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소설가는 과연 소설로만 말해야하는가, 작가는 글로써만 말해야하는가, 그렇다면 작가의 글이란 주로 어떤 것들을 말하는가, 그 범위와 한계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의 소설가인 마루야마 겐지의 이 책은 매우 짧은 에세이들이 줄지어 있는 편집본이다. 일단 이 책의 감상중의 하나는 책의 편집이 컴필레이션 음반의 편집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스물 셋에 신인상에 당선되어 여태까지 소설을 쓰고 있는 45년생 작가 마루야마 겐지는 이 책에 실린 모든 글들을 통해 문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깊은 고민과 통찰이 없이 문학이라는 이름을 팔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의 강도가 매우 센 편이고, 마초의 냄새가 풀풀 풍기며(성질이 날 정도로 여성비하적인 발언이 곳곳에 뻔뻔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 니가 소설을 어찌나 잘 쓰는지 한 번 두고 보자 라는 오기가 생길 정도로 매우 공격적이다. 작가 초년시절에 쓴 글 부터, 최근의 글까지 모아놓고 있는데, 페이지를 넘겨도 작가의 사상은 변함이 없고, 나이 먹으면 변하지 않겠어 하고 뒷장으로 진도가 나가도 똑같았다. 한마디로, 책을 읽고 있으면 짜증이 마구 몰려오는, 아주 성질 엿같은 소설가라는 인간의 욕설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책의 전체 분위기이다.

도시를 벗어나, 아내와 개 한마리를 데리고 시골에서 집필활동에만 전념하는 이 괴팍한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떠나,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 위한 전반적인 필수 자세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의 수도승같이 욕심을 끊어버린, 말하자면 작품에 대한 욕심 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천박하기 그지 없는 것들이라고 단언한다.

약 70페이지 가량을 남겨놓고 이런 성격이상한 인간의 소설도 아닌 글을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출판사나 편집자의 아량으로 마지막 제대로 감흥되는 글을 만난다.

작가의 자세, 그의 말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지만, 문제는 우리가 실천하기 너무나 어렵다는 것, 그리고 이 작가도 이미 이런 잡필로 문단을 공격한 이상,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위험함 때문에 그의 글이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감을 증폭시킬 우려도 있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그리고 글을 쓸 것이라면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동안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어떤 자세로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본인이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목소리 높여 욕할 수 있는 자신감. 비록 그의 사상의 일부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 할지라도, 다원성의 세계에서 이런 사상을 가진 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책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아 보이고 그런 이유로 쉽게 쓸 것 같고, 그래서 왜 다작을 하지 않는가, 왜 빨리 쓰지 않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겠지만, 글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 사상과 인격이 정립되지 않은 채로 쉽게 기교만 부려 쓰는 글은 언젠가 그 쉰내가 나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수양이 따로 필요없다던 어느 스님의 말씀처럼, 그런 길을 가야하는 것이 텍스트의 범람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양심있는 작가론일 것이다. 적어도 이 작가는 소설이 아닌 쉬운 에세이로 자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감점이 될 수 있겠지만, 글을 쓰려는 후배들에게 자기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했다는 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여성비하적인 (상당한 수위다) 사상은 절대 옳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도 일종의 시대와 사상의 희생자가 아닌가 싶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책을 읽을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문학준비생들의 책이다.

200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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