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확정
잠자냥님을 알고 싶었던 은오님의 마음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걸 적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잠자냥님의 저주 (세상에 이 곳에서 책을 못 사게 하는 저주라니요) 그리고 다락방님께만 다정할 수 없어 - 공평함에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다 - 얼떨결에 적어보게 되었다. 물론 책먼지님을 좋아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어떤 질문에 대답하는 거 엄청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상당히 재미없는 답변일거라는 점 미리 알려드린다.
다락방님이 왜 어릴 때 공부하지 않았을까 아쉬워하시는 글을 몇 번 봤다. 나는 왜 어릴 때 책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어릴 때는 책을 좋아했는데, 1994년~2004년 동안 통속 소설, 베스트셀러, 오빠 방에서 찾은 야한 소설 등을 제외하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동안 책을 왜 안 읽었는지, 그 뒤에는 어떻게 다시 읽게 되었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을 뻔 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2004년부터 2008년 쯤까지는 소설과 장르소설을 주로 읽었다. 2008년쯤부터는 책을 열심히 샀고 비소설도 많이 읽었다. 지금은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을 수 없어서 어릴 때, 시간이 많았을 때 책을 읽지 않았던 게 무척 아쉽다. 사실 읽은 책의 권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때는 지금 읽고 싶어하는 류의 책을 읽지도 않았을 테지만. 어쨌든 진지한 독서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 건지, 독서에 대한 기준이 별로 명확하지 않다.
1. 병렬독서 하시나요? 아니면 한 권씩 읽고 한 권 다 끝내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시나요? 엄청 두껍고 머리 아픈 책이면요?
한 번에 한 권씩 읽는 적은 별로 없다. 여러 개의 북클럽에 몸을 담고 있기도 하고, 북클럽에서 읽는 책 중 두꺼운 책은 1주씩 분량을 정해놓고 읽는 경우도 있다. 또 출퇴근시 운전하면서 책을 듣는데 들을 수 있는 책은 읽을 수 있는 책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보통은 듣는 책 / 읽는 책이 따로일 때가 많다. 그리고 읽다가 다른 책에 관심이 생기면 읽다말고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 일도, 그 책을 읽다가 말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일도 있다. 단편소설집의 경우 북플에 어디까지 읽다가 말았는지 기록해두고 있다.
책이 재미없거나 머리아파서 중단하는 경우는 사실 별로 없다. 대부분의 책은 띠지부터 발행일까지 다 읽는 편이다. 오히려 별로인 책은 끝까지 읽으면 뭐라도 건질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는다... (이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가) 꼭 읽고 싶어서 구입한 책은 어차피 내가 갖고 있으니까 나중에라도 읽겠지 하고 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더 많다. 쓰고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
2. 도서관에 신청도 하시고 전자책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도서관 신청 or 전자책 구입 or 종이책 구입은 어떤 기준인지?
물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도 하고 전자책도 구입한다. 도서관에는 읽고 싶고 궁금한데 내가 소장하진 않을 것 같은 책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 위주로 신청한다. 그런데 발행부수가 적은 도서라고 자꾸 까여서 기분 나쁠 때가 많다. 우리 동네 도서관은 처리 속도가 느린 편이라서 신청해놓고 안되겠지 하면서 샀는데 구입했다고 연락올 때도 있다.
전자책은 출장갈 때는 읽고 싶은 책 많이, 평소에는 적립금이 쌓이면 사는 편이다. 출장가지 않을 때 전자책으로 사는 책은 많이 무겁지 않은 소설, 종이책으로 소장 안해도 되는 지식류 비소설, 책에 관한 책 (서평집, 에세이 등), 그리고 출퇴근시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관심있는 책을 많이 갖고 있어 예스24의 전자책 구독 서비스도 이용하고 있다. 운전할 때 잘 들을 수 있는 책은 흐름이 좋은 소설이나 에세이, 실용서 등이다. 전자책으로 읽기 힘든 책은 어려운 책, 앞뒤로 넘겨가며 참조해야 하는 책이다. 대표적인 책은 작년 1월 여성주의책같이읽기 책이었던 웬디 브라운의 <남성됨의 정치> (반쯤 읽다 포기).
