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6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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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우리 문학선생님은 안모모씨라는 소설가였다.

그가 쓴 소설들은 매우 맘에 들었지만, 작품수가 많지 않았고 그리고 인기작가는 되지 못했다. 그의 소설은 그저 괜찮은 소설로 문학계에서 구석자리 한 군데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듯 했다.후에 학교를 그만두고 그의 모교에 강사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좋은 소설가가 되어주길 기원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문구라는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늘 그가 생각났다.한 두번 술에 취한 채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고 매우 재미나고 엉뚱한 행동을 잘 하기도 했던 그 선생님은 대회란 대회에선 모두 상을 휩쓸던 우리 학교의 잘나가는 문예부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 중 그의 총애를 받던 한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문구"라고 대답을 했다 하며 역시 싹수가 있는 학생이라고 극찬을 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무얼 읽고 있었나. 수능필독한국소설따위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문학수업시간은 늘 한 사람이 소설을 강독하고 아이들은 완전히 듣기 능력으로만 그 소설들의 줄거리를 정리하고 평론을 쓰는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하면 동백꽃이나 봄봄을 맛깔나게 읽을 수 있을까를 고심했던 고정 강독자였다. 그의 칭찬을 받던 아이가 좋아하던 이문구라는 소설가는 "관촌수필"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것만 알았지, 그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읽으려는 시도도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지나 작년 가을 서점에서 우발적으로 이 책을 샀다. 사고 나서도 책장에 오래도록 꽂아두었다.

 

관촌수필은 뼈대있는 집안 출신 이문구 작가자신의 고향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작가가 직접 밝혔듯이, 실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직접 들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그의 유년시절을 만들어준 관촌이라는 그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조금 더 신경써서 잘 써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77년도에 발표된 이 작품을 30년만에 읽는 느낌은, 물론 옛날 소설이 맞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만한 글재주를 가진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글재주는 투박하고 과장되지 않은 묘사에 있고 향토적 색채가 가득한 사투리의 현란한 구사에 있다. 충청도 사투리에 거친 입담, 그들의 상욕까지 모든 것은 문학적 꽃으로 피어날 만큼, 정말 아름다운 묘사들을 이룬다. 왜간장에 찍어 청국장에 찍어죽일 놈이라니, 아, 이다지도 현란한 욕을 나는 우리 모친 이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한국말의 상말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욕설만이 비유와 묘사, 기지넘치는 해학이 가득한 표현의 정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듣던 똥물에 튀길, 개가 차갈, 거지가 물어갈, 등등..의 묘사가 바로 여기 이문구의 소설속에 더 멋진 해학스러운 욕설들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고, 지루한 듯하게 빽빽한 묘사속에 중심되는 진짜 재미난 이야기들이 큰 맥을 갖추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연작소설인지라 일락서산, 화무십일,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등 몇 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어서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곱씹으며 줄 쳐가며 읽으면 더 값어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그 소설의 여운은, 신림 6동 시장앞에 소반을 내놓고 파는 장사치를 보고 어디선가 소반사려를 외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솔이 할아버지가 생각이 나는 것으로 다시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 바로 지금 이 시점 2007년도에 이렇게 살아숨쉬는 한국어를 묘사할 수 있는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큰 스승으로 모셔야 할 소설이 아닐까 한다.

 

200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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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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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 Miscellany / 경수필  이 책의 원제는 A Shite History of Nearly Everything 이다. 거의 모든 것의 개똥같은 역사라니.. SHITE 라는 단어는 똥이라는 속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불필요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책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경수필이 이런 형태였는가? 하고 의심을 할 정도로 매우 간략하며 정확하게 그리고 위트있게 적혀있다. 책의 초반부에는 마치 상식을 나열한 상식백과사전처럼 느껴져 거부감이 일 수도 있지만 뒤로 갈 수록 저자의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그에 대한 패러독스, 그리고 위트등을 느낄 수 있다.

 

제목은 매우 애매모호하게 어떻게 보면 역사서치고는 너무 경박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의 자연사 / 거의 모든 것의 문화사 / 거의 모든 것의 생활사 / 거의 모든 것의 과학사 라고 네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자연사에는 홍수, 태풍, 남극과 북극 등 간단한 명제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명쾌한 해석, 예를 들어 진화론 : 과학의 진보 혹은 지적 사기? 이런 표제어들과 작은 사이즈의 책의 한 두 페이지에 걸쳐 그 표제어에 대한 상식과 사실들, 그리고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적어두었다.

