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읽은지 한참 되어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암컷들>의 전자책이 이번 주 동안 100% 페이백 하고 있다는 알림을 본 김에, 짧게 남긴다.
한 때 동물행동학을 공부하고 싶어했었지만 동물의 행동이 궁금했을 뿐이지 인간의 행동이 옳다 혹은 '자연'스럽다 는 근거를 대려고 자연에서 비슷한 예시를 찾으려는 것 자체에는 의문을 갖고 있다.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한 때에 비하면 마음이 많이 열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일 뿐 이 동물과 저 동물은 다른데 왜 굳이 비슷한 예시를 찾아서 합리화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진화과정에서 모든 동물이 같은 조건에 놓였을 것이라 가정하지만 그렇지도 않고. 물론 일부 유사한 경우만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암컷들'에는 기존에 주장되었던 학설에 들어맞지 않는 다양한 동물들의 예시가 소개되어 있다. 짝짓기에 관한 내용이 많고,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에 관한 내용도 많다. 다양한 사례, 자연의 신비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목은 '암컷들' 이지만 이 책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성별의 차이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윈의 성 선택 이론이 여러 사람들의 편리에 의해 왜곡되었지만, 여러 동물의 예를 보면 자연계에서의 성 역할이란 건 그 사람들이 주장하듯 고정되어 있지 않고, 성별이라는 것 자체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성별이 있지만 두 성별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동물도 있고, 일생 동안 성별을 여러 번 바꾸는 동물도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동물은, (거의 마지막에 나와서 그렇기도 한데) 흰동가리였다.
자웅이숙 sequential hermaphrodite 이라고 알려진 물고기들은 한 성으로 삶을 시작해 사회적 자극을 받으면 성을 바꾼다. 성을 바꾸는 물고기 대부분이 자성선숙 (암컷으로 태어나 나중에 수컷이 되는 경우) 이지만 반대인 웅성선숙 (수컷으로 태어나 나중에 암컷이 되는 경우) 도 있는데, 흰동가리들이 이 소수에 속한다. 이 물고기는 암컷을 만드는 메커니즘, 즉 '뇌에서 일어나는 적극적인 여성화'를 연구할 특별한 기회를 준다.
일리노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로즈에 따르면, 흰동가리 수컷에서 암컷으로의 성 변화가 뇌에서 먼저 시작하고, 수개월 심지어 수년이 지난 다음에야 생식샘이 뒤늦게 따라잡아 완전한 암컷이 된다. 암컷의 경우 뇌의 '시각교차앞구역' 이라는 곳이 수컷에 비해 훨씬 큰데 수컷 흰동가리의 성전환이 시작되어 이 시각교차앞구역이 암컷의 크기에 도달하는데 6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 정소는 수축하기 시작하지만 수개월이 지나 퇴화하고 난소로 대체될 때까지 안드로겐 (남성호르몬) 을 계속 생산한다. 이렇게 성전환 중인 물고기는 암컷의 뇌와 수컷의 생식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1장 <흰동가리 니모와 성전환> 본문 일부 발췌)
로즈 교수는, 이 상태의 물고기에게 성별을 묻는다면 '암컷' 이라고 대답할 거라 확신한다. 흰동가리는 텃세가 심한 편이고, 다른 암컷을 만나면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한다. 성전환 중인 물고기를 다른 암컷과 한 수조에 넣으면? 팝콘이 터지는 것 같은 큰 소리를 내면서 결투를 한다고 한다. 암컷이 수컷을 만났을 때는, 수컷이 알아서 복종하여 치명적인 영역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뇌의 성과 그로 인한 모든 성적 행동, 그리고 생식선의 성이 분리될 수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생식샘을 기준으로 성을 이원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은 한쪽 끝에는 수컷이, 다른 한쪽 끝에는 암컷이 있는 연속체입니다. 저 둘 사이에는 연속적인 변이가 있고요."
그리고 사실 수컷과 암컷의 뇌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으며, 생식샘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다른 기관에서는 유사점이 더 많다.
생물학은 각 성의 전형적인 상태만 수용하면서 개체의 폭넓은 변이를 무시하고 극단을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논문 속 두 성은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이는 통계적 현상일 뿐, 진실은 수컷과 암컷이 서로 다르기보다 비슷한 점이 더 많다는 데 있다.
그리고 각 성별 집단의 차이보다, 실은 각 개체간의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 또한 생물학은 간과하고 있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자연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공감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구식의 성차별에 대한 믿음을 고집한다면 여성과 남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부채질하고 남녀 사이를 이간질하고 성 불평등을 조장하기만 할 것이다.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성차별에 대한 믿음을 고집할 것이지만, 그 사람들과 다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미국 작가이자 학자인 안네 파우스토 스털링이 말한 것처럼 ‘생물학은 수단만 다를 뿐인 정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