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 8부작 미니 시리즈 'Ken Burns: The West(1996)' 1편

1편 "The People" (to 1806)            1시간 22분


1. 들어가며

  존 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 1956)'는 수정주의 웨스턴(Revisionist Western)의 대표작이다. 존 웨인이 연기한 이든은 인디언에게 납치당한 어린 조카 데비를 찾기 위해 긴 세월을 보낸다. 이든이 인디언들에게 보여주는 인종차별주의적인 잔혹함과 적개심은 이전의 웨스턴 캐릭터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선한 백인'과 '악한 원주민'의 이분법적 경계선은 조금씩 흐려지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래전, 미국 영화사 수업 시간에 나는 그 영화 '수색자'를 발표하는 과제를 맡았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이든이 데비를 찾는 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였다. 그는 어린 조카가 아가씨가 될 때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감독이나 영화에 대한 자료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인디언들에 대한 자료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 분포했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점점이 흩어진 서로 다른 수십 개의 부족들이 미국 지도 속에 엉켜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켄 번즈는 미국 역사에 대한 일련의 다큐들로 명성을 쌓아왔다. 가장 유명한 10부작 미니 시리즈 'Jazz'를 비롯해 '남북 전쟁(The Civil War, 1990)', '금주법(Prohibition, 2011)'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망하는 다큐를 내놓았다. 공영 방송사 PBS와의 협업을 통해 방영된 그의 다큐들은 미국을 이해하는 교과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8부작 'The West'로 미국 서부사를 살펴본다. 과연 '서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찾았는가? 영상으로 떠나는 이 여정을 통해 '서부'라는 공간이 미국인들에게 갖는 정신적 의미를 살피려고 한다. 그 작업은 문학과 영화를 비롯해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그 공간성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2. 출발

  1편에서는 미국 남부와 멕시코 지역에 살았던 인디언들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나사지(Anasazi)'는 그 지역 인디언들의 조상을 일컫는 나바호족의 말이다. '적들의 조상'이란 뜻의 이 말은 당연히 나바호족이 자신들의 조상에게 붙인 것이 아니다. 백인들에 의해 붙여진 이 말은 뉴멕시코 일대의 인디언 문화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1528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30년이 지난 때에 스페인 선교사들이 멕시코 해안에 당도한다. 그 뒤를 이어서 온 이들은 무자비한 정복자들이었다. 당시 스페인에서는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7개의 도시'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539년, '코로나도 원정대(Coronado Expedition)'는 황금을 찾는 탐사길에 오른다. 말이 탐사였지, 아나사지들에게는 학살과 공포의 날들이 이어질 터였다.

  총과 칼로 무장한 정복자들은 무시무시한 병도 함께 가지고 왔다. 천연두를 비롯해 홍역과 같은 질병에 의해 원주민들이 죽어나갔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손쉽게 그곳을 차지했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그들이 열망하던 '황금'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680년까지 뉴멕시코 지역의 인디언들은 스페인의 통치하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오래 이어진 가혹한 지배에 푸에블로인들(그 지역 인디언들을 통칭하는 말)은 반기를 든다. 여러 부족들이 스페인 통치자들에게 대항했고,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잠정적인 자유와 평화를 얻는다. 이제 그들은 멕시코 북부, 미국 서부 지역까지 자신들의 활동 반경을 넓혀 살게 된다. 비옥하고 넓은 평원에서 그들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말'들을 키우며 번성했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그렇게 평화로운 시기를 보낼 무렵, 신생국 미국이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미국 서부 해안에는 스페인을 비롯해 러시아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주로 모피와 비버 가죽을 얻기 위한 무역상들이었다. 1776년에는 새로운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1781년에는 로스 엔젤레스가 생겨났다. 그러나 미국은 동부 이외에 광활한 서북부 영토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그것을 위해 미국 정부에서 파견한 이들이 '루이스와 클라크 원정대(Lewis and Clark Expedition)'였다. 1805년, 원정대의 탐사가 종료되고, 탐사대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은 서부로 눈을 돌린다. 그로부터 40년 후, 미국은 미개척지 서부의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



*사진 출처: usa.newonnetflix.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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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포르노 배우의 고백, 'The Rise and Fall of a Porn Superstar(2020)' 
 


