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반절 읽다

요하나 옥살라,『HOW TO READ 푸코』를 조금 읽고 감탄하다

C. S. 루이스,『오독』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을 조금이나마 읽고 자기만족하다

폴 비티,『배반』을 20페이지 읽고 설레다

임현,『그 개와 같은 말』가운데 세 작품을 읽고 임현에 대한 선입견을 교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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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도서관이 쉬는 날이라 모처럼 syo도 쉬었다" 라고 당당하게 쓸 수 있으면 좋았겠으나 실상은 "모처럼 도서관이 쉬는 날이고 평소처럼 syo도 쉬었다"에 가깝다. 이제 저 공부하니까 알라딘에서 자주 못 볼 거예요, 라는 요지의 글을 올리고 이웃들에게 그 많은 화이팅을 받아먹은 부끄러운 추억이 아직 채 건조도 되지 않아 축축한데...... 마치, 꺼져가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총동원해 삐뚤빼뚤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는 의식을 놓았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가 다가오며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이 들어 버린 피해자처럼 민망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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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의『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읽으며 뭐가 돼도 될 사람을 선별하는 기준의 하나로서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경이로운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양반은 '포탄이 떨어져 누구누구가 죽었다, 지금도 참호 속에 숨어 담배를 맛있게 태우면서 적이 쏘는 총소리를 듣고 있다.' 라는 일기의 말미에 'XXX의『YYY』를 읽다' 라고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딱 세 줄을 쓰고 마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기를 매일매일 남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우리가 모두 아는 오즈 야스지로가 되었다, 라는 식의 비약적인 결론까지야 가능하겠느냐만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syo의 방은 총소리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가끔 syo가 코 삼키는 소리 크게 들릴 뿐이고, 엄마는 자꾸 치즈케익을 먹인다. 이런 달착지근한 평화 속에서도 하루 한 쪽의 일기를 남기지 못하다니, 그래서 syo는 자라봤자 syo가 될 뿐이었고, 도리 없이 syo로 살다가 그저 세상의 한 줌 부식토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런 sy.....syo. 라는 식의 비약적인 결론까지야 가능하겠느냐만은,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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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니까, 며칠 안 남은 2017년의 날들을 꾸준히 올 한해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데 써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가장 핫한, 솔제니친의『수용소군도』를 구매했다. 돈도 없는 백수가 읽을 시간도 없는 6권 2800페이지짜리 세트를 구매하여 교양의 사다리 꼭대기라도 올라선 것처럼 의기가 양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알라딘과 여러 이웃분들의 덕이다.


뜨내기였던 syo가 알라딘 세상에 정착한 것은 2015년경이었다. 로쟈님의 서재를 RSS로 구독하다가 다른 훌륭한 회원님들의 글을 접하고는 아예 입주를 하였다. 그때도 읽는 양은 꽤 되었는데 쓰는 건 또 보릿고개 쥐똥마냥 쓰면서, 그저 여기저기 다른 서재들을 기웃거리며 감탄하고 이웃을 늘려가기 바빴다. 그러다 탄핵과 대선이 끝나고 syo의 서재를 한 번 뒤집어 보니까, 아니 뭐 책 이야기는 읽을 만한 게 하나 없고 온통 특정 정치인 까는 글, 특정 정치인 지지자 까는 글, 특정 정치인 지지자 까는 글 까는 글, 특정 정치인 지지자 까는 글 지지자 까는 글 까는 글 지지자 까는 글 까는 지지자 까는 글...... 


그래서 마음을 바꾸어 먹고 그간 읽었던 모든 책 목록을 초기화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0권부터 서재를 채워나가기로 결심했던 것이 5월 어간이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멍청했던 게, 아니 syo야, 생각을 해 봐라, 글이 빙구라 빡쳤으면 글을 초기화하고 글을 다시 써야지, 읽은 목록을 초기화하고 다시 읽기 시작한다고 글변비가 뚫리겠냐고. 그러니 내가 syo지. syo는 자라봤자 syo가 될 뿐이었고, 도리 없이 syo로 살다가 이런 sy...... 하여간 새 마음 새 뜻으로 책은 실컷 읽었으나 5월 역시 꼴랑 3개의 글, 분량과 품질 양면에서 누가 봐도 하자인 글 3개를 남기고 폭침하였다. 결국 뭐 하나 달라지는 것 없이 쳐먹기만 하고 싸지를 못하는 인생이 이어지려는 그 5월 말, 저 높은 곳에서 내 일상을 망치려 살랑살랑 내려온 구원의 손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알라딘 세상의 흥망성쇠를 누구보다 똑똑히 지켜봐 온 사람, 알라딘 마을의 유지, 의식의 흐름 기법 리뷰의 장인, 썩 좋은 책 두 권을 상재한 작가 ㄷ님의 등장이었다.


