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오랜만이다. 몇 년 만인 걸까? 실은 몰랐다. 내가 김애란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될 줄은. 순전히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바깥은 여름이라? 제목을 보는 순간 온갖 것들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안은? 밖은 여름인데 안은 여름이 아니라는 소리구나. 여름이 아니라면 겨울? 그도 아니면 여름으로 가는 봄?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여름이 지나간 가을?

여름이다. 여름은 덥다. 덥지만 활기가 넘친다. 초록도 무성하다.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꺄르르한 웃음도 볼 수 있고,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먹으면서 거니는 10대 소녀도 볼 수 있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조차 활기 넘친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채롭다. 바다로 들로 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여름은 들떠있다. 여름은, 찬란하고 뜨거운, 생의 열기로 가득한 기운이 느껴진다.

겨울은, 가을은, 봄은 그렇지 않다.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황량하거나 쓸쓸하다. 여름에 비하면 그렇다.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은 여름보다도 여름이 아닌 계절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사실 나는 처음에 ‘시차’를 ‘사치’로 읽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치’라고 읽어도 나름의 뜻이 통했다. 안에서는 하얀 눈이 흩날리는, 또는 황량한 바람이 부는데 바깥은 온통 여름이라니, 그야말로 안에서 그 황량함을 고스란히 껴안고 사는 이들에게 여름이란 ‘사치’아닌가.

김애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에는 그렇게 겨울을, 또는 봄 혹은 가을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아이의 뜻하지 않은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부부이거나(‘입동’), 소년의 몸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르던 개의 죽음을 준비하거나(‘노찬성과 에반’), 한쪽은 통과의례를 거쳐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한쪽은 그 세계에 진입하기를 실패한, 기약 없는 청춘이거나(‘건너편’), 언어 때문에 언어와 자유마저 잃어버린, 오히려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거나(‘침묵의 미래’), ‘더블폴트’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거나(‘풍경의 쓸모’), ‘엄마는 한국인이라 몰라’ 퉁명스럽게 말하는 다문화가정의 소년이거나(‘가리는 손’), 남편의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아내이다(‘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그들 모두에게 찬란한 여름은, 틀림없이 ‘사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름’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당연히 온도 차이를 넘어선 ‘시차’를 느낄 것이다.

김애란의 작품은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이후 정말 오랜만에 읽었다. 사실 나는 김애란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초창기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을 읽었을 때 뭐랄까, 치기어린 문장이나 묘사를 위한 묘사 같은 것들에 조금 질려버린 기억이 있다. 고시원이나 원룸,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는 청춘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에 끌려 그의 작품을 다시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김애란도, 김애란의 작품 속 주인공들도 나이가 들었구나. 늙어가는구나.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점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둘만의 방을 찾아 헤매던 그 옛날의 주인공들이 이제 <바깥은 여름>에서는 버젓이 자기 집을 가진 이들이 된 것이다. 물론 크게 화려한 집도 아니지만 <침이 고인다>에서 방을 찾아 헤매던 청춘들이 어느덧 ‘자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침이 고인다>는 '방'을 얻기 위한 20대의 남루한 투쟁기였다. 물론 그들은 어떻든 자신만의 ‘방’을 갖고 있었지만 ‘나만의 공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딘가 크게 부족했다. 그 ‘방’은 비가 오면 물이 콸콸 들어오는 반지하 방이기도 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후배에게 침범당한 작은 원룸이기도 하고, 신림동의 고시원이기도 하고, 옥탑방이기도 하고, 다 큰 남매가 한 공간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해야 하는 원룸이기도 하고, 노량진 학원가의 학사촌이기도 했다.

그랬던 주인공들이 낡고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집’을 소유하고는 20대의 삶이 아닌 30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아이도 낳고, 그 아이로 인해 생의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아이로 인해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도 한다(‘입동’, ‘가리는 손’). 그래서 작가도, 작가가 그리는 인물들도 그때보다는 어른이 되었구나, 자라고 있구나, 그럼으로써 삶이 던져주는 무게를 조금 더 묵직하게 느끼는구나 싶어졌다. 그런 변화가 조금은 반가웠다.