 

이 책은 책 날개에 적혀있는 인상깊은 해설이 책의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아파트 난방 장치가 고장난 어느 겨울 날 추위를 잊는 방법으로는 좀 엉뚱하게도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한 편린들을 위트와 풍자를 곁들여가며 노트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빅뱅과 창세기에서 시작해 대륙이동설과 다윈의 진화론을 거쳐 우주팽창설에 이르기까지 130억 7000만 년에 이르는 초인류사를 '거의' 빠짐없이 기록한 그의 집필은 난방 장치가 필요없게 된 초여름이 지나서야 비로소 끝을 맺었다."

 

그러니까, 나이가 지긋하신 한 역사학자가 손주를 앉혀놓고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는 식으로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롭게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이 이렇게 많은 장으로 나뉘어 있으면 읽는 사람은 부담이 덜하게 마련이다. 책의 사이즈 역시 손에 딱 들어오는 작은 판형인지라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니기도 좋고 화장실에서 읽기도 좋다. 역사에 대해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너무 가볍다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나도 초반에는 이게 무슨 퀴즈대회 대비용 상식사전인가 싶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어떠한 사실에 대해서 위트와 풍자를 곁들일 수 있다는 것은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은 할 수도 없는 일이며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역사밖 이야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우리가 배우고 익혀온 역사적 진실들에 대해서 진정한 "역사적 철학"의 자세로 되새기게 한다.

 

어찌보면 상식의 나열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사실들이 열거 되기 때문에 독서중 타성에 빠져 집중을 하지 못하거나 기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화장실에 꽂아놓고 틈나는 대로 다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한 사람이 읽어주고 모두들 흥미롭게 들을 수도 있을 법한, 대중성과 보편성을 지닌 재미난 책이다.

 

200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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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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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 최고의 미래학자, 미래를 예견하는 지식인 앨빈 토플러의 신작, 부의 미래.

자, 앨빈 토플러의 21세기를 논하는 신작이 나왔으니 다들 읽어보세요. 라고 간단하게 리뷰를 적어도 될 만큼 어떻게 보면 변화하는 세상에 관심 있는 모든 자들에겐 필독서일지도 모를 앨빈 토플러의 책이다.

그의 지난 저작들인 제 3의 물결, 미래쇼크, 권력 이동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이끌었고 어쩌면 그가 예언자인지 지도자인지 모를 정도로 그가 예측한 미래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딱딱 맞아 떨어졌다.

문제는 앨빈 토플러의 책은 출판과 동시에 읽어야 그 값어치가 더하다는 것이다. 2006년도에 출간된 이 책은, 예전 다른 저작들 보다도 급변하는 세계정세 때문에 몇 달이 지난 다음에는 그가 예견한 사회의 중요한 요소들이 변화해버리곤 한다. 어쩌면 그가 책을 집필하고 있는 중에도 1장을 쓰고 있다가 3장의 초고를 고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기업들과 국가 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1년이 지나면 기술 분야엔 엄청난 진보가 따른다. 2006년도에 출간된 이 책이 PROSUMER의 정의를 내렸을 때 미국에서는 TIVO라는 선택형 TV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하나 TV나 스카이라이프가 시작되기 시작했고 삼성 전자는 2006년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여 전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있던 2007년 1월 후세인이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만큼 이 책은 속도가 생명이라 매우 예측하기 어려운 우리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실었다. 저자의 핵심은 이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심층 기반이 변화하면서 부의 대한 가치가 재정립되는 것에 대한 미래 레포트이다. 저작의 원서제목은 Revolutionary Wealth 인데, Wealth란 단순히 경제적인 의미의 풍요로움을 말하기 보다는 한자어인 富와 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풍요로움, 풍족함, 그리고 가득한 그 어떤 것. 단순히 경제적인 것, 혹은 화폐경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가 될 수도 있고 물리적 가치가 될 수 있는 것. 그 부의 미래의 심층기반의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바로 “지식”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어떤 단편적인 사실들의 기억이나 암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판별해낼 수 있는 것, 그런 진실을 또 관리하는 것, 정보의 관리의 유통의 능력, 추정과 단편적 사실들의 조합등을 이른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시대는 시간이 재정렬되는데 기존에 정해져 있던 시간들의 단위는 매우 복잡하게 세분화되고 재정립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날짜 변경선을 날아서 왔다 갔다 하는 비행기속에서의 시간처럼, 시간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상에서의 시간처럼 말이다. 또한 동시에 공간도 시간처럼 재정립하고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미래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는 프로슈밍의 시작이고 로마 멸망기에 해당하는 데카당스와 같은 시절이 도래한다. 최대의 권력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어느 한 순간 몰락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고, 미국의 종말, 혹은 유엔의 재편, 한 국가의 붕괴나 몰락등으로 인하여 일파만파 변화할 수 있는 여러가지 위험요소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저자는 자본주의가 과연 영원할 것인가, 화폐 경제가 과연 무궁할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한다. 그리고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빈곤 은행 설립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빈곤의 미래와 빈곤의 해소 방향에 대해서, 에너지의 재분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그리고 우리의 빈곤을 해소하고 난 후 세계의 지각변동에 대해서 논한다. 세계의 질서가 재편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땅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반도와 유럽의 미래, 미국의 내외부를 통해, 그리고 국가간의 경계를 초월한 각 단체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은 그 순서마저 기승전결이 논리정연하여 이렇게 리뷰를 쓰는 나로서도 너무나 편안하기 그지없다. 그저 이 책이 두려운 것은 너무 두껍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나 정확하기 때문에, 도대체 앨빈 토플러가 학자인지 무당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의 그의 정확한 예측에 대해서 나는 매우 놀랍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느끼는 것은 역시나 인간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신이 내려 작두를 타는 무당이 아닐진대 (그렇게 알려진바 없으므로 그것을 진실이라 한다면), 과거와 현재의 자료만을 가지고 이렇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딱딱 맞춰내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지 3일이 되었는데 여의치 못하여 이제사 리뷰를 쓰니 감흥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멋지게 살고 싶은 인생의 욕심이 남은 사람이라면 절대적으로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면, 당신의 인생의 미래도 별 볼 일은 없을 지도 모른다. 
 

