가지고 산다.

새끼때는 그 발바닥이 모두 분홍색이다.

강아지가 성견이 되어가면서, 그리고 얼마나 실외에 노출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발바닥의 색깔과 두께는 달라진다.

 

방에서만 자란 아이와 비와 바람을 맞고 자란 개의 발바닥은 당연히 다르다. 이 소설은 적당히 비와 바람을 맞고 그리고 본능에 충실했던 진돗개의 자전적 이야기다.

 

주인공은 한마리 숫컷 진돗개이고, 그 개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그리고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모든 것이 다 적당한 소설.

 

최근 가장 각광받는 소설가인 김훈의 작품으로 제목과 스토리의 조화가 가장 적절하게 어울리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개를 주인공으로 하거나 동물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소설들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김훈의 개는 개의 본능을 강조하면서 그 본능속에서 인간의 숨겨진 혹은 인간이 숨기고 싶어하는 본능들을 내비쳤다.

 

세상에 나고 살고 여울고 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을 아우루는 조금은 짧은 개의 인생을 통해서 청년기로 그리고 장년기로 가는 작가 스스로, 한 남자의 인생의 돌이킴이라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드는, 숫컷이라는 존재에 대한 투영이 매우 강한, 그런 소설이다.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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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오션 전략
김위찬 외 지음, 강혜구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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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려면 아무래도 이런 저런 공부를 하게 된다.

물론 공부 안해도 먹고 살 수 있겠지만 "잘 먹고 잘 살려면"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어르신들의 가르침.

 

전쟁터와 같은 비지니스의 세계에 뛰어들든가, 누가 등을 떠밀든가, 여튼 모르겠으면 읽어보든가 물어보거나 해야할 것이 사람된 도리라면, 이리 저리 신문에서 난리가 났던 블루 오션 전략이 대체 무엇인가를 좀 알봐야겠다는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가 강력추천한다는 블루오션 전략은 삼성 노트북의 브랜드명으로 낙찰될 정도라는데, 예상외로, 블루오션의 핵심은 매우 간단하다.

 

뭐든지 그렇지 않은가. 규칙은 한 줄의 문장으로 표현될 뿐이다. 실현시키는 데는 한줄의 문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이 책의 요지는 여태 전쟁터와 같았던 비지니스의 세계는 붉은 피로 물들은 레드 오션과도 같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블루오션으로 명명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라는 지령이다. 기존에 있는 동일시장과 동일품목에서 결국 제살 깍아먹기밖에 되지 않는 방법으로 경쟁하려 하지 말고 아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편견들 "원래 그렇게 하는거야"라고 하는 것이 창출해낸 것들이 레드오션이고,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런 타성에 젖어 살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타성에 젖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레드오션은 접어두고 스스로 상품만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점령할 시장까지 만들으라는 것.
그것이 블루오션 전략이다.

 

경영학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대단한 양장본이긴 하지만, 회사내에서 교육을 위한 교재등으로 보기엔 괜찮을 듯.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단하게 신선하다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가 대단하게 신선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생활속에서 경영일선에서 실천하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탁상공론이 이론이 되고 그 이론을 실천하는데까지의 거리는 우리가 가늠하는 것보다 훨씬 멀다.
 

200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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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삼순
지수현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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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촌스러운 이름의 서른살 먹은 여자, 게다가 체격까지 좋으신.. 한 아낙네가 대한민국을 강타하였으니, 그녀의 이름은 김삼순.


그리고 그 김삼순을 만들어낸 자, 1973년생의 인터넷 소설 작가 지수현.