어떤 작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했다. 죽음을 그린 작품에서 그랬을 듯하지만, 사실 눈물은 매우 뜻밖의 작품, 뜻밖의 구절에서 흘러내렸다. 그 작품은 어른의 생활로 접어든 한 사람과 아직도 그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서성이면서 주변부 맴돌고 있는 또 다른 한 사람- ‘도화’와 ‘이수’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건너편’을 읽을 때였다. 이 작품은 예전 김애란 단편에서 곧잘 볼 수 있었던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하는 청춘의 삶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도화와 이수- 둘 다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한쪽은 사회 진입에 성공하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한, 미묘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작은 파문을 그렸는데,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안에서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이 떠올랐다. (‘건너편’, 117쪽)' 이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사실 나는 김애란의 단편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삶- 그러니까 노량진 학원가를 전전한 적도 없고, 고시원이나 신림동 일대의 삶을 살아본 적도 없다. 김애란 작품에 자주 그려지는 학원 강사의 삶도, 지상의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살아본 적도 없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청춘의 삶에 비하면 운이 좋은 편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럼에도 ‘여러 번의 봄과 겨울을 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젊은 얼굴’이라는 구절을 읽노라니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여름’다운 여름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언젠가는 찬란한 여름 같은 삶이 오리라 여전히 꿈꾸고 있을 이들, 또는 그런 여름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 어느덧 가을과 겨울로 접어들고만 이들의 삶을 내가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형태는 다를지언정 그런 삶을 나 스스로도 지나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젊은 얼굴’들의 삶이, 그 쓸쓸하고 황폐한 인생이 어떠할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아는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바깥은 여름>에서는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찬란한 여름이 오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한번쯤은 인생의 여름이 찾아올까? 글쎄, 영원히 여름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얀 눈이 흩날리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 상처를 끌어안고 인생을 헤쳐 나가는 이들의 진솔한 삶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그런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헤아릴 줄 아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는 ‘여름의 찬란함’을 본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7-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애란 작가의 책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느 모임에서 마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읽어본 적
이 없어서 그냥 멀뚱멀뚱하게 쳐다만 본 기억이
나네요.

이번 책은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상찬이 많아서요.

잠자냥 2017-07-20 10:57   좋아요 0 | URL
김애란의 초기 작품은 그 명성이나 인기에 비해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제가 한국 현대 문학을 썩 좋아하지 않는 까닭도 있습니다만. 하하...) 이번 단편집은 작가가 내공이 좀 쌓였구나 싶더군요. ㅎㅎ

cyrus 2017-07-20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지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한국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은 정말 오랜만에 느꼈습니다. ^^

잠자냥 2017-07-20 13: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여러번 울컥했습니다. ㅎㅎ

2017-07-2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4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3등 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

잠자냥 2017-08-04 21:58   좋아요 0 | URL
아...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좋은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작품 읽어봤어?” 단편을 좋아하는 나에게 언젠가 J가 어떤 책을 건넸다. 러시아 단편 소설을 묶은 <아름답고 광포한 이 세상에서>라는 책이었다. 제목부터 아름다웠다. 책을 훑어보니 몇몇 작품은 이미 읽어본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J는 콕 집어서 ‘추운 가을’이라는 작품을 읽어 보았느냐고 한 번 더 물었다. 이반 부닌.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다. ‘아니’라고 말하니, ‘꼭 읽어봐’ 한다.