2007.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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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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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이라, 책 제목은 평양이라는 지역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와, 프로젝트라는 외래어로 합성되어 있다. 나의 선입견으로는 왠지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이다. 평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지역성은 폐쇄된 사회의 수도라는 생각이 들어 프로젝트라는 외래어는 어울리지 않고 북한에서 즐겨 쓰는 더 순수한 우리말이나 아니면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중국어를 그대로 차용한 단어를 써줘야 더 잘 어울릴 듯 하다. 평양계획, 따위의 제목말이다.

이 책은 만화작가 오영진씨가 고난의 행군시절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후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2000년도까지 진행되었던 당적 구호정신 운동) 북한에 체류했던 경험을 토대로 지은 픽션이라 한다. 그 프롤로그를 나중에 읽은 나는 책을 읽는내내 모든 것을 다 실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들은 진솔하고 가식이 없어서 현실에서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주인공 오공식이라는 인물도 사상으로 무장되었거나 특별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아주 평범한 남한의 적당히 속물적이고 적당히 게으른 소시민이라는 것.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가 평양에 도착해 한 사무실에서 세 사람의 북한 사람과 이런 저런 취재를 하면서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들여다보는 동안 네 사람은 사상과 경계를 초월한 인간적인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물론, 오공식은 때로 북한의 사상과 선전구호에 넌덜머리를 내고 (아리랑 축전에 대한 그의 태도) 나불거리는 입 때문에 주변인물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에피소드들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아서 적당히 쉬쉬하며 넘어갈 수 있는 북한사회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은 더 느슨한 면모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북한, 하면 긴장감부터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들을 풀어주는 듯 하다. 그런 이유로 책 속의 내용이 사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는지.

나는 만화라는 장르에 매우 약한 사람이다. 그림이 들어간 글은 글로 지루하게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그림이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매체로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나는 그런 그림을 글처럼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그림과 글을 동시에 보면서 조합해내는 능력이 떨어져서 그림을 따로 보고 글을 따로 보는 이중적인 독서를 하게 되기 때문에 만화를 꺼리는 경향이 있고 그런 이유로 만화책을 볼 때는 남들보다 놓치는 부분이 더 많다고 할까. 그러나 만화라는 장르는, 일단 그림이라는 구체적인 매체가 있기 때문에 독자의 신경의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장점이 있다. 편안하게 볼 수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읽고 있던 책을 잠시 치우고 이 책을 집어들었으니까.

이제는 통일 전망대라는 프로도 대낮, 시청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로 옮겨갔다. 극중에 나온 배기자의 이야기처럼 남쪽 사람들은 먹고 사는데 바빠서 통일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평양프로젝트라는 책을 읽는 우리의 자세도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하는 호기심이 통일에 대한 염원보다 더 높지 않을까. 책에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생활속으로 깊게 밀어넣어 이북식 김장김치 속에 들은 동태살처럼 잘 숨겨두었고 그저 거기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이 그저 우리의 70년대 정도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요즘은 책을 보게 되면 소장가치를 따지게 되는데, 이런 책은 온 집안 식구들이 골고루 읽을 수 있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만한 책이므로 책꽂이에 꽃힐만하다할까. 조금 가볍게 시작했던 평양프로젝트, 작가가 많이 고민하고 많이 연구하여 만든 책이라는 생각에 책 표지의 한반도 그림을 자꾸 만지작거리게 된다. 
 