 

드라마가 인기몰이에 진입하던 시점에 간혹 책은 마냥 "즐거움"을 준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신랑이 선물해 줬던 책. 본인은 원래 아집과 우아라는 기괴한 컴플렉스에 둘러싸여 일부의 통속예술분야를 천시하는 아주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 습성을 탈피하려는 방법이 몇가지 있다면 그 중에 가장 약발이 잘 듣는 것은 통속예술로 치부하기 어려운 우수한 작품을 만나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예술작이다 혹은 명작이다. 라고 일컬어 지는 것들의 공통점 중에 한 두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신선미까지 갖추고 있다면 우수한, 인정할 만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만한, 통속예술작품의 명단에 오를 수 있겠는데, 사실 요즘처럼 제목만 잘 갖다붙이면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는, 규칙의 부재, 가치관의 혼란, 다양성의 인정..등등 여튼 정신머리 없는 세상,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세상에 이런 기준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마는, 현실을 돌아보자면 그래도 삼순이가 이상문학상 같은 것을 타거나 현대문학상 후보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이없기와 신선함으로 따진다면 "삼미슈퍼스타즈..."를 썼던 박민규라는 작가도 비등비등하겠지만, 발표매체가 인터넷이었다는 점이 일단 서류심사에서 탈락할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나 할까.

자, 그리하여 별 거 아닐만한, 무시해도 될만한 소설인 지수현이라는 인터넷 작가의 "내 이름은 김삼순"을 쫙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솔직담백한 삼순이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만큼정도만 되는 문체에 있다.


물론 이야기구조에 있어서는 교통사고라든가, 불치병이라든가, 어쩔 수 없는 허무맹랑한 장치적 구조가 존재하여 화려함을 더하고 있지만, 그 외 삼순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와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지나치게 멍청하지도 그렇게 귀여니처럼 이모티콘을 남발하지도, 묘사에만 치중하거나 서술에만 치중하지도 않은 적절한, 딱 "내 이름은 김삼순"에 어울리는 작가의 문체에 있다.
 
드라마와 원작소설은 엄연히 다르다.


리메이크나 리바이벌의 다시 만들기 기법은 창작의 한 갈래이니까.


삼순이의 경우는 연애사건을 중심구도에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에 힘이 부쳐 헉헉대는 젊은 작가의 원작에 드라마라는 살을 입혀 소홀했던 조연들과 주변인물들을 생생하게 살려내었다.

 

물론, 어느 작품이나 읽는 사람맘대로 해석하게되겠지만 원작에서는 삼순이 심리의 울림이 너무나 크고, 작가가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지수현이라는 작가가 더 좋은 작가로 거듭나기 위한 단련의 과정이 아닌가도 싶었다.

 

뭐든지 기대하지 않으면 좋은 소득을 얻는다고 느낀다.


소설 "내 이름은 김삼순"도 인터넷 소설이래..하고 보면 매우 괜찮다는 것. 굳이 찢어발겨 비평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운 글임에는 틀림없으며 3각구도 하나만 가지고 그 긴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내려 노력했던 작가에게는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를 살짝 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발전하기 나름이니까.

 

200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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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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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과연 소설로만 말해야하는가, 작가는 글로써만 말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작가의 글이란 주로 어떤 것들을 말하는가, 그 범위와 한계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의 소설가인 마루야마 겐지의 이 책은 매우 짧은 에세이들이 줄지어 있는 편집본이다. 일단 이 책의 감상중의 하나는 책의 편집이 컴필레이션 음반의 편집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스물 셋에 신인상에 당선되어 여태까지 소설을 쓰고 있는 45년생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을 통해 문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깊은 고민과 통찰이 없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팔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의 강도가 매우 센 편이고, 마초의 냄새가 풀풀 풍기며(성질이 날 정도로 여성비하적인 발언이 곳곳에 뻔뻔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니가 소설을 어찌나 잘 쓰는지 한 번 두고 보자 라는 오기가 생길 정도로 매우 공격적이다. 작가 초년시절에 쓴 글 부터, 최근의 글까지 모아놓고 있는데, 페이지를 넘겨도 작가의 사상은 변함이 없고, 나이 먹으면 변하지 않겠어 하고 뒷장으로 진도가 나가도 똑같았다. 한마디로, 책을 읽고 있으면 짜증이 마구 몰려오는, 아주 성질 엿같은 소설가라는 인간의 욕설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책의 전체 분위기이다.