  1997년에 첫 방송을 탄 BBC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Storyville'은 자체 제작한 다큐를 비롯해 해외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매우 다양하고 폭넓은 소재와 주제를 망라하는 이 시리즈에는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많다. 작년 2월에 방영된 'The Rise and Fall of a Porn Superstar(2020)'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느 포르노 스타의 흥망성쇠'쯤 될 것이다. 게이 포르노 스타의 7년여에 걸친 성공과 몰락의 과정을 담은 이 다큐는 파격적인 소재가 눈길을 끈다. 아마도 우리나라 공중파에서 이런 다큐를 방영한다면 당장 고객 민원실 전화가 터져나가겠지만, 영국은 좀 다른 모양이다. 이 다큐는 BBC가 직접 제작한 것은 아니고, 2018년에 Tomer Heymann 감독이 만든 'Jonathan Agassi Saved My Life'를 부분 편집한 것이다. 선정적 소재이다 보니, 과도한 수위의 장면이 약 15분 가량 삭제되었다. 제작자 Heymann이 인터뷰에서 이 다큐를 영화제 상영용 무삭제 버전과 편집 버전 두 가지로 만들었다고 하니, BBC의 자의적 편집은 아니다.

  다큐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출신의 Jonathan Agassi라는 게이 포르노 배우이다. 다큐는 그의 일상과 가족의 모습을 따라가며 포르노 배우가 아닌, 인간 조나단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해준다. '조나단 아가시'라는 이름은 예명으로 그는 그 이름으로 시작한 배우로서의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다큐의 원제목 '조나단 아가시가 날 살렸다'라는 뜻은 자신의 예명이 불운한 성장기를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다큐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는 게이 포르노 업계의 단면들을 담아낸다. '산업'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그 세계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있고 엄청난 돈이 흘러 다닌다. 매력적인 외모와 연기력으로 단숨에 게이 포르노 영화계를 평정한 조나단은 잘 나가는 스타의 삶을 구가한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업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 관리를 해내지 못한 조나단은 점점 중심에서 밀려난다. 스테로이드 남용과 마약은 그를 수렁에 빠뜨린다.

  그런 몰락의 이면에는 불행한 성장기와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자리한다. 조나단은 11살 때, 아버지로부터 '호모 같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지극히 이기적이며 뻔뻔한 이 아버지는 이혼의 원인을 아들의 탓으로 돌린다. 딸을 원한 아내가 조나단이 태어나자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까지 한다. 조나단은 물론 조나단의 어머니까지 남편의 파렴치함에 분노한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어른이 된 이후에도 조나단의 정서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킨다. 결국 마약 중독이 심해진 그는 포르노 업계를 떠난다. 그렇게 고향에 돌아온 조나단이 수퍼마켓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막과 함께 다큐는 끝난다. 'Rise and Fall'이라는 말을 그대로 실감케 하는 그 끝을 보면서, 욕망과 성공 뒤에 도사린 허무함과 고통을 발견하게 된다.  

  다큐 속에는 마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조나단을 감독 Tomer Heymann이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모습도 담겨져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참 못할 일이네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런 상황에서 제작자는 과연 어떤 윤리 기준을 가지고 개입의 시점을 결정해야하는 것일까? 게이 클럽부터 마약 복용 장면에 이르기까지 이 다큐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경계선을 탐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에게 그 모든 것은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포르노 배우에 대한 흥미 위주의 피상적이고 선정적인 탐구가 아니라, 조나단이라는 한 인간의 내면에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사진 출처: 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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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영화 '배니싱 포인트(1971)'의 결말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휠 로더(Wheel Loader) 2대가 도로를 봉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경찰과 순찰차들이 집결한다. 마을 주민들은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하나둘씩 나온다. 캘리포니아의 외딴 시골 마을 Cisco, 그곳 도로변에 모인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헬기의 추적을 받는 흰색의 자동차 한 대가 등장한다. '소실점(Vanishing Point)'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그 차, 크라이슬러의 1970년형 Dodge Challenger R/T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의 화면이 멈추면서 영화는 이틀 전으로 돌아간다. 과연 그 차를 운전하는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는 경찰의 추적을 받는 신세가 되었을까? 관객은 플래시백(flashback)을 통해 남자의 지난 여정을 복기하게 된다.

