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많은 디자인 씨 - 디자인으로 세상 읽기
김은산 지음 / 양철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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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디자인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은 아닐까? 멋진 디자인을 바라고, 반짝이는 디자인에 대해 감탄은 하지만 우리는 디자인에 숨겨진 것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 하나로 세상을 바꿨다.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디자인. 이제 그 디자인의 철학도, 의미도 깊이 들여다 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비밀 많은 디자인 씨>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책이다. 디자인의 사회적 의미에서부터 디자인에 담긴 국민성까지. 단순한, 디자인에 대한 지식일 거라고 예상했던 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디자인은 일상의 행위에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에서 출발해야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다. 나오토는 먼저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습관적인 행위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데에서 디자인을 시작한다. 기능과 형태의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사물을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기억을 찾아내어 사물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 47p

생활 속의 디자인. 이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과제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더욱 섬세하게, 더욱 간결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젠 대량 생산하며 쏟아내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대중들은, 조금 더 특별한, 독특한, 멋진 것에 지갑을 열고 있다. 이미 디자인은 넘치고 있고, 그 넘치는 지점에서 벗어나 사람의 마음을 끄는 디자인. 그것에 주목하는 시대가 왔다.

현대 디자인 교육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는 디자인은 전문가들의 직업이기 이전에 하나의 태도라고 말한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 60p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다다르고 나니, 디자인은 단순히 소비의 개념을 넘어선 게 아닌가 싶다. 삶의 방법이자 삶을 대하는 방법이라는 디자이너 나즐로 모홀리나기의 철학에 공감했다. 인간의 행위, 삶 자체도 디자인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 철학, 목표를 따라 하루하루를 디자인 하듯이, 디자인도 책임이 뒤따르게 되었다.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이 똥 모양의 구조물은 작품이라고 하기에,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만큼의 비용 지불 가치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누군가가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고, 돈을 지불했지만 그것은 청계천 광장에 맞는, 청계천 광장에 대한 철학이 담긴 디자인 구조물인지 묻고 싶다. 소요된 경비만 35억 원 정도. 서울 시민들의 동의는 얻었는지도.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채 선택된 디자인은 디자인이 아니라 쓰레기가 된다. 이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그 디자인을 받아들인 자들의 태도도 닮겨 있다. 그렇기에, 디자인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디자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관 관계를 고려하는 것도 디자인 과정의 일부다. 디자인은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디자인은 사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그러므로 디자이너 스스로 사회적인 역할과 윤리의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디자인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눈을 감는다면 디자인은 그저 지저분한 현실을 보기 좋게 포장하거나 깨끗하게 보이도록 외피를 덧씌우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반부룩의 말처럼 그런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컨베이어’에 불과할 것이다. – 194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러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좀 더 심하다고 본다. 가끔 디자이너들은 혼동하기도 한다. 내가 디자이너인가, 오퍼레이터인가의 사이에서 말이다. 타협과 협의의 차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디자이너는 그저 배치만 해주는 사람에 불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것은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디자이너를 대하는 자세, 디자이너가 대하는 디자인의 자세가 달라지지 않고, 끌려다니는 것이 편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술적인 업무를 처리해주는 역할자가 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디자인, 더 많은 제품을 팔기 위해 유혹적인 디자인, 소비의 형태만에 집중한 디자인도 있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자인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에코파티메아리나, 제이드 등은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디자인을 소비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에 환경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소비에 집중된 디자인들이 점점 진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행동하는 디자이너’로 평가 받는 미국의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느 선량한 시민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좋은 시민이란 민주주의에 참여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며 자신이 속한 시대에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것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197

이 책이 다른 여타 디자인책과 달리 의미있게 다가온 것은, 디자인을 통해 문화와 삶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디자인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의 삶이 이제야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디자인은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신념과 철학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생각하기 앞서 우리의 생활을 고민하고, 사회를 고민하는 디자인. 디자인의 가치를 새롭게 짚어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다. 

디자이너가 아주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것. <비밀 많은 디자이인씨>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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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와와!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라니. 구미가 팍팍 당길 수밖에 없다. 우울한 인문학 책들은 잠시 접어두고, 책을 열기만 해도, 에너지가 팍팍 느껴질 것 같은 이런 책. 12월의 책으로 지정되었으면 좋겠다. 부부 건축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는 무엇일까? 제목마저 끌리는 이 책!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건축에도 인문학이 있듯이, 음식에도 인문학이 있다. 인문학은 전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도 읽고 싶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읽고 난다면, 먹는 것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다양성을 위해 음식 인문학 책 한 권도 추천!!!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는.. 이 책. 그러고 보니 그렇다. 우리 말 단음절 어휘의 미학이라니. 이 책은 과연 어떤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을까? 말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일화와 예화 등도 숨겨져 있다니, 단어에 대한 깊은 탐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추천 도서들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해본다. 사회 비판 서적도 좋지만, 다양한 분야를 인문서평단에서 만나게 될 수 있길 바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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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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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쯤 이었던 것 같다. 벌써, 13년 전, '동물농장'과 '1984'를 읽고 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전해인가, 그 해, <동물농장>이 논술시험에 등장해 이슈가 되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읽어볼 수 있었다. 꽤 지났지만, 그의 상상력과 시대를 바라보는 날카로움, 세밀함에 감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쓰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개인적인 생각과 주관, 통찰력을 잘 알 수 있다. 작가의 취향까지도 말이다. 조지오웰의 몇 편의 소설에서 느꼈던 날카로움은 에세이에서도 잘 나타나 있었다. 그는 세인트 시프리언즈 예비학교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억압적인 학교 생활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버마에 인도 제국경찰로 근무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도 보여지듯, 그는 그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경찰을 그만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를 보면, 버마 경찰로 부임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훔쳐볼 수 있다. 코끼리를 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는데도,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중의 심리에 밀려 코끼리를 사살하게 된 조지 오웰.  