도시를 벗어나, 아내와 개 한마리를 데리고 시골에서 집필활동에만 전념하는 이 괴팍한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떠나,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 위한 전반적인 필수 자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의 수도승같이 욕심을 끊어버린, 말하자면 작품에 대한 욕심 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천박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라고 단언한다.

약 70페이지 가량을 남겨놓고 이런 성격이상한 인간의 소설도 아닌 글을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출판사나 편집자의 아량으로 마지막 제대로 감흥되는 글을 만난다.

작가의 자세, 그의 말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지만, 문제는 우리가 실천하기 너무나 어렵다는 것, 그리고 이 작가도 이미 이런 잡필로 문단을 공격한 이상,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위험함 때문에 그의 글이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감을 증폭시킬 우려도 있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그리고 글을 쓸 것이라면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동안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본인이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목소리 높여 욕할 수 있는 자신감. 비록 그의 사상의 일부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다원성의 세계에서 이런 사상을 가진 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책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보이고 그런 이유로 쉽게 쓸 것 같고, 그래서 왜 다작을 하지 않는가, 왜 빨리 쓰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겠지만, 글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 사상과 인격이 정립되지 않은 채로 쉽게 기교만 부려 쓰는 글은 언젠가 그 쉰내가 나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수양이 따로 필요없다던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그런 길을 가야하는 것이 텍스트의 범람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양심있는 작가론일 것이다. 적어도 이 작가는 소설이 아닌 쉬운 에세이로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감점이 될 수 있겠지만, 글을 쓰려는 후배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했다는 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여성비하적인 (상당한 수위다) 사상은 절대 옳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도 일종의 시대와 사상의 희생자가 아닌가 싶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문학준비생들의 책이다.

200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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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현대의 지성 118
다케우치 요시미 지음, 서광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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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 문학과 지성사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 역자 : 서광덕

현대의 지성 시리즈 제 118편

서장 : 죽음과 삶에 관해서
제 2장 : 전기에 관한 의문
제 3장 : 사상의 형성
제 4장 : 작품에 관하여
제 5장 : 정치와 문학
결어 : 계몽가 루쉰
부록 : 사상가로서의 루쉰

이 책은 루쉰이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던 1943년에 일본 루쉰연구의 1세대인 다케우치 요시미가 집필한 책이다. 그 책이 일본에서 2002년에 수정판으로 재출판되었고, 2003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번역 출판했다. 루쉰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떤 표현이 필요할까, 중국에서 평가받는 루쉰은 사상가, 혁명가, 문학가, 계몽가로 불리워지고 있고, 아직까지도 중국문학계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고 있다. 아마 중국에서 루쉰을 이렇게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문학으로 계몽했고, 그 문학작품이 지나치게 공리적이지 않았고, 문학작품내에서의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과 행적이 모두 동시대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듯 고노와 분노, 반성과 회의에 가득차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논쟁을 좋아했고 신념이 있었으나 그의 신념은 늘 스스로 고민했고 늘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그것이 루쉰이며 루쉰의 작품들이다. 청나라말을 지나 백화문이라는 현재의 중국구어체를 구사하던 작가들중에 현재 중국문학계에서 백화문을 가장 유연하게 구사했던 사람으로는 루쉰과 모택동이 꼽힌다. (모택동도 문장을 잘 쓰는 것으로 학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루쉰을 그 시대에 동시대 지식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케우치 요시미가 정말 “열심히” 읽어냈다.

중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접근하기 어려운 작가에게 한걸음 다가서게 하고 그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루쉰연구 입문서. 늘 수업시간에 들어왔던 조각조각 부서져 있던 사고들을 한데 묶어주는 기능을 하는 책이다. 이 책을 보내준 친구는 충격에 휩싸였다지만, 아무래도 내 입장은 그정도는 아니었고, 루쉰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중국문학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루쉰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봐야할 필독서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일본의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과연 어디까지 인가하는 존경심과 질투심이 동시에 발생하곤 한다.

200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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