그때는 바로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 그 작품이 문득 떠올라 책장을 넘겼다. 그 단편을 다 읽었을 무렵, 가슴에서 무언가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연인의 이야기로 매우 짧은 단편이었지만 완벽했다. 체호프를 좋아하던 내게 이반 부닌이라는 이름은 그 작품 하나로 각인되었다. 체호프보다 서정적이잖아? 그랬다. 체호프와 비슷하면서도 체호프에게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었던 낭만과 아름다움이 부닌의 작품에는 있었다. 그 뒤 기회가 닿는 대로 이반 부닌의 작품을 모았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출간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은 그런 목마름을 채워주고도 남는 작품이다. 물론 이반 부닌은 단편만으로도 문학이 줄 수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니 어쩌면 단편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또한 그러할까? 반신반의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몇 쪽 읽지도 않았지만 이미 내 마음에서는 ‘아름답다’는 단어가 몇 번이나 맴돌았다. 부닌의 문장은 시(詩)와 같다. 그의 문장에는 어릴 시절의 향수가 담겼고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그윽한 추억이 담겨있다. 볕에 잘 말린 포근한 이불 속에서 뒹굴 거리던 다락방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비오는 날 촉촉이 젖은 나뭇가지들을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아름다운 문장들로 부닌은 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려간다. 그의 이름은 아르세니예프-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나고 자라 문학을 사랑하고 글을 쓰며 살고 싶어 하는 ‘문학청년’이다. 그의 일생이 어린 시절부터 유년 시절, 십대를 거쳐 청년에 이르기까지 조용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특별하게 큰 사건이나 어떤 극적 전개가 그려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러시아 몰락한 귀족 집안의, 문학을 꿈꾸는 한 청년의 삶이 왜 이토록 멀리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일까.

아마도 아르세니예프 그의 삶이, 그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 모두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저러한 보편적인 느낌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하지만 가족의 사랑이 평범하게(그리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존재하는 집안에서 자연을 벗삼아 자유롭게 자라나고, 조금은 괴롭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학교생활을 어쩔 수 없이 시작하고, 서서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지 깨달아 그것에 몸담게 되는 삶. 물론 그런 가운데 가족이나 주위의 비난이 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용한 지지가 따라오기도 한다.

물에 젖은 잡초를 헤치며 채소밭으로 달려가 무를 뽑아서 짙푸른 진흙이 묻어 있는 무 꼬랑지를 탐욕스럽게 깨물던 순간, 그런 순간은 내 인생에서 드물었다..... (27쪽)

“넌 나이가 들면 어딘가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갖게 되겠지. 또 조금씩 저축해서 집을 살 거야.” 갑자기 나는 미래의 온갖 공포와 비속함을 너무나 생생하게 느끼고 울음을 터뜨렸다..... (63쪽)

그렇게 그는 자라고 성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의 비밀- ‘나는 나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235쪽)’을 깨달아 간다.

그 또한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열정에 휩싸이기도 하고, 순간적인 정열에 매혹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리카.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의 제5권 제목을 ‘리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을 만큼 ‘리카’는 이 작품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왜냐하면 아르세니예프는, 리카를 사랑함으로써 인생의 뼈아픈 진실을 더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한다! (21쪽)’는 그러한 진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을 읽노라면 인생의 아름다운 한때, 찬란했던 한때가 언젠가는 사라지고, 그 순간이 소멸해서 기억 속으로 차츰 퇴색해 갈 것을 모두가 알기에, 그 찬란한 한때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에도 어쩐지 슬픔이 밀려온다. '진흙 묻은 무 꼬랑지를 탐욕스럽게 먹던 시절'은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시없을 아름다운 한때임을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떨리는 첫 만남도, 또 오해로 인한 고통스러운 다툼도 그 순간은 그저 삶을 이루는 한 부분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그렇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한때임을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안다. 그래서 왠지 부닌이 그려내는 이 사소한,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청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슴으로 절절히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내 인생도, 내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사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사는 삶이지만, 그렇기에 그 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고. ‘세상과 인생에 대한 사랑,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달콤한 사랑이 안겨준 지극한 부드러움과 고통을 느끼면서(176쪽)’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우리 삶에 ‘리카’로 부를 수 있는 그 모든 순간은 오직 그때만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이반 부닌 그 자신으로 볼 수 있는 ‘아르세니예프’ 한 문학청년의 삶을 그리고 있기에 어떤 면에서는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스토너의 삶은 줄곧 황량한 고독으로 이어지다 마침내 문학 속으로 침잠했다고 한다면 아르세니예프의 삶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만 같은 그런 평범한 순간들을 살며 문학을, 글을 쓰는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순간은 평범했지만 촘촘히 아름다운 한때로 이어져 있다. 또한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슬프도록 아름답다. 아마도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이반 부닌의 서정성 짙은 문체가 큰 몫을 했으리라. 부닌은 그의 작품이 주는 울림과 깊은 감동에 비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조금 알려졌다. 더 많은 이들이 그의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18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8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17-11-3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안녕하세요. 이상하게 회사가 갑자기 너무 바빠지는 바람에 알라딘 블로그도 버려두고 이러고 있네요. 처음 시작할 때는 밀리지 말고 쓰리라 결심했는데... ㅜㅜ
잠자냥님이 이 책에 대해 쓰신 걸 보고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드디어 어제 다 읽었어요. 정말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소설이었어요. 좋은 소설 소개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잠자냥 2017-11-30 13:06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글이 안 보여서 바쁘신가 했어요. ㅎㅎ 이 책 정말 아름답죠!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었어요. 쌀쌀한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요...
 