참 우연찮게 syo는 그 ㄷㄹㅂ님과 책 두어 권을 같이 읽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래저래 상당한 양의 격려와 뽐뿌를 받았다. 과연 알라딘 마을의 유지라는 표현에 전혀 손색이 없는 다ㄹㅂ님,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카리스마가 있던지, 쓰세요, 많이 쓰세요, 우리 열심히 쓰고 읽자구요! 하시면, 이 바닥에 발 붙이고 살려면 이건 거스르면 안될 것 같다는 희한한 압박감이 생기는 것이다. 다락ㅂ님은 애프터 서비스도 확실하셔, syo가 모자란 글을 올려놓고 쭈뼛거리고 있다 싶으면 막 과한 칭한을, 와~ 재밌다, 와~ 잘 썼다, 어찌나 둥가둥가를 해주시는지, syo도 가끔은 정말 오, 내가 잘 썼나 본데? 하면서 괜히 막 배 내밀고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배 내밀고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확실히 다락방님의 칭찬과 격려의 당근당근 대작전은 가시적인 성과를 낳았다. 7월부터는 뭐라도 써서 올린 날이 아닌 날보다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웃이 늘고, 여기저기서 당근이 막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당근, 저기서 당근, 여러분 전 토끼가 아니예요, 당근이 과해요, 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참 좋았다. 살며 별로 칭찬을 받아본 일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당근은 실물로 손에 들어오기도 했다. 7월부터 11월까지, 알라딘은 syo에게 매달 4만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쏘았다. 사실 그건 이웃분들이 쏜 것이다. 이웃분들 덕분에 syo는 올해 『자본론』을 사고(읽지는 못했고), 『제2의 성』을 사고(얘도 역시 읽지는 못했고), 이번에는『수용소군도』까지 살 수 있었다(잠깐, 그럼 얘도 설마......)  


여전히 syo의 글은 후지다. 문장 자체가 후지고 나달나달하며 비문 천지다. 글의 재미로 치자면 다락방님이나 곰발님의 글에 한참 멀었고, 형식이나 함량으로 보자면 이런 글들을 리뷰나 페이퍼랍시고 올리기에 사이러스님, 겨울호랑이님, 레삭매냐님을 비롯해 꾸준하고 묵직한 글을 쓰는 분들께 민망할 지경이다. 단발머리님이나 서니데이님처럼 따뜻하게 읽히는 글도 역량 밖이고, 아갈마님이나 야무님의 깊이에는 항상 고개를 숙일 뿐이며, 벤투의스케치북님이나 몰리님의 글은 그저 입을 떡 벌리고 읽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나질 않는다. 요즘은, 프리즘메이커님 저 양반이 마침내는 어디까지 도달할까 경탄 중이고..... 이외에도 일일이 언급하면 스크롤의 압박을 시전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웃분들의 글을 통해 정말 열심히 감탄하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 


4만원 별 거 아닐 수 있고, 이웃분들은 그런 거 신경도 안쓰시겠지만, 그래도 가끔 syo가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빼앗아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수용소군도 주문하면서 좀 오래 망설였다. 진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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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항상 모자란 syo의 글을 읽어주시고, 칭찬해주시는 이웃분들께. 


여러분은 에티켓 차원에서 칭찬하시고, 아무 뜻없이 좋아요를 누르고 가셨는지 모르지만, 모니터 너머에서 그 칭찬의 댓글과 좋아요를 보고 있는 syo는 사실 좋아서 아주 춤을 추는 중이었습니다. 춤을 하도 춰서 다리에 근육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상하체 균형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책임지세요. 균형을 잡기 위해서 2018년의 칭찬에는 상체 위주의 브레이크 댄스로 대응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알아두시라구요. ㅎ.


아직 스무 밤이나 남아서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분 2017년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읽어 주는 사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syo에게 알려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남은 한 해 따뜻하게 엮으시고 내년에도 우리 모두 힘껏 읽고 힘껏 쓰는 한 해 만들어요.


분노의 포도알갱이 sy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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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2-1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이 사람좀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2-11 22: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7-12-11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1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도 열심히.책읽기도 열심히 글쓰기도 열심히 하세요! 기왕이면 연애도.

syo 2017-12-11 22:22   좋아요 1 | URL
연애는 열심히라기보다, 굴곡을 최소화하면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번에도 sprenown님의 화이팅이 제일 힘이 되었었죠.

감사합니다^^

캔디캔디 2017-12-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른 연말인사에 저도 웃으며 좋아요 합니다. 춤춤춤춤!

syo 2017-12-11 22:23   좋아요 0 | URL
올해까지는 하체 위주로 ㅋㅋㅋ

chaeg 2017-12-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용소군도를 사셨군요. 1500권 한정인데, 하나 줄었네요.. 아..안돼..

syo 2017-12-12 06:5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망설이시다 곧....