  리차드 사라피안(Richard C. Sarafian) 감독의 1971년작 영화 '배니싱 포인트'는 몬티 헬만 감독의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과 같이 언급되곤 한다. 두 영화 모두 자동차가 주요한 소재이며, 그것을 통해 1970년대 미국의 내적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혼의 쌍둥이 같은 이 두 영화 가운데 그럼에도 어느 영화가 더 본질적으로 미국의 내면을 향해 직진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배니싱 포인트'라고 답하겠다. 인물들의 대화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고, 관객들은 오로지 자동차와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며 그것이 주는 의미를 성찰한다. 어떻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내달리는 차를 보며 무언가를 성찰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고 물을 수 있다. 바로 그것을 사라피안 감독은 '배니싱 포인트'에서 구현해낸다.

  코왈스키(베리 뉴먼 분)는 자동차 배달 기사이다. 금요일 저녁, 이제 막 일을 끝내고 온 그는 쉴 새도 없이 새로운 일감을 맡는다. 덴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고객에게 Dodge Challenger를 월요일까지 전해주기 위해 그는 빨리 길을 나서야만 한다. 그런 그에게 필요한 것은 Benzedrine(각성제 암페타민) 알약이다. 길을 떠나면서 코왈스키는 딜러에게 내기를 건다. 월요일이 아니라 하루 앞선 일요일에 인수를 완료하겠다는 것. 그가 내기에게 이기려고 한다면 과속은 필수이다. 그렇게 코왈스키의 무한질주 자동차 배송극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경찰들이 가만히 구경만 할 리가 없다. 놀라운 운전 실력과 과단성으로 코왈스키는 순찰차들을 따돌리며 농락한다. 그의 질주본능이 맹렬해질수록 추격대의 규모는 점차 불어난다. 코왈스키를 잡기 위해 도로에는 전자 탐지선이 설치되고, 헬기가 뜬다. 무슨 대단한 돈이 걸린 내기도 아니고, 도대체 왜 그는 이 미친 질주를 시작한 것일까? 관객은 경찰들의 대화, 코왈스키의 회상 장면을 통해 그의 과거에 대한 단서를 조금씩 얻는다. 무공훈장을 받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 경찰, 카 레이서,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 배송일을 하고 있다.

  사라피안 감독은 코왈스키의 여정을 통해 1970년대 미국 사회를 조망한다. 네바다주의 사막을 지나면서 코왈스키는 다양한 부류의 인간군상을 만난다. 무리를 지어 노래를 부르는 오순절 교회파의 신자들, 방울뱀 사냥꾼, 히피족, 느물거리는 악당 게이 커플이 그들이다. 거기에 코왈스키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지역 라디오 방송 흑인 DJ 수퍼 소울(Super Soul)도 있다. 코왈스키의 질주극에 매료된 그는 경찰 무선을 도청하면서 방송을 통해 코왈스키를 돕는다. 결국 분노한 백인 순찰대원들에게 수퍼 소울이 가혹하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1960년대 미국을 달구었던 인종 차별의 한 단면을 재현한다.

  "미국의 마지막 영웅, 그의 속도는 영혼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제 문제는 언제 그가 멈추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를 멈추게 하느냐입니다."

  수퍼 소울은 코왈스키를 미국의 '영웅'으로, 추격하는 순찰 대원들은 '나치'로 지칭한다. 정말로 코왈스키는 영웅인가? 어떤 의미에서 그는 영웅이 맞다. 반영웅(反英雄, antihero)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코왈스키의 삶은 전역 이후 계속 내리막길이다. 오직 '속도'에만 사로잡힌 그는 거의 잠도 안자고 도로를 질주한다. 거기에는 어떤 목적도 의미도 없다. 사라피안은 흰색 Dodge Challenger가 펼치는 예술같은 스턴트와 무시무시한 속도를 순도 100%로 잡아낸다. 관객들은 코왈스키와 함께 1970년대 광폭하게 날뛰는 미국 사회의 심장부로 직진한다. 1960년대를 관통했던 흑인 민권 운동, 1969년의 Woodstock과 히피 문화의 폭발, 패색이 짙어가는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까지 197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인들은 그 모든 상황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 코왈스키의 '질주'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국 사회 내부의 본능적 반응과 맞닿아 있다.