헝그리 플래닛 -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
피터 멘젤 외 지음, 홍은택 외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서점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으나 사서보기는 살짝 부담스럽고(책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덜컥 샀다가 후회하는 일 생길 까봐)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생각으로 기다렸던 책인데, 여차저차 하다 보니 결국 이제야 읽게 되었다. 참 잘 만든 책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예전에 이 책을 보고 블로그 이웃님이 책을 쓰고 사진을 찍은 사람도, 번역한 사람들도 모두 공을 들인 티가 난다고 했었는데, 딱 그 말이 맞다.


대부분 사람들이 나 아닌 타인이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궁금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 같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 내가 먹은 것, 남들이 먹은 것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텔레비전은 온통 먹방 프로그램들로 넘친다. 나도 이따금 다른 집 식구들은 뭘 어떻게 먹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상류층으로 그려지는 가정의 식사 장면이 종종 나오는데, 정말로 실제로 존재하는 상류층 가정에서는 저렇게 먹을까? 어떤 브랜드의 어떤 음식을 먹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 이 책은 이런 호기심을 계급적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물론 이것이 곧 계급적 차원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에서 다룬다. 전 세계 24개국을 돌며 총 30가족을 만나 그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모든 먹거리와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취재하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대륙의 가족이 소개된다. 새로운 가족이 소개될 때마다 그들이 먹는 일주일 분량의 음식 사진이 소개가 되는데, 이 사진들을 보는 재미가 일단 대단하다. 사진의 다음 페이지에는 육류는 어떤 종류로, 몇 그램에,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큼의 양인지 등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단순히 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먹는 양과 먹는 종류를 취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쉽지만, 그 안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 풍속, 먹는 것에 담겨진 사회 계급적 문제 등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의 장점은 그저 그런 일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음식이 낭비되어 버려지는데, 어느 곳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굶어 죽고 있다.’라는 식의 주장을 저자들이 하지 않는다. 그저 기록을 통해 이런 사실을 독자들이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게 한다.


