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대산세계문학총서 137
토머스 하디 지음, 이윤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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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하루 2~3장씩 읽었는데, 웬만한 아침 막장 드라마보다 흥미진진 정말 재미나다. 재미만으로는 갑. ‘아내 판매‘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시작해 그 사건이 어떻게 한 인물의 평생을 옥죄는지 숨가쁘게 그려나간다. 한 인간의 파멸도 구원도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구나. 흥미는 만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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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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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핵심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2차대전하면 우리는 히틀러를 떠올린다. 그러나 히틀러나 괴벨스만으로 그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분명 동조자, 부역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숨은 동조자들의 민낯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름끼치게도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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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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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닭 없이 축 처지는 날들이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이유는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면 더 막막해지는 그런 때. 그래서 이 힘겨운 인생을 왜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때. 요즘 내가 그렇다. ‘그랬다’라고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도 그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하인리히 뵐의 책을 읽는다.

폐허 문학. 전쟁 뒤의 참혹한, 폐허와도 같은 그런 시기를 그린 문학. 요즘처럼 우울할 때 이런 책을 읽어도 될까?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반납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어쨌든 읽는다. 책장을 펼치자마자 그려지는 세계는 말 그대로 황폐함 그 자체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탈영병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한스 슈니츨러’. 그런데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쩐지 마음에 잔잔한 위로가 밀려온다.

이 작품 14장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14장은 하인리히 뵐이 이 장만 따로 단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천사는 침묵했다>는 뵐이 죽고 난 뒤인 1993년에야 세상에 선보였다. 1949년 이전에 집필되었지만, 작품이 쓰였을 무렵 독일 사회는 이 작품을 받아들일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전후 독일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사회상을 세밀하게 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도둑질과 매혈, 구걸 등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그런데 전쟁 때 나치에 부역했던 권력자들은, 전쟁이 끝난 뒤로도 사회 곳곳에 숨어서 여전히 잘 먹고 잘 살아간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독일 사회가 이 작품을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폐허와도 같은 작품에서 위로를 받는가. 그것은 폐허 속의 꽃 때문이다. 그 꽃은 뵐의 문장에서 피어난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문장이 빚어내는 따스한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14장만 따로 떼어 이야기하자면, 이 장은 두 남녀가 다 쓰러져 가는 낡은 집,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는 작은 공간, 폐허와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음을 아주 조금 확인하고 체온과 입김을 나눠가지면서 잠드는 장면이 그려질 뿐이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드디어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의지하게 됐을까? 14장만으로는 유추가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난한 두 남녀, ‘한스’와 ‘레기나’가 그저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의지하는 이 장면은 어쩐지 눈물겹다.

한스는 탈영병이다. 번번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해가면서 목숨을 부지했기에 이제는 자기 자신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는 징집되기 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결혼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아내라고 잠시, 아주 잠시 불렀던 여인과도 어쩌다 하룻밤을 보낸 게 전부다. 그리고 그 아내마저 전쟁 때문에 잃어버렸다. 레기나는 또 어떤가. 그녀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갓난아이를 잃었다. 이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자기 목숨뿐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부지해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너무나도 힘겨워, 전쟁 때 그냥 목숨을 잃어버린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탈영병 검거를 피하기 위해 의사의 도움으로 가짜 신분증을 손에 넣은 한스는 추위 때문에 병원에서 무심코 걸쳤던 외투를 돌려주기 위해 외투 주인을 찾아간다. 외투 주인은 아기를 잃고 빈집에서 홀로 살아가던 레기나. 그녀의 집에서 한스가 주춤거리면서 묻는다. “당신 집에 있어도 될까? 내 말은 당분간…… 좀 오래…… 아니면 영영?” 레기나의 대답은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그래. 이 집에 있어도 돼.” 그 뒤로 한스는 레기나의 집에서 시체처럼 몇날 며칠 잠을 자며 그녀가 가져다주는 빵이나 커피를 받아먹는다. 별다른 말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 다정한 말도, 따스한 위로도, 강렬한 열정 같은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서서히 서로 의지하게 된다. 레기나는 한스에게 배급표를 얻어다주고, 한스는 거리로 나가 신부로부터 얻게 된 미사용 와인이나 빵 한 덩이를 볼 때마다 레기나를 떠올린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는 어떤 말이 없어도, 모든 상황을 다 안다는 듯이 품어주는 한 사람의 공감과 이해가 그 어떤 열정적인 사랑보다도 더 깊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마침내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런 가운데서도 슬프다고 말하는 장면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그 참혹한 상황 속에서 발견한 한줄기 작은 빛의 소중함을 알기에 어쩐지 눈물이 난다.

