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한 에세이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유명한 작가의 글도 아니고, 문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이 아닌데도, 그 어떤 글을 읽었을 때보다 마음이 흔들린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로 그런 책이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니, 제목부터 왠지 숙연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는 순천 할머니들의 일기라면, 이 책은 강원도에 사는 이옥남 할머니의 글이다. 할머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기를 쓰셨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곧잘 틀리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 어떤 글쟁이의 글보다도 읽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순천 할머니들처럼 이옥남 할머니 또한 어려서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글씨가 쓰고 싶었다는데, 할머니의 아버지가 배우지 못하게 했단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홀로 글을 배우신다. 아버지가 글을 못 배우게 한 게 ‘원이 돼서’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로 재 긁어서 ‘가’ 자와 ‘나’ 자를 써보며 글을 읽혔다. 그러나 시집살이하는 동안은 글을 안다는 표정조차 지을 수 없던 할머니는 남편이 저 세상 간 뒤에야 적적함을 달래고자 도라지 까서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거기에 하루하루 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특별히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글씨를 좀 더 예쁘게 써볼까 글자 연습을 한다고 시작한 것이 어느덧 30년에 이르렀다.

할머니의 일기는 때로 시(詩)와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의 삶과 함께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저 잠만 깨면 밭에 가서 세월을 보내고 이 나이 되도록 이때까지 살았다.’며 일복을 타고 났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는 정말 사계절 내내 매일 같이 일하느라 편할 날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이란 일을 해야지만 힘이 생기고 용기도 나게 매련이지 가만히 누워 있으면 바보와 같지 뭐니.’ 말씀하신다. 밭일 하고 나물 캐서 장에 내다팔고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책 읽고 이렇게 일기도 쓰신다. 들판에 나가 종일 일하니 꽃이 피고 새가 울고 개구리가 울고 등등 자연의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그 변화에 따라 삶에 대한 통찰이 가득 넘치는 문장들을 빚어내신다.

봄에는 ‘사람은 춥다지만 풀과 꽃은 때를 놓칠까 바쁘게 서둔다.’ 쓰기도 하고,  ‘봄이 오면 새소리 이상하게 들리고 산에는 진달래꽃 동백꽃이 만발하고 대지에는 각색 사물이 봄을 맞아 즐거운 듯 시간을 다투면서 나오는데 사람은 왜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가.’하며 곁에 없는 이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백합 향기를 맡으며‘하얀 백합이 보기에도 깨끗하고 즐거워서 사람도 그와 같았으면 좋겠다.’ 하신다. 그 마음은 나도 본받고 싶어진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을 바라보며 눈이 아주 즐겁다고 느끼다가도 ‘당분간 있다가 곱든 나뭇잎도 말라서 우수수 떨어지게 되겠지. 사람도 나뭇잎과 같이 나이 많고 늙어지면 나뭇잎 떨어지듯이 자연히 섭섭하고 슬퍼지고 우울해지게 마련이지.’ 하며 가을을 사람의 인생과 비유하기도 한다. 멋진 글을 쓰려고 애써서가 아니라, 자연스레 써나갔지만 소박하고 깊이 있는 표현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고추 말리는 기 애 보는 것 같다. 하나씩 만져봐서 바싹 한 건 골러서 넣고 누굴누굴한 건 뒤집어 말리고 방이 달궈놓으면 뜨거워 못 있는다. 뜨겁기 전에 얼른 뒤집고 나간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16쪽)


그러나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씨. 작은 짐승들까지 걱정하는 그 마음씀씀이에는 자못 고개가 숙여진다. 할머니는 날이 추워지자 그렇게 많던 새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며 ‘어디 가서 뭘 먹고 겨울을 나는지 그것도 궁금하구나. 집도 없이 어디 가서 의지하고 있나 싶다.’며 겨울 날 새들을 걱정하고, 소나무 가지에 앉아 울고 있는 뻐꾹새를 보며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며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힘들게 우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것이 다 저렇게 힘이 드는구나’ 생각하신다. ‘힘들게 운다고 누가 먹을 양식이라도 주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은 뭣을 먹고 사는지.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우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아프다.’ 하신다. 때로는 방게를 잡아와서 간장에다 끓이다가도 문득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죄가 될 것 같아서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그 전에 공수전 갑북이 할멈 살았을 땐 개구리를 구워서 다리를 들고 몸에 좋다고 이거 먹어보라 해서 내가 그기 입이냐고 개구리를 먹는 기 입이너 하고 내밀어 쐈는데, 그 할멈재이도 오래 못 살고 죽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8쪽)