스윗듀 2017-12-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름 알라딘 마을에 기웃기웃하면서 때론 철새처럼 때론 텃새처럼 어디 끼어들데 없나 비집고 들어가고싶어 안달난 사람 중 하난데 최근에 이웃된 syo님을 보고 하 이 사람 뭐지 고수에다가 글도 재밌게 쓰네 왜 그동안 몰랐지 내가 알라딘에서 그렇게 쩌리인가 하 자존심 상한다 이랫는데 그랬군요. 그랬던 거였군요 반가워요 syo님 글 재밌게 잘읽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하 그나저나 나도 ㄷㄹㅂ님한테 둥가둥가받고싶다!!!!! 막 과한 칭찬 나도 받고싶다ㅠㅠㅠㅠㅠㅠㅠ 오늘 할머니 제사 지냈는데 엄마가 오빠랑 차별하는 거 때문에 빡쳐서 혼자 다락방님 생각하면서 다락방님한테 위로받고싶다 윤김지영선생님 책 읽고 다락방님한테 뿌잉뿌잉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난 여기에 지금 이 말을....아무튼 syo님 재밌어욬ㅋㅋㅋㅋㅋ

syo 2017-12-12 06: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 아카데미 1기 수료생 syo입니다. 다락방님 둥가둥가 코스는 다락방님 서재에서 접수가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재 방문하셔서 ˝여기가 그 유명한 다락방 아카데미인가요? 소문 듣고 왔습니다.˝라는 댓글로 접수하세요 ㅎ

syo는 스윗듀님 때문에 또 춤을 추러 가야 해서 이만 ㅎㅎㅎ

다락방 2017-12-12 11:26   좋아요 0 | URL
아이고야 스윗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스윗듀님. 윤김쌤 책 읽으러 갑시다. 읽고 전투력 상승시킵시다. 그래서 앞으로 전진합시다! 전진하는 그 길에 제가 옆에 있을 것이며, 그 와중에 둥가둥가는 틈나는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바꿔,바꿔, 세상을 다 바꿔!!

독서괭 2017-12-1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 내밀고.. ㅋㅋㅋㅋ 아 syo님 왜이리 귀여우신가요.. 귀여움만큼은 ㄷㄹㅂ님이나 다른 모든 분들보다 월등하십니다. 글의 매력도 결코 떨어지지 않고요. 너무 재밌어서 한두번 더 읽어보기도 한답니다.
자 이제 춤을 춰주세요!!ㅋㅋ

syo 2017-12-12 09:01   좋아요 1 | URL
syo는 원래 귀염 숭배자입니다.
좌우명은 ˝귀여움이 모두를 구원하리라˝

그리고 사실, 배는 내민 게 아니라 나온 거랍니다.... 가만히 있어도 지가 알아서 돌출이ㅠㅠ

슬픈 춤을 추겠어요ㅠㅠ

덩실덩실

cyrus 2017-12-12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대구를 떠납니까? 떠나기 전에 유레카님과 함께 주말에 만났으면 좋겠어요. ^^

syo 2017-12-12 13:46   좋아요 0 | URL
연초에 두어 날 지나면 갑니다 ㅎ
만나는 일이야 좋지요~ 같은 고장에 살고 있다는 걸 안 지도 한참 되었는데 우리가 그간 한 번을 못봤군요.

수이 2017-12-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용소군도!!!!!!!! 저 지르러 가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syo님! :)

syo 2017-12-12 16:08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1500명 중의 1인이 되셨군요! 제 건 오늘 당도한다는 소식입니다!!

내년에도 야나님의 좋은 글을 열심히 읽겠습니다!^^

2017-12-1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2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2-14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연말이 많이 남았기에 미리 새해 인사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syo님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알기론 13세기 칭기스칸의 몽골 경기병이 묵직한 독일 기사단을 전멸시킨 것으로 알고 있어요. syo님의 글은 경쾌하면서도 잘 읽혀 많이 부럽답니다. 새해에도 하시는 일 이루시면서, 경쾌한 글 잘 부탁드립니다^^:

syo 2017-12-14 15:06   좋아요 2 | URL
2018년에는 저도 겨울호랑이님처럼 꾸준하고도 묵직한 글을 지향하면서 (사실 계속 그러고 있었는데 그게 안 됐을 뿐이지요ㅠㅠ) 읽고 쓰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또 겨울호랑이님 서재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열심히 읽어야 되겠지요.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5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쇼님 ^^잘 봤습니다 ~

syo 2018-12-25 19:12   좋아요 1 | URL
이런 마음 비슷한 마음이신거죠?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5 19:19   좋아요 0 | URL
젊은 선배님, 동감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