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지옥>을 이야기한다. 조승우가 돈에 불을 지르고, 김혜수가 살인을 사주한 것이 들통나고, 그 와중에 손등을 찍힌 아귀같은 괴물은 조승우가 돈을 따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지옥은 영화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란 해괴한 나라에는 3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살고 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불법 인간>이다. 인간이면 인간이지 불법 인간은 뭔가. 법적으로 허가받고 태어난 인간도 있던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서 합법적이고,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부탄, 네팔, 태국에서 온 순박하고 큰 눈의 그들은 이 땅에서 태어나지 못했고, 산업연수생이란 저임금의 <불온하기 짝이 없는 일본놈들의 짝퉁 법률>에 의해 밀수입되고 있으며, 이 땅의 빌어먹을 <평화로운 민족, 남을 한 번도 침략할 능력이 없었던 민족성>은 그들에게 갖은 폭력과 야만을 자행하고 있더란 말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이 알량한 나라가 IMF라는 미국의 세례를 입은 후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란 미명하에 들어온 수십만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노동현장에서 70년대 우리 선배들이 당했던 피해를 고스란히 답습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언론은 그들의 소식을 애써 외면하며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만을 앞장세웠고, 그들의 권익 투쟁은 늘 공산주의를 이롭게하는 이적행위였고, 불온하기 그지없는 말많은 빨갱이들의 짓거리였다.

이제 그 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짓밟힌 인권이 있고, 그것을 유린하며 단물을 빨아먹는 자들이 한 가정의 자상한 아버지 표정을 짓고 퇴근을 한다. 노동자들의 기숙사 문을 잠근채...

간혹 어린이 대공원 같은 곳에 가면 삼삼오오 놀러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비싼 놀이기구를 탈 돈을 쓸 수 없는 듯, 우리 아이들은 물고기에게나 던져주는 용도의 뻥튀기를 나눠먹으며 놀이기구 타는 아이들을 보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재작년 고3 아이들 수능 마치고 인권 단체에서 운영하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 프로그램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는지... 그간 잊고 살았다.

한국인조차 품어주지 않는 가진자들의 법률, 가진자들의 국회, 가진자들의 국가에서 여권과 외국인등록증마저 빼앗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차가운 멸시와 범죄자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흰 눈자위 뿐이었다.

한국의 사장들에게 그들은 곧 돈이고, 공무원들에게 그들은 처리 대상이고, 뭔가 가로고치면 추방의 대상이며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불법을 자행하는 체류자들에 불과하다. 여차하면 정신병원에 6년4개월을 행려병자로 처박아 버릴 수도 있는,  한국에서 태어나 처벌받지 않는 쥐새끼보다도 못한 신세인 것이다.

불법천국 대한민국이 제발, 제발 인권에 대해,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해 <수직>적이지 않은 잣대를 들이대면 좋겠다. 장유유서나 부자유친 같은 수직 질서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나눌 수 있을 때 지옥은 비로소 천국으로 가는 다리를 놓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이란 나라가 가진 착취의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지옥의 복사기를 파괴할 열쇠는 이란주씨처럼 낮은 곳에서 힘써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 힘에서 그 싹이 트는 것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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