이런 현실은 서유럽이나 일본, 미국과 같은 선진국 가정의 식탁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가정의 식탁 사진을 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는 문제다. 일주일 동안 식품에 지출하는 비용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보이는 사진과 저자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더 잘살게 될수록 스스로 몸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유럽, 일본, 미국과 같은 나라일수록 가공식품이나 육류의 섭취가 더욱 늘어난다. 물론, 그 안에서도 서유럽의 일부 가족은(예를 들면 프랑스 같은) 먹는 것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중요해, 덜 가공되고, 더 자연 친화적이며, 식사 시간이 단순히 먹고 마시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의 커뮤니케이션 장의 현장으로 중요한 의미를 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완전히 부유해진 나라는 이제 건강에 신경을 쓰고, 이제 막 잘살게 된 나라는 건강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단 풍요롭게 맛있는 것을 찾아 먹는 것(이런 가족일수록 육류 섭취가 많고,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도 무척 많이 마신다)이 중요하고 그것도 아닌 최빈국은 그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반긴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대륙별로 선호하는 음식도 무척 다르고, 전통적인 음식도 참 다르다는 사실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엄청나게 재미있던 것은 그린란드 가족을 인터뷰한 장면이다. 가족 구성원 중 소년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었더니 ‘북극곰’이라고 대답한 것- 그리고 바다표범 어느 부위가 맛있다고 했는데….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답이 그린란드 소년의 입에서는 일상처럼 나온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북극곰’이라고…. 이런 재미를 이 책에서는 흠뻑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아울러, 내 가족의 식탁, 나의 식탁은 어떤지 생각해 보게 된다. 좀 더 몸에 좋은 음식, 환경이나 지구에 덜 나쁜 영향을 주는 음식, 그런 것들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출간된 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10년 동안 세계 곳곳, 가정마다 식탁의 변화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느 지역에서는 틀림없이 10년 전에 비해 유전자조작 식품(또는 그 가공식품)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침투해 있을 것이다. 10년 뒤인 오늘날 식탁의 모습은 어떨지도 좀 궁금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17-07-11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넘 좋아합니다. 부부가 이런 멋진 작업을 하다니 남다른 부부같아요.

잠자냥 2017-07-11 14:02   좋아요 0 | URL
네, 부부가 정말 의미있는 작업을 함께한 것 같습니다. ㅎㅎ
 
그레이엄 그린 - 정원 아래서 외 5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레이엄 그린은 <권력과 영광>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책을 읽다 보면 첫 작품만으로도 홀딱 반하는 작가가 있는데 그레이엄 그린이 바로 그랬다. <권력과 영광>은 무척 독특하다. 배경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로, 황량한 멕시코를 중심으로 그 장소보다 더 황량한 인물이 나온다. 이른바 ‘위스키 사제’라는 인물로 그는 위스키에 절어 사는 '타락한' 신부이다. 이 작품이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에 반한 나는 그 뒤 <제3의 사나이>를 통해 그레이엄 그린을 다시 만났다.