나는 내가 코끼리를 쏜 게 순전히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짓이었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곤 했다. - 42p 

인간의 모순과 한계, 그것은 곧 제국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보여주는 작지만 큰 사건이 아니었을까 싶다. 경찰을 그만 둔 후, 노숙자, 접시닦이 등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고 방송국 직원, 중등학교 교사, 헌책방 직원 등을 전전한다. 그 직업들 속에서 그가 써온 에세이들은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러한 에세이들 중에서 29편을 묶은 것이 바로 이 책.  

그는 파시즘에 맞서 의용군이 되어 싸웠고, 영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의용군으로 스페인전에 참전했지만, 부상을 입고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영국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것은 <영국, 당신의 영국>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 - 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107p 

공공연하게 부패와 타락이 계속되고 있으며, 허상과 가면을 쓰고 우아하게 구는 자신의 나라를 날카롭고 실랄하게 비판한다. 비유와 상징 속에서 풍자와 해학을 일삼으며, 좌로 우로 넘나드는 그의 비판은 무섭기까지 하다. 과연, 이시대를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이렇게 쓴소리를 하고 있는지, 문필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지 반성까지 해보게 한다. 

전쟁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에서 그가 말하는 전쟁의 진실과 거짓. 결국, 거짓이 진실처럼 역사적 사실로 남아버릴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스페인에만 적용되는 말같지는 않다. 이미, 전쟁 속에서 많은 왜곡과 거짓,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미 기록된 진실된 역사마저 사실이 아닌 것처럼 바뀌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 권좌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울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 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중략)....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온갖 실리적 목적을 위해 거짓은 사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 - 148p 

진실을 말하는 힘, 세상을 보는 통찰, 그리고 그 안에서 상황을 고찰하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글을 쓰는 이가 어떤 자세를 갖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글로써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경험했던 모든 역사 속에서 나온 진실이리라. 부패와 타락, 부조리를 보아왔으나 수긍할 수 없었고, 힘있는 권력으로 자신을 감싸운 조국에 굴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신념인 사회주의도 비판적인 자세로 보아왔던 조지 오웰.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 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기 검열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 통념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는 동시에 너무 심각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신앙의 시대'에는 달랐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는 개인의 사고 영역 중 많은 부분이 그가 공식적으로 믿는 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 223p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풍자와 위트까지 갖춘 그의 글.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다른 역사를 만든 것은 글의 힘이었다. 조지 오웰의 글의 힘은 대단했으며, 많은 반성을 하게 했다.  

그가 묻는다.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글쓰는 모든 이들에게 그 물음은 돌아간다. "당신은 왜 쓰는가?" 
글 속에 행동을 담지 못하면, 그 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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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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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책을 읽을 자유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가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자신이 필요한 생각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읽고 있는 책이 쌓여 생각의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책은 늘 곁에 있지만, 책장을 여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책장을 여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한다. 

로쟈, 이현우 씨의 신간이 나왔다. <책을 읽을 자유>. 책 한 권에 몇 권의 책이야기가 있는지,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방대한 양과 생각, 책에 대한 평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십년 동안 써 온 서평이라고 하나, 서평 하나에 책 한 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서평 하나의 길이가 구구절절한 것도 아니다. 스마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한다. 가끔은 얄미울 정도로 책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자제한다. 그 책으로부터 얻은 생각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의 서평들을 읽으면서, 내가 쓰는 서평 방식도 돌아보게 되었다.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그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몇 권의 책을 묶어 간결하고 단정하게 말하는 방법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지. 

그가 소개한 책은 거의 인문학이다. 간혹, 문학도 있지만 그것도 고전이다. 생각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다는 듯, 성찰과 비판도 따라야 한다는 듯, 그의 거침없는 넘나듦에 기가 질릴 지경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권'입니다. 우리가 좀 '덜 비열한 인간'이 되거나 더 나아가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면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 다수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이 아직도 비열한 인생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가 '책만 읽어서'가 아니라 '책을 덜 읽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충분히 읽지 않아서'라고 말해야 할는지도 모릅니다. - 17p 