  마침내 코왈스키는 종착지에 다다른다. 거대한 휠 로더와 헬기, 경찰들이 드글거리는 그곳에 그가 빠져나갈 틈은 없다. At full speed, 그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가속 페달을 밟는다. 그것은 자살인가? Vanishing point, 분명히 코왈스키는 자신을 매료시킨 속도와 함께 사라졌다. '소멸'이 '패배'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물질계에서나 적용된다. 코왈스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가로막는 휠 로더의 틈 사이로 쏟아지는 환상의 빛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 '빛'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계속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코왈스키가 유일하게 의지한 '속도'만이 그의 고통을 잊게 할 수 있었다. 죽음으로써 그는 자신을 옥죄는 속도에의 열망에서 비로소 해방된다. 사라피안 감독은 코왈스키의 여정을 통해 1960년대 말과 70년대 초 미국 사회의 무기력함과 상실감을 담아낸다. 가스펠과 록 음악을 비롯해 컨트리 음악까지 다양하게 선곡된 노래들은 '배니싱 포인트'에 흩뿌려진 보석들과도 같다. 


*덧붙이는 글: '배니싱 포인트'의 원래 촬영분에는 스튜디오의 뜻에 따라 최종 삭제된 8분 가량의 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코왈스키가 시스코에 도착하기 전날 밤, 그는 묘령의 여인(샬롯 램플링 분)을 차에 태워준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코왈스키가 길에서 얼마나 기다렸느냐고 묻자 '너무나 오랫동안 당신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 분량이 삭제된 것에 사라피안 감독은 늘 불만을 토로했는데, 그것은 죽음의 천사를 의미하는 여자의 등장이 영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이 있어야만 영화가 완전해진다고 믿었던 감독과는 달리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는 과감히 잘라 버렸다(이 장면은 유튜브에서 따로 볼 수 있다). 삭제된 8분의 영상을 보고 나서, 나는 스튜디오의 판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며 비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관객에게 그 장면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motorious.com



***몬티 헬만(Monte Hellman) 감독의 '자유의 이차선(Two-Lane Blacktop, 1971)'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58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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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 두 편;

'Charley Varrick(1973)'과 'Straight Time(1978)'


1. 지적 액션 스릴러의 모범, Charley Varrick(1973)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었다. 정신없이 돈뭉치를 담아왔는데, 나중에 세어보니 훔친 돈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 너무 좋아서 환장하겠는 동료 하먼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 찰리 베릭은 근심한다. 자신들이 턴 시골 은행에 그렇게 큰 돈이 있는 것이 수상쩍다. 분명히 구린 냄새가 나는 돈이고, 그 돈 때문에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 시겔(Don Siegel) 감독의 1973년작 'Charley Varrick'은 그렇게 훔친 돈 76만 달러를 두고 마피아와 늙은 강도가 벌이는 한 판 승부를 그린다. 주인공 찰리 베릭 역은 월터 매쏘(Walter Matthau)가 맡았는데, 그가 누구냐 하면 1993년작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에서 꼬마 데니스에게 번번이 골탕먹는 영감님으로 나왔더랬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 '찰리 베릭'과 같은 월척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역을 거절하자 매쏘에게 돌아간 행운인 셈인데, 정작 매쏘는 내켜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큰둥하기는 이스트우드의 캐스팅을 원했던 돈 시겔 감독도 마찬가지. 감독과 배우의 삐그덕거림에도 이 영화는 꽤 좋은 만듦새를 갖고 있다.

  이제, 어떻게든 자기들 돈을 되찾으려는 마피아 일당과 그 돈을 필사적으로 빼돌리려는 강도들과의 싸움은 불가피하다. 원래 4명이었던 일당은 1명이 현장에서 죽고, 베릭의 아내가 도주 중에 총격으로 죽어서 이제 두 명이 남았다. 베릭은 몇 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은신해야만 마피아의 추적을 피할 수 있다고 하먼에게 말하지만, 하먼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혈기에 넘치는 경솔한 하먼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베릭은 이때부터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마피아가 보낸 암살범 몰리(조 돈 베이커 분)의 그림자가 가까이에 드리워진다.

