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새벽 4시가 지나서야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숨과 한숨과 한숨…. 나는 민주당 지지자도 아니고, 대선에서 두 거대 정당 후보를 찍은 경우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정말 간절히 원해서 투표했던 사람 중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단 한 명 있는데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대선뿐만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 내게 주어진 투표권은 거의 대부분 이른바 ‘사표’가 뻔한 군소정당에 투표해왔다. 정의당 계열이나 녹색당, 노동당 같은. 지난 대선에서도 원 없이 심상정에게 투표했고 이번에도 당연히 심이었는데...... 그랬는데.... 막판에 K-트럼프 만큼은 막고 싶어서 행사한 그 한 표가 덧없어졌다. 하............. 이 깊은 우울.
너무너무 우울해서 에라, 역시 책이나 읽자 싶어 어제 왕창(?) 질렀다. 알라딘, 예스24 두 군데서 온 택배 상자 개봉하고 있으려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스타니스와프 렘, <솔라리스>
현대 SF 문학, 대중문화, 서브컬처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영향을 끼친 스타니스와프 렘의 최고 걸작! 그런데다가 르 귄 님이 극찬한 <솔라리스> 뒤늦게 읽고 싶어서 검색하고, 도서관 찾아보고 해도 너무 옛날 책만 있더라. 새 번역본 나오면 좋겠다 싶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덜컥! 민음사에서 렘의 작품이 우르르 번역되어 나왔다. 그것도 폴란드어 원어 번역! 어머, 이건 사야 해! 읽어야 해!
미시마 유키오, <금색>
작가는 싫은데 계속 읽게 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 <금색> 번역 소식에도 눈이 띠용!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절정기의 필력으로 선보인 문제적 작품’이라는데, 꺄오, 이 미치광이가 떠 어떤 미문으로 써 내려갔을지 기대 기대! 왕 기대.
미하일 불가코프, <불가코프 중단편집>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불가코프 중단편집도 나왔다. 그것도 국내 미발표 중단편 13편!!!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나고 자란 불가코프가 직접 참전해 겪은 우크라이나 내전 상황을 담은 작품이 함께 실렸다니 지금 읽으면 더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다. 근데 지만지, 참 책값은 비싸....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잃어버린 발자취>
이 책도 반갑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출간된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잃어버린 발자취>-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에 앞서 라틴아메리카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일상 현실 속에서 발견해낸 알레호 까르 뻰띠에르 문학의 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찬 쉐, <마지막 연인>
은행나무와 휴머니스트가 세계문학 고전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은행나무 시리즈 중에서는 일단 이 작품이 눈에 띈다. 국내 초역인 데다가 중국 현대 여성 작가가 바라보는 사랑에 관한 탐구는 어떨지 궁금.
임레 케르테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운명>, <좌절> 등 임레 케르테스 작품 아직 안 읽어봤는데, 이 작품부터 시작해 보기로.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찌 비트키에비치, <탐욕>
지난번에 함께 출간된 희곡 <광인과 수녀 / 쇠물닭 / 폭주 기관차>부터 읽고 다른 작품도 궁금해서 구매. 이 작품은 비트키에비치가 쓴 작품 중 가장 긴 장편소설이자 그의 대표작이다. 공산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와, 근데 정말 두껍네!
아니 에르노,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아니 에르노 작품이 또 나왔다.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또 샀네. 아니 에르노의 초기 장편 소설로, 작가의 초기작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글쓰기와 문체를 선보인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인 <빈 옷장>, <얼어붙은 여자>와 결이 비슷한 듯.
마리 르도네, <장엄호텔>
열림원에서는 프랑스 여성 작가 작품을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장엄호텔>은 그 시리즈 두 번째 작품.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었던 작품으로(이번이 개정판) 얼굴도 이름도 없는 ‘나’가 인적이 끊긴 늪지대에서 할머니의 마지막 유산 ‘장엄호텔’을 지키며 분투하는 이야기.
이디스 워튼, <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중 <사악한 목소리>와 <회색 여인>을 읽었는데 두 작품은 기대보다는 못했다. 이디스 워튼 작품은 어떨까 싶어 구매. 국내 처음 소개되는 이디스 워튼의 고딕소설 세 편과 대표작 한 편이 담겼다.
미시마 유키오, <문장독본>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론을 담은 책도 새로 나왔다. 엄청난 다독가였던 미시마 유키오가 세계문학에서 가려 뽑은 문장들을 직접 해설하고 감상한 ‘문장론’- 또한 그만의 문학관을 가감 없이 드러낸 고백록이기도.
실비 제르맹, <페르소나주>
실비 제르맹은 소설만 읽었는데,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어제 살짝 열어봤는데 글쓰기와 소설 속 인물들에 관한 독특한 사유의 글인 듯 싶다.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독본>과 비교해 읽어도 흥미로울 것 같다.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이 책 그렇게 난리더라구요? 다락방 님이 소개하신 글 읽고 구매. 이 책은 사실 어제 사지는 않았고 3월 초에 샀던 것 같다. 그즈음 이 책으로 땡스투 들어갔나요? 그거 접니다, 다부장님!
알베르 카뮈, <카빌리의 비참>
이것도 에세이. 어머, 나 이번에 에세이 많이 샀네. 카뮈가 1939년 6월 5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일간지에 쓴 기사 11개를 번역해 묶은 책. 이 책을 통해 카뮈는 알제리 카빌리 지역의 비참한 실태를 절제된 문장과 각종 수치, 증언을 통해 고발한다.
어슐러 K. 르 귄 <세상 끝에서 춤추다-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보관함에 담아뒀는데 중고로 떠서 냉큼 구매했다. 이 책에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발표했던 르 귄의 강연용 원고, 에세이, 서평이 수록되어 있다. 르 귄의 서평 읽다 보면 알라딘 장바구니 터진다....!
수의사 냥토스, <고양이 집사 매뉴얼>
아무래도 집사라, 고양이 관련 책을 여럿 읽어봤다. 이 책도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려니 하고 넘기려다가 목차를 보니 좀 흥미로운 게 아닌가! 이를테면 ‘과도한 그레인 프리 신앙을 주의하자’, 나 ‘힐스나 로얄캐닌을 추천하는 이유’ 같은 부분. 내가 울 냥이들 그레인프리 사료만 주고 있고, 로얄캐닌 사료는 기호성 끝장인 데도 잘 안 사주는데 그거랑 정반대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제 사서 당장 읽어봤는데 아하, 그렇구나 싶은 부분이 좀 있다. 그리고 어제 새로 알게 된 사실. 뚱냥이 우리 둘째의 출렁출렁 배가 나는 다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게 ‘원시 주머니’라고?! 그렇게 깊은 뜻이?! ‘원시 주머니’가 뭔지 궁금하신 분(ex: 홉스 주인님)은 이 책 미리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제 참 울적했나봐유.... 참 많이도 질렀쥬??
아무튼 나는 책으로 다시 침잠하지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K-트럼프의 5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