하인리히 뵐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전쟁 뒤 비참하게 살아가는 중년 부부 ‘프레드’와 ‘캐테’의 삶을 그린 적도 있다. 가난한 부부의 어느 주말을 그린 이야기 속에서 전후 독일의 피폐한 상황, 가난에 찌든 하층민의 삶,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폭로했다. 이 작품 또한 삶의 비애가 절로 느껴진다. 삶에 지치고 꿈이 부서진 중년 남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생의 씁쓸한 단면에 깊은 공감이 간다. <천사는 침묵했다>의 한스와 레기나가 함께 늙어간다면 프레드와 케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금세라도 부서질 듯한 삶 속에서 그들의 사랑만큼은 단단해 보인다. 폐허를 함께 겪었기에 그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그들 사이에는 이해와 공감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런 상대방으로 인해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하인리히 뵐은 전쟁은 사람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희망을 말한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 시선이 나를 위로한다.

이 책을 읽느라 눈가가 젖었는데 곁에 있던 고양이가 나를 보며 뭔가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며 눈을 지그시 감아준다. 애정이 담뿍 담긴 눈이다. 고양이들이 요물이라고 하는 까닭은 함께 사는 존재에 대해, 그 존재의 감정에 무척 예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기쁜지, 슬픈지, 우울한지, 화가 났는지 너무나도 잘 안다. 내가 눈물 흘리면 옆에서 그냥 동그란 두 눈을 끔뻑끔뻑 감아줄 뿐이다. 아무 말도 필요 없다. 공감과 이해. 세상 그 어떤 사랑보다 더 깊은 애정이다. 살아가야지, 살아야 한다. 한스와 레기나처럼 전쟁 뒤의 폐허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벅찬 인생이다. 생이 폐허와도 같다. 그러나 그 황폐한 터 위에도 꽃은 피어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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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8-2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위로를 받는 경험 흔치않죠. 작가로서도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큰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하인리히 뵐의 작품 리뷰를 몇 번 읽고 꼭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잠자냥님의 글이 따뜻하게 느껴져서 저 또한 위로 받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2019-08-29 14:31   좋아요 1 | URL
네, 아마도 그런 경험들 때문에 책 읽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인리히 뵐 작품은 꼭 추천합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이 책을 비롯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 괜찮고요.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은 그 어떤 것을 읽어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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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을 좋아한다. 전쟁 뒤의 폐허를 어쩜 이리도 가슴 시리게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잃지 않는다. 14장만 읽어도 너무 아름답다. 뵐을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며 추천할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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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영화 원작 소설) - 완역, 1·2권 통합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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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품을, 그것도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성인이 되어 읽은 올콧의 작품은 <가면 뒤에서>가 유일했다. 올콧은 ‘A.M. 버나드’라는 가명 또는 익명으로 다수의 선정소설을 발표한 경력이 있다. <작은 아씨들>의 ‘조’가 가족을  위해 돈을 벌 목적으로 선정적인 소설들을 썼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조’는 나중에 그 선정소설들을 불태우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써서 작가로서 크게 성공하기도 하지 않은가. 올콧 연구가들은 이 소설이 바로 올콧의 <작은 아씨들>에 해당하며 그렇다면 조가 썼다는 선정소설처럼 올콧도 실제로 그런 소설들을 투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그녀의 ‘선정소설’들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에 나온 선집이 <가면 뒤에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숨겨진 스릴러들>이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여성주의 문학연구가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 알던 <작은 아씨들>의 그 작가가 이런 책을 썼단 말이야?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아씨들>의 ‘조’를 보라. 그렇게 능동적이고 활달하면서도 자아가 확고한,  여주인공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어린 시절 읽은 작품들에서는 그랬다.

고백하건대 나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왕자와 거지>나 <보물섬> 또는 <15소년 표류기>같은 모험담을 좋아했다. 내 또래 여자 아이들이라면 으레 좋아하는 <빨강 머리 앤>도 <소공녀>도 <작은 아씨들>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작품 속 세계가 주로 집 안에 ‘갇힌’ 소녀들의 이야기였기에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작은 아씨들>에서 인상 깊은 인물은 있었다. 바로 둘째 조. 조는 <작은 아씨들>의 딸 넷 가운데 가장 독립적이고 활달한 인물이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주체적이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서 나는 조를 좋아했다. 그런 조가 어른이 되어 작가가 되었을 때도 그 설정이 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조에게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했다.