<제3의 사나이>는 동명의 영화로 매우 유명하다. <제3의 사나이>에서는 ‘위스키 사제’와 견줄만한 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바로 ‘해리 라임’이라는 인물인데, 그 또한 ‘위스키 사제’ 못지않게 복잡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작품 또한 특유의 우수에 찬 황량함, 그러면서도 묘하게 낭만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굉장히 이질적이다. <권력과 영광>은 타락한 신부-그러나 그 타락이 어떤 면에서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의 고뇌와 방황을 쫓는 순수문학에 가깝다면 <제3의 사나이>는 하나의 추리소설로, 장르 소설을 읽는 대중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문학성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 모음집인 <정원 아래서 외>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의 다른 두 장편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단편집은 저 두 장편의 모든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장장 930페이지, 총 52편의 단편 가운데 어떤 작품들은 <권력과 영광>계열의 작품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고뇌와 고통, 공포 또는 두려움을 담아 인간 실존의 문제를 그려냈다. 또 다른 한 축에는 <제3의 사나이>계열로, 스릴러 같은 재미와 반전을 담았으면서도 그 안에서 마찬가지로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담고 있다. <정원 아래서 외 52편>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아, 이런 단편들을 쓰면서 <권력과 영광> 또는 <제3의 사나이> 같은 장편을 썼겠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권력과 영광> 및 <제3의 사나이>도 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 '열린책들'과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전부이다. 좀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싹트는 시점에 바로 이 엄청난 단편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올해 1월) 정말이지 소름이 돋았다. 곧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꼬박 반년이 걸렸다. 한꺼번에 다 읽기는 뭐해서 하루에 두 편씩 읽기로 계획을 세웠다. 중간 중간 다른 책도 읽다보니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 읽은 보람이 있다. 어떤 단편은 필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리 저쪽’ ‘파괴자들’ ‘8월에는 저렴하다’ ‘남편 좀 빌려도 돼요?’ ‘정원 아래서’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레이엄 그린 자신은 ‘다리 저쪽’을 가장 잘 쓴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지는 않았던데 나는 사실 이 작품이 무척 인상 깊었다. 그의 52편의 단편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꿈속에서 꾸는 꿈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꿈은 몽환적이다. 모호하다.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도 때때로 앞뒤 연결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춘다. 꿈속의 인물들이 하는 행동에는 ‘왜?’라는 질문에 어떤 동기랄까, 그 인과를 좀처럼 뚜렷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 속 인물들이 그렇다. 그들은 경계가 모호하다. ‘신부’라는 고결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락의 상징인 ‘위스키’에 취해 사는 ‘위스키 사제’처럼(사실 이 사제에게는 숨겨놓은 딸이 있다. 이 딸은 어쩌면 그의 원죄이리라), 선악의 경계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렇기에 행동의 동기도 애매하다. 때로는 그 자신의 정체성도 모호하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뚜렷하게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 ‘파괴자들’의 소년들은 이유 없이 마을 영감의 집을 부순다. 파괴적인 그 행동에는 딱히 꼬집어 정의 내릴만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소년들은 부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그 행동의 동기는 딱히 설명할 수 없어도, 계획만큼은 치밀하다. 소년들의 이런 파괴적인 행동에 영감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소년들은 그런 영감을 보며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저 재미로 그랬다고 하기에 그들은 너무나도 집요하고, 어떤 물질적 이득을 바랐다고 볼 수도 없다.

여기 오기 전에는 다리를 건너면 인생이 달라지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색과 태양 빛 그리고 – 내 생각으로는- 사랑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거라곤 밤새 내린 비로 웅덩이가 괸 널따란 진흙 길, 지저분한 개들, 침실에서 나는 냄새와 바퀴벌레뿐이었다. 사랑 비슷한 게 있다면 상업학교의 열려 있는 문 정도였다. 거기에선 예쁘장하게 생긴 혼혈 여자애들이 오전 내내 앉아서 타이핑 교육을 받았다. 타닥 타닥 타다닥. 아마 그 애들 또한 꿈을, 다리 저쪽 지역에서 일자리를 얻는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생이 훨씬 더 호화롭고 세련되고 즐거우리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 그레이엄 그린, '다리 저쪽', <정원 아래서 외>,134쪽


<다리 저쪽>의 한 구절이다. 백만장자로 짐작되는 한 남자가 볼품없는 잡종 개와 함께 멕시코 한 국경 지역 마을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 그는 아마도 유럽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나 숨어 지내는 신세인 것 같다. 이 멕시코 지역에서는 뇌물을 잔뜩 주면 신분을 숨기고 잠시나마 머물 수 있다. 그는 다리 저쪽,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숨어 지내는 이 지역보다는 좀 더 나아 보이는 다리 저쪽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마치 그곳이 자신이 떠나온, 실제 인생, 즉 화려하고 즐겁고 온갖 멋진 일들이 일어나는 진짜 삶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그의 곁을 지키는 볼품없는 개 한 마리는 늘 그에게 발길로 걷어차인다. 그를 찾아왔던 형사들은 개가 불쌍해서인지, 또는 그가 다리 건너 저쪽 미국땅으로 오도록 유인하기 위함인지 그가 없는 사이, 개를 데리고 ‘다리 저쪽’으로 건너가 버린다. 전에 키우던 개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잡종이라면서 구박하던 그의 개, 그는 자신의 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국경을 넘어 ‘다리 저쪽’으로 건너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가 ‘다리 저쪽’에서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훨씬 더 호화롭고 세련된, 진짜 삶이 존재하는 그런 곳일까? 그는 툭하면 발로 걷어차던 그 개를 무사히 찾았을까?