  자, 여러분이 속시원한 범죄 스릴러 액션물을 보러 영화관에 갔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기대한 총격전이나 추격전은 별로 나오지 않고, 주인공은 어디론가 쏘다니며 뭘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마 성미 급한 사람은 이런 영화를 보다가 영화관을 박차고 나올지도 모른다. 개봉 당시에 '찰리 베릭'을 보던 관객들도 그랬던 모양이다. 비평적으로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왜 좋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가? 그런가 하면 작품성이 떨어지는 어떤 영화들은 큰 수익을 내기도 한다. 내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는데 '7번방의 선물(2013)'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된 것에 대해서이다(덧붙여 2006년작 '미녀는 괴로워'도 함께).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 비해서 '찰리 베릭'의 흥행 실패 이유를 찾는 것은 간단하다. 관객에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거의 정보를 주지 않고 답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찰리 베릭은 자신의 완벽한 도주극을 실현하기 위해 계획에 따라 착착 움직인다. 치과에 잠입해서 자신과 아내의 치아 사진을 빼내온다든지, 하먼의 운전면허증으로 위조 여권을 만든다든지 하는 행동들이 그렇다. 그런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베릭의 행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찰리 베릭'이 보여주는 느리고 치밀한 지적 액션 스릴러는 많은 관객을 끌어모으는 것에 한계가 있다. 아마도 요즘과 같이 OTT(over-the-top media service)가 활성화된 시대라면, 영화관 상영을 짧게 하고 나중에 OTT로 풀어서 추가 수익을 노려보기에 알맞은 작품일 것이다. 불운하게도 VHS 보급 초창기 시대에 '찰리 베릭'은 쉽게 잊혀졌고, 과소평가되었다. 그럼에도 '찰리 베릭'의 내러티브는 잘 짜여져 있으며, 초반부 차량 도주 장면을 비롯해 경비행기를 이용한 액션 장면은 매우 볼만하다. 벽돌을 쌓아가듯 결말에 이르기까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찰리 베릭이라는 인물이 가진 캐릭터적 특성을 극대화시킨 것이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명불허전의 더스틴 호프만, Straight Time(1978)

  '찰리 베릭'과 같이 저평가된 1970년대의 범죄 스릴러 영화로는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Straight Time(1978)'을 들 수가 있다. 원래 이 영화는 더스틴 호프만의 감독 데뷔작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되고 단 하루만에 호프만은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직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타 감독으로 들어온 이가 호프만과 친분 관계가 있었던 Ulu Grosbard였다. 

  맥스 뎀보(더스틴 호프만 분)는 6년 동안 지냈던 감옥에서 이제 막 출소했다. 맘 잡고 착실하게 살아보려는 맥스, 그는 직업 소개소에서 캔 제조 공장 취업 제의를 받는다. 직업 소개소 직원 제니(테레사 러셀 분)와 데이트도 시작하면서 맥스에게도 보통 사람의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만하고 비열한 가석방 담당 공무원 프랭크는 맥스의 발목을 붙잡는다. 친구 윌리가 맥스의 모텔 방에서 마약 투약을 한 흔적이 프랭크에게 발견된 것. 구치소에 갔다가 겨우 풀려나온 맥스는 이전에 익숙했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 간다. 결국 동네 잡화점 강도를 시작으로 옛 동료와 함께 보석상 털기에 나서는데...

  'Straight Time'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다. 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범죄자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강력범이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일반인으로의 갱생을 포기하고 다시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맥스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걸림이 없다. 맥스는 범죄에 최적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전당포에 침입해 총기를 탈취하는 장면을 비롯해 보석상 강도 장면에서의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용의주도함 속에 수반되는 폭력성은 스크린 너머의 관객을 마비시킨다. 더스틴 호프만은 배우로서의 타고난 재능을 그 자체로 입증해 보인다.