<가면 뒤에서>를 읽고 난 뒤 루이자 메이 올콧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어릴 때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내가 놓친 게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면 뒤에서> 덕분에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받아들고 일단 그 부피에 깜짝 놀랐다. 1권과 2권을 합본한 두께. 900쪽이 넘는다. 이렇게 두꺼웠다고? 어린 시절, 세계명작동화전집에서 책들을 빼내어 책으로 집짓기를 하면서 놀았던 나로서는 그때 그 어떤 책도 900쪽 분량은 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 무렵, 내가 읽은 <작은 아씨들>도 대부분의 많은 어린이용 책이 그랬듯이 축약본이거나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법한 내용은 삭제된 그런 책이었으리라. 몇십 년 만인가. 책을 펼쳐 읽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는 책인데도 메그와 조, 베스, 에이미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되살아난다. 가난하지만 화목하고 다정한 가정. 지혜롭고 당찬 어머니. 허영도 많지만 맏딸로서의 의무를 언제나 잊지 않는 메그, 선머슴 같은 조, 소심하고 다정한 베스, 조 못지않게 고집스러운 막내 에이미 등등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던 친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기분이다.

한 가정을 배경으로 메그와 조, 베스, 에이미 등 네 자매의 성장을 그린 이 작품에서 나는 이번에는 ‘조’의 성장에 한층 더 주목한다. ‘루이자 메이 올콧’ 그녀와 조를 동일시하면서 말이다. 성미가 급하고 말투가 신랄한 데다 침착하지 못한 조. 여성적인 특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그녀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는 원하는 대로 실컷 읽고, 달리고, 말을 탈 수 없는 게 가장 큰 고통이다. 그런 조가 갖고 싶은 것은 천재성이다. 언니인 메그가 가난한 집 여자애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결혼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거라고 한숨을 쉴 때면 “그럼 혼자 살면 되지.”하고 용감하게 맞받아친다.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부자가 되기보다는 자기가 직접 돈을 벌어 언니를 호강시켜 주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불쌍한 언니! 내가 돈을 많이 벌 때까지 기다려. 마차와 아이스크림, 굽 높은 구두, 작은 꽃다발을 건네주고, 같이 춤출 빨간 머리 남자들도 덤으로 얹어서 줄게.” (84쪽)

지혜롭고 선량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천사 같은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게 꿈인 메그에 비해 조는 그쪽 방면으로는 아예 관심이 없다. 책에 나온 것 외에 연애에 관한 이야기라면 아예 멀리하는 편이다. 조는 메그가 결혼으로 집을 떠나 자신들의 화목한 가정이 와해되는 것이 끔찍이도 두렵다. 그래서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맙소사! 왜 저희는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이런 걱정은 안 하고 살 텐데!” 이 화목한 가정이 와해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또 있다. 바로 베스. 베스의 꿈은 넷 중에 가장 소박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안전하게 한집에 살면서 가족들을 돌보는 거’라고 말하는 베스. 베스가 왜 그토록 이 집을, 가족들 곁을 떠나기를 두려워했는지는 나중에 밝혀지면서 한결 더 아프게 다가온다. 어릴 때 내게 베스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이번에는 이 조용한 셋째의 아픔과 삶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만큼 나도 자란 것일까.

메그에게서도 새로운 면을 본다. ‘조’처럼 나 또한 결혼해서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꿈이라고 그런 삶을 소망하는 것일까? 의아했다. 그런 내게 메그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이제는 장녀로서 일찌감치 가난한 가족의 현실과 그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고 있었을 그 조숙한 소녀가 눈에 밟힌다. ‘버르장머리 없는 네 아이들이라는 짐을 져야 하는’ 첫째였기에 다른 자매들보다 더 일찍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자신의 삶을 한탄이라도 하듯 “가난한 데다 다른 여자들처럼 인생을 즐길 수도 없으니, 평생 소소한 재미나 가끔씩 느끼면서 악착같이 일하다가, 늙어서 추하고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겠지. 정말 우울하다!”(81쪽) 말하는 메그의 이 말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돈을 벌려면 남자들은 일을 해야 하고 여자들은 돈 많은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해. 정말 지독하게 불공평한 세상이야.”(319쪽) 씁쓸하게 내뱉는 메그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결혼의 환상에 젖어 있는 철부지 소녀가 아니라 세상의 불합리함이나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던 캐릭터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럼에도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책임감 있게 가족 모두를 위해 가장 성숙한 선택을 한 것이리라.