이 작품에는 인생의 온갖 쓸쓸함과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리 저쪽 사람들은 이쪽을 동경하고, 또 이쪽에서는 다리 저쪽을 동경한다. 마치 서로 그곳에 진짜 삶이, 멋진 삶이 있으리라고 상상하면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멕시코와 미국, 완전히 다른 나라이지만 사실 그 마을들은 크게 차이가 없다. 그저 국경 지대의 낡고 쇠락한 마을일뿐이다. 어쩌면 인생이 그렇듯이 말이다. 또 다른 단편 ‘8월에는 저렴하다’에서도 이런 인생의 비애와 쓸쓸함은 고스란히 재현된다. 8월, 절정의 여름휴가 기간이 끝난 뒤에, 모든 것이 저렴해진 어느 휴가지에 한 노인과 남편을 집에 두고 홀로 여행을 온 중년의 여인. 그들이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은 예기치 않은, 아니 어쩌면 예상했던 순서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8월에는 모든 것이 저렴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 쓰레기도 치웠지만, 다 줍지는 못해서 바닷가에 굴러다니고 있는 바랜 쓰레기들처럼 빛을 잃어버리고 한없이 남루하다.

그레이엄 그린의 단편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실제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알지 못하고, 또 자기가 그렇듯이 상대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때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마저 제대로 알지 못한다(‘남편 좀 빌려줄래요?). 그들은 그렇기에 사랑에 곧잘 실패하고, 부부관계를 비롯한 가족,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종교적 믿음마저도 온전히 갖출 수 없으며, 일에 실패하고, 단 한 순간의 욕망(일회성 만남 같은)이나 아주 작은 소망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로 달음질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모두 그렇지 않은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런 인물들이 살아가면서 빚어내는 일들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없이 슬프기도 하며, 때로는 악의로 가득 차기도 한다. 그런 인물들이 마치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레이엄 그린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극심한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 이미 몇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과 의사는 치료의 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우울증과 절망에서 벗어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절망의 결과물들이 바로 이 찬란한 작품들이다. 고통에서 빚어낸 결과물. 그렇기에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진실’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작품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때로는 헤밍웨이나 레이먼드 카버, 존 치버의 작품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단, 그 모든 작품들을 꿈속에서 읽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 궁금하지 않은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7-07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다양한 독서 세계를 알려주시니
제 독서 시야가 넓어지려 하네요.^^

잠자냥 2017-07-07 10:5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닙니다. 저는 거의 소설에만 빠져 있는걸요. 암튼 감사합니다. ^^

nama 2017-07-07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영미소설시간에 읽은 <사건의 핵심>을 아직도 마음 속에 품고 있답니다. 그레이엄 그린 셰계에 일단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죠.^^

잠자냥 2017-07-07 14: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더 많은 독자들이 그레이엄 그린의 마력에 빠지기를 바라며.. ^^

cyrus 2017-07-0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의 위로>라는 책에 그린이 했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글쓰기는 치료의 형태이다.” 그린은 언행일치를 보여준 훌륭한 작가였습니다. ^^

잠자냥 2017-07-07 15:2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정말로 그레이엄 그린에게 글쓰는 훌륭한 치유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린에게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글쓰기가 그렇겠지요. ㅎㅎ
 