2007.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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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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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멕시코 이민자들을 태운 영국 상선 일포드 호는 1905년 4월 초 제물포항을 출발한다. 국운이 기울어 가던 때였다. 이들 이민자는 유카탄 에네켄 농장 이민 브로커 존 마이어스와 일본 대륙식민합자회사가 1904년 10월부터 모집한 한인들이었다. 1천33명의 이민자들은 남자가 702명,여자가 135명,아이가 196명이 었다. 40여일간 항해 중 아이 둘과 어른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태어났다. 1905년 5월 12일 멕시코 중서부 태평양 연안 살리나 크 루스 항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남부 유카탄 반도 메리다로 이동 해 에네켄 농장에서 한많은 이민 생활을 시작한다. 현재 5세대까 지 내려오고 있는 멕시코 한인 후손들은 최소한 3만명이 넘는 것 으로 추산된다.

에네켄은 선박용 밧줄 등의 원료가 되는 용설란의 일종. 이민 1세대들은 멕시코에서의 첫 이민 생활을 메리다 일대 에네켄 농장에서 일해야만 했었다.

장미희 임성민 주연의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에네켄 농장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영어도 스페인어도 몰랐고 단지 에네켄이라는 식물의 이름은 애니깽으로 와전되어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니깽이 되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은 멕시코 이민 1세들의 이야기이다. 멕시코라는 땅에 처음으로 조선인들이 말을 디딘 바로 그 사건, 1033명의 한인들이 1905년 5월 12일에 멕시코 중서부 살리나 크루스 항에 도착한 그 사건, 그 1033명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어떤 소설이 딱히 가치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힘이 조금 더 드는 소설이 있고, 좀 더 자유로운 소설이 있을 뿐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자료가 많이 필요한 소설이다. 멕시코 이민사를 이해했어야 했고 그에 대한 정확한 수치들이 남아있다면 그런 수치들도 필요했으며,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지만 기본 소재는 사실에 입각한다. 거기에 소설가는 살을 입히고 윤기를 낸다. 그리고 멕시코라는 땅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다. 작가 후기에 밝혔듯, 이 소설은 누군가의 피로 쓰인 한 줄로 시작한 소설이며, 잘 정리된 자료들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는 소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를 부인과 함께 답사하며 소설의 많은 부분을 완성했다고 했다.

1033명이 자세한 내막도 모르고 그저 墨西家라는 미지의 땅을 향해 배를 탔다. 그들은 멕시코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고 그만큼 그 나라에 대해서 무지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막연했다. 그저, 이러나 저러나 비슷한 목숨이라는 절망적인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출항을 설레이게 했고 그들을 신대륙의 꿈으로 유혹했다. 미지의 세계는 위험이 동반된다. 새로운 것들은 항상 불안한 미래가 동시수반된다. 그러나, 무지몽매했던 계몽기 조선인들에게는 단지 불안한 미래가 아닌, 인류의 정의가 불분명한 세계로의 진입을 뜻했다. 그 때는 아마 백인들 눈에 백인들 외의 다른 인종들, 누렇거나 붉은 인종들은 유인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유인원을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하느냐를 놓고 아직도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오로지 가진 몸뚱이 하나로 버텨야 하는 노동계약에 팔렸지만, 인간이길 주장했고 인간으로 남기 위해 투쟁한다. 스스로 투쟁하고 이웃과 투쟁하고 농장주와 권력에 투쟁했다. 그리고 결국 남의 나라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싸우고 전쟁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소모품들이 되어간다.

사람이 운명이란, 참으로 절묘한 것이라서,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처지들이 많으며, 한 번의 결정이 예상보다 수만배 더 큰 효과를 내어 인생을 홀라당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스스로 그 운명의 꺽이는 점을 잘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은꽃은 인생이 뒤집어진 사람들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부턴가 작가의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는데, 작가 스스로 참 뿌듯하고 즐거웠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격동의 시기, 작가 말대로 매력적인 연대인 1910년대에, 격정적인 인물들을 창조하고 그들의 후일담까지 마지막으로 적으면서 작가는 정말 이 소설을 끝내고 싶지 않은 아쉬움에 휩싸였겠다고 생각했다.

첫 날 책을 4분의 1정도 읽고 그 다음날 새벽에 책을 잡기 시작해 다 읽고 나니 아침 7시였는데, 자리에 누우면서 나는 검은 꽃을 영화로 만든다면 배우를 누구를 캐스팅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연수는 아무래도 고현정밖에 없어. 김이정은 예전같으면 최재성이 적당할텐데, 조금 더 젊은 배우가 필요해. 그렇다면 이번에도 고현정의 짝은 천정명 뿐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소설을 읽고 나만의 화면에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재미난 소설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야기꾼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영하의 검은 꽃, 새해를 여는 소설로 박진감과 긴장, 그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다듬기에 충분히 멋진 책이다.  
 

2007.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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