  그가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에서 메릴 스트립에게 군기 잡는다고 물컵 던지고 뺨 때린 일(두 가지 모두 대본에는 없는 장면이었다) 생각하면 비호감이긴 하다. 신인이나 다름없었던 메릴 스트립은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나중에서야 호프만의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씁쓸하게도, 재능의 세계란 얼마나 무지막지하고 더러운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더스틴 호프만의 천부적인 연기는 'Straight Time'의 주요한 뼈대를 이룬다. 이 영화에서 호프만과 짝을 이루는 여배우 테레사 러셀의 감성적인 연기도 아주 좋다.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극의 조화로운 흐름에 기여하는 러셀의 연기는 '저런 여배우가 있었나'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찌 생각해 보면 'Straight Time'의 내러티브는 다소 단조롭고 진부하기도 하다. 범죄자에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이 사회적 편견과 가석방 시스템에 좌절해서 다시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가석방 담당 공무원은 맥스를 돕는 것이 아니라, 모욕을 주고 재활의 의지를 꺾는다. 구치소에서 나온 맥스는 분을 이기지 못해 그를 폭행하고 도로에서 바지를 벗겨 망신을 준다. 공권력은 길바닥에 나뒹굴며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맥스는 사회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맥스의 현재에서 과거에 이르는 머그샷들이 차례로 제시된다. 그에게 숨쉬는 것처럼 범죄가 익숙했던 데에는 그토록 오랜 기원이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완수하고 마침내 어디론가 떠나는 '찰리 베릭'처럼 '맥스 뎀보'도 길 위에 서있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과소평가된 이 두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에는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감지된다.    
  

*영화 '미저리(Misery, 1990)'의 캐시 베이츠가 맥스의 친구 윌리의 아내로 나온다. 젊은 날의 날씬하고 수수한 외모의 베이츠를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radiotimes.com


***사진 출처: theplaylis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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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탄 기차가 데려다준 곳, 뜻밖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영화 세 편

'운명의 아이러니(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 The Irony of Fate, or Enjoy Your Bath!, 1975)', 엘다 라자노프 감독
'런치 박스(The Lunchbox, 2013)', 리테쉬 바트라 감독
'황무지(Badlands, 1973)', 테렌스 멜릭 감독


1. 소련 시절의 기념비적 로맨틱 코미디, 운명의 아이러니

  소련의 예술 창작 원리인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로맨틱 코미디는 어째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코미디에 재능있는 엘다 라자노프 감독은 그걸 잘 해내었다. 1977년작 '오피스 로맨스(Служебный роман, Office Romance)'는 애 딸린 이혼남과 나이든 독신녀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로 큰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그 이전에 만들어진 '운명의 아이러니(The Irony of Fate, or Enjoy Your Bath!, 1975)'는 라자노프를 명실상부한 코미디의 제왕으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TV방영용 2부작 영화인 '운명의 아이러니'는 1976년 1월 1일에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첫 방영 때 1억 명의 소련 시청자가 관람한 이 영화는 쏟아지는 재방영 요청에 2월에 다시 편성되었다. 그 후, 해마다 12월 31일이면 이 영화를 TV에서 틀어주는 것이 소련의 문화적 관습이 되었다. 참으로 소련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노총각 외과의사 제냐는 마음에 둔 아가씨 갈리야에게 청혼을 하려는 참이다. 갈리야에게 자신의 아파트 열쇠를 주며 새해 첫날에 집에 오길 부탁하는 제냐. 그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늘 절친들과 목욕탕에서 만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만취하고 만다. 취한 상태의 친구들은 레닌그라드에 사는 파벨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는 대신 제냐를 보낸다. 술에 취한 제냐는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불러주고 아파트에 도착한다. 어떻게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쓰러져 누워 자는데, 그 집 주인인 나디야는 침대에 누워있는 낯선 남자의 존재에 혼비백산한다. 우연의 일치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에 같은 모양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같은 주소에, 심지어 아파트 열쇠마저 같았던 것이다. 나디야의 집에 오기로 한 약혼자 이폴리트, 제냐, 모스크바에서 제냐를 기다리는 갈리야, 이 네 명의 엇갈린 만남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무려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하나도 지루하지 않다. 노래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답게 남녀 주인공들이 기타치면서 노래도 여러 곡 부른다. 무엇보다 제냐와 나디야 역을 맡은 안드레이 미야코프와 바르바라 브릴스카의 호흡이 아주 좋다. 브릴스카는 폴란드 출신의 배우로 라자노프 감독이 이 영화를 위해 특별히 캐스팅했는데, 정말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브레즈네프 시대에 도시마다 찍어낸 것처럼 만들어낸 비슷한 아파트를 소재로 했다. 운명의 장난으로 만나게 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2. 참신하고 세련된 인도 로맨스 영화, 런치 박스