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베르토 볼라뇨의 작품으로 처음 읽은 책이다. 그 뒤로 그의 작품을 야금야금 찾아 읽게 되었으니,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나를 로베르토 볼라뇨로 이어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제는 꽤 지난 일이긴한데, 로베르토 볼라뇨가 국내에 처음 출간될 즈음 열린책들에서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라는 666원짜리 버즈북도 발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어떤 작가이기에 이토록 크게 알리는 것일까 궁금해서 살짝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내 흥미는 사그라졌다. 볼라뇨는 칠레 출신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바로 그 수식어 때문에 나는 흥미가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라틴아메리카나 스페인어권 문학에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든지 ‘환상문학’ 등등의 수식어가 이쪽 문학에 많이 붙던데 내가 그런 문학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칠레’ 출신 ‘마르케스’ ‘보르헤스’의 뒤를 잇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의 작품은 몇 년 동안 관심 밖으로 밀려났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변에서 누군가가 추천하기에 그럼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 어라? 재미있네? 작품이 워낙 잘 읽히기도 해서 금세 읽었다. 책장을 덮었을 즈음에는 볼라뇨의 다른 작품도 웬만하면 다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로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로베르토 볼라뇨 전집을 다 마련하고 싶은 욕심까지 들었달까.

이 작품은 사실 환상문학, 마술적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아이스링크>를 받아 들었을 때는 추리소설인가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추리소설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추리 형식을 빌려왔지만 그 얼개 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소외받은, 평범한 이들의 삶, 주변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볼라뇨 문학의 특징은 독자 흥미를 끌고자 ‘추리’ 비슷한 구조를 빌려와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런 형식을 통해 전하려는 주제는 주로 주목받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이들의 삶이다.

이야기는 한 저택의 아이스링크와 관련 있다. 무대는 스페인 Z시로 스페인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누리아’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Z시 공무원 ‘엔리크’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엔리크는 누리아를 보고 반해 그녀만을 위해 아이스링크를 짓는다. 물론 공무원 신분을 남용해 아무도 모르는 대저택에 문제의 아이스링크를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아이스링크는 엔리크와 누리아만의 공간이 될 수는 없다. 그 비밀을 아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엔리크와 모란, 가스파르 세 남자의 시점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며 ‘아이스링크’를 둘러싼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화자가 되기에 한 사건을 보고 서술하는 내용은 제각각이고 관점도 다르다. 이런 방식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장치를 통해 주변부의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게 보여준다.

<아이스링크>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데뷔작이다. 아주 놀랄 만큼 대단한 명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이스링크>이후 작품들을 궁금하게 하는 힘은 분명 지녔다. 굉장한 대작이라고 일컫는 <2666>도 있던데, 이 작품까지도 언젠가는 읽어볼 생각이다.


내가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 해도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독서의 폭을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 '환상문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개인적인 거부감 때문에 이 작품을 계속 읽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원히 로베르토 볼라뇨를 모르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이 책을 권한 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볼라뇨의 다른 작품을 하나 더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암튼, 우연한 기회에 독서의 지평선을 넓히는 일은 살아가면서 보람을 느끼는 드문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7-0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볼라뇨 작품 세계에 빠져보려고 두권 구입했는데 자꾸 미뤄지네요.
리뷰 읽다보니 얼른 읽어야겠어요.^^

잠자냥 2017-07-06 11:07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을 사셨는지 궁금하네요. ^^

yamoo 2017-07-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폴스타프 님 서재에서 자주 뵙게되더라구요~ 인사를 해야될거 같아서뤼^^;; 근데 볼라뇨 소설이 재밌단 말씀이지요.. 하~ 고것참 고민되네요. 바르가스 요사 작품들을 모으는 중인데 벌러뇨가 재밌는 작가라면..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사재기를 해야 할 듯해서요. 이 작가 작품도 많더라구요..ㅜㅜ

잠자냥 2017-07-06 11:17   좋아요 0 | URL
하하하. 안녕하세요. 네 제가 폴스타프 님 서재를 애정해서 가장 많은 하트와 댓글을 남기는 서재인 것 같습니다. ㅋㅋㅋ 암튼 반갑고요. 네 이 작가 작품수도 많죠... 심지어 열린책들에서 전집도 뽀대나게 나와있습니다. ^^;; 그거 사고 싶지만 참고 있는 중이에요... ㅠㅠ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386543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 52 | 53 | 5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