“대단한 미인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니까 싫은 사람도 꾹 참고 대해야 한다고? 그것 참 훌륭한 도덕률이네.”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논쟁하고 싶지 않아. 세상 이치가 그렇다는 거야. 그 이치를 거스르려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비웃음을 살 뿐이야. 난 세상을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싫어. 언니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개혁가가 좋은데.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고 싶어. 세상은 개혁가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개혁가가 없으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아. 넌 구세대고 난 신세대인 셈이네. 넌 세상에 맞춰 살아. 난 세상의 모욕과 야유를 즐기면서 내 뜻대로 신나게 살 거니까.” (582쪽)


두 고집쟁이 조와 에이미의 이 대화는 꽤 의미심장하다. 로리와 이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알고 나면 더더욱 그렇다. 개혁가가 되어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이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을 가장 기쁘게 여겼던 조. 늙어서 관절이 굳을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날까지 계속 뛸 거라고, 철들지 않겠다고, 최대한 오래 아이로 살고 싶다고 말했던 ‘조’이지만 그런 그녀도 결국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일찍이 “난 여자라서 고상한척하면서 살아야 해. 어떻게든 순응하고 살아야 된단 말이야.” 절규하듯 로리에게 말했던 그녀이기에, 그 마지막 선택이 나는 좀 더 안타까웠다. 어릴 때 나는 조가 로리와 결혼하지 않아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조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았던, 멋진 작가가 된 모습으로만 남았었는데, 맙소사 이번에 읽어보니 나는 이 작품의 절반만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자유롭게 사는 게 너무 좋아서 세상 어떤 남자를 위해서도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조’이지만 한 남자 앞에서는 그녀의 결심도 흔들리고 만다.

작가로 우뚝 서서 글을 쓰면서 큰돈을 벌고 자유롭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늙어서 관절이 굳을 때까지, 지팡이에 기대어 다녀야 하는 날까지 계속 조가 독립적으로 살기를 바랐는데, 결국은 ‘가정’에 머무는 삶을 선택하게 되어서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안착 않은 채, 마음껏 사랑하면서 글 쓰며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 바예르의 조언을 듣고 깨달아 돈벌이만을 위한 글쓰기를 그만 두는 장면도 못마땅했다. 그 때문이 아니라, 조 스스로 깨우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는 그러고도 남음직한 캐릭터가 아닌가? 아마 이런 한계는 <작은 아씨들>이 동화로 쓰였고, 가정의 행복을 으뜸 가치로 여기던 시절에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자 메이 올콧 그녀 자신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면 ‘조’ 또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연인은 바로 어머니들인 것 같아요.”(847쪽)라는 조의 말은 어린 시절의 내가 놓쳤던, 그러나 지금은 분명하게 보이는 새로운 발견 중의 하나이다. 메그와 조, 베스, 에이미 등 네 자매가 나름의 가치관을 갖고 올곧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네 자매의 어머니 마치 부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독립적인 조를 만든 사람도 결국 ‘마치’ 부인이었다.


 “네 말이 맞아, 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아내가 되거나 남편감을 찾으려고 경박스럽게 구는 여자로 살기보다는 행복한 독신으로 사는 게 낫지.” 마치 부인도 단호하게 말했다.(201쪽)


“너희가 짊어져야 할 작은 짐에 대해 조언을 해줄게. 때로는 짐이 버거울 때도 있겠지만, 짐은 우리에게 유익한 거야. 짊어지는 방법을 깨달으면 점점 가볍게 느끼게 돼. 일을 하는 게 건강에 좋고, 누구나 해야 할 일은 많이 있어. 일을 해야 삶에 권태를 느끼지 않고 나쁜 짓을 멀리할 수 있는 거야. 일은 건강과 영혼에도 보탬이 돼. 돈이나 유행을 좆는 것보다 일을 열심히 해야 힘과 독립심을 기를 수가 있어.” (243쪽)


베스의 죽음 뒤 사랑과 슬픔으로 깨달음을 얻고 난 뒤 조가 쓴 작품은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는 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글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 그게 비결이야. 유머와 비통함도 생생하게 살아 있어. 이제 너만의 방식을 찾은 거야. 넌 유명세나 돈을 바라지 않고 진심을 담아 글을 썼어.”(844쪽). <작은 아씨들>이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이에게 사랑이 찾아온다’(921쪽)는 노래처럼 <작은 아씨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기에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새롭게 읽히며 마음을 뒤흔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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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8-26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의 리뷰를 읽고나면 딱히 관심 없던 책도 읽고싶어지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잠자냥 2019-08-27 09:49   좋아요 0 | URL
ㅎㅎ <작은 아씨들>도 그렇지만 <가면 뒤에서>는 꼭 읽어보세요. 새로운 루이자 메이 올콧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