전자책의 장점은 휴대하기 좋다는 것 그리고 누워서 보기 좋다는 것이다. 리더기는 옛날 옛적 아이리버에서 나온 스토리, 크레마 그랑데 (가스파드 한정판), 리디 페이퍼 라이트, 리디 페이퍼 프로 네 개를 사봤고 리디 페이퍼 라이트는 처분했다. 스토리는 유물로 간직중.
종이책은 소장하고 싶을 때, 어려워서 줄치면서 읽고 싶을 때, 궁금한데 소장은 안할 것 같지만 전자책이 안 나왔을 때 (다시 팔 수 있으므로), 그리고 적립금이 많이 쌓였을 때 산다.
3. 읽은 책은 다 100자평 남기시는 건가요?
아니오.
내실있는 100자평을 쓰기란 너무 힘든 일.
4. 막상 읽어보니 별로라 페이지가 잘 안 넘어가는 책은 미련 없이 덮으시는지 아니면 그래도 붙잡고 완독하시는지?
위에도 썼는데, 별로인 책은 오히려 끝까지 완독하고 괜찮은 책은 다음에 다시 보지 하고 쉽게 놓는 편이다.
5. 중고로 팔아버리는 책과 남기는 책은 어떤 기준인지?
다시 안 볼 책 중 알라딘이 사 주는 책을 팔고, 안 팔리는 책은 보통 갖고 있다가 책장에 자리가 필요하면 재활용장에 버린다. 가끔 잘 팔릴 것 같으면 알라딘 회원판매 중고로 등록해보기도 한다. 남기는 책은 아직 안 읽은 책, 힘들게 줄긋고 본 책 (안 사주기도 할 거고), SF와 페미니즘 책 (절판이 잘 되어서), 선물받은 책.
예전에 하루키를 모았지만 몇 년 전 몇 권 남겨놓고 다 버렸고, 그 뒤에는 한 작가의 책을 열심히 모으고 있진 않다. 권수로는 토지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로마인이야기 (이것도 버리고 싶은데) 가 제일 많을 듯. 그림책을 많이 모았었는데 열심히 정리중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 육아 스트레스로 책을 많이 사들였고 그동안 관심사가 바뀌어서 사놓고 안 읽었던 책들이 많은데 여성주의 책들이 많아지니 책장에 자리가 부족해서 이제 그 책들을 팔아야 할 것 같다.
6. 책 구입하실 때 중점적으로 보시는 게 뭔지? 평소 믿고 보는 작가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니라면 저자 이력이나 뭐 소재나 상 받은 목록이라든가 뭘 주로 보시는지. 더해서 이런 책은 아묻따 거른다 하는 것도 있으실 텐데 궁금합니다.
요즘엔 북플에서 서재 이웃들이 추천하는 책만 봐도 바쁘고, 내가 구매했던 책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라딘이 추천해주는 책도 꽤 도움이 되고 있다. 미리보기까지는 잘 안보고 출판사 책 소개까지는 꼼꼼히 읽어보는 편. 상 받은 책은 오히려 잘 안 본다. 아묻따 거르는 책은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 그리고 베스트셀러+자기계발서는 특히 거르는 편이다. <역행자> <세이노의 가르침> 이런 것들. 이유는 뻔한 내용이 많기도 하고, 읽어봤자 내가 실행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연금술사> 같은 뜬구름 잡는 책도 매우 싫어한다. 마지막으로 과학 관련된 책도 잘 안 사고 안 본다. 특히 과학이 애매하게 들어간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것. (안 사고 싶었지만 다들 너무 좋다길래 사서 읽고 바로 팔았다)
아름다운 책 사진이 아닌 그냥 책 사진도 없이 이렇게 올려도 되는 건지...
그래도 길게 썼으니 저주는 풀리리라.
샤라라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