식물이나 동물 생각하는 마음도 이러하시니, 사람에 대한 애정은 오죽할까. 할머니의 자식 사랑, 손주 사랑은 애절하다. 모진 시집살이에 바람만 피며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남편. 그렇게 힘들게 살았으면서도 ‘자식들이 멀리 살지만 다 착해서 행복하다.’ 말하는 할머니는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 한다. 자식들 아픈 게 당신 몸 아픈 것보다 더 걱정이고, 자식들이 용돈을 주고 가면 고마우면서도 맘이 아프다. 삶은 모질어서 할머니보다 14년이나 어린 동생이 치매에 걸린 모습을 봐야만 하고, ‘며칠 전에도 풋콩을 까서 안쳐 먹고 일어나라고 주고 왔는데, 그런지 삼사일밖에 안 됐는데 하나뿐인 친구가 그새 저세상으로 가’ 버린다. ‘하룻밤 새 친구 한 명 떠나고 이제는 정말 나 하나 외로이 홀로 다니게 되었네. 맘 같아서는 나도 빨리 친구 따라 갔으면 한 생각이 불현듯이 드는구나. (...) 나도 얼마나 더 살까. 나도 머지않아 따라 갈 거다. 될 수 있으면 친구 뒤를 따라서 갔으면 싶다. 언제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까.’라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든다.

사람을 향한 할머니의 애정은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이들로 한정되지 않는다. 할머니는 대구 지하철 화재 뉴스를 보고 눈물을 흘리다가 이장님 차를 얻어 타고 양양군청까지 나가서는 성금 십만 원을 보태고 오신다. ‘없이 사느라고 남의 신세만 지고 좋은 일 한번 못 해 보고 그게 한이 돼서’ 조금이나마 보냈다는 할머니.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게 내가 눈물이 난다. 아이 옷 벗어 논 걸 껴안고 아이 엄마가 그렇게 우니 사는 게 숨이 붙었으니 살지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텔레비전 보면 맨 속상하기만 하다.’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읍내에서 불난리 난 사람들에게도 선뜻 당신의 옷을 꺼내 보낸다. 며느리가 선물해 준 남방, 아직 한 번밖에 입지 않은 외투, 예쁜 치마, 추리닝 등등.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도 마음은 야박하기 짝이 없는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필요 없는 걸 주면 그것도 죄여, 내가 아까워하는 걸 줘야지.”(222쪽)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온통 이렇게 감동적이고 숙연해지는 글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할머니의 소소한 행복이 전해지는 글들도 많다. 손자가 준 용돈으로 믹서기를 사서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며 ‘ 이제 콩을 담가서 갈아봐야지.’ 마음먹는 모습에서는 왠지 할머니가 귀여워서 웃음 짓게 된다. 또 ‘바깥은 춥고 냉냉해서 나가기도 싫고 방에 그냥 있으니 심심해서 그저 책이나 있으면 읽고 싶다.’는 할머니의 소박한 바람에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글에서는 누구라도 크게 웃을 수밖에 없으리라.



-오래 살다 보니-
밭에서 김을 매는데 젊은 여자가 보건소에서 나왔다면서
치매 조사를 하고 갔다. 나 사는 동네 아냐고 해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라 했더니 올해 무슨 년이냐고
물어서 2014년이라고 대답했다.
오래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59쪽)


-왜 자꾸 뛰나가너-
올해도 산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날마다 도토리 까는 게 일이다. 망치로 깨서 깐다.
안 깨면 못 깐다. 반들반들해서.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141쪽)


강원도 양양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를 담은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과 순천 할머니들의 일기를 담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이 두 책은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더없이 평범한 삶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도 이 두 책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 꾸밈없는 소박한 진심을 담은 글, 자기의 아픔과 고통스러운 삶마저도 숨김없이 써내려간, 그래서 읽는 이들의 마음에 생생하게 가닿는 그 진솔함에 있을 것이다. 이런 글들은 ‘글’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을 마음에 새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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