'비열하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읽었던 것일까? 아직도 '책을 덜 읽었고', 아직도 '충분히 읽지 않아서' 계속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태자면, 아무리 매일 매일 책을 읽어도 '완변하고 충분히 읽었다'라는 마음은 갖지 못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책은 쏟아져 나오고, 또 이미 발간되었지만 읽지 못한 책이 많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반영하듯, 한 주제가 끝나고 나면 '로쟈의 리스트'가 간간히 등장한다. 읽고 싶은 책의 리스트들. 그것만해도 언제 다 소화될지 모르는 책들. 그에게 책을 읽을 자유는 끝나선 안되는 절대절명의 사명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가 읽은 책들, 읽고 나서 여기 저기 기고했던 글들이 모이니 작은 주제로 묶일 수 있게 되었다.  <책을 읽을 자유>에서는 책 읽기와 글쓰기, 교양, 고전, 행복, 인간의 본성, 고통, 정치, 사회, 역사, 폭력 등 방대한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의 스펙트럼은 번역에 대한 아쉬움과 비인기 책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을 읽을 자유>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책에 대한 내용이나 이 책이 좋다 나쁘다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다.  책을 읽고 다른 시각,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사유를 도와주는 것이다. 성찰의 기회를 주는 것. 그래서, 그의 책읽기를 자꾸 쫓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안나 카레니나'를 이야기하며, 행복의 의미를 논한다. 갖고, 갖고, 갖고를 반복하고도 행복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과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또한 '흰쌀밥에 고깃국'만 먹어도 행복하겠다는 시절이 있었지만, 그 몇 배를 뛰어 넘는 풍요에 도달하고도 아직도 행복을 좇고 있다면 우리의 '행복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사유 말이다.  

우리가 적어도 북한보다는 더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좋는 일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따.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은 이렇게 말했따.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 97p  

또한, 시대적인 흐름도 간과하지 않으며, 정치적인 생각도 가감없이 말한다. 권력에 대한 책을 읽고 쓴 서평에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미국에 대한 우리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돈'과 '권력' 그 거대함에 복종하는 세계(우리나라를 포함)에 책을 빌어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경각심, 무비판적인 태도, 맹신하는 습관 등을 바꾸기 위해선 책을 좀 읽어주시길 이라고 돌려 말하고 있다. 

책 속에 완벽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에 철학과 사유, 성찰, 사건 등이 섞이고 머릿속에서 소화되기 시작하면, 자기만의 주체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무서운 폭발이고, 자아를 다시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이다. 책의 작은 날개짓이 세계를 뒤흔드는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그동안 읽은 책은, 그런 힘을 충분히 갖고 있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생각을 다듬어 나가는 것, 그것은 '책을 읽을 자유'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계속되는 물음,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노력. 그것들이 책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책 안에 많은 답안들이 모여,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책벌레 이현우 씨의 생각을 찬찬히 음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을 자유>의 가치는 크다. 하지만, 그가 읽은 책들을 훑고, 내가 책을 읽을 자유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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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기 2011-11-16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을 자유"로 검색하다 이 글을 발견해서 제 블로그 글에 링크했습니다. 먼저 알리지 않고 히여 폐가 된다면 말씀해주세요. http://livros.tistory.com/11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역사는 왜곡 되기도 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배우기도 합니다. 아주 중요한 역사가 한 줄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진실인 줄 알고 배우는 역사는 알고보니 거짓말일 때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을까요? 제발,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거짓말 말고요. 

 

 

 

  

 

전작 <나의 권리를 말한다>를 읽으며, 나의 권리에 대해 세세히 알 수 있었죠. 생활 속에서 모르고 지나치는 권리들은 너무도 많았습니다. 이제, <너의 의무를 묻는다>라고 합니다. 권리를 알았다면, 의무도 알아야겠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자, 이제 우리의 의무를 공부해봅시다. 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의무도 권리만큼 중요하니까요. 

 

 

 

 

 

 

4천원 인생을 읽으며, 그 처절함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몸값 1000만 달러의 기자가 식급 8유로의 청소부로 살며, 그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고 합니다. 불안정한 삶 속에서 그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생생하게 듣게 될 수 있겠죠. 궁금합니다. 고작, 180일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그녀가 겪은 것들은 우리에게 반성을 가져다 줄 테니까요. 

 

 

 

 

 

대추리는 잊혀져 버린 것입니까? 벌써 7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대학에 다닐 때, 들었던 마을 이름입니다. 이제는 잊혀져 버린 것입니까? 우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준 걸까요? 이제 다른 마을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들. 그 지난한 기록들은 새로운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늦게라도, 이러한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현대인이야말로 원시인이 아닌지요. 모든 것을 갖고도, 모든 것을 갖지 못해 안달하는 단순, 무식한 사람들. 정말 원시인으로 사는 어떤 부족들은 순수하고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잘났다고 떠드는 현대인이야말로 겁도 많고, 공격적이고 우스꽝스럽습니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를 잘 알아야 우리 후손들에게는 '원시인'으로서의 삶을 물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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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니님. 11월 신간 주목도서는 10월 출간도서중에서 고르는 걸로 되어있는데요. 추천하신 책 중 3권이 11월 출간도서네요.

청춘의반신상 2010-11-05 09:27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수정해야 겠네요. 한 달 내의 도서라고만 생각했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