  인도의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런치 박스(The Lunchbox, 2013)'도 예기치 못한 실수가 맺어다준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 이곳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집에서 만든 도시락을 점심마다 배달시켜 먹는다.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둔 일라는 무관심한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도시락 반찬 만들기에 온힘을 쏟는다. 이웃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은 배달원의 실수로 남편이 아닌 퇴직을 앞둔 홀아비 공무원 사잔에게 배달된다. 일라는 곧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어쩌다 쓰게 된 쪽지를 주고 받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친밀한 감정이 싹튼다. 그러는 와중에 일라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일라와 사잔은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사잔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다.

  노라 에프론 감독의 '유브갓 메일(You've got mail, 1998)'을 떠올리게 하는 '런치 박스'의 설정은 이메일 보다 구식인 '손편지'이다. 이 의외의 설정이 강력한 유인물로 작용한다는 것은 영화를 보다 보면 알 수 있다. 얼굴도 모르는 두 사람이 매일 도시락 속에 넣은 편지를 확인할 때의 설레임과 짜릿함이 스크린 너머 그대로 전해진다. 일라와 사잔이 편지를 통해 나누는 추억과 일상은 점차 서로의 마음을 물들인다. 마치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처럼 사랑이 그렇게 찾아온다. 뭄바이의 독특한 도시락 배달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덤이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잊을 수 없는 대사는 사잔의 후임 셰이크가 하는 대사일 것이다.

  "때론 잘못 탄 기차가 우릴 목적지에 데려다 줍니다."


3. 낯설고 기이한 종착지, 황무지

  '운명의 아이러니'와 '런치 박스'의 주인공들이 잘못 탄 기차 같은 실수 때문에 사랑의 목적지에 이르게 되는 것과는 달리, '황무지(Badlands, 1973)'의 종착지는 낯설고 기이하다. 테렌스 멜릭(Terrence Malick)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아서 펜의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의 마일드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사우스 다코타주의 시골 마을, 억압적인 아버지와 살고 있는 15살 홀리(시시 스페이식 분)는 25살의 청소부 키트(마틴 신 분)와 알게 된다. 홀리는 제임스 딘을 닮은 키트에게 끌리지만, 홀리의 아버지는 둘의 만남을 반대한다. 홀리의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드러낸 키트는 총을 쏘아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시신과 집을 불태우고 정처없이 길을 떠나는 홀리와 키트. 이 괴상한 한 쌍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몬태나주의 황무지로 들어간다. 황무지에서 보낸 둘만의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곧 현상금 사냥꾼을 비롯해 경찰과 주방위군이 그들의 뒤를 쫓는다.

  좋아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길 떠나는 여자. 이 잘못된 인연의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추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황무지'는 테렌스 멜릭이 그려낸 1970년대 미국의 황폐한 내적 자화상 같다. 홀리의 아버지와 집으로 상징되는 기성 세대의 권위와 가부장적 질서에 거침없이 총질을 하고 불까지 질러 멸실에 이르게 하는 장면은 참혹하다. 홀리와 키트가 마주하는 몬태나의 황량한 풍경들은 마치 베트남전의 패배가 남긴 젊은 세대의 내적 트라우마처럼 보인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펼쳐지는 이 기이한 범죄 스릴러 영화는 쓰디쓴 뒷맛을 남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도, 방향성도 잃은 세대. 멜릭은 서정적인 풍광 속에 정신병적 징후를 지닌 키트와 철부지 십대의 로맨스를 짜넣는다. 잘못된 만남은 어그러진 여정으로 이어지고, 도착한 곳에서 보게 되는 것은 파멸일 뿐이다. 테렌스 멜릭이 '황무지'에서 보여준 영화적 감성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나았을 텐데, 그의 2011년작 'The Tree of Life'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만 나온다. 멜릭의 영화 종착지는 의미없는 공허함으로 가득하다. 어쨌든 이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1978)'은 볼만한 영화이므로 멜릭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챙겨볼 것을 추천한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en.unifrance.org


***사진 출처: themusichal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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